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4

멜랑콜리아 -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4

$18.00
저자

미르체아커르터레스쿠

저자:미르체아커르터레스쿠(1956~)
1956년6월1일루마니아부쿠레슈티에서태어났다.부쿠레슈티대학어문학부에서루마니아어와루마니아문학을공부했으며,현재는같은대학어문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1978년루마니아의문예지에시를발표하며데뷔했고,2년후출간한시집《횃불,진열창,사진(Faruri,vitrine,fotografii)》으로루마니아작가연합데뷔상을수상했다.그의작품들은대개포스트모던문학,환상문학,마술적사실주의로분류되는데,시,장편소설,단편소설,문학비평,에세이등다양한장르의글을활발히집필하며스물다섯권이넘는책을출간했다.대표작으로는영웅서사시《레반트(Levantul,1990)》와《눈부신:왼쪽날개(Orbitor.Aripastang,1996)》《눈부신:몸(Orbitor.Corpul,2002)》《눈부신:오른쪽날개(Orbitor.Aripadreapt,2007)》로이루어진‘눈부신3부작’,《노스탤지어(Nostalgia,1993)》《솔레노이드(Solenoid,2015)》《멜랑콜리아(Melancolia,2019)》《테오도로스(Theodoros,2022)》등이있다.루마니아의주요문학상들을비롯하여이탈리아의주세페아체르비문학상,슬로베니아의빌레니카국제문학상,베를린세계문화의집국제문학상,포르멘토르상,토마스만문학상,더블린국제문학상등유수의문학상을수상했다.노벨문학상의후보로꾸준히언급된다.

역자:백승남
한국외국어대학루마니아어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루마니아부쿠레슈티대학에서루마니아심리주의소설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옮긴책으로《과거설계/유령교회》가있으며현재한국외국어대학루마니아어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프롤로그
춤·9

멜랑콜리아
다리·27
여우·93
껍데기·157

에필로그
감옥·311

옮긴이의말·321

출판사 서평

“운명은어떻게눈처럼내리는가?”
인간보편멜랑콜리아의시작
어두운매혹의환상동화

“불안한강렬함의환상적인리얼리즘.평행우주,도플갱어,다차원적반영으로가득한미로같은서사구조.융,볼라뇨,데이비드린치의혼합”(귄터카인들스토퍼,〈WDR5〉)이라는찬사를받은소설집《멜랑콜리아》는단편〈다리〉〈여우〉〈껍데기〉로이루어진연작〈멜랑콜리아〉를짧은단편프롤로그〈춤〉과에필로그〈감옥〉이둘러싸는구조로되어있다.이는작가의주요테마와문체를응축한“진정한커르터레스쿠적작품집”으로서작가의문학적완숙미를보여준다.작가는이전에출판한단편들을새롭게엮어낸이선집을통해유년시절의상실감,기억,꿈과현실의경계가허물어지는지점,시간의흐름,남성성과여성성등을탐구하며독특하고몽환적인서사를펼쳐낸다.

기이하게낯설고몽환적인세계
기억과존재의근원을향한내면의여행

작품의테두리를이루는프롤로그〈춤〉과에필로그〈감옥〉은작품집전체를하나의유기적구조로엮는역할을한다.〈춤〉은익숙한현실이아닌,낯설고몽환적인세계로이끄는입구와같다.〈춤〉의주인공은어느바위투성이섬의“사람의손으로짓지않은궁전”으로들어가그곳의유일한‘출구’를지키는문지기와춤추듯싸우는데,이는이작품독서의리듬을은유하는듯보인다.

이제나는출구의이편과저편을추고있었다.나는정문이었고,문지기였고,둥글게무리지은천사들이었다.나는궁전이었고,바다였다.그렇게자주서로다투었던뇌와심장,성기는하나의기관으로합쳐졌다.그기관의생각은의식으로흘렀고,의식은욕망으로흘렀다.욕망은다시생각으로바뀌었다.이모든것은나의껍질을찢었고,세상의껍데기속으로스며들었다.제어할수없게,황폐하게,격렬하게모든것의성상으로스며들어갔다.이또한찢어져영원하고이해할수없는무(無)로흘러들어갔다._〈춤〉,23면

에필로그〈감옥〉에따르면우리는생물학적존재로서물리적세계에던져져속박되어있는존재이다.우리는‘전장(前障)’에갇혀있고,전장은뇌에갇혀있으며,뇌는두개골에,두개골은몸에,몸은지구라는행성에갇혀있다.이지옥의고리들은알려진우주와차원의한계를넘어서영원히퍼져나간다.이러한인간존재의본질을끊임없이묻고답하는〈감옥〉은일종의메타픽션으로,이작품독서를마무리짓게한다.

유년기의트라우마
고통과죽음의실존적심연

연작〈멜랑콜리아〉의첫번째단편〈다리〉는엄마가너무오랫동안집을비워홀로남겨진어린아이가엄마가결코돌아오지않으리라고믿게되는흔한상황을다룬다.이때아이의고독과불안이외부화되면서집은기이하게환상적인,닫힌공간이된다.이집에서나가려면창문과도시의여러곳사이에놓인투명한다리위를걸어가야한다.소년은다리를건너는세번의여행을통해탄생의은유적체험을겪고,이해할수없는우주의구조를목도하며,마지막으로성장의불가피성,사회로의통합,일상적이고지루한삶,결코피할수없는실존적심연인노화와죽음에직면한다.

그러고는성장하는것을멈췄을것이다.성장한다는것을믿는것을그만두었을것이다.그어떤것도믿는것을단념했을것이다.심지어온전한자신의존재조차도.(…)고무남자가어떻게뒷걸음질하고말을더듬고잊기시작하는지봤을것이다.어떻게고무남자에게서중력과운명에패하여고개를땅으로숙인늙은이가태어났는지.어떻게그의피부가쪼그라들며주름지고피곤한눈밑의처진살이부풀어오르는지.어떻게이제는그의몸이지팡이를필요로하는지.어떻게노화가흰눈썹과함께오는지._〈다리〉,88~89면

삶을살아가게하는사랑
상실의고통과두려움

〈여우〉는제가가장아끼는글중하나입니다.한번도글을써본적이없는제여동생에게바치는이야기예요.이야기의중심은희생이지요.열살소년이영원한얼음세계로납치되어끌려간여동생을구하기위해,죽은쌍둥이남동생을대신하기로합니다.현세와내세라는두세계에대한이야기이자,결국은우리가살아가는두려움을극복하게하는사랑에관한이야기이지요.저에게는깊이자전적이고깊이고통스러운이야기입니다._2020년12월23일〈SemndinCarte〉와의인터뷰에서

여덟살소년마르첼과세살여동생이사벨은희미한안개와도같은어른들의세계와는독립적인둘만의세계에서살아간다.어느날두아이가밤에하는‘토끼놀이’에서죽음을상징하던여우가진짜나타나이사벨을납치해간다.

여우가동생을납치했던그날밤처럼둘은서로마주보았다.정확히아이의눈높이에서다시거대한동공의비인간적인커다란두눈이보였다.얼굴의반을차지했다.다시그음산한미소를참아내야했다.멜랑콜리가잔인하게봉인된그미소.시체의얼어붙은악취에아이의감각이무뎌졌고아이는조용하고슬픈마법에빠져들었다._〈여우〉,151~152면

마르첼은여동생을구하기위해“부자연스럽게큰눈은새까맣고(…)시체의얼굴이메스에베인것”같은‘멜랑콜리한미소’를띤섬뜩한아이의모습을한여우의굴,일종의연옥으로가서자신의또다른자아와대립한다.

거기에서그는밤을,영원한밤을,태어나기이전의밤을,죽은이후의밤을견딜것이다.반쪽그림자속에서그는낡은공책에무와무가치에관한질문을끝없이적을것이다.“물은어떻게잠을잘까?”“구체는어떻게자를까?”“가을은얼마나많은여름을가지고있을까?”“왜거울속에서는자신이보이지않을까?”“손가락하나가얼마나많은손을가지고있나?”“운명은어떻게눈처럼내리는가?”_〈여우〉,156면

고독과내면의방황에의탐구
자아의탈피와재탄생

마지막으로〈껍데기〉에서는매일트램을타고가로지르는낯선도시에사는열다섯살고등학생소년이여성성을마주하고풀리지않는수수께끼처럼충격을받습니다.남자들은가끔벌레나뱀처럼옷걸이에낡은껍데기를남기고사라지지요.그러나소년이복잡한사랑이야기의끝에서알게된것처럼,여성은번데기가된애벌레처럼변태를거쳐일시적인동시에불멸의아름다움을지닌나비로변합니다.여성성과섹슈얼리티,이높은시의영역을이해하기위해이소년은엄숙하고그로테스크한의식이행해지는성당이있는지하세계로내려가지요.이세가지이야기(〈다리〉〈여우〉〈껍데기〉)는촘촘한상징의네트워크로연결되어있기때문에사실하나의동일한텍스트라고할수있습니다._2020년12월23일〈SemndinCarte〉와의인터뷰에서

이단편집에서가장긴작품인〈껍데기〉에서는“아마도이세상에서가장고독한사람이었을”따라서누구보다“멜랑콜리”했을소년이반이등장한다.어느날그는집과학교사이트램정류장이있는거리를직접탐험하기로결심한다.그러자트램을타고그저지나쳤던익숙한공간들이낯설게변모하기시작한다.곤충과촌충모양의초콜릿을파는기이한제과점,창문마다여성과갓난아기가내다보고있는산후조리원,허공에떠있는가상의시인바실레신구러타테의석상,아르누보양식의문위차양이있는시멘트마당집그리고그곳에사는십대소녀도라.
도라와의기묘한우정덕분에이반은오랫동안몰두해왔던수수께끼를풀지모를기회를얻게된다.바로여성은‘껍데기’를어디에숨기는가,라는것이다.이반은남자들이한살,네살,일곱살에껍데기를벗고그후로는5년마다탈피한다는것을잘알고있다.그는자신의껍데기들을방안옷장옷걸이에걸어보관하며,아버지의오래된껍데기들이여행가방에보관되어있는것을안다.하지만어머니의껍데기는한번도본적이없다.반친구들역시엄마들이나소녀들의껍데기를한번도본적이없다.
사춘기시절작가자신을모델로한것이분명한이반은내성적이고사색적인인물로,학교쉬는시간에학교뒤편에서시집을읽으며보냈다.이제그는연인이자시인으로재탄생될준비가되었으며,의심과두려움,자기성찰로가득찬이러한전환이가져오는멜랑콜리는마치호박석속곤충처럼이텍스트에단단히담겨있다.

《솔레노이드》와같은거대한서사이후에집필된《멜랑콜리아》는응축된서사,서정성과은유적인표현에집중한다.세밀하고감각적인묘사,특유의몽환적이고환상적인분위기,초현실적인요소들과기이한이미지와비유로써독자에게독특한미적경험을선사하는수작(秀作)으로,커르터레스쿠문학세계에입문하기에더할나위없는작품이다.

저자의말

《멜랑콜리아》는내가정말아끼는내영혼의책입니다.이소설의페이지위에서만큼은가장나자신다운나,지금이순간을살아가는나일수있습니다.나는이책을우화와동화의세계로만드는,이야기들의비(非)장소성과영원성을사랑합니다.내책은일상의산문과현재의역사적순간과정반대에있는데,《솔레노이드》이후나는어떤문화적공간에서든어떤언어로든어떤시기에든읽을수있는,일종의이야기의보편성을믿기때문입니다.이이야기들은형이상학적이고어둡지만약간의초현실주의로빛나기도합니다.주랑현관들과조각상들과고독의대가인조르조데키리코의그림들과분위기가비슷하다고생각합니다.

역자의말

이작품은인간의내면에가라앉은고통과우울을외면하지않는다.오히려그것을끝까지응시하고시의언어로승화함으로써,인간이어떻게유한한존재로서무한한가치를품을수있는지를말한다.그것은마치죽음이라는심연을용기내어들여다본이들만이다시살아갈수있는새로운세계를마주하게되는것과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