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김이설 소설)

선화 (김이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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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선화…
언제 우리가 그 여자를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가?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의 우수, 가장 따갑고 아린 상처를 말하다

김이설 소설 《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 리커버 출간

「선화」는 외형적으로 드러난 흉터로 인해 가족과 불통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와 사실적인 이미지들로 조형해내고 있는 소설로, 지울 수 없는 흉터를 안고 삶을 견뎌내고 있는 핍진한 일상이 전부인 여자 선화의 삶을 통해 외형적 상처와 흉터가 우리 삶의 내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진지하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

김이설

2006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단편소설〈열세살〉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아무도말하지않는것들》《오늘처럼고요히》《잃어버린이름에게》《누구도울지않는밤》,경장편소설《나쁜피》《환영》《선화》《우리의정류장과필사의밤》등이있다.

목차

진물…007
화염상모반…037
후회…070
자국…093
절화…110
새살…133

작가의말…144

출판사 서평

상처란그렇게분명한표식으로그흔적을남기는법

이소설은‘선화’의일상을조심스럽게밟아가면서시작된다.그녀의하루하루가보여지고그녀의건조한일상이소개되며그일상에서벌어지는아주작은틈에과거가포개진다.선화에대해한발짝가까이다가가면서소설페이지는한장한장넘어간다.책의마지막장을다넘겼을즈음우리에게흐릿했던선화의모습이조금은뚜렷해질것이다.일단,‘선화’를소개해야겠다.

선화의,오른쪽얼굴엔꽤넓고짙은얼룩이있다.그래서바깥에나설때에는언제나모자를쓴다.걸을때에도항상고개를숙여땅만쳐다본다.사람들이자신을쳐다보지않더라도상관없이그녀의시선은늘아래다.

선화는꽃을만진다.꽃집을운영한다.그래서열손가락은늘젖어있어수시로껍질이벗겨지고진물이끊이지않는다.어쩌면그녀는자신의얼굴을가리기위해가장아름다운꽃,들속에있는지도모른다.

선화는흉터로인해여자로서많은것들을놓치고산다.화장품이나옷을사러가는일이세상에서가장끔찍한일이고,호감가는이성에게고백해본적이없으며,행복이라든지결혼,혹은희망이나미래같은단어를상상해본적이없다.그녀는여자로서누리거나즐길수있는것들을포기한지오래다.누가포기하라고혹은단념시키지않았는데도선화는어려서부터그얼룩때문에보통여자의삶을,욕망을꿈꿀수없었다.

내얼굴을내손으로때리기시작했다.오른손으로내오른쪽얼굴을칠때마다내가세상에서사라지기를,제발이자리에서사라지게해달라고빌었다.짝,짝,짝,짝,소리가반복될수록짝,짝,짝,짝,감각은무뎌지고짝,짝,눈물도흐르지않았다.멀리언니의웃음소리가들렸다.어느샌가엄마가내이름을부르며나를흔드는것같았지만나는하나도기쁘지않았다.사라질수없다는것이너무절망스러웠다.그렇게나는정신을잃고쓰러졌다._본문에서

그녀의가족은어떻게생각하면최악이고또달리보면주변에흔히존재하는가족이기도하다.행운보다는불행쪽에한발먼저디딘채살아가는이들.불행이오고또불행이온다.불행의중첩이자연법칙인듯삶을살아내는이들에게는삶에서의뜻밖의행운도없고동정도없다.오직적나라한삶에대한직시와생존의문제만있을뿐.

아버지는평생,나에게,내얼굴에대해서단한마디도한적이없었다.괜찮다는거짓말도,참고살수밖에없다는진실도,하다못해그딴건중요한게아니라는허풍조차떨지않았다.그러면안되었다.당신이만들어놓은자식이므로적어도한번쯤은미안하다고말해줬어야했다._본문에서

선화에게,사랑은어느날,꽃집에한남자가찾아오면서시작된다.처음엔꽃잎만을사간남자영흠.그남자는꽃잎을사간뒤로매일매일선화의꽃집에서꽃을사간다.어느날은다발을또어느날은몇송이의꽃들을사간다.그런남자에게선화는미묘한감정을느낀다.또그남자의목덜미에있는상처를발견하게되기도한다.오랜만에남자의내밀한삶이궁금해진선화는영흠의상처의내력이궁금하고또그의삶이궁금해진다.그사람의마음보다상처에더눈길이가는선화.상처를가진것들은상처를겪은것들을한눈에알아보는법.목덜미의상처가다아물었는지혹은어떤모양의흉터로남았는지그러면서그피부의촉감은어떤지와같은.흉터의내력을알고싶고또이해하고싶은욕망.사랑.


중요한건어떤일이닥쳐도이겨낼만한내성이생겼다는것

선화에게,희망은상처가저절로아물었으면그냥내버려두라는것이다.괜히상처를치료한답시고후벼파흉터를크게만들지는말자는것.이건그녀가스스로터득한지독한삶을견뎌내는치료법이었다.누구나상처가있다.상처는딱지가내려앉아흉터가된다.흉터는상처의기억을반추하지만삶전체를흔들수는없는것이다.선화의오른쪽얼굴에뿌리내린나뭇가지같은상처는그녀의지독했던시절의시간들을호출한다.하지만이제선화는다짐한다.남은인생도이대로살겠다고.이제까지가힘겨웠을뿐이라고말한다.

누구든상처가있다.상처에서흐르던피가굳고딱지가내려앉고,딱지가떨어진자리에솟은새살이바로상처를반추하게하는흉터였다.그래서나는사람들의흉터를유심히관찰하곤했다.어쩌다그랬을까상상하기도하고,아물기까지얼마나걸릴지혼자추측해보기도했다.때로커다란흉터나,흉하게일그러진흉터를보면나도모르게안도가되기도했다.세상에나만흉터가있는게아니었으니까.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