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대학이나 대학 교육을 규정하는 말들은 발생사적으로 서양 중세대학 이래의 빛(Lux)과 진리(Veritas)의 언어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대학과 진리’, ‘대학과 교양’, ‘대학의 자유’ 등과 같은 말을 대표로 들 수 있다. 그런데 본서의 타이틀은 윤동주를 주인공으로 하되, 그의 앎과 삶의 세계를 드러내는 어법으로 대학과 형무소를 내세웠다. 윤동주의 대학과 형무소. 어떤 경우의 수를 놓고 보더라도 이런 낯설고 생경한 단어의 조합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인 윤동주의 27년 1개월 18일의 너무나도 짧은 삶, 그 불행과 비극을 형용하기에는 나름의 적절성을 띠는 제목이 될 수 있다. 제목을 ????윤동주의 대학과 형무소????라고 했지만, 그 제목에 축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의 글쓰기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윤동주의 대학 생활이나 형무소 생활, 그 자체를 조명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윤동주의 시심과 그의 젊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다닌 대학이, 그리고 그가 갇힌 형무소가 어떤 비극과 파멸로 이어졌는가에 대해 거론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 문제 상황을 풀이하는 데 집중하고자 하였다.
평온한 삶과 그 일상이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윤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릿쿄대학-도시샤대학으로 이어지는 대학은 하늘의 별과 같은 꿈과 희망, 그리고 이를 이루어가는 학문적 성장과 경험의 재구성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윤동주가 시를 통해 드러낸 그의 내면을 보면, 그에게도 별과 같은 꿈이 있었을 것이고 그 꿈은 응당 자신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민족, 국가, 독립, 자주의 문제에 대한 공부와 성찰의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학 생활은 항상 전쟁 상태[칼] 내지는 그 복류화 과정[국화]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일본인 기형론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윤동주에게 대학 생활은 민족의식의 유발자로 내몰리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당시 일본의 형무소는 여러 정황 근거를 통해 볼 때 생체실험의 희생자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가 어느 정도의 강성을 지닌 민족주의자였는가에 대한 질문과는 상관없이 당시 사상탄압 전문 특별고등경찰의 시선은 이미 윤동주를 불온인물, 불령선인, 독립운동 혐의자, 치안유지법 위반자로 규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윤동주의 편이 아니었고, 그의 심중・내면은 삶의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상태일 수가 없었다. 윤동주의 27년 1개월 18일의 짧은 삶, 그 비극에 이르는 배경과 계열에 그가 다닌 여러 대학이 있었고 그가 갇힌 형무소가 있었다.
윤동주의 본적지는 조선 함경북도 청진, 출생지는 만주국 간도성, 이를 두고 사람들은 윤동주의 정체성을 쉽사리 주변인-경계인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윤동주는 함경북도 청진을 본적지로 두었고 북간도 이주민 4세의 삶을 살았다. 이것만 가지고 볼 때 윤동주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런 윤동주에 대해 주변인-경계인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법하다. 하지만 이 역시 단정적인 말투로 언급하거나 상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윤동주의 정체성, 그의 진정한 앎과 삶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우리말 글쓰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에 대해 세계-내-존재의 본연성, 언어-내-존재의 밀착성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논의의 깊이를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청년・학도 윤동주, 그는 식민권력에 의한 언어적 유폐・금고 상태에서도, 줄곧 우리말 글쓰기를 시도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민족의식 유발자로 단죄되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윤동주의 앎과 삶, 그 굴곡에 대한 마음 아프고 가슴 시린 얘기는 한국근현대사 및 민족수난사에 대한 탐구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일상에 대한 얘기가 되었건 학술 연구 주제가 되었건, 우리가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삶의 주체성에 관한 일인 것이고, 이는 민족의식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응당 자아의식, 주체성, 정체성 문제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요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와 산문을 본문에 인용할 경우에는 윤동주의 글을 현행 표기법으로 바꾸지 않고 원래대로 실었다. 이는 말과 글과 이름의 절멸 시대를 견뎌냈던 윤동주의 숨결을 그대로 확인하려는 마음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가 독서공부에 불편을 끼칠까 저어되는 점은 있지만,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를 정밀히 그려내려는 충정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면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평온한 삶과 그 일상이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윤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릿쿄대학-도시샤대학으로 이어지는 대학은 하늘의 별과 같은 꿈과 희망, 그리고 이를 이루어가는 학문적 성장과 경험의 재구성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윤동주가 시를 통해 드러낸 그의 내면을 보면, 그에게도 별과 같은 꿈이 있었을 것이고 그 꿈은 응당 자신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민족, 국가, 독립, 자주의 문제에 대한 공부와 성찰의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학 생활은 항상 전쟁 상태[칼] 내지는 그 복류화 과정[국화]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일본인 기형론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윤동주에게 대학 생활은 민족의식의 유발자로 내몰리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당시 일본의 형무소는 여러 정황 근거를 통해 볼 때 생체실험의 희생자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가 어느 정도의 강성을 지닌 민족주의자였는가에 대한 질문과는 상관없이 당시 사상탄압 전문 특별고등경찰의 시선은 이미 윤동주를 불온인물, 불령선인, 독립운동 혐의자, 치안유지법 위반자로 규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윤동주의 편이 아니었고, 그의 심중・내면은 삶의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상태일 수가 없었다. 윤동주의 27년 1개월 18일의 짧은 삶, 그 비극에 이르는 배경과 계열에 그가 다닌 여러 대학이 있었고 그가 갇힌 형무소가 있었다.
윤동주의 본적지는 조선 함경북도 청진, 출생지는 만주국 간도성, 이를 두고 사람들은 윤동주의 정체성을 쉽사리 주변인-경계인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윤동주는 함경북도 청진을 본적지로 두었고 북간도 이주민 4세의 삶을 살았다. 이것만 가지고 볼 때 윤동주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런 윤동주에 대해 주변인-경계인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법하다. 하지만 이 역시 단정적인 말투로 언급하거나 상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윤동주의 정체성, 그의 진정한 앎과 삶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우리말 글쓰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에 대해 세계-내-존재의 본연성, 언어-내-존재의 밀착성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논의의 깊이를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청년・학도 윤동주, 그는 식민권력에 의한 언어적 유폐・금고 상태에서도, 줄곧 우리말 글쓰기를 시도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민족의식 유발자로 단죄되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윤동주의 앎과 삶, 그 굴곡에 대한 마음 아프고 가슴 시린 얘기는 한국근현대사 및 민족수난사에 대한 탐구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일상에 대한 얘기가 되었건 학술 연구 주제가 되었건, 우리가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삶의 주체성에 관한 일인 것이고, 이는 민족의식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응당 자아의식, 주체성, 정체성 문제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요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와 산문을 본문에 인용할 경우에는 윤동주의 글을 현행 표기법으로 바꾸지 않고 원래대로 실었다. 이는 말과 글과 이름의 절멸 시대를 견뎌냈던 윤동주의 숨결을 그대로 확인하려는 마음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가 독서공부에 불편을 끼칠까 저어되는 점은 있지만, 윤동주의 앎과 삶의 세계를 정밀히 그려내려는 충정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면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윤동주의 대학과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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