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격

죽음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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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이 존엄하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가?
행복한 삶의 권리를 넘어 평온한 죽음의 권리를 논하는 시대, 삶의 존엄을 완성하는 죽음의 존엄을 묻다
2022년 6월 15일, ‘존엄조력사법’이 한국 최초로 발의되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제도이자 질병으로 죽음을 앞둔 개인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평온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이 법에 대해 여론은 82%의 압도적인 찬성을 보낸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존엄조력사법이 도리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주체적으로 생을 마감할 ‘죽을 권리(right to die)’의 하나인 ‘존엄조력사’는 과연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존엄하게 살 권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을 죽음으로 내몰아 삶의 존엄을 위협할 것인가.

존엄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죽음의 시간〉(2019)을 공동 제작해 프래그먼츠 영화제에서 ‘최고 장편상’을 수상한 기자 케이티 엥겔하트가 6년의 집요한 취재 끝에 펴낸 《죽음의 격》은 우리가 마주할 ‘존엄한 죽음이 보장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지극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존엄하게 죽고 싶다고 부르짖는 사람들과 존엄사법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사람들, 존엄사가 인권의 보장인지 침해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판사, 윤리와 신념의 문제로 존엄사를 거부하는 의사,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존엄사를 진행하고 지지하는 의사…. 저자는 1940년대부터 존엄사가 합법인 스위스, 가장 포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1994년 세계 최초로 존엄사법(오리건주)을 통과시킨 미국 등에서 있었던 죽음과 존엄에 관한 철학적·제도적·법적·윤리적 논의부터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을 비밀리에 돕는 지하조직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존엄과 죽음에 얽힌 논쟁과 활동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

저자는 삶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 평온한 죽음을 바라는, 하지만 존엄사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네 명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존엄사법이라는 제도의 안과 밖에서 평온한 죽음을 돕는 두 명의 의사를 직접 만난다.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존엄한 죽음의 조건이란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존엄’이라 부르는지 묻는다. 이 책은 개개인의 처절한 고통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죽을 권리의 옹호자와 반대자의 입장 모두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균형 감각을 보여줌으로써 언론으로부터 존엄한 죽음에 관한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존엄사에 관한 논쟁에서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의사 남궁인의 말처럼 이 책에 실린 ‘단 한 문장의 논의도 시작하지 못한’, 그러나 존엄사가 현실로 불쑥 다가와버린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의 존엄한 마지막을 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저자

케이티엥겔하트

KatieEngelhart
언론인이자작가,다큐멘터리제작자로캐나다와미국에서활동하고있다.옥스퍼드대학교대학원에서역사와철학을전공한뒤영국〈바이스뉴스〉에서해외특파원으로,캐나다최대주간지〈매클린스〉에서유럽담당기자로일했다.우크라이나의친유럽혁명을다룬기사로‘캐나다내셔널매거진어워드’를수상했고,2021년에는미국요양시설에서처음으로발생한코로나바이러스19와영리요양시설산업의부상을다룬기사로‘조지폴크상’을받았다.

목차

들어가며

1장현대의료
2장나이
3장신체
4장기억
5장정신
6장자유

나가며
연대표
주석

출판사 서평

“이성적이고정직한사람이라면이책에설득당할수밖에없을것이다.”
-리처드도킨스《이기적유전자》저자

“실존하는고통의목소리를빌려죽음의권리는어디까지인지를집요하게탐구한다.”
-남궁인응급의학과의사,《만약은없다》저자

“죽음을마주할우리모두가반드시읽어야할책”
-루이즈애런슨《나이듦에관하여》저자

★〈타임스〉,〈스펙테이터〉선정2021년올해의책★

죽음이삶보다존엄하게다가오는순간은언제인가?
-삶과죽음의존엄에관한생각들

우리가존엄한죽음을바라는순간은언제일까?질병으로고통받을것이뻔해서,병에서회복될가망이없어서,삶에서즐거운일을더이상기대할수없어서,치매로자아를잃어버릴것같아서,대소변조절을못하게되어기저귀를찬채타인에게피해를주는삶을받아들일수없어서….이외에도수많은고통의순간에인간은자신이원하는시기에평온하게죽기를원해왔다.이는연명치료를거부하는것에서부터출발해‘삶이죽음보다고통스럽게’여겨진다면평온하게죽을권리가있어야한다고주장하는것으로이어진다.극심한고통으로죽음을앞둔개에게는약물을주입해죽음을앞당기는‘자비’를베풀지않는가?그런데왜인간에게는이러한자비가허락되지않는가?죽을권리를옹호하는이들은“차라리개처럼죽겠다”라고말하며,죽을권리가인권임을부르짖는다.
건강이악화된80대영국인여성애브릴은원하는시기에죽음으로써삶을‘완료’하길원한다.척추발,엉덩이,말초신경계,방광,팔꿈치,손이고장난그녀는어떤자세로누워도통증을느낀다.밤새잠들지못하는그녀는배변조절을못해기저귀를차고침대에누워죽을날을기다리느니차라리죽음을선택하겠다고말한다.그녀는자신이계획한대로삶을완료하고자천천히잠들어죽음에이르는약‘넴뷰탈’을손에넣는다.
치매에걸린60대미국인여성데브라는자신이‘데브라’라는사실을잊어버리기전에죽기를원한다.자신이사랑했던모든것들을기억하지못하고어느낡은요양원에갇혀낯선사람들에의해연명당하길원치않는다.또한동물애호협회에기부하려던모든재산을끔찍한요양원에몽땅헌납하느니죽는편이낫다고믿는다.데브라는치매가지금까지의자신을모욕하고파괴할것이며,평온한죽음이야말로자신의존엄을지켜줄유일한방법이라믿는다.이처럼살아있음의고통은절절하고명백하지만평온하게죽을법적권리를얻기란매우모호하고까다롭기만하다.
존엄사법은존엄한죽음을약속하는가?
-존엄사법의모호한기준과법바깥에서평온한죽음을추구하는사람들

1994년오리건주에서세계최초로‘존엄사법’이통과될당시,존엄사는‘의사가처방한약물을환자가직접투여하여죽음을앞당기는행위’였다.존엄사자격을얻으려면살날이6개월이하이며정신질환으로판단력이흐려지지않았음을두명의의사가보증해야했으며,존엄사를15일간격으로2회요청해야했다.그렇게존엄사자격을얻으면의사가죽음에이르는약물을처방해주었고,환자가이를직접투여해죽음에이를수있었다.이는회복할가능성이없고극심한고통에시달리는환자를고통과두려움으로부터해방시키고존엄한죽음으로이끌어주는법이었다.
그러나존엄사법의적용기준에는문제가많았다.회복되지않을것이분명한질병에걸려극심한고통을겪지만언제죽을지알수없다면,죽음이코앞에다가왔으나신체능력을잃어버려약을먹을수없다면고통으로부터해방될권리를얻을수없는가?신체질환만큼이나끔찍한,그보다더고통스러울지도모를정신질환을여럿앓는다면?그들의고통이존엄사법의적용을받는사람보다덜하다고할수있는가?이에캐나다,네덜란드,벨기에의존엄사법에서는죽음이임박했다는조건을지웠고약을처방하는대신의사가직접주사를놓을수있도록했다.나아가벨기에와네덜란드는정신질환을앓는환자에게도존엄사자격을부여하며,스위스에서는의사가외국인의존엄사를도와도처벌하지않는다.스위스의‘디그니타스’병원은‘인류의존엄성을약속합니다’라는슬로건을내세우며존엄사환자를받는다.
그러나죽을권리를향한사람들의요구는여기서멈추지않는다.존엄사법이존엄한죽음을도와주는법이라면,어째서개인의존엄에관한판단을의사와국회의원들이내리는가?이에반발하는‘파이널엑시트네트워크’는임신중절이불법이던시절임신중절을도와주던‘제인공동체’처럼존엄사자격을얻지못했으나존엄하게죽기를원하는사람들을돕는다.‘엑시트인터내셔널’의설립자필립니츠케는‘평화로운죽음은모두의권리’라고말하며‘DIY죽음워크숍’을열고자살방법을상세히기술한《평온한약안내서》를판매한다.그들은존엄사란의사들이주도하는의료절차가아니라자격기준으로제약될수없는권리라고주장한다.

“당신은어째서존엄하게죽기를선택하지않습니까?”
-존엄사,‘싸게죽을의무’로변질되다

모호한적용기준외에도존엄사법에는치명적인사회적문제가있다.존엄하게죽을권리란곧존엄하지않은삶을중단할권리인데,이처럼개인의존엄을근거로의사가죽음을도울수있도록허락하는법을제정하려면역설적으로‘존엄하지않은삶’에대한사회적합의가있어야한다.어떤상황에처하면삶의존엄이위협받는지에관한광범위한동의가있어야의사가도와주는존엄사는살인이아니라환자의존엄을지켜주는것으로인정받는다.그런데어떤삶은‘존엄하지않다’고규정해도괜찮은것인가?
사람들이이야기하는‘존엄하지않은삶’의조건들로끔찍하게고통받으나회복될수없거나스스로배변조절을할수없거나삶에보람을주던일을못하게되는것등을꼽는다.그런데이는모두장애를가진이들이흔히겪을수있는일이다.그렇다면법은장애를가진이들이‘존엄하지않은삶’을살고있다는사회적메시지를전달하는것과같으며,장애인들은의료결정의순간에‘존엄하지않은삶’을중단하는것이어떻겠냐고존엄사를권유받을지도모른다.평온한죽음을원하는사람이많아질수록‘존엄하지않은삶’에대한사회적합의는넓어지고법의범위는확장될것이다.이는노년인구의증가와복지재원의고갈이라는고령화문제와맞물려끔찍한결과를낳을수있다.존엄사법의존재는노인들에게‘당신은어째서(소중한복지재원을축내면서)존엄하지않은삶을유지하는가?’라는질문을던지게되고,죽을권리는곧‘싸게죽을의무’로변질될수있다.특히보편적의료접근권이보장되지않은곳일수록,이러한‘싸게죽을의무’에내몰리는사람은많아질수있다.누군가에게존엄하게죽을권리를보장하는일이오히려누군가의존엄을모욕하고침해하는아이러니한결과를낳을수있다.

그럼에도존엄한마지막을위하여
-삶의모든순간,그리고마지막까지‘나자신’으로존재하는것

존엄사가삶과죽음의존엄을완벽하게보장할수없더라도우리는존엄한마지막을고민할수밖에없다.죽음은모두가지나는삶의마지막과정이니까.저자는존엄한죽음을꿈꾸는사람들에게서한가지공통점을발견해낸다.그들은모두마지막순간까지‘내가정의한나자신’으로살길원했으며,그것을‘존엄’이라고불렀다.삶의모든순간에‘나자신’으로존재하는것이야말로삶과죽음을관통하는존엄의조건인지도모른다.그러므로우리는안락사든존엄사든조력자살이든,그이름이무엇이든마지막까지나자신으로존재하는죽음을꿈꿀수있어야할것이다.이책은그러한죽음이무엇인지에관한묵직한물음을던지며,존엄한삶과죽음을향한간절한소망의이정표가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