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관리시스템‘메모리케어’로사람들의기억이관리된다
가까운미래.지금으로부터40여년전.계속되는분쟁과갈등에지친도시는암울한과거에서벗어나기위해,사람들의기억에남은트라우마를인위적으로제거하는특별한기억관리시스템‘메모리케어’를도입한다.현재의고통과슬픔,정서적인약함을거세함으로써불행을없애고행복할권리를위해도안된기억관리시스템.그로인해사회는안정적으로운영되는것처럼보인다.
‘브레인업로드’기술로뇌에서일어나는모든정신작용이디지털데이터로바뀌어메모리케어의메인컴퓨터에전송되고,사람들의의식과무의식은메모리케어의서버에동기화된다.메모리케어를받기위해서는두가지조건이선행되어야하는데,특별한약물과헬멧이그것.열여섯살이되면누구나자판기를통해메모리케어약물을구입할수있고,약물을복용한사람은매일밤잠들기전에원하는기억을골라지울수있게된다.
그렇게탄생한메모리케어는사람들의기억을긍정적이고행복한기억만남기는것으로관리되고인간사에서발생하는모든갈등의싹인가족의생애주기와함께가족중고인이된사람의기억을즉시삭제하는게이도시의가장강력한질서.하지만주인공봄이는할아버지의죽음의기억이메모리케어를통해서도삭제되지않는걸경험하게된다.‘고인의기억을간직해서는안된다’는이세계의엄중한질서가자신에게는적용되지않았던것.메모리케어가작동되지않는부분에대해함구하며도시의가장중요한규칙을어기게되면서평화롭던일상이뒤흔들리기시작한다.
결국주인공봄은고인의기억을간직하는특권의대가로메모리케어용품을생산하는제약회사의비밀마케터로위장취업하게되고,약물홍보를위해인위적으로사람들의트라우마를유발하는일에앞장서게된다.그과정에서도시가40년간숨겨왔던충격적인비밀들이밝혀지는데…….
나의소중한기억을지키기위해누군가의트라우마를유발해야한다면?
이소설은기억의주도권이타인에게,혹은사회시스템에의해조정되고관리된다는가정에서출발한다.그누구도자신의기억이타인에의해컨트롤되지않을것이라는걸알고있고,그보편타당한사실이어긋나는경우큰사회혼란이벌어질거라는걸,혹은상상조차안해봤을것이다.소설은바로이지점에서상상력을발휘해자극한다.만약에그런일이진짜로벌어진다면?우리의기억이온전히기억되지않는다면?하고말이다.
책속에서
나는내게닥쳐올,아니이미닥쳐온불행의정체를알면서도,애써모르는척시간을끈다.아직은,케어를받고싶지않다.메모리케어를쓰고싶지않다.머릿속에서기억을강제로도려내야만하는거대한이별을겪을준비가되어있지않다.아직은아니다.나에게는조금더시간이필요하다.-35쪽
죽은자를잊지않고몰래기억을간직하는건,지금으로부터40여년전에도시의어른들이합의했던기억의질서를완전히무시하는일이다.도시의파멸을막기위해모든이들이목숨을걸고맹세했다던,그엄중한질서를.기억관리국의메모리케어가사회에자리잡기전전통운운하면서몰래빼돌린유골로무덤을만들다붙잡혔다는사람들의이야기가떠오르는건어째서일까.나또한그런사람이될지도모른다는생각에번뜩정신이든다.나는할아버지를기억해서는안된다.아니,애초에기억할수조차없으니까쓸데없는기대는내려놓아야한다.그래야하는데.나타샤의손에들린사진에자꾸만눈이가는건왜일까.-52쪽
메모리케어가시작됐던그날처럼,다시한번도시의운명을시민들의손에맡긴다하더라도모두가과거와같은선택을할거라는암묵적동의를구하는,도시의기만.
메모리케어와꼬리표를거부하는이들의미래에어떠한불이익이없더라도,과연모두가,여전히이질서에동의해줄까.-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