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보, 분단을 가로지르다 (염상섭 연구 2022 | 양장본 Hardcover)

횡보, 분단을 가로지르다 (염상섭 연구 2022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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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근대소설사에서 염상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저물어가는 봉건왕조의 도덕을 배우며 성장했고, 야만적인 식민 착취를 외면한 채 풍요와 번영을 예찬하는 제국의 윤리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옥죄는 오래된 인습과 날선 이념에 쉽게 몸을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외로웠을지도 모릅니다. 때로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 어느 곳에서도 머물지 않은 채 표표히 역사가 만들어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예언서는 버려두고 나침반도 팽개친 채 오직 자신이 지닌 몸의 감각을 믿고 이성의 지혜를 활용하며 가야할 길을 찾았습니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만들지 않았으니 지름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염상섭이 걸었던 풍경들은 이제 우리들에게 낯설기만 합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우리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멀리, 그리고 빠르게 떠나왔습니다. 그동안 저자거리에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책상 앞에서 씌어지고 인쇄되어 팔리는 소설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새로운 제도 아래 편입되어 독자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정신을 이끌던 낯선 풍경을 잠시 펼쳐보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잊혀진 지층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의 말들을 지금 다시 읽는 일들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활자로 새겨놓은 말들은 오롯하게 하나의 줄기를 만들기보다 여러 개로 나뉘어 갖가지 의미를 만들어 내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점차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 번 읽고 네 번 읽을수록 더욱 불투명해진다는 뜻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읽은 염상섭은 언제나 어눌한 척 중언부언하며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만들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명료한 형태로 다시 그려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작가 염상섭보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용된 방식이 그러할 뿐입니다. 그러니 염상섭이 뿌옇게 그려낸 세계를 항상 투명한 것처럼 만들어내는 왜곡을 범하고 있다는 당혹감을 지금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 책은 한 해 동안 염상섭 소설을 읽었던 기록입니다. 염상섭 소설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코비드19라는 낯선 이름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백 년 전에도 사람들이 팬데믹을 겪었고, 공포와 무기력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왔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듯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뒤늦게 뒤적거리면서 우리는 의미라는 것이 언제나 사후적이라는 해묵은 진리를 다시 배웁니다. 그리고 소설은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저자

김종욱

서울대학교및동대학원을졸업했고,현재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주요논저로「한국소설의시간과공간」,「한국현대소설의서사형식과미학」,「한국현대문학과경계의상상력」,평론집「소설그기억의풍경」,「텍스트의매혹」,편저「한국신소설선집」,「심훈전집」등이있다.대한제국기신소설과염상섭,이기영등한국리얼리즘작가들에대한탐구를이어가고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언어의제국으로부터의귀환-「해방의아들」/김종욱
1.들어가는말
2.언어의제국,제국의언어
3.가해의망각과피해의기억
4.맺는말

외면된내면으로서의자기원망과부끄러움-「만세전」,「삼팔선」,「이사」/김경은
1.들어가는말
2.제역할을못한부끄러움-「삼팔선」과「이사」그리고「만세전」
3.맺는말:보충되어야할염상섭의내면을위하여

해방기민주주의들의풍경-「효풍」/유예현
1.들어가는말-염상섭과민주주의
2.공론장이부재한거리,사랑방에유폐된민주주의의꿈
3.구락부‘들’에대한탐색과그실패
4.‘조선학’구상과그의미
5.맺는말

‘소년’의발견과전시되는‘국민-되기’의서사-「채석장의소년」/김희경
1.들어가며
2.단정수립‘직후’의시간불러오기
3.배제/포섭의감각과‘국민-되기’의욕망
4.두개의서사시간과균열에서목격되는소년의‘강박’
5.리얼리스트와알레고리,변형태로서의「채석장의소년」

통속서사와냉전시대의정치성-「난류」/천춘화
1.머리말
2.‘연애-결혼’이라는통속서사의이면
3.정략결혼의알레고리와정치성의변형
4.냉전시대‘젊은세대’의윤리와「난류」
5.맺음말

냉전의회색지대-1950년대염상섭소설에나타난한국전쟁/나보령
1.들어가며
2.염상섭의해군체험과문학
3.친밀한‘적’과작은전쟁들
4.‘얼럭진일상’이라는은유
5.결론을대신하여

해방후염상섭소설의‘서울’이라는지리적구상-「난류」와「취우」/유건수
1.들어가며
2.해방후수입무역의변화와‘난류’의이중적의미
3.닫혀있지만동시에열려있는‘서울’
4.「난류」의‘서울’과「새울림」·「지평선」의‘부산’
5.나가며
한국전쟁기의(재)구성-「홍염」과「사선」/유서현
1.들어가며
2.열전의적에가려진냉전의책임자들
3.1948,1950,1952의중첩과중간파의행로
4.정치의식과연애서사의중첩과그너머
5.나가며

전후의일상과집-「미망인」/장두영
1.서론
2.피난의연장으로서의서울환도와집구하기의서사
3.집을가진자와못가진자
4.선의의도움과새시대의소망
5.결론

1950년대염상섭장편소설에나타난여성과정치-「대를물려서」/윤국희
1.서론
2.가부장‘들’과대를잇지못하는아들
3.대를물려줄수있는‘처/모’의서사
4.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