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아로새겨진 -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7

지구에 아로새겨진 -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7

$15.00
Description
불확실한 시대에 우정과 연대의 언어를 제안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쾌활한 디스토피아 소설
★ 2022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후보작
★ 2022 커커스상 최종 후보작
★ 괴테 문학상ㆍ클라이스트상ㆍ군조 신인 문학상ㆍ아쿠타가와상ㆍ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 작가 다와다 요코 3부작의 첫 번째 소설

경계 없이 흐르는 언어의 유체성을 탐구해온 작가 다와다 요코의 신작 장편소설 《지구에 아로새겨진》이 은행나무 세계문학전집 에세(ESSE)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유럽 유학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지구에서 없어져 같은 모어(母語)를 쓰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Hiruko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Hiruko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이다.
더 이상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언어의 바다를 표류하며 살아가야 하는 Hiruko는 ‘판스카’라는 인공언어를 직접 만들어 구사한다. 무척 독특한 신종 문법을 사용하는 판스카에 매료된 덴마크 언어학자 크누트를 비롯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차례차례 Hiruko의 여정에 합류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의 다양한 지역을 떠돌며 새로운 만남을 통해 언어와 언어 사이의 반짝임을 발견해나가는 신비로운 여행이 펼쳐진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에서 시작된 Hiruko와 친구들의 여행은 두 번째 작품 《별에 넌지시 비추는》과 세 번째 작품 《태양제도(太陽諸島)》로 이어질 예정이다.
저자

다와다요코

독일베를린에살면서독일어와일본어로소설,시,희곡,산문을쓰는작가다.1960년일본도쿄에서태어났다.1982년와세다대학제1문학부러시아문학과를졸업한후독일로이주했다.1990년독일함부르크대학대학원에서독문학석사학위를,2000년스위스취리히대학에서독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1979년시베리아횡단열차를타고홀로독일로건너갔던열아홉살의경험은삶의지축을뒤흔들...

목차

1장 크누트는말한다ㆍ9
2장 Hiruko는말한다ㆍ34
3장 아카슈는말한다ㆍ59
4장 노라는말한다ㆍ91
5장 텐조/나누크는말한다ㆍ127
6장 Hiruko는말한다(2)ㆍ171
7장 크누트는말한다(2)ㆍ208
8장 Susanoo는말한다ㆍ237
9장 Hiruko는말한다(3)ㆍ280
10장 크누트는말한다(3)ㆍ306

옮긴이의말 물고기는말한다ㆍ332

출판사 서평


★2022전미도서상번역부문후보작
★2022커커스상최종후보작
★괴테문학상ㆍ클라이스트상ㆍ군조신인문학상ㆍ아쿠타가와상ㆍ다니자키준이치로상수상작가다와다요코3부작의첫번째소설

액체문법의시대
딱딱한세상너머로헤엄쳐나가는물고기들

“이것은,나와다른말을쓰는
당신곁에서기꺼이안개속을헤매이는
여행에관한이야기.”
_장혜령(시인)

소설은덴마크코펜하겐의흐린하늘을배경으로들려오는경쾌한빗소리에서시작한다.소파에서굼지럭거리며텔레비전을보던덴마크언어학자크누트는자신이살던나라가더이상지구상에존재하지않게된사람들이등장하는한방송에서Hiruko를보게된다.유럽유학도중‘중국대륙과폴리네시아사이에위치한열도’였던고향이바다에잠겨사라진Hiruko.더는한곳에정착하여머무를수없는세상에서그녀는북유럽도시들을정처없는바람처럼표류하며살아가고있다.

여자의얼굴이공중에떠있는여러개의문법을빨아들여,그걸체내에서녹이고부드럽게숨쉬며입으로내뱉었다.듣는사람은그신기한문장이문법적으로옳은지그른지판단하는기능이멎은채,물속을헤엄치는기분이된다.앞으로의시대는액체문법과기체문법이고체문법을대신하게될지도모른다._16~17쪽

누군가의정체성을나라와민족에의해규정하고,언어와삶이또렷하고단단한형태로존재할수있다고믿는고체문법의시대는이미끝났다.예측할수없는파도속에서Hiruko와친구들은변화에이리저리휘둘리며정박할수있는부표나따라갈이정표없이언제까지나헤엄쳐가야만한다.하지만이는비관적전망이라기보다,기존에부여된의미에서달아나는끝없는다시쓰기이자여행이된다.소설은불행한발전을좇은인류가자초한지구의어두운미래를배경으로하지만멸망이라는사건을장대한비극이나비참한일처럼다루지않는다.“‘조국’이니‘멸망하다’같은건내어휘에없다.”(53쪽)오히려멸망은누군가원래있던장소로더이상돌아갈수없게되어,한곳에머물지않고계속해서흐르는유동적인상태를나타낸다.이는기후위기,전쟁,테러,망명외에도전세계로연결되는소셜네트워크속에서데이터와이미지의바다를영원히떠돌며살아가는현시대삶의방식에대한비유이기도하다.따라서이러한디아스포라상태는기후난민인Hiruko뿐만아니라다른인물들에게도마찬가지로적용된다.

Hiruko의여정에는크누트뿐만아니라여성으로정체화하여성과성사이를여행하는인도출신의아카슈,독일출신의마르크스박물관직원노라,그린란드출신으로맛국물을연구하는텐조/나누크,Hiruko와같은‘스시의나라’출신이며유령같은분위기의Susanoo가각장의화자로서번갈아등장하며합류한다.서로의차이에서비롯된경계는단단한장벽이기보다함께타고흐를수있는물결이라는듯이,액체문법의시대를살아가는Hiruko와친구들은딱딱하고울퉁불퉁한세상의표면을나란히걸어간다.

“21세기의Hiruko는사라진모어를상징하는알파벳이름을안고,새로사귄친구들과여행을떠난다.모세와달리,자신과전혀다른민족구성원들과함께.이들은그저물고기처럼가볍게만났다가헤어지고,흩어졌다다시모인다.서로의관심사를이야기하고,취향을나누고,음식을먹으며,논쟁을벌이다가도,장난을치고,각종탈것들을이용해여행을다닌다.그야말로노는중이다.”_‘옮긴이의말’중에서

“지금우리는언제까지나계속해서이동한다.
그러므로스쳐지나간모든풍경이뒤섞인바람과같은언어로말한다.”

일본의창세신화에서바다에흘려보내버려진여자아이히루코는,지구에서일본이사라진뒤흩어진모어를찾아세상을떠돌며여행하는Hiruko로도착한다.한평론가의말처럼“다와다는일본신화의막다른길(deadend)을페미니스트,이주자중심세계의시작(beginning)으로다시쓰고있다.”모어를더이상자유롭게사용하지못하게된막다른길에서,Hiruko는직접판스카라는인공언어를만든다.‘범(汎)스칸디나비아어’라는뜻의판스카는스칸디나비아언어권사람들이알아들을수는있지만,무척독특한신종문법을구사하고있어외국어처럼낯설게들리는언어이다.가령Hiruko의판스카를처음들은크누트는규범과상식,일상생활속에서굳어진모어의매끄러운표면이부서지는경험을하게된다.

맨처음Hiruko의이야기를들었을때,이제껏밋밋하게써오던모어의매끄러운표면이갈라졌고,파편들이Hiruko의혀위에서반짝반짝빛나는게보였다._228쪽

다와다요코에따르면모어는하나의단일한언어로존재하지않으며누군가가나고자라며들었던주위사람들의다양한말투,외국어처럼해석할수없는암호들,스쳐지나온모든풍경의이미지를어렴풋한흔적으로간직하고있다.마치오래전누군가읽어주었던,기원없이계속다른형태로반복되어나타나는동화처럼.이를반영한것이계속변화해나가는Hiruko의불완전한즉흥언어판스카다.

나의판스카는실험실에서만든것이나컴퓨터로만든것이아니라,자연스러운느낌에따라이야기하면서저절로발생해통하게된언어다.(……)오래전이민자는하나의나라를목표로떠나죽을때까지그나라에서사는경우가많아서,거기서쓰는언어만외우면되었다.하지만지금우리는언제까지나계속해서이동한다.그러므로스쳐지나간모든풍경이뒤섞인바람과같은언어로말한다._44쪽

노라는어떤정체성을완전히소유하는것은환상에불과하며실제로인간은어떠한장소에놓이는것뿐이라고생각한다.Hiruko또한판스카가완성될수없으며,자신이처한상황이언어가되었고그렇게되어갈뿐이라고말한다.여기에는운명을타고흐르는해방적이고가뿐한수동성이있다.세계에몸을활짝열어둔채이동하고변신하는엑소포니(exophony)의언어는우연히도착한장소에맞추어모습을바꾸는바람처럼중력없이춤춘다.그렇게하나의언어안에여러언어들이깃들어있음을느낀다.Hiruko의판스카는어디에도포착되지않고계속흔들리며,오롯이전달될수없어서자유롭고,우리를아주먼세상의가장자리까지데려가줄수있는바람의언어다.

Hiruko는바람에휘날리는커튼처럼웃고있었다.(…)판스카는우리도분명히이해할수있는언어이기는하지만,어디까지나이질적인기운을담고있다.(…)판스카를쓰는한,Hiruko는어디까지나자유롭고,자기마음대로존재할수있다.심지어대화가공처럼튀어올라서고독할겨를이없다._328~329쪽

지구를떠도는언어의가루들
갈라진모어의틈새로출발하는여행

오래전멸망한고대로마제국의성문과공중목욕탕이여전히독일트리어에남아있듯이,소설의바탕에는언젠가존재했으며사라진것들의파편또한여전히세상어딘가를돌고있으리라는믿음이깔려있다.그래서Hiruko에게모어를찾는여행이란없어진모국의부흥을꿈꾸거나되찾으려는것이라기보다,지구구석구석에아로새겨진언어의흔적들을발견하는일과연결된다.이는“세상이라는바다로흘려보내져,죽을때까지친구를찾는여정”이기도할것이다.

“우리가오슬로에온의미가무엇인지,다시한번생각해보자.나는나의언어로말할수있는사람을만나고싶었어.언어학자인크누트는같이오겠다고했지.여기까지는언어학적인흥미야.노라는연인을만나기위해서왔어.하지만아카슈,너는왜온거야?”
아카슈는창피하다는듯한얼굴로가느다랗게대답했다.
“크누트와친구가되려고.”_193~194쪽

끊임없이변화하는여정처럼형상이정해져있지않은언어는끊임없이흔들리고변신하며,어떠한모습도될수있는잠재성을지닌채로유유히흐른다.아무리걸어도종지부가나타나지않는언어를타고,Hiruko와친구들은기꺼이헤매며누가시작해서누가이어가는지알수없는여행을계속할것이다.

Hiruko를만나고,봄날선잠같은인생에도종지부를찍게되었다.종지부뒤에는이제껏본적없는문장이오기마련인데,그것은문장이라부를수없는무언가인지도모른다.왜냐하면아무리걸어도종지부가나오지않기때문에.종지부가존재하지않는언어도분명있을것이다.끝나지않는여행.주어가없는여행.누가시작해서,누가이어가는지알수없는여행._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