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당 일기 (일기를 바탕으로 복원한 17세기 영남 사족의 생활 궤적)

조성당 일기 (일기를 바탕으로 복원한 17세기 영남 사족의 생활 궤적)

$23.42
Description
17세기, 관직활동 후 낙향한 조성당 김택룡의 생활일기를
역사학, 한문학, 사회학, 인문정보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그 활동과 문화상을 생생히 재구성하다
오랜 시간 민간에서 소장해온 일기와 편지 등의 사료를 발굴ㆍ번역해온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사업팀이 한 해 동안 연구한 결과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는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제23권 『조성당일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역사학, 한문학, 사회학, 인문정보학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조성당 김택룡이 남긴 생활일기를 분석해 17세기 영남 사족의 생활상을 다방면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조성당일기』는 조성당 김택룡이 말년에 쓴 생활일기로, 1612년, 1616년, 1617년의 일상을 기록한 세 권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퇴계 이황의 제자로 잘 알려진 월천 조목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학문을 연마했고 평생 퇴계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경상도 예안 한곡 지방에 거주하며 마흔둘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고 이후 약 20년간 대부분 선조 집권 후반기에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했는데 정작 아주 높은 지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덕분에 도리어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말년까지 순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일기 속에는 당시 김택룡이 나눈 교유 관계, 경상도 예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주된 소득원인 농작물 경영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김택룡은 자신이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또한 첩과 서자, 서녀, 나아가 노비의 이름과 그들의 구체적인 행위 등 아주 시시콜콜한 일까지 성실하게 기록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걸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향촌 사회 속 양반의 모습을 밀도 높은 일일日日의 나열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데 『조성당일기』의 가치와 차별점이 있다.
저자

윤성훈,장준호,신동훈,백광열,최은주,류인태

한국고전번역원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미수허목고문서예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로『한자의모험』,공저서로『옛편지낱말사전』『함벽당간찰:편지를통해살펴보는조선후기사족들의생활상』공역서로『윤이후의지암일기』등이있다.논문으로「〈고매누자대년설〉을통해본미수허목고문서예창작의양상및의의」「다산정약용행초서의특징-〈하피첩〉의사례」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1장『조성당일기』를통해본김택룡의일상·윤성훈
『조성당일기』라는책에대하여|김택룡과그의가족|김택룡의생활공간|『조성당일기』에나타난김택룡의일상-시기및생활공간에따른재구축|『조성당일기』의가치

2장조성당김택룡의관직활동과교유관계·장준호
머리말|김택룡의가계와출사전행적|선조조~광해군조의관직활동|김택룡의사승관계와교유관계|맺음말

3장17세기서원인식의변곡점,조목의도산서원종향·신동훈
머리말|도산서원의위상과국학|향현의서원제향과확산|맺음말

4장예안사족김택룡과영남사족사회·백광열
머리말|조선중기사족사회속에서영남사림파의지위:인적연결망에기반한고찰|영남사림파속에서예안사족김택룡의지위|김택룡의사회적활동과조선중기사족지배체제|맺음말

5장조성당김택룡의인맥기반과문학네트워크·최은주
머리말|문집과일기를통해본그의인맥기반|문학네트워크의형성|맺음말

6장예안-영주-봉화를잇는김택룡의생활공간복원·류인태
조선시대생활일기의공간을어떻게읽을것인가?|김택룡의생활권역과활동범위에관한고찰|점,선,면에기초한김택룡의생활공간복원|공간데이터로『조성당일기』를읽는다는것에관해

출판사 서평

당대지배체제내부로깊이들어가고자했던
조선시대사족들의서원문화와그활동

『조성당일기』에기록된내용중매우특징적으로드러나는부분중하나는당시조선시대사족들을연결하고때로는그지위의높고낮음을결정하는서원문화다.김택룡은낙향후후진을양성하고스승인월천을도산서원에종향하는일을추진했다.조선시대서원에는당시학문발전에공이있다고판단할수있는이를주향(主享,위패를정면에놓는것)하여모셨는데,이때제향자를누구로할것인가하는문제는선비들의공론에따라국가가선정했다.따라서서원이사액賜額받게되면해당서원의제향자는물론그서원이위치한지역,서원과관계를맺고있는사람들의위상이올라가는것은물론대대손손그혜택과명예를누릴수있어이는당시사족사회에서굉장히중요한일이었다.김택룡은자신의스승인월천을퇴계의문인중유일하게도선사원에종향하는데성공했고,이‘월천종향’사건을통해그는원래그리높지않은신분으로정계에진출한자신의한계와단점을극복할수있었음과동시에퇴계학파비월천계인물들과는갈등을빚기도했다.이처럼『조성당일기』에는조성당김택룡이살았던16~17세기,조선개국이래서서히형성되어온사족사회가안정화단계에들어서면서사족이토지와노비를소유한지주로서경제적기반을잡고이를혈연과혼맥을통해결집·확장하며나아가학맥을통해지역사회와중앙정계에미치는영향력을확장해가고자노력하는과정이잘나타나있다.


경제생활과교유관계,여가활동과산수유람…
현대의학문적도구를바탕으로복원된향촌사회속양반의모습

『조성당일기』에는여타공적인기록에는잘드러나있지않은,사적인공간에서영위된조선시대사족의‘사적인삶’이잘나타나있다.특히일기에는살림의근간이되는농사를점검하는일이매우중요하게다뤄지고자주등장하는데,언제,노비누구를시켜밭을갈고파종했는지,전토田土구매를위해어디를다녀오고또어떤조건으로거래했는지와같은정보가상세히기록되어있다.이외에도스승월천이세상을떠난뒤홀로남은대부인에게드리기위해손수꿩사냥을해문병하며이후대부인이세상을떠난뒤조문하는과정,아버지와장인의기제사에제수를준비해아들,손자,조카들과함께제사를지내고다른친지들과모두모여제삿밥을먹는일등이기록되어있다.한편학문과문예활동으로서중국서적을구입하고자할때에는어떤경로로얼마의삯을주고어떤책을구입했는지등도소상히적혀있어문화사적가치가크다.또한김택룡은산수유람을즐겼는데,청량산이나소백산등을다녀온뒤에는반드시그기록을한시로창작해남겼다.그는문장을짓는일을굉장히중요하게여겼고,아들을비롯해이지역아이들에게한시창작을강조하고작법을익히게하거나여러사람이모인자리에서즉석으로시짓기도즐겼다는기록이자주등장한다.
『조성당일기』는의성김씨한곡파에서한국국학진흥원에기탁되어‘일기국역총서’간행위원회의첫번째프로젝트로2010년국역이완성된지13년이지나다양한분야의학자들을통해세밀하게분석되었다.이과정에서역사속에숨어있던조성당김택룡의삶이드러나면서그시절향촌사회속양반의모습을한층생생하게복원한것에서성과를찾을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