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경 이원영 (민족적 대의와 기독교 신앙을 품은 독립운동가의 생애)

봉경 이원영 (민족적 대의와 기독교 신앙을 품은 독립운동가의 생애)

$20.46
Description
일제강점기, 어두운 민족의 현실에 맞서
평등과 박애의 종교적 신념과 민족의 혼을 지킨 봉경 이원영 목사의 신념과 생애
오랜 시간 민간에서 소장해온 일기와 편지 등의 사료를 발굴ㆍ번역해온 한국국학진흥원 연구 사업팀이 한 해 동안 연구한 결과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는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제22권 『봉경 이원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철학, 사학, 문학 등 관련 전문가를 초빙하여 꾸린 공동연구팀이 20세기 안동의 대표적인 기독교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다층적 위상을 지닌 봉경 이원영 목사(1886~1958)의 기록을 연구하여 집필한 결과물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난 봉경 이원영은 어릴 적에 유교 문화를 체득하며 성장했으나 서구 문명이 유입되고 일제의 수탈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후 보문의숙에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이원영은 예안 3ㆍ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된 후 기독교에 입교하였으며, 감옥에서 나온 뒤 목사가 되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당시 많은 기독교 단체나 교인이 일제와 타협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것과 달리, 이원영은 민족의 독립을 이루고 기독교의 평등 사상에 입각해 악습을 철폐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냈다. 그는 섬촌교회를 설립하여 안동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였고,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부할 수 있는 야학을 세웠다. 이 책에서는 불의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인 이원영 목사의 생애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당대의 기독교 사회의 모습과 지역 사회의 정세를 밝히고 있다.
저자

임희국,배요한,강정구,박종천,강윤정

장로회신학대학교명예교수
스위스바젤대학교신학대학에서블룸하르트Chr.Blumhardt연구로박사학위수여.세계화시대포스트모더니즘의흐름속에서한국영남지역개신교(장로교회)역사localhistory연구를그현장에서진행했다.이과정에서미시사microhistory와구술사oralhistory연구방법을교회사서술에적용했다.저서로는『선비목사이원영』(수정증보판,2013),『한국장로교회130년.기다림과서두름의역사』(2013),『공감,교회역사공부.아래로부터의역사인식,미시사,지역교회사』(2014),『강원도장로교회강원동노회60년.생명의땅새창조를향하여』(2014),『경안노회100년.경북북부지역장로교회사』(2022)가있다.

목차

책머리에

1장20세기초반사립보문의숙교과서소고:경상북도혁신유생들의교육구국운동을중심으로
서론|보문의숙설립의역사적배경|보문의숙의설립과정|보문의숙의학제와교육과정,교과서|보문의숙역사교과서,개화기도서출판|정리등

2장봉경이원영목사의삶과목회에대한연구:그에게미친퇴계학의영향과연관하여목회자도유학자도꼭기억해야할이름,봉경이원영목사|유교에서기독교로:이원영의생애와삶의주요궤적|이원영목사의삶과목회에드러나는퇴계학의영향|맺는말:다시봉경이원영목사를그리워하며

3장예안유생이원영의기독교수용과섬촌교회설립의미:『섬촌교회당설립일기』를중심으로
머리말|경상북도북부지역에기독교가뿌리내리는과정|예안3·1운동과이원영의기독교수용|섬촌교회설립:『섬촌교회당설립일기』|섬촌교회설립의의미|맺음말

4장봉경이원영목사의종교관과설교에나타난유교와기독교의만남
머리말:이원영의선비기독교|일제강점기이원영의종교관|이원영의설교에나타난한국유교의기독교적재전유양상|맺음말:퇴계의유교에서이원영의기독교로

5장봉경이원영의생애와민족운동
머리말|원촌에서태어나다|신학문을수용하다|1910년대중반교유관계|1919년예안3·1운동주도|기독교수용과민족운동|해방후에도계속된종교적·민족적양심

출판사 서평

퇴계학의전통을이어받은유학자에서
저항적역사인식을지닌기독교인으로거듭나다

퇴계이황의14대손으로유서깊은유학자집안에서태어난이원영은성인이될때까지16년동안정통유학교육을받았으며,이후근대적교육을실시하는보문의숙에제1회입학생으로들어갔다.보문의숙에서이원영은주자학을기본바탕으로하여서양의과학기술과문명,세계사를학습하며저항적역사인식을갖게된다.이후예안에서벌어진3·1운동에주도적으로참여하여일본경찰에체포되고,감옥에서기독교를받아들여교인의삶을살것을다짐한다.이처럼이원영은전통의유학,서양문명과세계사,기독교등다양한사상이공존하기시작한과도기에여러분야의지식을섭렵했던지식인이었고,현실을입체적이고정확하게파악하여일제의탄압과회유에도흔들리지않고확고한신념을지닐수있었다.
감옥에서나와목사가된이원영은한결같이신사참배를거부하여섬촌교회를비롯해여러기독교교육기관을세워교육사업과포교에앞장섰다.그는강자와약자,차별과차등,부림과억눌림이없는세상이하나님의나라라는성경의가르침을굳게믿었고,이러한하느님의나라를세우는것이곧3·1운동의민족정신을완성하는것이라생각했다.그는모든인간의삶은평등하다는생각으로신분차별과같은구습과전근대적인문제를교회와평등한교육기관을설립하여해결하고자하였다.그는섬촌교회에야학을설립하여양반,노비,여성,무산자에게동등한교육의기회를제공하였고,남녀가평등하고신분의차별이없는이상적인세상을꿈꾸었다.

퇴계학과기독교를접합시킨
이원영고유의‘유교적기독교관’

이원영의활동과그가지닌사상은당대기독교인사이에서도특별한것이었다.그는목사가되기이전에깊이체득했던퇴계학의전통을바탕으로기독교를재전유했다.그는기독교를전파하며물욕에굴복하여불필요하게사치를부리거나성경공부·봉사정신·신앙의자세에대한수양을게을리하는것을경계했는데,이는불순한욕망에물들지않는순수한이치인‘이(理)’를지향하고경전공부와수양의자세를강조한퇴계학의전통과맞닿는것이었다.또한죄악의암흑에서벗어나생명이넘치는광명한생활을견지하는생활개선을강조했는데,이는‘성신의변화’를받아들여죄악된생활을버리고생명의생활로나아가고자하는퇴계학의‘반정’사상을바탕으로기독교적중생개념을해석한것이었다.즉,그는퇴계학에서강조하는개과천선과경건함이라는유교적수신(修身)을영적차원으로재전유하였다.
이원영은유교와기독교사이에분명한차이가있으나각각이인간관계의도덕과신-인간의관계를다루는종교로서결합할수있음을보여주었다.무엇보다이원영이일제와타협한다른기독교인들과달랐던것은성년이될때까지몸에익힌유교적선비의절의(節義)정신의발현으로볼수있다.그는절의정신을바탕으로예안3·1운동을벌인데이어목사가된후에도교육과신앙에몰두하며비타협적독립운동을이어나갔다.

이처럼봉경이원영은안동지역의독립운동에서주요한역할을했을뿐아니라기독교를전파하며민족의독립과전전근대적편견과차별을넘어서는데이바지했다.또한기독교를퇴계학적으로재전유하여실천적삶을이어간그는영남지역에서기독교가뿌리내리는데크게기여했다.개인의신념을지키고사회적대의를추구한그의모습은우리에게자신을쇄신하며불의에굴하지않는삶의귀감으로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