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둔황까지

파리에서 둔황까지

$20.21
Description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
그가 탐험하고 연구한 열정의 궤적을 담다
저자

폴펠리오

PaulPelliot,1878~1945
프랑스동양학자이자언어학자이다.에두아르샤반느(?douardChavannes)의소개로저명한동양학자실뱅레비(SylvainL?vi)의제자가된다.어학능력이뛰어나중국어,만주어,몽골어,티베트어,아랍어,페르시아어,튀르크어등13개언어를구사했다.극동프랑스학교(?coleFran?aised'Extr?me-Orient)의유급연구생이되어1900년하노이로갔고,곧바로중국도서를확보하기위해북경으로여행했다.마침의화단사건이발발하여프랑스대표부를방어하는군사작전에참여했는데,그공로로레지옹도뇌르훈장을받았다.이후겨우23세의나이로극동프랑스학교중국문학교수가되었다.1906년6월중앙아시아탐사대를이끌고카슈가르에도착하여,툼슈크,쿠차,투루판,둔황막고굴을탐사했다.둔황장경동에서일일이확인하며선별한6,000여필사본을얻어냈다.이러한펠리오의행운과탁월한혜안은프랑스를유럽중국학의중심으로이끌었고,20세기동서양의중국학계를둔황학으로향하게했다.1909년프랑스로돌아온1911년부터그는콜레주드프랑스(Coll?gedeFrance)에서중앙아시아,역사,문화,언어의교수로활동했고1920년부터는유럽중국학의산실인『통보(T’oungPao)』를앙리꼬르디에(HenriCordier)와함께편집했으며,이듬해에는금석문및문학아카데미(Acad?miedesInscriptionsetBelles-Lettres)의임원으로선출되었고1930년부터는파리엉네리(Ennery)박물관장을역임했다.

목차

역자의말09

오뜨아지에서보낸3년23
1909년12월10일소르본대학대강당에서행한펠리오의콘퍼런스

감숙성에서찾은중세도서관69
중앙아시아탐사를담당한극동프랑스학교(EFEO)교수폴펠리오

동투르키스탄조사(1906~1909)에관한폴펠리오씨의보고서139

중앙아시아에관한설명155
극동프랑스학교중국어교수폴펠리오

오뜨아지175

학술원임원인폴펠리오의삶과작업에관한설명249
루이레누(LouisRenou,학술원임원)

부록295

역자후기304

찾아보기306

출판사 서평

본역서는폴펠리오가중앙아시아에서둔황의문서를발견하기까지의경위와발굴한자료들의중요한의미를파악하기위해구성했다.
폴펠리오는유럽의다른동양학자들과는달리특기할만한대중적강의가없다.서평이나주고받은서신조차도모두전문학술적내용을담고있을뿐만아니라,범위와대상역시‘동양’세계를모두아우르고있어,글제목도파악하지못하는경우가허다하다.게다가그의연구작업도번역되어소개된경우가거의없다.이러한점이펠리오씨의학문적삶에대한일목요연한정리를어렵게하고있다.
그렇게가치없는글이라는의미가아니라,그의연구작업에접근하기위해서는적어도중국고문을해독할수있는능력을갖추어야하고,동서양으로펼쳐진폭넓은학문적지식을요구하고있다.파리에서중국으로가는,육로이든바닷길이든,여정의모든대상이자신의연구영역이나되는것처럼주제의선택은자유롭다.그과정에서필요한언어적탁월함과천재성에탄복하지않을수없다.이러한점들이펠리오연구작업에대한접근을어렵게했다.이제역자는처음으로그의연구성과속으로독자들을끌어들이고자한다.

이책이나오기몇달전,역자는『8세기말중국에서인도로가는두갈래여정』이라는펠리오씨의장편연구성과를역주하여출간했다.냉정하게평가해보더라도,이책은세계최초로1세기만에펠리오의연구를재탄생시킨것,그자체만으로의미가있다.그러나이육중한글을역주하면서,언제나생각했다.“이책을누가볼수있을까?”또는“너무깊게들어가는가?”아니면“이책으로이끄는안내서가필요하지는않을까?”등등의생각이들었다.전문학자가아니라면,들어본적도없는단어,용어,지명,학자들의출현들은분명독서의걸림돌이될것이라고.결국,두편의작업을동시에진행하기로마음먹고,먼저『파리에서둔황까지』를완성했다.당연히『파리에서둔황까지』를우선출간하려,두곳출판사문을두드렸다.한곳은심사숙고끝에손을들었고,지방의한곳은원고를고려조차하지않은듯했다.
역자는‘전문학술’도서와‘교양’도서로구분하여언급하고싶지않다.인류가가지고있는모든지식에는그필요성이있다.말하자면,전문학술과교양의경계가무엇이냐는반문이다.분명『8세기말중국에서인도로가는두갈래여정』은낯설고부담스러운점은부인할수없다.부디『파리에서둔황까지』가이러한무거움을덜어줄수있기를바란다.
『파리에서둔황까지』는동서양문화교류,‘실크로드’또는둔황석굴을한번이라도들어본독자라면이해할수있는내용의자료를준비하였다.어쨌거나,적어도,생소하지는않으니까.이책은펠리오연구세계의근간을,그의목소리를통해,추적할수있도록구성했다.
발표된연도순서로본다면,「중앙아시아에관한몇가지설명」(1906),「감숙성에서찾은중세도서관」(1908),『오뜨아지에서보낸3년』(1909),「동투르키스탄조사보고서」(1910),『오뜨아지』(1931),「펠리오의학문적삶」(1950)입니다.그러나내용의시간적흐름과상호연관성에따라,오뜨아지에서보낸3년,감숙성에서찾은중세도서관,동투르키스탄조사보고서,중앙아시아에관한몇가지설명,오뜨아지,펠리오의학문적삶으로그순서를조정했다.

먼저『오뜨아지에서3년(TroisAnsdanslaHauteAsie)』은엄격히말하자면펠리오가직접쓴것은아니다.펠리오가둔황에서돌아온1909년12월10일소르본대학교대강당에서열린콘퍼런스에서학회회원들과일반인을대상으로발표한내용을기록편집한글이다.이강연록은『프랑스아시아위원회회보(BulletinduComit?del'Asiefran?aise)』,1910년1월호에실렸는데,그것을발췌하여프랑스아시아위원회에서단행본으로출판한책이다.펠리오는프랑스탐사대가오뜨아지에서3년동안어떻게활동했고어떤성과를냈는지,그간의경위를사진전시와함께보고하고있는현장으로이끈다.이자료는2차연구서를통해서가아니라,직접펠리오의목소리를들을수있다는점에서그의미가있다.1세기만에다시보물을들고개선하여,펠리오씨가이제우리에게연설하고있는듯하다.1세기전,프랑크왕국후예들의무지가재연되지않기를바란다.여기‘오뜨아지’란표현은몽골지역과쿤룬산맥북부의중앙아시아전역을지칭한다.중국에서는‘신장지역’으로번역하곤하는데,대응하는영역이맞아떨어지지않는다.따라서여기서는펠리오씨의용어를그대로사용한다.

두번째자료는「감숙성에서찾은중세의도서관(Unebiblioth?quem?di?valeretrouv?eauKan-sou)」란제목으로『극동프랑스학교학보(Bulletindel'?colefran?aised'Extr?me-Orient)』,1908년(제8권),501~529쪽에수록된펠리오의글이다.당시펠리오탐사대의최고책임자였던,아시아협회회장에밀세나르(?mileCharlesMarieSenart,1847~1928)씨에게보냈던일종의보고서형식의서한으로,『극동프랑스학교학보(BEFEO)』편집자들이최대한원문을살려편집한것이다.이글로볼때,협회측에서는펠리오가이끄는탐사대의활동이만족스럽지못했다.그들은경쟁하는국가에내놓을만한,소위‘빛나는’또는‘최초의’성과를내라는채근이심했다.다시말해,중앙아시아를무대로러시아,영국,네덜란드,독일,일본이경쟁하고있었고,후발주자였던프랑스팀은다른나라의탐사대가지나간곳만다니는것처럼보였다.그때문인지펠리오는곳곳에서탐사대가찾은것에대한의미를구차할정도로역설하고있다.
본국학계의안목으로보았을때,둔황석굴의문서들은미지의세계를탐험하며,얻어낸화려한‘전리품’에비하면,그특별한의미와중요성을파악하기에는너무어려웠다.보물을들고왔으나보물임을알아보지못하는무지한사람들을설득하기위해,펠리오씨는둔황에서자신들이무엇을발굴했으며,그것들이인류사에얼마나소중한‘보물’인지를조목조목들어설명했다.
현장에서쓰인이글은펠리오의중국문화와문학에대한조예가얼마나깊었는지를가장잘보여준다.펠리오는아우럴스타인(영국탐사대)보다8년이나늦게둔황에도착했지만,그가발굴한자료들은스타인이가져간것들과는비교할수도없이귀중하면서도가치있는것들이었다.왜냐하면,펠리오는여러아시아언어를구사할수있는능력과중국학에관한폭넓은지식을토대로,직접자료들을선별해냈기때문일것이다.그러나안타깝게도유럽의동양학자들에게둔황자료의중요성은한참뒤에나인식되었다.비록소르본대학대강당에많은학자가운집해경청하고있었지만,알아듣는사람은드물었고,그들은냉담했다.우리또한둔황장경동에서발굴된펠리오의문서들에대해그중요성을잘모르고있을뿐더러,그정보들도간접적인자료에의한것들이었다.펠리오의이‘간곡한’서간문이우리의시야에서벗어나지않기를바란다.학술지에논문형식으로편집·수록되어참고도나사진이없다.독자의이해를돕고자,다른자료에서몇장추출하여보탰다.그짧은시기,그열악한조건에서이와같은해제를써낸펠리오의열정과초인적인기억력에감탄할수밖에없을것이다.

세번째,동투르키스탄조사보고서(1910)는금석문및문학아카데미(Comptesrendusdess?ancesdel'Acad?miedesInscriptionsetBelles-Lettres)학기보고서,54년도,1호,1910,58~68쪽에수록된글이다.이보고서는앞서본「감숙성에서찾은중세의도서관」의내용을일목요연하게정리하고,둔황의자료가어떤의미가있으며,향후유럽의중국학계에불러온변화,그리고프랑스가중국학연구의중심이될수밖에없는필연성을기술하고있다.특히둔황에서북경으로들어와수만권의중국문헌자료를확보해가는과정이자세히언급되어있는데,이러한북경에서의학술활동은이문건에서만볼수있는내용일것이다.

네번째,중앙아시아에관한설명(1906)은일종의조사보고서로,『BEFEO』,1906(6),255~269쪽에수록되어있다.이자료에서언급한고고학적조사는펠리오의탐사대가카슈가르에도착하여첫번째이루어낸학술활동이므로,본편역에서첫장에위치해야할것이다.그러나펠리오일행이그곳에서발굴한것에는주목할만한것이사실상없으므로,그다지학자들의주목을받지못했고,그만큼소개도많이이루어지지않았다.게다가생소한지명과기술들이많이보이기때문에,독서의‘편의’를고려하여조정했다.이자료는카슈가르북쪽에있는‘세석굴[三山洞]’과테구르만(Tegurman)유적에관한보고서로,앞서다녀간아우럴스타인이언급하지않은곳이다.다시말해서,이곳에서발굴된유물들은대체로도자기조각들에불과하지만,이글에서다루고있는유적의지리적환경과,구성그리고문화에관한자료로는유일하다.특히중국공주에관한전설을원음그대로로마자로옮기고[본서에서는생략함]번역하여소개한것은,펠리오씨의학문적자세를잘보여준다.

다섯번째자료는파리,에디션아티스티크(L'E?ditionartistique)에서1931년단행본으로출판된『오뜨아지(LaHauteAsie)』로서“오뜨아지에서의탐사와여행(ExplorationsetvoyagesdanslaHauteAsie)”라는부제목이달린소책자이다.이자료는사실파리에서둔황까지라는책의이름에부합하지않고,연대도유난히이후에이루어진문건이지만여기에함께수록하는이유는다음과같다.
펠리오씨는‘오뜨아지(HauteAsie)’라는자신만의고유한용어를사용한다.1장에서둔황석굴의성과를발표하는자리에서도,『오뜨아지에서보낸3년』이라고언급했다.오뜨아지란‘상부아시아’란의미로,일반적으로중앙아시아,시베리아그리고히말라야사이의영역을지칭한다.따라서티베트,신장,몽골지역을포괄한다.중국의학자들은‘신장’으로만번역하는데차이가크기때문에‘오뜨아지’라는명칭을그대로사용할수밖에없다.이지역에서펠리오탐사대가이루어낸학술자료들은매우전문적이고그양도상당하다.펠리오탐사대는다른나라에비해늦게출발하였기때문에그만큼더많은자료를확보하려했고,그만큼학문적기술에서심혈을기울였다고할수있다.본서에서간략하게요약하여가늠해볼정도의작업이아니다.그러나이소책자는이러한학술활동의요약집이라고할정도로,오뜨아지의전체적인면을잘개괄하고있으므로본서에서함께소개한다.에밀가스파르돈(EmileGaspardone,1895~1982)의서평에따르면,이책은마지막시트로엥미션(MissionCitro?n)을기획한사람들의요청으로작성되었다.오뜨아지의지리적설명을시작으로,오뜨아지의기원부터오늘날까지의역사를다루고있는데,말하자면오뜨아지의약사(略史)인셈이다.게다가그지역민족들에대한엄격한기술을보탰고,그문화속에서오뜨아지의정치적,종교적역할을다뤘다.말하자면,오뜨아지에관해종합적인개술로서는이만큼정확하고간략한책은없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게다가매우희귀한자료라는측면도간과할수없다.특히이소책자는이처럼오뜨아지의역사,문화,종교,언어를개괄하고있을뿐만아니라,향후사후유작으로출간된『몽골비사』를요약하고있다는점에서유용하며,특히칭기즈칸의삶을소개하는부분은매우인상적이다.

옛중국문인들처럼『연보』같은것이있으면삶을조감하기수월하련만.앞서언급했듯이펠리오의학문적열정과활동을전체적으로개괄해내기는쉽지않다.이난관을풀어보기위해동시대학자의힘을빌려보고자마지막장을구성했다.동시대의인도학자루이레누(LouisRenou,1896~1966)의「아카데미임원인폴펠리오의삶과작업에관한기술(NoticesurlavieetlestravauxdeM.PaulPelliot,membredel'Acad?mie)」이란글이다.추모성격의이글은『금석문및문학의아카데미학기말보고서(Comptesrendusdess?ancesdel'Acad?miedesInscriptionsetBelles-Lettres)』,제94회(2호,19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