재수사 1 : 장경명 장편소설

재수사 1 : 장경명 장편소설

$16.00
저자

장강명

연세대공대졸업뒤건설회사를다니다그만두고동아일보에입사해11년동안사회부,정치부,산업부기자로일했다.기자로일하면서이달의기자상,관훈언론상,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대상등을받았다.장편소설『표백』으로한겨레문학상을받으며소설가로데뷔했다.장편소설『열광금지,에바로드』로수림문학상,장편소설『댓글부대』로제주4·3평화문학상과오늘의작가상,『그믐,또는당신이세계를기억하는방식』으...

목차

재수사19p

출판사 서평

22년전미제사건을다시수사하라!
현장에남겨진DNA,반쪽짜리CCTV이미지…
지금우리는그날의범인을잡을수있을까

100개의장으로구성된이소설은범인의회고록과형사의수사를두축으로두고그둘사이를팽팽하게오가며진행된다.22년전신촌에서여대생민소림을죽인범인은회고록을통해살인의과정을복기하고자신의경험을바탕으로현대사회를분석하며우리사회의시스템과윤리를공격한다.그는시스템의기저에계몽주의가있다고말하며,우리사회가새로운윤리를필요로한다고역설한다.

‘나는병든인간이다…….나는악한인간이다.나는호감을주지못하는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소설《지하로부터의수기》는이렇게시작한다.내고백을시작하기에도그보다더좋은문장은없을것같다.
나는22년전에사람을죽였다.칼로가슴을두번찔러죽였다.
―본문9쪽

그리고나는내가무엇을상대하고있는지명확히인식하게되었다.그건신이나양심이나내면의목소리따위가아니었다.멀어지는사이렌소리나경찰마크나형사한두명도아니었다.
내가상대해야하는것은이사회의형사사법시스템이었다.
―본문23쪽

살인자인나에게도다른사람들처럼삶의의미와윤리적지침이필요하다.아니,살인자이기에더욱더나를무너지지않게해줄,강하고남다른도덕적중심을원한다.
―본문86쪽

이에답하듯,또다른한축에서는연지혜형사의재수사가시작된다.서울경찰청강력범죄수사대강력범죄수사1계강력1팀1반소속연지혜형사는2000년8월에벌어진신촌여대생살인사건의재수사를맡게된다.신촌뤼미에르빌딩1305호에서벌어진이살인사건의피해자는당시연세대에재학중이던대학생민소림으로,과도로추정되는흉기에찔려죽은채발견되었다.발견당시민소림의원룸에는에어컨이켜져있었고시신은우비와이불로덮여있었다.뤼미에르빌딩엘리베이터CCTV는짝수층은망가져있었고홀수층의CCTV만가동되고있었는데,8월3일0시경13층에서내려가는남자의이미지가하나남아있었지만모자를깊게눌러써턱부분의윤곽만알아볼수있는상황이었다.민소림의몸에서는신원미상의DNA가발견되었으나당시에는매치되는사람이없었다.

“서대문경찰서에수사본부가차려져서반년이상강도높게수사를했지.뭐,탐문수사만1000명넘게했을거야.뭐,피해자친구나지인,동네주민,그일대불량배들,신촌에오갈수있는전과자들까지다조사했지.그런데범인을못잡았어.”
정철희가말했다.
“그걸지금다시수사하자는말씀이신건가요?”
최의준이눈을껌뻑거리며물었다.
“DNA검사결과가있어.뭐,용의자사진도있고.”
정철희가말했다.
―본문13~14쪽

과거의기록을더듬어가던연지혜는당시의수사기록에서누락된부분을발견한다.민소림과언쟁을벌인적이있다는연세대학교남학생을소환한기록은남아있었으나그에대한구체적기록은없었던것이다.그기록을살핀정철희는과거에자신이수사중그학생의뺨을때린적이있다며그를기억해낸다.이름이기언.22년이지난지금은IT회사의대표가되어있는이기언을찾아간연지혜와정철희는2000년당시민소림과이기언이미등록도스토옙스키독서모임에소속되어있었다는사실을알게된다.

“그런데특이한모집공고가있었습니다.”
“어떤거였는데요?”
“공고문이이렇게시작했어요.‘나는병든인간이다…….나는악한인간이다.나는호감을주지못하는사람이다.’그리고그문장들에공감하는사람이라면함께도스토옙스키3대장편소설과다른책들을한학기동안깊이읽고이야기를나눠보고싶다고했습니다.그리고‘의식화교육없고선후배도없습니다.평가도없고정답도없습니다.이름도없고회비도없습니다.쓸모도없습니다.읽지않고오시는분,책보다사람이좋다는분은사양합니다’라고적혀있더군요.그아래이메일주소가하나적혀있었습니다.나중에알았습니다만그독서모임공고윗줄에적혀있는문구들은도스토옙스키3대장편소설에나오는문장이아니었어요.《지하로부터의수기》첫대목이지요.”
(……)
“모임에몇명이나나왔나요?”
“처음에는일곱명이었습니다.저랑민소림을포함해서요.”
―본문298~299쪽

연지혜는이기언의소개로도스토옙스키독서모임의멤버들을만나게된다.지금영화감독이된구현승,목수인주믿음,국제기구에서일하는김상은.셋은종종주믿음의공방에서만난다고했다.취재가이어지던어느날,주믿음은민소림의죽기전행적에대해서이야기를꺼내는데…….

“사실저에게《백치》를권해준사람이민소림이었어요.그날이민소림을마지막으로만난날이었어요.7월말이나8월초였던거같습니다.여름계절학기끝나고며칠뒤였는데.”
주믿음의말을듣고연지혜는긴장했다.민소림의마지막열흘에대한첫증언이나오는중이었다.
―본문409쪽

“장강명은장강명의방식으로쓴다.
불편하고정확하게,빈틈없고집요하게,말하자면꼼짝못하게.”

《재수사》가정조준하는것은한국의형사사법시스템과그것을구성하는구성원들의윤리의식이다.사회는죄와그에합당한벌을구획하고집행함으로써공동체를유지한다.하지만그것이정말적합하며윤리적인가는늘논쟁적이다.2022년의한국은어느때보다정치적으로나사회적으로절대적인정의,새로운윤리에대한열망으로뜨겁다.사회의공통감이이전의처벌시스템이포함하지못한영역을향하기시작한것이다.그러나어떤윤리가우리앞에세워져야할지에대한논의는여전히빈약하다.어떤윤리가우리에게필요한가,어떤정의가어떤방식으로집행되어야하는가.이소설은불편하지만집요하게지금우리에게가장필요한질문을던진다.
한편《재수사》는특별하다.저자스스로‘분수령이될작품’이라고언급할정도이다.그간가장동시대의사건을마중물삼아현대사회를진단해온장강명은,이번소설에서는2000년의신촌을거울로삼아2022년한국사회를진단하고자한다.한국사를통시적으로읽어내며외환위기가휩쓸고지나간2000년의신촌에서현대사회의기저에있는공허와불안의근원을발견한다.기준과합의가사라진사회,절대적가치가희미해진사회에서인간은무한한공허와불안속에머물게된다.소설속에등장하는‘미제사건’은죄와벌이합당한방식으로평가되고처벌되지않는현실에대한거대한비유이며,절대적가치가집행되지못한자리,즉합리성의한계지점이다.
이자리에도스토옙스키독서모임이등장하는것은우연이아니다.독실한기독교신자로서허무와치열하게싸워온도스토옙스키의소설을알레고리로배치하며,《재수사》는현대의허무와공허를정확하게분석하면서도그것과치열하게싸우는문학의자리에자신을놓아둔다.픽션이현실과가장가까이만날때,그것은진실해진다.장강명은오늘도진실하게쓴다.그리고독자들에게이제그진실한소설을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