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피해자성은 어떻게 권력자의 무기가 되었나)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 (피해자성은 어떻게 권력자의 무기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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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피해자의 자리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이다”
모두가 자신을 ‘진정한 피해자’로 내세우는,
타인의 고통을 잊어버린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회에 대하여

“플랫폼마저 권력과 자본에 점령당한 시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도둑맞은 피해자성을 되돌려줄 책”
_김인정 (저널리스트, 《고통 구경하는 사회》 저자)

“어떻게 특권을 지닌 힘있는 남성들이 ‘진짜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새롭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_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저자)


“악랄한 허위 고발로 저와 가족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2018년 가을, 성폭력 혐의를 폭로당한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지명된 브렛 캐버노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그에게 연민을 표하며 “미국의 젊은 남자들에게 아주 힘든 시대”라고 한탄했고, SNS에는 그를 구출하자는 아우성이 들끓었다. 그를 고발한 크리스틴 블래시 포드도 SNS에서 전 세계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숱한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블래시 포드 외에도 세 여성이 용기를 내어 비슷한 증언을 했지만 캐버노는 수사조차 받지 않고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처럼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한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당연한 절차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가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호소하기 시작했을까? 그 적반하장은 어째서 가능한가? 무엇보다, 왜 가해자는 피해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피해자의 자리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런던정치대학교 교수 릴리 출리아라키는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성(victimhood)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도 확산하지만, 동시에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 ‘소수자 우대 정책’을 한탄하는 백인, ‘무고’를 호소하는 가해자의 고통도 무차별적으로 확산한다. 그런데 누구나 고통을 호소하는 한, 인권이라는 대의 아래 그들은 모두 공감과 연민을 받아 마땅한, 발언권을 존중받아야 할 ‘피해자’로 보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책무가 생기는 듯하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하는 개인의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라는 지위가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얻기 위한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남의 목소리를 짓누르며 목청을 높이는 권력자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의 거짓된 피해자 행세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누구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하는가? 저자는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았는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피해자 전쟁’을 파헤치며 취약한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지위를 되찾아줄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

릴리출리아라키

저자:릴리출리아라키LilieChouliaraki
런던정치경제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사회학,윤리학,기호학,페미니즘등을바탕으로인간의고통과취약성에관해연구해왔으며,소셜미디어를비롯한여러매체와공적발언들을분석하여타인의취약성이나고통을대하는개인의태도,생각,행동에관한책과논문을펴내고있다.최근에는소셜미디어플랫폼,극우포퓰리즘,인종주의,여성혐오등에관한분석을바탕으로피해자(성)개념의역사와무기화현상을파헤친《가해자는모두피해자라말한다》를썼으며,이책으로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최고단행본상을받았다.이외에남반구지역민들의고통을‘구경거리로서의고난’으로바라보는현실을비판적으로분석한《고난의구경TheSpectatorshipofSuffering》(2006)과《아이러니한구경꾼TheIronicSpectator》(2013)등의책을썼다.

역자:성원
번역가.책을통해사람을만나고세상을배우는게좋아서시작한일이어느덧업이되었다.영감을주는작은손전등같은글을좋아한다.탐조에발을들인이후비인간계로관심이확장되어서가도일상도풍요로워졌다.옮긴책으로《단어옆에서기》《나는새들이왜노래하는지아네》《미국공산주의라는로맨스》《나의때가오면》《사라질수없는사람들》《인셀테러》등이있다.

목차

추천의말
서문과감사의말

1장어째서피해자성인가?
2장과거에는누가피해자였나?
3장오늘날에는누가피해자인가?
4장피해자성을어떻게되찾을수있을까?

참고문헌
미주
색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첫번째는이이야기가전세계로퍼져국제헤드라인을장식했다는사실이시사하듯피해자성주장은미국에한정된현상이아니라서구문화권전체의관심을사로잡는포괄적인사안이라는통찰이다.이는새로운시각이아니다.25년전에도미국비평가로버트휴즈RobertHughes는우리가“모두가부유하고유명하지는않지만모두가고난에시달리는고통의민주주의”속에서살아간다고말했다.10년후디디에파생DidierFassin과리샤르레스만RichardRechtman의“트라우마의제국”에관한중대한연구는피해자성을오늘날의삶에서핵심적인도덕적·정치적조건으로보았다.그들은이렇게말했다.“트라우마는정신의학어휘에한정되지않는다.트라우마는일상용법으로깊이뿌리내렸다.사실상그것은어떤사건에대한새로운언어를창조했다.”캐롤린딘CarolynDean은최근에이주장을되풀이하며“트라우마를입은피해자는오늘날서구문화의핵심에자리한다”고역설했다.이언설들은피해자성을서구문화일반의지배담론으로보고있긴하지만블래시포드와캐버노의이야기가제기하는핵심문제를건드리지는않는다.모두가자신의고난이상대방의고난보다인정받아마땅하다고경쟁적으로내세우는,피해자가범람하는세상은어떤종류의세상인가?어떻게세상이지금처럼변했을까?그런세상은삶에어떤유익을주는가?더중요하게는,그대가는무엇일까?이책에서는이런질문들을고심해보려고한다.
_26~27쪽,〈어째서피해자성인가?〉에서

고통의정치라는틀안에서우리는어째서피해자성이자아에본질적인정체성을객관적으로부여하는기표가아니라,반복해서말하자면,자유주의적근대성에서개발된고통의언어를차용하여취약한자아를위해“나상처받았어”또는“나억울해”라고발언하고가엾어하는감정을불러일으키는소통행위인지를더잘이해할수있다.달리말해서피해자는고정된특정사람이아니라,자아가고난에처했다는주장을통해바로그순간취약한존재로생성되는반복적인발화행위자이다.피해자성을공적담론에서일종의투쟁현장으로만드는것은트라우마또는상해의주장들이즐비한가운데새로운자아를드러냄으로써그주위에있는다양한인정의공동체를불러내는수행적인역량이다.그러므로오늘날의정치는스튜어트홀StuartHall이말했듯“늘필연적이거나확정적이거나절대적이거나본질적이지는않”지만,정치가시간의흐름속에서다양한국면에피해자의정체성을잠정적으로결정하는방식으로고통과자아를연결시키는언어적“체결articulations”이라는가변성높은행위에크게의지하는한대체로고통의정치이다.그러므로누가,어떤고난의주장을가지고,어느공동체에속한채피해자로생성되는가는당연하게받아들일일이아니라비판적인공적담론분석을요구하는정치적소통과관련된문제이다.
_60~61쪽,〈어째서피해자성인가?〉에서

피해자성의어휘의과거와현재를재고함으로써우리는어떤교훈을얻을수있을까?바로피해자성에대한비판적분석에서공적담론의“표면에”드러난겉모습만으로는누가피해자이고누가가해자인지파악하기가어렵다는것이다.고난을소통할때고통의주장과자아의조건은결코선험적으로통합되어있지않으므로,피해자성연구는피해자개념의근본적인우발성을인정하는데서출발해야할것이다.
이러한맥락에서나는주장과조건(또는맥락)을재삼구분하는데,둘을가르는어떤고정된경계가“저바깥에”존재하기때문이아니라그구분을발견적수단heuristicdevice으로활용할수있기때문이다.이발견적수단은특정한시공간에서주장과조건사이의관계를탐구하는데유용한분석적틀로활용할수있다.그러므로“진짜real”피해자와“가짜fake”피해자를구분하는질문대신,진실을추구하는과정에서가장중요한질문들을제기해야한다.어떤조건에서특정한고통의주장이특정한자아를피해자로여겨지게하는가?이런자아는어떤권력의입장에서발언하는가?이들의주장은이들에게,이들이호명한공동체에어떤유익을안기는가?이런주장은어떤종류의배제를전제하고공고히하는가?
_71~72쪽,〈어째서피해자성인가?〉에서

오늘날우리가사용하는피해자성의어휘는이런배제의역사에기초한다.이는취약성이인류의“보편적인”속성이아니라20세기근대성의전형적피해자로서백인남성에게특별하게주어진자격임을곱씹게한다.백인남성은싸우다가고통받고,살해하다가고통받고,보호하다가살해하고,보호를위해고통받는다.이모든형태의고통이상호적상해의실행이라는전쟁의핵심목표에내재되어있음은분명하다.하지만그것은동시에서구남성자아가근본적으로선하고오직우발적으로만나쁘며자신이저지른모든폭력때문에전문적인의학적처치와공감을받아마땅한유일한행위자라는개념을유지·온존시킨다.백인남성의고통에이렇게특권을부여하고참혹한폭력과치유의순환고리가활성화된덕에남성들은“증언의자격”이라는유산을부분적으로라도부여받았다.덕분에고통을주장해봤자역사적으로인정받은적이별로없는여성들과는달리,남성들은고통과고난을호소할때신뢰받을수있게되었다.122여성들과유사하게비백인자아들은발언할권력도갖지못하고그들의희생,고통,상실을인정·추모받지못한채살아가고싸우고죽는다.
_125~126쪽,〈과거에는누가피해자였나?〉에서

힘있는사람들이고통의언어를사용하는행위는이미“반피해자주의antivictimism”라고부르는이론적연구대상이다.앨리슨콜은2001년9월11일이후미국정치를연구하면서극우세력이피해자성을무기화하는현상을간결하게정리한다.그는극우세력이“인종의정치,페미니즘,그외저항적인정치들을계속해서흠집내기위해”“새로운피해자집단을고안하고선전함으로써”자기고유의피해자성브랜드를내세운다고말한다.이어서“이운동은최근여성을대상으로한폭력을줄이기위해설계된법을개정하면서2004년‘태어나지않은피해자에대한폭력에관한법UnbornVictimsofViolenceAct’을집어넣는방식으로태아의피해자지위를법에명시하는데성공했다”고덧붙인다.
콜의연구는21세기가시작될무렵고개를든반피해자주의를검토하고있지만,그를비롯한여러연구자들은그뿌리를1960년대중반의미국민권운동과페미니즘투쟁이후그때까지배제되었던집단에우호적인방향으로이루어진법적·사회적개혁에대한반동적인불만에서찾는다.보수적이고백인우월주의적인일부중간계급들은이런운동들덕에흑인과여성을민주적으로포용하는방향으로사회구조가확장된것에억울함을느끼고,피억압집단들이“피해자성카드놀이”를한다고공격하면서대신자신들을시스템의“진정한피해자”로내세웠다.이에로버트호위츠RobertHorwitz는“백인남성들이특히소수자권리의증진과여성혁명의여파로자신들이누리던사회구조적특권일부를상실하기시작하자그혁명이피해자성의정치라며날을세웠다”고주장한다.이런의미에서‘로대웨이드’판례가뒤집힌사건은오래전부터진행되어이제야완성된반피해자주의기획이었다.새뮤얼J.알리토판사의표현대로“비판적인도덕적질문”을해결한다는허울을쓰고서복음주의극우세력의당파적인주장을많은주에서법적인사실로현실화하는데성공했으므로.
_179~180쪽,〈피해자성을어떻게되찾을수있을까?〉에서

흑인커뮤니티의트윗에서유래했지만이제는다른곳에서도널리사용되는“캐런”비유는자신의인종적특권을이용해서자신을흑인폭력Blackviolence의피해자라고주장하는백인여성자아를일컫는표현으로,“힘퍼시”처럼기득권중심의공감과동일선상에있다.“아쉬울게없는백인의우월함과계급특권”49을지녔다는설정의“캐런”비유는“힘퍼시”보다역사가길지만,2020년봄흑인남성크리스천쿠퍼가자기때문에위협감을느끼는척연기하며경찰에신고한백인여성이찍힌증거동영상을올리면서유명해졌다.“백인여성의눈물”을무기삼아인종적타자를향해잔인함의효과를유발한사례였던것이다.50여기서기득권중심의공감은흑인은범죄자라는인종주의서사에서고난에처한여성과위해를가하는남성이라는전통적인성역할이분법에의지함으로써백인여성에게위협을가하는흑인“폭력배”고정관념을중심으로반피해자주의주장을구성한다.
_192쪽,〈피해자성을어떻게되찾을수있을까?〉에서

도전하지못한다.이런폭력의형태에맞서려면사회적고난에대한개인주의적설명대신애당초고난을유발한조건을바꿀수있는단결된실천을요구하는집단주의적정의의서사가필요하다.오늘날의미디어경관과바이럴리티주도의주목경제economiesofattention에서집단주의적서사는낡은것으로간주될지모른다.그렇지만현시대에맞춰현대화된집단주의적서사는반피해자주의와극우세력의잔인함의정치에맞서는투쟁뿐만아니라너무나도절실한미래지향적인사회변화비전에도필요하다.1장에서확인했듯오늘날의미디어또는정치담론들에서는고통의소통이상업화되고‘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가주도하는장르에잠식되어트라우마나인권의서사를개별화하고사람들의고통을전적으로개인의고생담으로만재현하는한편,고통의구조적원인을중심으로한설명적인주장들을희석하거나삭제하는경향이있다.특히자유주의적담론은“비아냥irony”이라는소통양식을선호하는데,이는전반적인메시지는불의를집중적으로겨냥하지만명시적으로드러내지는않으며종종“다안다는듯한무심함,모든진리주장을향한자의식적인의심…유희적인불가지론”으로가득한담론을통해표현된다.가령비정부기구캠페인이나유명인사를앞세워인권이라는대의를브랜드화하는오늘날의인도주의적소통양식은미디어사용자들에게인기를얻었지만,공적인참여를소비자의선택이라는사적인문제로홍보하는경향을보여준다.이는“연대를위한실천을역설하는일체의도덕적호소에는회의적이지만고난에처한사람들을위한어떤행동에는열려있는”교양있는시민이라는양가적인모델을배양한다.
_213~214쪽,〈피해자성을어떻게되찾을수있을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