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무늬동물들 (하가람 소설)

햇빛무늬동물들 (하가람 소설)

$17.00
Description
그리움은 허공을 껴안는 것
이별은 눈 맞춤
사랑은…… 햇빛무늬

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하가람 첫 장편소설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수박〉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하가람의 첫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의 최전선을 감각해온 눈 밝은 독자라면 ‘하가람’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단편 〈재와 그들의 밤〉 〈5월은 창가의 호랑이〉로 2023년·2025년 ‘이 계절의 소설’에 연달아 선정된 그는, 등단 이후 밀도 높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의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1990년대생 젊은 작가다. 《햇빛무늬동물들》은 격월간 《Axt》에 1년 동안 연재한 작품으로, 촘촘한 얼개와 섬세한 미시적 묘사, 시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근미래 가상의 소도시 무로(無路). ‘연오’는 이모 ‘영선’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사촌 언니 ‘세오’는 연오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주지만, 연오는 성인이 되면 이 집을 떠나야 할 거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이모 영선은 어느 날 ‘햇빛무늬증후군’을 진단받는다. 피부에 호랑이 줄무늬 같은 무늬가 생기고 햇볕을 장시간 쬐면 가려움증을 느끼는 이 질환은,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심연으로 침잠시킨다. 영선은 우울감을 떨쳐내고자 하숙집 ‘세오하우스’를 열어 타인을 환대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견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따듯한 집이 되어준다. 한편 외로움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던 연오는 우연히 길에 쓰러진 한 아이를 발견하고 ‘웅’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웅은 멸종위기동물원에서 자란 마지막 호랑이로, 깊은 상처와 비밀을 품은 채 인간 아이의 형상으로 변모한 이종(異種)의 존재다. 상실이라는 공통의 문법을 공유한 연오와 웅은 한 계절을 함께 통과하며 서로가 속한 세계의 지평을 서서히 통합해나간다. 연오에게 웅은, 생애 첫 우정임과 동시에 첫사랑이라는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닮은 존재’를 갈구한다. 침묵 속에서도 상호 간의 이해가 작동하는 존재,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등을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존재를. 폐허가 된 각자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던 두 친구가 서로를 식별한 순간은 필연에 가까워 보인다. 사랑과 슬픔, 오해와 믿음을 가로지르는 이 아름답고 시적인 성장 서사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닮아가고 싶은 마음’은 결국 사랑이라는 본질로 수렴된다고. 한 시절의 양분이 된 그 사랑이 우리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한다고 말이다.
저자

하가람

2023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수박〉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햇빛무늬동물들007
작가의말217

출판사 서평

“투명한그림자가기어이피부가되고무늬가되는
이자유로운소설이좋다.”_정용준(소설가)

처음부터알아봤다.
나와같은외로움,슬픔,상실감을가진웅을.
하지만모든게내오해였던걸까?

웅은무로군항구에서배를타고네시간을달리면도착하는키키섬의멸종위기동물원키키주에서자랐다.매일이평화롭고안온했지만혼자라조금외롭기도했다.그러던어느날,육지에서포획된다른호랑이‘렁’이웅이지내고있는구역에합사가된다.더넓은세상에서살던렁은웅에게매일밤이야기를들려주고,렁의이야기를듣고나면웅의세상은한뼘씩넓어진다.하지만웅과달리렁은자유롭게뛰어다니던야생의호랑이.동물원생활이지속되자렁은답답함과외로움에점점수척해진다.‘너는이곳이답답하지않아?’웅은처음으로자신이살고있는공간이세계의전부가아닐지모른다는생각을한다.웅은음식까지거부하는렁을보며친구를잃을것같다는두려움에렁과함께탈출을감행하지만,인간들이쏜총에맞은렁은죽음을맞는다.

“웅은렁이온것이좋았다.렁이오기전웅의밤은늘혼자였다.같은야행성인붉은여우나수리부엉이는2급구역에있는탓에울음소리가닿지않았다.웅은고요히제앞발을핥거나유리벽앞을서성이는밤을반복해왔다.그러니렁이우리안으로들어온날,처음자신과같은종을마주한날,철사에가죽을덧댄박제본이아니라살아움직이는진짜호랑이를만난날,그호랑이와함께음식을먹고서로의이름을부르게된그날,웅의가슴은얼마나뛰었을까?”(42쪽)

한편연오는우연히길에쓰러져있는또래아이를발견한다.몸에호랑이줄무늬같은옅은무늬가새겨진아이였다.웅이호랑이였다는사실을모르는연오는아이를이방인의집,‘세오하우스’로데려온다.세오하우스에는혼자가된사람들이모여살고있다.따로또같이,서로에게힘이되어주며함께따듯한밥을나눠먹고하루의일상을나눈다.큰상실을겪은뒤에만난둘은같은슬픔의냄새를감지한다.서로의외로움을알아보기라도한듯조금씩소통을시작한다.늘혼자라고생각해온연오는웅에게마음을활짝열어보이고,웅의비밀을일찍이눈치챘음에도함구를택한다.하지만서로다른언어와배경을가진존재가필연적으로마주하게되는현실의벽앞에서연오는조금씩혼란을느낀다.어쩌면내가너를오해하고있던걸까?우리의마음은양방이아니라일방이었던걸까?

“나도모르게소리내었다.지나가는누군가들었다면말이아니라고,그저작은웅얼거림이라고여겼을터였다.하지만웅은뒤돌아보았다.회색눈동자가나를보았다.투명한햇살아래서전에볼수없었던푸른기가비쳤다.가슴안쪽에서부터천천히번져나가는문장이있었다.
너는호랑이.
사랑은햇빛무늬.”(100~101쪽)

빛이무늬를남기기위해서는
반드시그림자가필요하다는것

우리가서로를발견했던,
청명하고시린여름의이야기

책의제목이기도한‘햇빛무늬’는이야기안에서소외와고독의존재론적인장으로작동한다.햇빛무늬증후군을앓는이들에게피부위에새겨진무늬가세상과의단절을의미하는표식이라면,인간의형상을한호랑이에게는그럼에도타자와완전히섞일수없는이종(異種)의한계를일깨우는상징이다.하가람은이모든‘다름’의궤적을그려내는과정에서현실과비현실,동화와설화의경계를자유자재로알레고리화한다.이는우리에게익숙한서사그이후의세계를상상하게만드는동시에,연오와웅,영선과세오,그리고사가르의관계를통해고독이라는실존적무게를견디는이들의연대가얼마나애틋하고눈부신것인지절실히깨닫게한다.그리하여마침내타자를온전히환대하는‘진짜사랑’의윤리가무엇인지까지도.

“따듯해진주스병을들고말없이걸었다.한참뒤웅이입을열었다.신기해.
우리가방금대화를나눴어.
그렇구나,하고생각했다.웅과대화를나눈건처음이었다.우리가같은언어로말을주고받은것은.”(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