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와 루사 (박유경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 (박유경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태풍이 오염된 대기를 순환시키듯,
모든 악한 것이 제거되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한 줌의 희망
신예 페이지터너 박유경 두 번째 장편소설!
인간의 감추고 싶은 얼룩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일상의 파탄을 극한으로 끌고 가는 집요함을 선보인 2017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여흥상사》로 신예 페이지터너의 등장을 알린 박유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장편 《바비와 루사》는 남해 지역 한 섬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폭력 사건을 통해 어린 시절 끔찍한 폭력을 당했던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피해 아동을 폭력에서 구출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박유경은 세상의 악과 감추고 싶은 인간의 어두운 얼룩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묵직한 문장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더해 아동폭력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 피해자를 구원한다는 공감대와 연대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아동에겐 재난이랄 수 있는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른으로 성장하며 온전한 삶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희망에 관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

박유경

1984년울산에서태어났다.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장편소설《여흥상사》가2017한경신춘문예장편소설부문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1.몸은아무것도말하지않는다

2.부메랑의방향

3.살인범은살인자로태어나지않는다

4.존재하지않는아이들

5.장마

2부

6.왕은어디로

7.갇힌아이는뛸수없다

8.최대풍속초속47미터

9.남은것과남지않은것

10.당신이알고있는것이상으로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지독한절망과혹독한폭력을견뎌내야만
그제야희미하게발앞에도착하는한줄기의빛

한아이가방파제위에내던져진채로남해의한섬에서발견된다.허리까지오는금발과주근깨가드러나보이는새하얀피부를가진,신원조회가되지않는아이.어디에서온건지,어쩌다죽은채로이외딴섬에서발견되었는지알수없는상태로사건은미궁에빠진다.현서는폴리스라인뒤편에외따로서서감식용비닐에덮인아이를바라본다.현서는목격자였다.전날방파제에서저아이가한남자에게억지로끌려가는모습을봤다.현서가그들을눈여겨봤던데는또다른이유가있었다.마스크위로보이던겁에질린청록빛눈동자.내가그때저아이를끝까지붙잡았다면,붙잡아데리고왔다면죽지않았을까.현서는청록빛눈동자의아이를떠올리며무의식속에잠겨있던헬렌에대한기억을끌어올린다.

현서는숨이막히고심장이조여드는와중에도아이의모습을놓치지않으려고애썼다.남자에게어깨를붙잡혀이끌려가다가남자가무언가를속삭이자아이의발걸음이빨라졌다.아이가신은슬리퍼는아이의발보다작았다.튀어나온발뒤꿈치에굳은살과피딱지가붙어있었다.아이의발을보자이모의지하방에서헬렌의손을잡고도망쳐나오던날이떠올랐다._본문에서

술냄새가진동하던삼촌과무력한방관자였던이모.잠시친척집에맡겨졌던일곱살현서는폭력에노출된채보호받지못하고어둡고습한지하방에갇혀지냈다.온몸에남겨진상처와말라붙은핏자국.공포와두려움에집어삼켜진현서의마음이유일하게의지할수있었던사람은현서와같은상황에처했던헬렌이었다.현서는삼촌의끔찍한폭력을더이상견딜수없어헬렌의손을잡고밖으로뛰쳐나왔다.눈에보이는사람들을붙잡고살려달라고,구해달라고사정했지만그들중현서의손을잡아주는어른은단한명도없었다.삼촌은현서와헬렌의작은몸에끔찍한상처를내는방식으로,이모를비롯한다른어른들은눈을감는방식으로가해자가되었다.

“구해주세요.”
그사람은잠시망설이더니돌아섰다.삼촌이쫓아와헬렌의팔을붙잡았다.
“가자.”
삼촌이웃으며말했다.헬렌이파르르떨었다.현서는헬렌의다른쪽손을잡고있었다.삼촌에게붙잡히기전에현서는헬렌의손을놓고도망쳤다.다시는그곳으로끌려가고싶지않았다.세상의가장나쁜것들이모두그곳에있었다._본문에서

하지만현서의전부였던헬렌이어느날사라져버렸다.현서가헬렌의손을놓고도망쳤던그날.그러나이모에게붙잡혀다시지하방에갇히게되었던그날.비정상적으로부풀어오른배를움켜쥐고고통에몸부림치던헬렌을삼촌과이모가데리고나간뒤로헬렌은영영돌아오지않았다.현서의눈앞에서만사라진게아니었다.모두의기억에서증발해버렸다.이모와삼촌은물론이고동네사람들모두헬렌의존재를부정했다.현서의상담선생님마저헬렌이현서가상상속에서만들어낸존재라고말한다.딸이당한끔찍한폭행의과정을알게된아버지는분노하면서도헬렌을찾는현서의말은믿지않는다.현서의기억에분명히실재하는헬렌을,모두가약속이나한듯입을모아지워버렸다.

“헬렌은여기없었던거야.헬렌은엄마한테갔어.앞으로절대헬렌얘기를하지마라.”
현서는계속헬렌을기다렸다.경찰이지하방에들이닥쳤을때현서는먼저헬렌이어디에있는지물었다.파랗게질린이모가현서의입을막았다.현서는아빠,엄마보다헬렌이보고싶었다._본문에서

유나는열아홉이된현서가유일하게믿고의지하는사람이다.유나만이현서의이야기를객관적으로바라봐주고귀담아들어주기때문이다.헬렌을닮은아이를보았던그날도현서는유나와함께였다.현서의아빠진철은그런유나를좋아하지않는다.현서의회복을유나가방해하고있다고생각한다.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조용하게덮일수있는일을들쑤시고있는것처럼보였다.마치거대한태풍이마을을휩쓸고지나가려는듯.현서는방파제에서만났던아이의죽음을계기로그동안어른들로인해눈가림당해왔던과거를다시마주하기로마음먹는다.헬렌을위해.그리고현서자신을위해.과연현서는12년전모두에의해덮여버렸던그날의진실을파헤칠수있을까.

다틀렸다고,헛소리라고언제나소리치고싶었다.거짓말하는건몸이었다.몸의상처는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회복되고말았다.작고어린몸은약해서쉽게짓밟혔다.몸은아이를아무렇게나대해도되는미숙한존재로보이게만들었다.몸은아이에대해아무것도말하지못했다.(……)아이를사라지게만든사람은벌을받아야해.사실을꺼내지않는다면드러내야지.용서하지않았다는걸보여줘야지.생각에생각이꼬리를물자어느새두려워하지않고숨을쉬고있었다.솟구쳐오르는말들을내리누르며천천히눈을감았다.그아이가있던자리가빛이되어눈을감아도눈앞에어른거렸다.심장이빠르게뛰었다.이젠누가뭐라든헬렌을찾을수있을것같았다._본문에서

모순된세계의폭압을견디기만하더라도,살아남아있는것만으로도

올해유독태풍이많았고그태풍이지나간자리마다폐허가된모습을우리는목격했다.아동폭력에노출된아이는매일태풍을온몸으로막아내고,매순간폐허의삶에자신의몸과마음을맡긴다.이순간에도어디에서,우리주변에서누군가는그태풍을몸전체로맞고있다.이소설은바로그러한공포와고통에서어떻게벗어날수있는지를묻는다.박유경이소설을통해선택한대답은,사람을돌보는품위와꼿꼿한온기로결국은서로를일으켜세워야만한다고말한다.태풍이오염된대기를순환시키듯,주변에서벌어지는수많은아동폭력이제거되고정화되기를바라는작은희망을박유경은소설로말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