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

너의 얼굴

$17.00
Description
“내 얼굴에서 온전한 것은 눈과 혀뿐이었다.”
-본문에서-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다
기이하고 충만하며,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사랑에 관하여
전 《GQ》 편집장 이충걸의 첫 장편소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전 《GQ》 편집장 이충걸의 첫 장편소설 《너의 얼굴》이 출간되었다. 그는 최근 인터뷰어로서 문답을 통해 자의식과 사유를 특별한 층위로 건설했고(《질문은 조금만》). 에세이스트로서 그에게 걸려든 모든 미학적·문화적 과제들을 여과해놓았다(《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그런 그가 이제 소설을 선보인다. 소설가로서의 이충걸 필모그래피의 분기점이 될, 스스로 작가적 당위에 천착하고 꼭 써야만 했던 필연적인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소설. 이번에 출간된 《너의 얼굴》은 교통사고로 인해 얼굴이 지워지는 사고를 당한 엄마가 비슷한 시기에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롭고 기이한 삶을 시작하는 여정을 진지하게 추적한 작품이다. 안면이식으로 딸의 얼굴이 엄마(나)에게 옮겨옴으로써 같이 딸려오는 딸의 삶의 조각들. 소설은 딸의 죽음 이후 얼굴을 부여받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엄마를 추적하며 엄마의 삶과 딸의 삶이 겹치는 그 기묘한 순간들을 조명한다. 그럼으로써 젊음과 늙음, 성장과 소멸, 삶과 죽음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유해보기를 우리들에게 요구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자식을 잃은 엄마의 비통함과 죽은 딸의 얼굴로 삶을 다시 사는, 기이한 부활이 휘몰아치는 혼잡함의 아름다운 역설이 빛난다. 상처를 주는 동시에 들뜨게 만드는 기묘한 감정들이 자주 태어나고 문장과 문장들에서 퍼져나가는 사색들이 은유와 비유들의 문맥들 안에서 서로 조응하며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생경한 풍경들을 자아낸다.

저자

이충걸

저자:이충걸
성균관대학교건축공학과를졸업했다.《행복이가득한집》《보그》를거쳐18년간《GQKOREA》의편집장으로지냈다.인터뷰집《해를등지고놀다》《질문은조금만》,산문집《슬픔의냄새》《갖고싶은게너무나많은인생을위하여》《엄마는어쩌면그렇게》《아무도알아주지않는우리의특별함》,소설집《완전히불완전한》외에도〈11월의왈츠〉〈노래처럼말해줘〉〈〈브람스라부르자〉같은희곡도다수썼다.

목차

너의얼굴*7

작가의말*416

출판사 서평

평면에머물러있는나의얼굴
사방에입체적으로퍼져나가는너의얼굴

소설은교통사고로시작된다.뜻하지않게결정적순간들이운명을순식간에바꾸기도한다.그날이그랬다.4월인데도스웨터를걸쳐야될만큼추운보통의날.아무일도일어날것같지않은도로에서매번그러하듯.오래된차를몰았고비슷한풍경에익숙한주행길일뿐이었다.단지,찰나의순간에마주오는트레일러가중앙선을넘어버렸다는것.마주오는차를피해핸들을돌렸고뒤따라오던수많은차들과의충돌.몸은튀어올랐다가급히추락했다.“지옥의하강.”삶이종료되어간다는신호.

“얼굴이지워졌다는것은말이되지않지만,빈틈없는사실이었다.내이마부터오른쪽눈꺼풀과코,턱과입천장을포함한얼굴하부골격이완전히으깨졌다.머리카락으로숨기던왼쪽귀의절반도사라졌다.(……)내얼굴에서온전한것은눈과혀뿐이었다.”(p.18)

전신깁스에반코마상태가얼마나지속되었는지가늠되지않았다.낮과밤이수없이자리를뒤바꾸었다.진정제와진통제들이앞다투어‘나’의몸과뇌를점령한다.자다깨다를반복했다.하루를자고이틀을깨있었나?병원안에서의드문드문들리는기계음들과환자와의사들이내는소리들만이내가살아있다는자각을감각할수있게해줄뿐이었다.보호자처럼서있는실루엣.딸의남자친구인모하.모하가나의가장가까운가족이되었다니.그애의잿빛표정.나를내려다보는투명하고앳된열일곱살의표정.모하가거즈로덮인내얼굴을내려다본다.

“네가보고있는건내가아니야.내가맞지만나의전부는아니야.내얼굴은아직다없어지지않았어.”(p.21)

딸의이름은파라.파라와함께앰뷸런스에실려갔더라면,손이라도맞잡을수있었을텐데.병원침대에누워있으면서줄곧그생각뿐이었다.나의몸은조금씩회복되어갔지만파라의상태는처음과그대로.나아지지않았다.서서히몸에서조금씩풀려나가는깁스들.이제는팔도움직이고다리도움직였다.모하가준이어폰으로음악도들을수있었다.내몸에서부러진것들이붙었고파괴되었던것들이조금씩재생되었다.이뻔한섭리를파라만받아들지않는걸까.모하의표정으로내딸의안위를전달받는다.아직파라는죽음의문턱에앉아있는걸까.

“나는파라손에이마를묻고아이의숨이드나드는소리를들었다.그옆에무릎을꿇고앉아그애와같은속도로숨을쉬었다.결국내딸이잠에서깨기를기다렸다.내무릎의뿌리가깊어서그자리에붙박여이백살이되도록파라꿈을꾸고싶었다.”(p.156-157)

옆구리근육을가져와턱에붙인다.허벅지살로오른쪽뺨을만든다.장딴지와팔근육도.내몸의모든부분들을떼어와나의얼굴에붙여본다.이식한살들은반죽처럼붙어있었다.얼굴이었지만얼굴이아니었다.몸에남은살로얼마나얼굴에이어붙일수있을까.종국엔더이상떼어낼조직이없는날이올것이다.모하는굳건한보호자처럼이병원의의사인자신의고모부를만나보라고권했다.안면이식에대해.성공확률이적은복잡하고어려운수술.영원히얼굴없이살수있을까?모하의걱정스러운표정을없애주기위해서라도안면이식이란것을해보기로마음먹었다.하지만내얼굴의수여자가파라라는건생각하지않았던것이었다.

““저는파라를살리고싶어요.파라를다시보고싶어요.”
모하의눈이타오르는성냥처럼새파래졌다.
“어머니가파라얼굴로바뀐다면저도살아있는친구를계속볼수있는거잖아요.둘다사는거잖아요.””(p.316)

젊음이,아름다움이노골적인권력이되다

딸의얼굴을이식받은엄마라니.나는누구를위해이렇게되어야만했을까.누굴만족시키려고?거울안얼굴은,파라도아닌내가아닌.내밖의무엇일뿐이었다.얼굴이사람의전부일까.얼굴이바뀐다면마음이바뀌는걸까.아니바뀔수있을까.나는파라일까아니면나일까?파라가살지못했던,누리지못했던시간과공간을내가제대로살수는있을까.그렇다면나의삶,나의미래는어찌되는걸까.내옆에바짝붙어앉아있는,곧내어깨에기대어누울것같은모하는?그애는나를누구로생각할까?

“우리는더깊이움직였다.나는우리사이의나이차가상쇄되었다고상상했다.떼지어다니는낯선이들에게소리지르고싶었다.그러나감정은나를겨냥해상처를입힐것이다.”(p.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