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늘날 우리는 아이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이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의무 교육인 초·중학교는 물론, 그 이전 단계인 유치원과 보육원, 그리고 이후의 고등학교까지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교육’을 인간 형성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교육은 인간이 태어나기 직전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시작되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폭넓은 인간 형성 과정 중에서도 성인들이 특정 이념과 방침에 따라 계획하고 조직한 학교 교육이 특히 강조되며, 빠르게 확산되어 국민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으나, 오늘날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의무'나 '권리'의 문제를 넘어 하루 세 끼 식사를 먹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는 인간 형성, 특히 아동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는 교육에서 만능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재평가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오히려 가정 교육과 사회 교육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학교 교육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구의 근대 학제와 현대 학교의 기원 혹은 전제로 여겨지는 근세의 번교(藩校)와 데라코야[寺子屋]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근세 일본은 봉건적 사회 체제로 인해 지배층과 피지배층, 즉 무사와 서민이라는 두 계층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깊은 격차가 존재했다. 무사 계층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자기 수양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인재를 양성해야 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각 번(藩)이 경쟁적으로 설립한 것이 번교였다. 번교는 근세 민간의 사숙(私塾)이나 데라코야에 비해 시설과 설비, 조직과 교육 과정의 체계성 면에서 근대 학교에 더 가까워졌지만, 학생 개인의 행복보다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각 번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한편 서민 계층에서는 생산력 증대와 유통 구조의 개선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문자 읽기, 쓰기, 계산 능력이 필수로 여겨졌다. 이러한 필요로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소박한 교육 시설이 바로 데라코야였다. 서민들이 경제적 기반 위에서 고유의 인간미를 바탕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데라코야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의 발전도 봉건 체제의 권력 아래에서는 '현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 범위에 국한되었기에, 데라코야 역시 제한된 범위의 휴머니즘을 담당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라코야의 꾸준한 확산이 결국 무사 계층의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번교와 데라코야는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 교육이나 가정 교육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학교 교육’의 영역이 확립되었으며, 결국 다른 교육 영역을 압도하며 ‘근대는 학교 교육의 시대’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 책은 에도 시대 일본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를 탐구하고, 특히 ‘데라코야’를 중심으로 서민 교육의 실태와 그것이 사회적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살펴본다. ‘데라코야’ 하면 흔히 한국의 서당과 비교되곤 하지만, 교육 방식과 사회적 배경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무사 계층을 넘어 농민, 상인 등 일반 대중까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육은 민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교육 폭발의 시대’라 불릴 만큼 데라코야와 같은 기초 교육 기관들이 급증가했다. 당시 어린이들은 노동력으로 여겨졌기에, 이러한 교육의 확산은 실로 혁명적인 사회적 변화였다. 어린이들을 교육 기관에 보내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교육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전환점이었다. 서민들은 자녀들에게 기초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게 됨을 의미하며, 이는 어린이들이 순수한 노동력을 넘어 사회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시카와 마쓰타로의 연구는 에도 시대 일본의 서민 교육을 조명하며, 근대 교육의 맹아를 그 속에서 찾고자 한다. 저자의 시각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근세 교육이 근대 교육으로 이어지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단순히 일본 교육사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교육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 역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은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일본 교육사의 한 장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라며,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여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만약 ‘교육’을 인간 형성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교육은 인간이 태어나기 직전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시작되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폭넓은 인간 형성 과정 중에서도 성인들이 특정 이념과 방침에 따라 계획하고 조직한 학교 교육이 특히 강조되며, 빠르게 확산되어 국민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으나, 오늘날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의무'나 '권리'의 문제를 넘어 하루 세 끼 식사를 먹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는 인간 형성, 특히 아동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는 교육에서 만능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재평가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오히려 가정 교육과 사회 교육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학교 교육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구의 근대 학제와 현대 학교의 기원 혹은 전제로 여겨지는 근세의 번교(藩校)와 데라코야[寺子屋]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근세 일본은 봉건적 사회 체제로 인해 지배층과 피지배층, 즉 무사와 서민이라는 두 계층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깊은 격차가 존재했다. 무사 계층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고 자기 수양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인재를 양성해야 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각 번(藩)이 경쟁적으로 설립한 것이 번교였다. 번교는 근세 민간의 사숙(私塾)이나 데라코야에 비해 시설과 설비, 조직과 교육 과정의 체계성 면에서 근대 학교에 더 가까워졌지만, 학생 개인의 행복보다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각 번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한편 서민 계층에서는 생산력 증대와 유통 구조의 개선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문자 읽기, 쓰기, 계산 능력이 필수로 여겨졌다. 이러한 필요로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소박한 교육 시설이 바로 데라코야였다. 서민들이 경제적 기반 위에서 고유의 인간미를 바탕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데라코야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의 발전도 봉건 체제의 권력 아래에서는 '현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 범위에 국한되었기에, 데라코야 역시 제한된 범위의 휴머니즘을 담당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라코야의 꾸준한 확산이 결국 무사 계층의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번교와 데라코야는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 교육이나 가정 교육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학교 교육’의 영역이 확립되었으며, 결국 다른 교육 영역을 압도하며 ‘근대는 학교 교육의 시대’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 책은 에도 시대 일본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를 탐구하고, 특히 ‘데라코야’를 중심으로 서민 교육의 실태와 그것이 사회적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살펴본다. ‘데라코야’ 하면 흔히 한국의 서당과 비교되곤 하지만, 교육 방식과 사회적 배경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무사 계층을 넘어 농민, 상인 등 일반 대중까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육은 민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교육 폭발의 시대’라 불릴 만큼 데라코야와 같은 기초 교육 기관들이 급증가했다. 당시 어린이들은 노동력으로 여겨졌기에, 이러한 교육의 확산은 실로 혁명적인 사회적 변화였다. 어린이들을 교육 기관에 보내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교육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전환점이었다. 서민들은 자녀들에게 기초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게 됨을 의미하며, 이는 어린이들이 순수한 노동력을 넘어 사회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시카와 마쓰타로의 연구는 에도 시대 일본의 서민 교육을 조명하며, 근대 교육의 맹아를 그 속에서 찾고자 한다. 저자의 시각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근세 교육이 근대 교육으로 이어지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단순히 일본 교육사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교육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 역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은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일본 교육사의 한 장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라며,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여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근세 일본의 문자 교육, 번교와 데라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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