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정원 속 괴물 The Monster in the Garden은 경관디자인에 관한 연구서이며, 구체적으로는 16세기 르네상스의 경관디자인(Landscape Design)과 그곳에서 발현한 그로테스크 또는 괴물스러운 것들에 관한 연구서이다. 〈서문〉과 〈결론〉에서 저자는 이를 전기-숭고의 발현으로 보고자 하는 비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이 연구는 복합적인 문제의식의 축을 갖고 출발하였으며, 전술한 내용은 현대 경관디자인(또는 경관건축)의 연구 방향성의 재설정 문제에 또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제1장〉을 중심으로 한 전반부는 특히, 독립 분과로서의 미래를 앞둔 현대의 경관디자인의 새로운 이론적 연구방향과 질문의 재설정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제2장〉 이후의 논의는 서구 고대 전통의 이상화된 로쿠스 아모에누스(즐거운 장소) 개념과 대립하는 또는 모순을 빚는 역사적 정원, 즉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발전한 그로테스크한 경관디자인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집중한다.
모건의 연구는 오늘날 경관디자인 연구에 있어서의 전환적 관점을 드러낸다. 전환적 관점은 일차적으로 경관디자인 연구의 발전 과정에 관계된다. 이 연구 분야는 〈제1장〉에서 설명하듯이 1970년대에 경관디자인에 관한 독립적인 연구의 필요성과 가치에 주목한 소수의 미술사가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물론, 모건이 말하듯이 미술사의 하위 목차가 아닌, 독립된 학문 분과로서의 도약은 최근에 이르러 가능해졌다. 정원과 경관디자인(또는 경관 건축)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미대륙을 기준으로 할 때 2차 대전이 끝난 후 1970년 초에 시작되었고, 모건은 공식적인 출발점을 1971년 미국에 열린 ‘덤바톤 오크 콜로키움(Dumbarton Oaks Colloquium)’이라 소개한다. 즉 ‘70년대는 독립적인 연구 분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또한 지향성을 품은 채 그 예비적인 단계의 연구가 시작된 시기이다. 모건이 그 여정을 짧게 스케치하듯이, 정원과 경관디자인 연구라는 새로운 학술 분야의 마련에 앞장선 학자들의 학문적 기초는 미술사였다.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미술과 고고학(Art and Archaeology)과에 교수로 있었던 데이비드 코핀(David Coffin)과 그의 제자들이 선도하며, 미술사의 한 분과처럼 이 분야의 연구가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연구자들로 시작한 이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 이제 전문적 연구분과로의 독립의 길을 마주하고 있다. 모건의 연구는 이러한 학문적 동향에 위치해 있다.
연구 분과의 독립성이 높아진 현 시점에서 경관디자인학의 관심은 연구 방식의 전환이다. 그것의 주요 일환은 1970년대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이론적 발전을 분과 내로 수용하는 일이다. 루크 모건의 학문적 위치는 수정주의이다. 그는 비판적 관점에서 연구방식의 재배치를 요청하며, 기존의 미술사적인 방법론의 한계와 동시대 이론들의 유입이 늦어진 것에 대해 지적한다. 특히 〈제1장〉에서 루이 마랭, 피에르 브르디외, 앙리 르페브르, 미셸 드 세르토,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학자들을 포함해 다수의 학자군의 이론들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본 저서에서 그 스스로는 근대 초 이탈리아 경관디자인을 연구하며 문학, 의학, 법률, 과학적 저술들을 포함한 다학제간 연구 소스를 활용하는 한편, 20세기 후반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과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접근법의 가능성의 탐구한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재배치는 역지 질문의 재배치이며, 이는 〈제2장〉 이후의 논의를 배후에서 견인한다. 설명해보자. 16세기, 고대 전통의 부활을 꿈꾸는 리나시타(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정원은 미적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그것은 인습적인 이성적 기하학정원으로, 후자는 또다시 서구의 정원의 근간으로 대변되어 왔으나, 모건은 이러한 믿음과 해석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는 16세기 르네상스의 정원이 거친 황무지, 자연의 야생성을 정원의 담벼락 내부로 통합하려는 경향을 드러내는 한편, 모건에 의하면, 르네상스 정원의 도상학적인 주요 원천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었다. 사크로 보스코와 같은 일부 경관디자인은, 이를 보여주듯이, 정원을 문자 그대로 괴물스럽고, 그로테스크하며, 고통과 폭력적인 장소로 번역하였다. 실제로 다수의 정원은 인조 동굴, 위협적인 (의인화된) 산악의 경관, 거상들, 온갖 하이브리드 형상의 괴물들, 과잉과 결핍(폐허, 파편화된 대상) 등의 요소들, 그로테스크를 대변하는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리나시타의 ‘부활’이 이상적이고 합리성에 기초한 고대 전통의 부활이고, 이를 반영한 정원의 구성이 무한한 낙원의 반영이자 이상적인 피난처 및 즐거움의 장소, 즉 로쿠스 아모에누스를 재현한 것이라면, 또한 그것의 경험이 가능한 곳이라면, 왜 일부 (그것도 16세기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에 조성된) 역사적 르네상스 정원에선 이와는 대립된 이미지가 나타나는 걸까? 또한 그로테스크의 요소들이 편재한 것일까? 질문과 관련해 모건은 〈제5장〉에서, 그간 연구되지 않았던, 사크로 보스코의 모조된 에트루리아의 유적과 살아있는 바위에 대한 특이한 활용의 측면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서, 그로테스크의 측면을 보다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정원에 나타난 괴물과 그로테스크는 우연히 또는 부수적으로 당대의 주류문화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가 전유한 사회-문화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이미지이다. 따라서 질문이 환기하는 불일치 또는 모순은 16세기 경관디자인의 일부 유산에 대한 근대인의 학문적 편견과 이데올로적인 왜곡을 지시하며, 질문에 대한 모건의 모색은 〈제2장〉 이후의 전 〈장〉에 걸쳐 점진적으로 제시된다.
앞의 재배치와 연계해 모건의 연구는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의 재배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이는 사실 필연적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든 정원에는 장소를 경험하는 관람자가 존재한다고 합리적으로 주장할 때, 정원을 방문한 16세기의 가상의 관람자는 정원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한 거들, 괴물스러운 것들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는 경관 연구가 중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으로서, 후기 구조주의에서 부상한 전환적 사고와 담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즉, 그의 질문은 연구의 관심 축을 저자, 제작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놓고 있다. 그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7/68)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르트는 비평의 장을 전통의 저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궁극적인 소위 단일한 해석에서 다종의 해석이 가능한 장으로 옮겨 놓았다.
모건 또한 동시대의 방문자들을 정원의 구체적인 한 구성 요소로 전제한다. 그들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정원이란 구성체를 감각적으로 수신하고, 느끼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적극적인 방문자이다. 이러한 수용자 중심의 연구를 위해 그는 마이클 박산달(Michael Baxandall)의 “시대적 눈”의 학술적 노선을 따른다. 신미술사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박산달은 르네상스 미술을 새롭게 연구하며 (15세기 이탈리아의 회화와 경험 Painting and Experience in Fifteenth-century Italy, 1972), 작품이 창작되고, 관객에 보여지고 또 이해되는 문화적인 조건을 밝히고자 하였다. 전통적인 미술사학이 예술 작품의 내부 요소들, 작가, 연대, 출처 판별에서부터 형식주의와 도상해상학 등에 몰두해왔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그는 예술 작품이 그 범위 밖의 사회·문화적인 경험과 실천적 행위 및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전자를 미술사에 포함시켰다. 그의 방법론은 동시대에 반복적으로 유통되면서 문화와 개인의 인식 형성에 관여하는 사회적 관행들, 시대적인 경험과 실천적 행위들이 자기 나름으로 축적되고 편집되어 형성된 관람자의 눈을 통해 대상을 바라봄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시각적 인류학(visual anthropology)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건은 경관디자인에 대한 동시대의 사회적 경험과 반응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에 대한 연구는 경관디자인 역사에 대해 보다 단단한 이해를 마련해준다고 생각한다.
각 장의 구성 및 논의 대상에 관한 해설은 〈서문〉에서 모건이 직접 제공하기에 역자의 수고를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모건의 연구가 반가운 것은 그간 그로테스크의 연구가 말하자면 인간에 관련해 진행되어 온 것에 반해, 그것이 자연에서도 나타남을 제시함에 따라, 자연 또는 비인간에 관련해서도 연구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때 활용될 수 있는 개념은 아마도 무경계적이고, 규정할 수 없는, ‘테르차 나투라’ 즉 ‘제3의 자연’이 될 것이다.
한편, 이 연구는 복합적인 문제의식의 축을 갖고 출발하였으며, 전술한 내용은 현대 경관디자인(또는 경관건축)의 연구 방향성의 재설정 문제에 또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제1장〉을 중심으로 한 전반부는 특히, 독립 분과로서의 미래를 앞둔 현대의 경관디자인의 새로운 이론적 연구방향과 질문의 재설정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제2장〉 이후의 논의는 서구 고대 전통의 이상화된 로쿠스 아모에누스(즐거운 장소) 개념과 대립하는 또는 모순을 빚는 역사적 정원, 즉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발전한 그로테스크한 경관디자인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집중한다.
모건의 연구는 오늘날 경관디자인 연구에 있어서의 전환적 관점을 드러낸다. 전환적 관점은 일차적으로 경관디자인 연구의 발전 과정에 관계된다. 이 연구 분야는 〈제1장〉에서 설명하듯이 1970년대에 경관디자인에 관한 독립적인 연구의 필요성과 가치에 주목한 소수의 미술사가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물론, 모건이 말하듯이 미술사의 하위 목차가 아닌, 독립된 학문 분과로서의 도약은 최근에 이르러 가능해졌다. 정원과 경관디자인(또는 경관 건축)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미대륙을 기준으로 할 때 2차 대전이 끝난 후 1970년 초에 시작되었고, 모건은 공식적인 출발점을 1971년 미국에 열린 ‘덤바톤 오크 콜로키움(Dumbarton Oaks Colloquium)’이라 소개한다. 즉 ‘70년대는 독립적인 연구 분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또한 지향성을 품은 채 그 예비적인 단계의 연구가 시작된 시기이다. 모건이 그 여정을 짧게 스케치하듯이, 정원과 경관디자인 연구라는 새로운 학술 분야의 마련에 앞장선 학자들의 학문적 기초는 미술사였다.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미술과 고고학(Art and Archaeology)과에 교수로 있었던 데이비드 코핀(David Coffin)과 그의 제자들이 선도하며, 미술사의 한 분과처럼 이 분야의 연구가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소수의 연구자들로 시작한 이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 이제 전문적 연구분과로의 독립의 길을 마주하고 있다. 모건의 연구는 이러한 학문적 동향에 위치해 있다.
연구 분과의 독립성이 높아진 현 시점에서 경관디자인학의 관심은 연구 방식의 전환이다. 그것의 주요 일환은 1970년대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이론적 발전을 분과 내로 수용하는 일이다. 루크 모건의 학문적 위치는 수정주의이다. 그는 비판적 관점에서 연구방식의 재배치를 요청하며, 기존의 미술사적인 방법론의 한계와 동시대 이론들의 유입이 늦어진 것에 대해 지적한다. 특히 〈제1장〉에서 루이 마랭, 피에르 브르디외, 앙리 르페브르, 미셸 드 세르토,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학자들을 포함해 다수의 학자군의 이론들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본 저서에서 그 스스로는 근대 초 이탈리아 경관디자인을 연구하며 문학, 의학, 법률, 과학적 저술들을 포함한 다학제간 연구 소스를 활용하는 한편, 20세기 후반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과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접근법의 가능성의 탐구한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재배치는 역지 질문의 재배치이며, 이는 〈제2장〉 이후의 논의를 배후에서 견인한다. 설명해보자. 16세기, 고대 전통의 부활을 꿈꾸는 리나시타(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정원은 미적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그것은 인습적인 이성적 기하학정원으로, 후자는 또다시 서구의 정원의 근간으로 대변되어 왔으나, 모건은 이러한 믿음과 해석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는 16세기 르네상스의 정원이 거친 황무지, 자연의 야생성을 정원의 담벼락 내부로 통합하려는 경향을 드러내는 한편, 모건에 의하면, 르네상스 정원의 도상학적인 주요 원천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었다. 사크로 보스코와 같은 일부 경관디자인은, 이를 보여주듯이, 정원을 문자 그대로 괴물스럽고, 그로테스크하며, 고통과 폭력적인 장소로 번역하였다. 실제로 다수의 정원은 인조 동굴, 위협적인 (의인화된) 산악의 경관, 거상들, 온갖 하이브리드 형상의 괴물들, 과잉과 결핍(폐허, 파편화된 대상) 등의 요소들, 그로테스크를 대변하는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리나시타의 ‘부활’이 이상적이고 합리성에 기초한 고대 전통의 부활이고, 이를 반영한 정원의 구성이 무한한 낙원의 반영이자 이상적인 피난처 및 즐거움의 장소, 즉 로쿠스 아모에누스를 재현한 것이라면, 또한 그것의 경험이 가능한 곳이라면, 왜 일부 (그것도 16세기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에 조성된) 역사적 르네상스 정원에선 이와는 대립된 이미지가 나타나는 걸까? 또한 그로테스크의 요소들이 편재한 것일까? 질문과 관련해 모건은 〈제5장〉에서, 그간 연구되지 않았던, 사크로 보스코의 모조된 에트루리아의 유적과 살아있는 바위에 대한 특이한 활용의 측면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서, 그로테스크의 측면을 보다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정원에 나타난 괴물과 그로테스크는 우연히 또는 부수적으로 당대의 주류문화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가 전유한 사회-문화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이미지이다. 따라서 질문이 환기하는 불일치 또는 모순은 16세기 경관디자인의 일부 유산에 대한 근대인의 학문적 편견과 이데올로적인 왜곡을 지시하며, 질문에 대한 모건의 모색은 〈제2장〉 이후의 전 〈장〉에 걸쳐 점진적으로 제시된다.
앞의 재배치와 연계해 모건의 연구는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의 재배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이는 사실 필연적이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든 정원에는 장소를 경험하는 관람자가 존재한다고 합리적으로 주장할 때, 정원을 방문한 16세기의 가상의 관람자는 정원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한 거들, 괴물스러운 것들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는 경관 연구가 중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으로서, 후기 구조주의에서 부상한 전환적 사고와 담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즉, 그의 질문은 연구의 관심 축을 저자, 제작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놓고 있다. 그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7/68)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르트는 비평의 장을 전통의 저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궁극적인 소위 단일한 해석에서 다종의 해석이 가능한 장으로 옮겨 놓았다.
모건 또한 동시대의 방문자들을 정원의 구체적인 한 구성 요소로 전제한다. 그들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정원이란 구성체를 감각적으로 수신하고, 느끼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적극적인 방문자이다. 이러한 수용자 중심의 연구를 위해 그는 마이클 박산달(Michael Baxandall)의 “시대적 눈”의 학술적 노선을 따른다. 신미술사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박산달은 르네상스 미술을 새롭게 연구하며 (15세기 이탈리아의 회화와 경험 Painting and Experience in Fifteenth-century Italy, 1972), 작품이 창작되고, 관객에 보여지고 또 이해되는 문화적인 조건을 밝히고자 하였다. 전통적인 미술사학이 예술 작품의 내부 요소들, 작가, 연대, 출처 판별에서부터 형식주의와 도상해상학 등에 몰두해왔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그는 예술 작품이 그 범위 밖의 사회·문화적인 경험과 실천적 행위 및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전자를 미술사에 포함시켰다. 그의 방법론은 동시대에 반복적으로 유통되면서 문화와 개인의 인식 형성에 관여하는 사회적 관행들, 시대적인 경험과 실천적 행위들이 자기 나름으로 축적되고 편집되어 형성된 관람자의 눈을 통해 대상을 바라봄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 방식은 시각적 인류학(visual anthropology)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건은 경관디자인에 대한 동시대의 사회적 경험과 반응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에 대한 연구는 경관디자인 역사에 대해 보다 단단한 이해를 마련해준다고 생각한다.
각 장의 구성 및 논의 대상에 관한 해설은 〈서문〉에서 모건이 직접 제공하기에 역자의 수고를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모건의 연구가 반가운 것은 그간 그로테스크의 연구가 말하자면 인간에 관련해 진행되어 온 것에 반해, 그것이 자연에서도 나타남을 제시함에 따라, 자연 또는 비인간에 관련해서도 연구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때 활용될 수 있는 개념은 아마도 무경계적이고, 규정할 수 없는, ‘테르차 나투라’ 즉 ‘제3의 자연’이 될 것이다.
정원 속 괴물 : 르네상스 경관디자인에 나타난 그로테스크하고 거대한 것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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