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지진과쓰나미,태풍과홍수등의자연재해는말할것도없고,1945년8월의원자폭탄투하사건이나2011년의후쿠시마원전사고에이르는사회재난에이르기까지재난이빈발한국가라할수있다.근대이후발생한워낙거대한사회재난때문이어서인지그동안전근대사회에서발생한재난은자연재해에만이목이쏠리기마련이었다.그러나이책이주목하고있는근세도쿠가와일본의시기는‘화재와싸움은에도의꽃’이라고이야기될만큼자연재해못지않게화재와같은사회재난이빈번하게발생한시대였다.근세도쿠가와막부,에도시대에주목하는이유가바로이것이다.
저자인구라치가쓰나오교수는일본근세사를전공하였다.이근세를구라치교수는통일의기운이나타나는오다노부나가·도요토미히데요시정권시기부터도쿠가와막부가막을내리게되는막부말까지를네시기로나누어시기별특징을제시하고있다.또한홋카이도에서부터오키나와까지전일본열도의사례를들어,에도시대에발생한각종자연재해와사회재난,그에대한개인,촌,번,막부(국가)의대응을서술하고있다.‘경험에서배운다’를부제로하고있는만큼재난한가운데를통과한도쿠가와막부,에도시대사람들의경험에서많은것을배우려는의도에서저술된책이라할수있다.그렇다고역사의경험을무작정검토하고,그로부터유추해야한다고주장하지는않는다.어디까지나철저하고적확하게현재상황에대해분석하고나서역사로부터배워야한다고명시하고있다.당연하면서도매우중요한지적이다.‘경험주의의함정’으로발생한잘못된사례에대해서도본문에서충분히제시하고있다.
이책은도쿠가와일본에서발생한각종재난의서술에그치지않고,도쿠가와일본인들에게빈발하는재난을극복할‘체력’이있었는지를분석하고,재난을극복해오면서만들어낸‘생존’시스템이무엇이었는지밝히고있다.그리고살아남은‘생명’들이경험한바를후세에게전하기위해어떠한노력을했는지에초점을맞춰서술하고있다.이를위해당시의일기나촌일대기등의사료는물론문학작품,각종공양탑과같은고고학적성과까지도검토하고있다.
저자는일본근세사전공자로,전문연구서는물론일반인을대상으로하는교양도서,또재직했던오카야마대학의소재지인오카야마현을중심으로하는지역의역사에관한도서까지폭넓은분야에서저술활동을한연구자이다.
원저의제목인『江戶の災害史?德川日本の經驗に學ぶ』를직역하면『에도의재해사-도쿠가와일본의경험에서배운다』가된다.‘에도’란일본의수도인도쿄의옛이름으로도시‘에도’를가리키는동시에도쿠가와막부가존재했던에도시대를의미하는용어이다.그런데일본사에대한지식이전혀없다면‘에도’가무엇을의미하는지,시기인지,장소인지알기어려운제목이되고만다.이에한글판책의제목을『근세도쿠가와일본의재해사-에도시대의경험에서배운다』로삼았다.책의제목을번역하면서부터옮긴이의고민은깊어졌다.일본이나일본사에관심이있는독자나읽을때해석할필요가없는역사용어나지명등에대한설명이필요했기때문이다.
원저에서는구라치교수를근세사·민중사·문화사전공이라고소개하고있지만,그가저술한『日本の歷史11 德川社會のゆらぎ』나『生きることの歷史學』만살펴보더라도재해사를전문분야로소개해도과언이아닐만큼재해에관한연구도진척시켜왔음을알수있다.구라치교수가재해에대해고민을시작하게된계기는1995년한신·아와지대지진이었다고한다.TV를통해실시간으로전달되는현지상황에큰충격을받은그는,18세기도쿠가와일본을중심으로사회와재해의관계에대해고찰하고자결심하고『日本の歷史11 德川社會のゆらぎ』(2008)을간행했다.그런데책이출판되고2년정도지난2011년3월11일,그는더욱충격적인사건을접하게된다.규모M9.0의동일본대지진이었다.이동일본대지진을계기로저자는재해와사회의관계에대해다시고민하게되었고,연구시기를넓혀근세도쿠가와일본이존재한에도시대전체를분석하여그결과물로2016년에이책을간행하게되었다고밝히고있다.실로현실문제에깨어있는자세로임하는학자의모습을몸소보여주는연구자라할수있다.
이책의특징가운데하나는당시‘일기’나‘일대기’와같은기록물만이아닌각종교카나소설과같은문학작품을함께분석하고있으며,[칼럼]을통해재해의기억과기록에대한화제를제공하고있는점이라할수있다.이는이시대의민중사·문화사분야에대해서도깊이연구해온구라치교수이기에가능한서술이라하겠다.또공양탑과같은유물도검토하고있는데,책에서인용된여러공양탑사진가운데에는저자가직접답사하여촬영한사진이포함되어있어눈길을끈다.연구의폭이넓을뿐아니라현장에직접가서보고활동하는열정적인연구자임을직접적으로느낄수있다.여러측면에서후학들의귀감이되는연구자라할수있을것이다.
이책에서분석하고있는근세도쿠가와막부시기는‘도쿠가와의평화’라고표현할만큼전쟁이나큰전투는발생하지않았다.그러나각종재해는끊임없었다.종래에계속해서발생해왔던자연재해는물론,경지확대와도시화의진전이라는인간의생산활동으로인해자연재해와인재의경계가불분명한재해도적지않게일어났다.이런도쿠가와일본의시기를저자는“재해가사회에특별한의미를준단계”라고지적하고,“도쿠가와일본의재해상황이나그에대한국가·사회와인간의대응을시간의흐름에따라”검토하고있다.
특히도쿠가와일본의지배구조가재해의대응에미친영향에대해예리하게분석하고있다.도쿠가와일본인들은‘이에’·촌이나정·지역결합체·영주·막부의지배라는중층적인지배아래긴밀하게연결되어있었다.그러면서도당시국가법이라할수있는막부법의테두리를벗어나지않는범위에서운영의자주성을보장받고있었기에,중앙집권적인막부의지배아래에서도분산성(지역성)역시강한사회였다.그러나시간이흐를수록‘공공’의공간은확대되어가고,재해의규모도한개인이나하나의촌,정단위로는독자적으로해결할수없을만큼커졌다.한편,거듭된재해로반복되어시행된부흥정책으로힘을잃어가는막부와번권력과달리,민중은잇키나우치코와시등의실력행사를하거나,지역의리더들이부흥에앞장서기도했으며,촌의조합과같은지역사회단위로대응하는적극적인양상이확대되었음을지적하고있다.
재해에대응하면만들어낸‘생존’시스템,또재해로인한피해와교훈은‘일대기’,‘가와라반’등의기록이나탑건립과같은기억의전승과정을통해오늘날까지전해지게되었다.이책에서는‘오카게마이리’나‘에에자나이카’를비롯한각종풍속과‘가와라반’이나교카,문학작품등을제시하며민중이재해의고통을해학과익살로극복하려고하는적극적인의지를소개하고있다.옮긴이의미숙함으로교카나‘가와라반’등의해석이쉽지는않았으나,정치시스템에대한설명속에서당시도쿠가와일본인들의풍자나익살스러운면모를느낄수있어조금더생동감있게당시사회상을엿볼수있었던것은아닌가싶다.
그리고마지막으로들수있는특징으로는구체적인사례를많이소개하고있다는점이다.이책에소개된사례는수도였던에도에국한되지않는다.동일본대지진으로인해한국인에게도널리알려진센다이,한국과가까운규슈의구마모토,저자의활동지역인오카야마에대한서술이중심이긴하지만,비교적으로홋카이도부터오키나와에이르는전일본열도를균형감있게소개하고있다.이는바꾸어생각해보면전일본열도에서각종재해가일어났었음을알수있다.
그렇다면가까운거리에있는우리나라는과연재해에안전한가.한반도역시더이상지진의안전지대가아니고,백두산이분화할가능성도적지않다.태풍과한파,폭설도적지않으며,우리지역만하더라도2023년한해는역대급가뭄과장마를함께경험했다.이상기후는갈수록심해지고있는데,이러한자연재해만있었는가.전세계를한동안모두정지시켰던코로나19와같은감염병의유행,건조한봄이되면발생하는대형산불,그외에도각종인재가끊이지않고발생한다.그렇다면우리는우리나름의‘생존’시스템을마련하고있는가를묻지않을수없다.한국의역사적경험에대해우리는얼마나알고있는가.그방법론을확인하기위해서라도지금근세도쿠가와일본의재해양상과그에대한대응이라는역사적경험을되돌아볼필요가있다고생각한다.그래서책이재해가빈발하는시대에우리한국이과연재해를극복할체력이충분한지다시금돌아보는계기를제공하는역할을할수있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