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본래 2010년 11월 ‘신초샤[新潮社]’의 단행본으로 간행된 책이다. 저자의 후기에도 적혀있듯이 2010년은 전후 일본의 한자사에 있어 특별한 해이다. 1946년 한자제한을 목적으로 「당용한자표」(1,850자)를 제정한 이래, 1981년 한자 사용의 기준으로서 「상용한자표」(1,945자) 시대를 거쳐 29년만인 2010년에 2,136자로 자수를 늘려 「개정 상용한자표」를 공시했기 때문이다. 한자소위원회 위원으로서 개정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저자가 일본 한자표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고 개정 작업에서의 경험과 일화를 책으로 남겨 독자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옮긴 책의 저본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지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간행된 문고판이다. 일본에서 흔히 문고판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단행본으로 인기를 끈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재출판하는 경우이다. 각 대형 출판사는 저마다 독자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문고판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지쿠마 학예문고[ちくま学芸文庫]’의 이름으로 문고판으로 재출판된 것 자체가 이 책의 인기와 가치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문고판의 띠지에는 ‘수난과 모색의 역사-이는 GHQ의 한자폐지안에서 시작됐다[受難と模索の歴史― ―それはGHQの漢字廃止案から始まった]’라고 적혀 있다. “대소문자 다 합쳐도 최대 수 십자인 표음문자로 언어를 표기하는 서양인의 눈에는 복잡한 형태의, 최소 2천 자 정도는 사용해야 하는 한자 표기법이 마치 악마가 만든 표기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본문 30쪽)
종전 직후 GHQ나 미국교육사절단의 지시로 제정된 「당용한자표」는 한자 사용을 제한하는 목적이었다. 각각 46자로 이루어진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만 보더라도, 알파벳 26자와 비교할 때 결코 적지않은 숫자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일본어의 필수 구성요소인 한자가 추가된다. 당시 GHQ나 미국교육사절단의 눈에 한자는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문자였으며, 자수를 제한하고 종국에는 폐지해야 할 문자였다. 전후 한자표의 제정 과정과 한자를 둘러싼 논쟁, 한자 간략화 문제를 성급하게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의 오류를 저자는 세밀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지만, 책에서 상술된 전후 한자를 폐지하거나 대폭 간소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통하여 ‘만약’ 일본에서 한자가 폐지되었다면 지금의 일본어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이러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유를 제공해 준다. 종종 예시로 거론되는 ‘ス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ニモイロイロアル[스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니모이로이로아루]’를 보자. 가나만으로는 각 단어나 문구 사이에 구별이 없어져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띄어쓰기나 쉼표 등을 추가하면 ‘スモモ モ モモ、モモ モ モモ、モモ ニモ イロイロ アル’가 되는데, 이제야 ‘자두도 복숭아, 복숭아도 복숭아, 복숭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뜻이구나 싶어진다. 이처럼 한자가 없다면 단어나 문구를 구분하기 위한 띄어쓰기 등 추가적인 수단이 궁리되어야 한다. 한자를 전폐하고 가나 문자를 전용하자고 주장한 ‘가나문자회[カナモジカイ]’가 말의 맺고 끊김을 위해 제시한 방안 중 하나가 띄어쓰기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띄어쓰기나 쉼표는 한자 폐지로 인한 의미 혼동을 일부 해결해 줄 뿐, 한자가 가지는 의미 구분 능력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한다. 한자에는 수많은 동음이의어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주 예시로 거론되는, ‘貴社の記者が汽車で帰社した[귀사의 기자가 기차로 귀사했다]’라는 문장을 보자. 한자 없이 가나 문자로 적는다면 ‘きしゃのきしゃがきしゃできしゃした[기샤노기샤와기샤데기샤시타]’이고 띄어 쓴다고 하더라도 4번이나 반복되는 ‘きしゃ[기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런 동음이의어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더라도 가나만으로는 한자가 가지는 의미 구분을 하지 못한다. 한자는 주로 단어의 의미를 담당하고 가나는 활용 어미나 조사, 조동사 등을 표기하는데 사용되는 식으로, 현대 일본어는 한자와 가나를 혼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의미가 명확해진다. 만약 이러한 한자가나 혼용이라는 전제가 사라지고 위의 예시처럼 모든 문장이 가나만으로 표기된다면 의미 파악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하물며 로마자로의 전기는 상상조차 어렵다). 한자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은 차치하고, 단순히 국어학적으로만 보더라도 한자는 말의 맺고 끊김을 나타내고 말을 구별하는 등 한자가 없는 만약의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어에서의 한자의 역할은 크다.
전후 GHQ에 의한 일본어 정책은 ‘성급하고 단락적’이었지만 점차 일본어에서의 한자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당용한자표」 제정 후 30여 년이 지난 1981년, 제한 정책이 아닌 1981년 한자 사용의 기준으로서의 「상용한자표」가 제정되었다. “당용한자표의 ‘제한’에서 ‘기준’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사회 내 한자 사용은 상당히 자유로워졌다”(본문 185쪽)
한자 사용의 기준으로서의 「상용한자표」 제정은 한자사용을 전제로 하여 그 사용 범위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0년 개정 때에는 「상용한자표」에서 사용빈도가 적은 5자를 삭제하고 196자를 추가하였으며, 28자에 29개의 음과 훈을 추가했다. 1980년대 이후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문자를 쓰기에서 선택하는 시대적 변화에 의하여, 일반 국민이 상용한자표 이외의 한자를 다용하게 되어 자수를 늘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한자를 둘러싼 논쟁은 사회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계속 진화해 왔다. 저자의 설명을 좇아가다 보면 한자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변화가 엿보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전후 반세기 동안 일본어에서의 한자 위상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적응을 수난과 모색이라는 키워드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고판의 띠지에는 ‘수난과 모색의 역사-이는 GHQ의 한자폐지안에서 시작됐다[受難と模索の歴史― ―それはGHQの漢字廃止案から始まった]’라고 적혀 있다. “대소문자 다 합쳐도 최대 수 십자인 표음문자로 언어를 표기하는 서양인의 눈에는 복잡한 형태의, 최소 2천 자 정도는 사용해야 하는 한자 표기법이 마치 악마가 만든 표기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본문 30쪽)
종전 직후 GHQ나 미국교육사절단의 지시로 제정된 「당용한자표」는 한자 사용을 제한하는 목적이었다. 각각 46자로 이루어진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만 보더라도, 알파벳 26자와 비교할 때 결코 적지않은 숫자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일본어의 필수 구성요소인 한자가 추가된다. 당시 GHQ나 미국교육사절단의 눈에 한자는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문자였으며, 자수를 제한하고 종국에는 폐지해야 할 문자였다. 전후 한자표의 제정 과정과 한자를 둘러싼 논쟁, 한자 간략화 문제를 성급하게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의 오류를 저자는 세밀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지만, 책에서 상술된 전후 한자를 폐지하거나 대폭 간소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통하여 ‘만약’ 일본에서 한자가 폐지되었다면 지금의 일본어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이러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유를 제공해 준다. 종종 예시로 거론되는 ‘ス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モニモイロイロアル[스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모니모이로이로아루]’를 보자. 가나만으로는 각 단어나 문구 사이에 구별이 없어져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띄어쓰기나 쉼표 등을 추가하면 ‘スモモ モ モモ、モモ モ モモ、モモ ニモ イロイロ アル’가 되는데, 이제야 ‘자두도 복숭아, 복숭아도 복숭아, 복숭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뜻이구나 싶어진다. 이처럼 한자가 없다면 단어나 문구를 구분하기 위한 띄어쓰기 등 추가적인 수단이 궁리되어야 한다. 한자를 전폐하고 가나 문자를 전용하자고 주장한 ‘가나문자회[カナモジカイ]’가 말의 맺고 끊김을 위해 제시한 방안 중 하나가 띄어쓰기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띄어쓰기나 쉼표는 한자 폐지로 인한 의미 혼동을 일부 해결해 줄 뿐, 한자가 가지는 의미 구분 능력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한다. 한자에는 수많은 동음이의어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주 예시로 거론되는, ‘貴社の記者が汽車で帰社した[귀사의 기자가 기차로 귀사했다]’라는 문장을 보자. 한자 없이 가나 문자로 적는다면 ‘きしゃのきしゃがきしゃできしゃした[기샤노기샤와기샤데기샤시타]’이고 띄어 쓴다고 하더라도 4번이나 반복되는 ‘きしゃ[기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런 동음이의어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더라도 가나만으로는 한자가 가지는 의미 구분을 하지 못한다. 한자는 주로 단어의 의미를 담당하고 가나는 활용 어미나 조사, 조동사 등을 표기하는데 사용되는 식으로, 현대 일본어는 한자와 가나를 혼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의미가 명확해진다. 만약 이러한 한자가나 혼용이라는 전제가 사라지고 위의 예시처럼 모든 문장이 가나만으로 표기된다면 의미 파악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하물며 로마자로의 전기는 상상조차 어렵다). 한자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은 차치하고, 단순히 국어학적으로만 보더라도 한자는 말의 맺고 끊김을 나타내고 말을 구별하는 등 한자가 없는 만약의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어에서의 한자의 역할은 크다.
전후 GHQ에 의한 일본어 정책은 ‘성급하고 단락적’이었지만 점차 일본어에서의 한자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당용한자표」 제정 후 30여 년이 지난 1981년, 제한 정책이 아닌 1981년 한자 사용의 기준으로서의 「상용한자표」가 제정되었다. “당용한자표의 ‘제한’에서 ‘기준’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사회 내 한자 사용은 상당히 자유로워졌다”(본문 185쪽)
한자 사용의 기준으로서의 「상용한자표」 제정은 한자사용을 전제로 하여 그 사용 범위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0년 개정 때에는 「상용한자표」에서 사용빈도가 적은 5자를 삭제하고 196자를 추가하였으며, 28자에 29개의 음과 훈을 추가했다. 1980년대 이후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문자를 쓰기에서 선택하는 시대적 변화에 의하여, 일반 국민이 상용한자표 이외의 한자를 다용하게 되어 자수를 늘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의 한자를 둘러싼 논쟁은 사회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계속 진화해 왔다. 저자의 설명을 좇아가다 보면 한자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변화가 엿보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전후 반세기 동안 일본어에서의 한자 위상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적응을 수난과 모색이라는 키워드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후일본한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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