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를초월한여성연대
가장사적인그들의목소리를통해그려내는
격동하는19세기영국의초상
1811년,유럽의경제는나폴레옹전쟁으로침체되었고,영국북부의섬유공업지대에서는일자리를잃은노동자들이공장을습격하여기계를파괴하는러다이트운동이벌어지고있다.소설은혼란한국내·외시국의직접적인영향아래있는요크셔의두여성을중심으로펼쳐진다.교구사제의조카딸이며,가난하고소심하지만지적이고온화한캐럴라인헬스턴과,대저택과부를물려받은상속녀이기에당시의여성으로서는드물게독립적인삶을영위할수있었던당당한셜리킬더는상이한사회적지위와성격에도불구하고첫만남에서부터특별한유대를느낀다.두사람은여성으로서처한갑갑한상황과나아갈수있는삶의방향성에대한시각을공유하며자매와도같은친밀한우정을쌓아나간다.이야기는캐럴라인과셜리가마주하는가족관계,사랑,결혼등의개인적문제를렌즈삼아당대영국사회를파노라마처럼펼쳐보여준다.
전작《제인에어》와‘여성작가’의한계를
스스로넘어서고자했던
작가유일의역사사회소설
샬럿브론테는소설첫장에서화자의목소리를통해이렇게말한다.
서두를읽고로맨스비슷한것이준비되어있으리라생각한다면,독자여,그것이야말로오산이다.감상이나시,몽상을기대하는가?열정,자극,멜로드라마를원하는가?기대를내려놓으라.기준을낮추라.여러분앞에는냉정하고진지하며현실적인무언가가놓여있다._1권9-10쪽
이는큰성공을거두었던전작《제인에어》를과감히떠나새로운글쓰기를시도하겠다는선언이자,달콤한사랑이야기를기대했던독자들에게보내는엄중한경고이기도하다.당시영국에서는산업혁명이일어나며대두되었던노동계급의문제를다룬시사적인문학이유행이었다.샬럿브론테또한여성개인의사적경험에국한되는글대신격변하던19세기영국의상황과그속에서살아가던개인들의삶을다룬,이전에쓴작품들과는완전히다른글을쓰기로결심한다.
이는여성에게요구되던특정한방식의글쓰기와여성작가의글을바라보는시선에내포되어있던시혜적인관용과멸시를벗어나고자하는노력의일환이기도했다.샬럿브론테는여성적인글을쓸것을권하는동료작가이자비평가에게“나는글을쓸때여성적으로매력적이고우아한게뭔지생각할수없습니다.그런조건이나생각을염두에두고펜을잡아본적이없어요.만약내글이그런조건으로만용납된다면나는대중을떠나겠습니다”라고말했으며,비난이나비판보다그가여성이라는사실을정중하게언급한시혜적인칭찬이훨씬더모욕적이라고이야기한바있다.큰성공을거두었던자신의전작을스스로뛰어넘고성별과무관하게작가로서평가와인정을받고싶었던야망을품고집필한작가유일의역사사회소설이바로《셜리》다.
당대의문제작에서가장현대적인고전으로
샬럿브론테그자신만의목소리로
해답이아닌질문을던지는소설
그럼에도샬럿브론테만의정수는여전히소설곳곳에녹아있다.전쟁과산업혁명,노동문제와같은주제를다룬다는점에서는그당시출간되었던소설들과궤를같이하고있지만,그사안들을바라보는관점에서명확한차이를느낄수있다.이작품에서가장두드러지는것은산업혁명과전쟁등으로인해격변하고있던영국사회에서‘여성이어떤상황에처해있는가’에대한고발이다.이야기속여성인물들은유의미하고가치있는노동을하기를원하며,스스로가누구인지,사회에서어떤역할을할수있는지고민한다.표면적으로는빅토리아시대로맨스소설의전형을따르는것처럼보이는부분들도,결혼을통해가정을이루지못하면온전한사회구성원으로인정받을수없었던당시의답답한상황을고스란히드러낸다.
‘아마나는결혼하지못할거야.로버트가나에게마음이없으니난사랑할남편을결코갖지못할거고,돌봐줄어린애들도못가질거야.얼마전까지만해도아내와어머니로서의의무와애정이내존재를차지하기를마음놓고기대했었지.하지만이제분명히알겠어.아마도나는노처녀가될거야.나는평생결혼하지못할거고.그럼난무엇을위해태어났을까?이세상에내자리는어디일까?’_1권248쪽
여성인물들은서로연대하기도하고돌보기도하며가르치거나싸우기도하는데,중얼거리고항변하고소리치는그들의목소리에는샬럿브론테특유의정열이담겨있다.
이때문에출간당시《셜리》는“지나치게남성적인강렬함때문에불쾌하다”라는식의혹평을받기도했다.또다른주된비판은이야기가구조적으로조화롭지못하다는점이었다.그러나후대에한학자는이소설을두고“여성으로서의경험을표현할수있는어휘가없던시대에그에대한이야기를하려고한시도”라고묘사했다.선례가존재하지않는미지의영역으로나아가기위해전에없었던언어와인물을상상해내는과정에서생긴균열은,어색하고삐걱거리기도하지만,새로운의문들이자라날수있는공간을만든다.《셜리》는명쾌한해답을제공하기보다는개인이살아가는사회와시대에대해질문을던지는소설이다.그렇기때문에당대의문제작이었던이작품은특정문화권이나시대에국한되지않고170년이넘는시간을훌쩍넘어,한국의독자와도공명하는의의를지닌채우리앞에당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