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군자라는 박제된 틀을 깨고 나온 ‘대륙의 돈키호테’
우리는 흔히 공자를 고귀한 핏줄을 타고나 유유자적하게 도덕을 설파한 성인군자로 여긴다. 하지만 실상 그는 사생아나 다름없는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일곱에 어머니를 잃은 고아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미관말직을 전전하며 스스로 학문을 깨우친 입지전적 인물인 공자의 생애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공자의 삶은 세속적 기준에서 철저한 ‘실패자’였다. 삼도도괴(三都倒壞)라는 정치적 비책이 무산된 후 55세의 나이에 조국 노나라를 떠나 14년간 처절한 정치 낭인 생활을 했다. 예순여덟에 초라하게 귀향한 뒤에는 외아들 백어와 최고의 애제자 안연, 평생의 반려제자 자로를 연이어 가슴에 묻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져가는 문명 질서를 지키기 위해 홀로 거대한 권력에 맞섰다. 저자는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知其不可而爲之者) 공자의 치열한 실존적 저항을 일컬어 ‘대륙의 돈키호테’라 명명한다.
‘왕 없는 나라’를 상상한 혁명가, 공자 사상에 내장된 공화주의를 읽다
이 책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은 공자가 ‘왕 없는 나라’, 즉 공화정(共和政)을 상상한 정치사상가였다는 점이다. “야만의 땅에 군주가 있어도 문명의 땅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는 《논어》의 구절에서 저자는 주나라 역사에서 14년간 왕 없이 귀족들의 합의로 통치되었던 ‘공화(共和)시대’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공자가 주창한 ‘예치(禮治)’는 윗사람에 대한 일방적 굴복이 아니다. 군주와 신하가 주종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 즉 악셀 호네트가 말한 ‘훼손 없는 상호주관성’을 바탕으로 한 인정투쟁의 산물이다. 공자는 누구나 후천적 학습을 통해 덕성과 능력을 갖추면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연 귀족’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는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정신이자, 훗날 18세기 서구에서 꽃피운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과 정확히 공명한다.
현대 사상으로 새롭게 재해설하는 혁신적인 《논어》 해석
책은 무력과 공포가 아닌 말과 글의 힘(文德)으로 세상을 교화하려 한 공자의 사상을 파고든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라는 공자의 외침은 단순한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공화국 공민이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의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바치는 대승적 사랑, 곧 ‘카리타스(caritas)’의 동양적 발현이다. 어짊(仁)을 수호하려던 공문 제자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현대 시민들의 양심의 자유와 완벽하게 겹쳐진다.
수많은 해설서가 공자를 과거에 가둬둘 때, 이 책은 ‘창조적 오독’을 감행하며 공자를 21세기의 한복판으로 소환한다. 신분 계급의 굴레를 거부하고, 억압에 타협하지 않으며, 타인과 나를 동등하게 대우하려 했던 진보적 실천가 공자의 저서, 낡은 유교의 껍질을 깬 진짜 《논어》가 우리에게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다.
책 속에서
2500년 전 인물이었던 공자는 충효를 앞세운 봉건주의자가 아니라 양심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주창한 진보적 인문주의자였다. 20세기를 살았던 평균적 한국인보다 훨씬 계몽적이고, 진보적이고, 다원적이었다.
이 책은 동아시아의 최고 고전인 《논어》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재발견된 공화주의자로서 공자의 진면목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는 공자 사상에 뿌려져 있는 공화주의적 사상의 씨앗들을 재발견할 것이다. 혈통에 의한 자의적 지배를 거부하고 주종관계에 예속되지 않을 자유의 추구, 후천적 노력을 통해 시민적 덕성을 갖춘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혁명적 발상, 물리적 힘이 아니라 합리성과 포용력에 기초한 문명 질서와 정치 질서를 갖춘 공동체에 대한 사랑(카리타스)으로서 어짊이다.
_7~9쪽, <동아시아 제일고전의 재해석〉에서
공자를 ‘성인군자’로만 아는 사람들은 공자의 삶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_14쪽, <대륙의 돈키호테〉에서
공자는 후대의 유학자들에 의해 덧칠된 것처럼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옹호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독서를 통해 학문을 수양한 사람, 즉 군자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주장한 혁명가였다. 불가능해 보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한 돈키호테 같은 사내였다.
_47~48쪽, <대륙의 돈키호테〉에서
공자의 어짊은 단순히 개인적 윤리 수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공동체 운영의 이상적 원리이기도 했다. 맹자는 그런 복합적 이념으로서 어짊을 개별 인간의 심리와 윤리로 고착시켜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공자가 구상한 군자도 공동체를 이끌고 운영하는 웅혼한 정치지도자로서의 위상이 상당 부분 망실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도덕 잣대를 들이대는 ‘도덕군자’로만 왜소해지고 말았다.
_106쪽, <증자-맹자-주자의 왜곡>에서
왕조시대의 인간관계는 타고난 신분에 의해 서열이 규정된다. 강렬한 인정 욕망을 지녔던 공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인간관계의 부당함을 꿰뚫어 봤다. 또한 누군가를 인
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타고난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의 불합리성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통치학(도)과 인간학(덕)을 갈고닦은 지도자감(군자)에게 왕위를 선양하는 공화주의 정치사상으로서 군자학 아니었을까?
전통적 유학의 관점에 서면 예치는 윗사람에 대한 일방적 충성과 복종이 강조되는 것으로 변질된다. 반면 군자학의 관점에 서면 통치자와 피치자는 ‘훼손 없는 상호주관
성’에 입각해 서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공존, 공영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다. 공화주의자로서 공자가 또 한 번 재발견되는 순간이다.
_174-175쪽, <‘왕 없는 나라’ 상상한 공자>에서
그럼에도 군자학은 공화주의와 사상적으로 상통한다. 무엇보다 군자학은 임금의 자식이 아니라 백성 중에서 가장 어진 자에게 선양하는 것을 최선의 통치로 본다. 국가를 특정 왕조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 간주하는 공화주의와 뚜렷이 공명한다.
군자학은 가장 어진 사람이 임금이 될 때 태평성대가 온다는 정치사상을 담고 있다. 이는 공자보다 20여 년 뒤 태어난 플라톤이 주창한 가장 현명한 사람이 통치자가 돼야 한다는 철인왕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 군자학이 최선의 정치로 보는 선양의 정치는 어진 사람을 재상으로 발탁해 국가 운영을 맡겨본 뒤 검증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철인왕 사상과 공화주의를 절충했다고 볼 수 있다. 군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화주의라는 점에서 16세기~18세기 네덜란드 공화정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_188-189쪽, <군자학에 내장된 공화주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