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렀다 갑니다 : 단 하룻밤 머물다 갈지라도 평생에 걸쳐 그리울, 숙소에세이

잘 들렀다 갑니다 : 단 하룻밤 머물다 갈지라도 평생에 걸쳐 그리울, 숙소에세이

$18.80
Description
여행은 다양한 형태로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까요?
일정이 짧은 장거리 여행이라면 비행기일 수도 있겠고, 도보여행이라면 길 위 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행지의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숙소에서의 기억은 어떻게 남을까요?
숙소는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일 수도 있고,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도 하고,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요. 예기치 못했던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그 인연이 그리워 다시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숙소는 여행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기억의 농도 자체를 짙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잘 들렀다 갑니다』는 저자가 지금껏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며 지냈던 여행자의 ‘집’에 대한 숙소에세이입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여행한 저자가 가장 마음을 내어주었던 숙소와 여행, 사람과 풍경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모로코, 네팔, 탄자니아 등 총 14개 국에서 저자를 위한 둥지가 되어주었던 곳, 잘 들렀다 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자

맹가희

14년전인도바라나시로첫배낭여행을떠났습니다.그이후로매해여행을떠났습니다.떠났다가다시돌아오고,또다시떠날궁리를해왔습니다.그러다긴여행을하듯,해외에살아보기도몇차례했습니다.언제든다시떠날이유도,그곳에머물고싶은이유도'사람'이라고생각하며,우연히만난사람들과보낸시간을소중하게여깁니다.요즘은머물궁리를하고있습니다.

brunch.co.kr/@maenghuii
instagram.com/may_maeng

목차

제1장언제든다시머물고싶은
바라나시의낡은담요가꾸던꿈
빠이에서찾은나의첫방갈로
광창예찬
골목을채우는인사
흙집에서의이유있는게으름
모래능선을따라
날개뼈와맞바꾼감동,세렝게티
작은일상이머물던알리네게스트하우스
혼자가아닌시기리야의오두막
단순함의미학,별일없는즐거움

제2장언제나이유는사람
엄마의첫해외여행
초대받은밤
카사블랑카에있는집
사미라그리고파티마
어쩌다동행
그녀가내어준것은방뿐만이아니었다
카미노의알베르게는모두바그다드카페였다
포르토에서헤어지며

제3장어쩌다머물게되었더라도
정말아무것도모른채떠났더니
그것들의탈출
잠깐의충동적인결정에의해
혼자부리는사치
비행기가취소됐다
호의인가,함정인가
컴플레인하길참잘했지

제4장걷다들르는집
산에오르려고네팔에갔던건아니었다
거머리와야크치즈피자
모질었던날씨마저도따뜻한기억이되어
킬리만자로등반과함께시작된생리
별들의자장가
고산병의무게를이고
세개의봉우리,가장높은곳으로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나의첫해외여행지는인도바라나시(Varanasi)였다.대학을일년반다닌후,휴학중이었고아르바이트를하며모은돈으로여권을만들고,비자를받고,비행기표를샀다.그러고나니10만원가량이남아있었다.열흘동안하루에만원씩쓰면되겠구나생각하고,바라나시갠지스강사진을본지정확히일주일뒤떠났다.
(...)
그당시에는내가묵고있는숙소가마피아조직에의해운영된다고믿었다.건너편모나리자식당에서들은건지,차이티를자주마시던가게에서들은건지는기억이나지는않지만말이다.아니면,워낙인도여행에선아무도믿지말고조심해야한다고귀에못이박히게들었기에그들을마피아라고여겼는지도모르겠다.그때까지마피아조직을본적도만난적도없으면서말이다.그래서늘숙소에서발소리와숨소리를최대한내지않고걸으려노력했다.또한열흘을머물며청소한번요구하지않았다.일을시킨다고해코지를하거나숙박요금을말도없이더내라고할까봐무서웠다.그때내가최고로소중히지니고있던것은다름아닌선불로지불한숙박요금영수증이었다.

쨍한밖의햇살은한가닥도들어오지않는방,흐릿한전등아래에서작은수첩에그날만난사람들,먹은것들,길에서배운쉬운인사말몇가지를적곤했다.뭐라고표현해야할지모를온갖감정들을어떻게해서든풀어적어보려애썼다.일기를다쓰고난후에는삐그덕거리는침대위에누워낡은담요를덮고는하루내들이마신온갖새로운것들을밤새소화시키느라바빴다.
-‘바라나시의낡은담요가꾸던꿈’중에서

사하라에서는모든소리가사라지지않고남아있었다.모래에서모래로,혹은바람에실려온채로,뜨거운낮동안숨겨온소리가한가닥씩피어올랐다.지글지글뜨거운태양이모래를데우던소리가,저기흥겨운텐트에서연주되는베르베르전통악기의멜로디가,밥말리의발바닥이콩콩사막에닿을때만들어지던박자가,조금먼곳에서흘러들어와길을잃은이야기가모래능선을따라곱게도퍼져있었다.

그렇게사막의소리를듣다보니,모래로덮었던발이다시차가워졌다.나는다시다른구덩이를파서발을파묻었다.뒤를돌아보니내가잘곳이눈에들어왔다.추위를이길수없을때까지사막을즐기다이능선을타고내려가면두다리뻗고잘곳이있다는것.생각만으로도포근한이불을덮은것같았다.나는졸음이밀려올때까지여러번모래구덩이를팠다.
-‘모래능선을따라’중에서

기대에차서들어갔다가,방이없다는말에터덜터덜나오기를몇차례,어느덧시간은정오를가리키고있었다.나는막문을연어느레스토랑으로들어갔다.메콩강바로옆에자리한식당이었다.자리를잡고앉으니강바람이살살불어와땀이맺힌이마를식혀주었다.붉게달아오른얼굴도조금은열이가라앉는느낌이었다.

나는다짜고짜맥주를주문했다.오늘당장잘곳을못구하더라도그순간을즐기지못할이유는없었다.맥주를받자마자꿀꺽꿀꺽들이켰다.목넘김이좋았다.역시태국맥주는태국에서먹어야제맛이지,라고홀로감탄에감탄을거듭하며마셨다.바로어제도마셨으면서.
-‘정말아무것도모른채떠났더니’중에서

나는로밍도하지않고,현지유심칩도사지않았기에인터넷이없었다.내가어디에있는지도몰랐다.
“여기서조금만더가면잘데있어.자고내일아침에출발하자.”
나는무언가잘못돌아가고있다는생각이들었다.삼촌은내의견은묻지않고어느숙소에바이크를세웠다.

“남은방이하나밖에없대.”
나는슬슬화가나기시작했다.마스터키를가지고정말남은방이한개인지를직접확인해보고싶었다.누가봐도짜고치는고스톱같은상황이었지만당시내가도움을청할곳은없었다.

주인이보여준방을보니침대가달랑하나였다.더블침대.나는그녀에게마찬가지로손가락두개를브이자형태로보여주며“투베드,투베드플리즈”를또다시거듭외쳤다.그녀는나를향해난처한표정,그리고삼촌을향해어쩔줄몰라하는표정을번갈아지어보였다.

살다살다이런일을겪게되다니,지금은도대체무슨상황인가,이건호의도아니고배려는더더욱아니고,그래함정이라면함정일이상황은무엇인가.
머릿속이참으로복잡해졌다.시계를보니날이밝기까지4시간쯤남아있었다.나는옷을벗고샤워하는것조차도마음이편하지않아서간단히세수와양치만했다.하지만그는뜨거운물로오래샤워를했다.
그때삼촌이내뱉던소리들이나는아직도기억이난다.으어,으어…하는,뜨거운물에차가운몸을녹이며내던이상하고끔찍하고징그러운소리.화장실에서그소리가들려올때마다나는오만상을썼다.

그가씻는동안혼자떠날까도싶었지만,어두운밤을맞이한외딴곳에서는그것도적절한대처가아니었다.나는가방안에서무기가될만한것을찾았지만,기내수하물로하나달랑메고온작은배낭안에는위험해질수있는물품자체가없었다.
-‘호의인가,함정인가’중에서

방열쇠로문을열고들어가는순간은늘기대와걱정이뒤섞인다.사진에서기대했던것보다무엇이얼마나다를지염려가되는것이다.늘마음을비우자고다짐하지만,그럼에도줄이고줄인기대에도미치지못하는방의민낯과마주했을때의그실망감이란이루말할수없다.

다클라의숙소는정말이지,기대그이하였다.방은상당히어두웠다.첫번째층인데다가창문이작아서빛이잘들어오지않았다.무엇보다도리셉션바로옆방이었고,건물의계단은내방옆에서시작하여내방위를지나가는구조였다.계단을오르내리는사람들의발소리가내방안으로고스란히울려퍼졌다.
거슬리는소리는그것뿐이아니었다.세면대에서물을틀때마다이상한소리가났다.마치그안에숨겨진폭탄이라도있는것처럼불안한소리였다.정말이지참을수없는소음이어서나는결국숙소직원을부르게되었다.직원도소리를듣고는놀라서수리공을불렀다.
수리공은별다른장비없이그저세면대물을틀었다잠갔다만반복하더니,“문제없어요.”라고만했다.물을틀때마다무서울지경인데문제가없다니.정말이지화가하나둘쌓여갔다.
와이파이도제대로잡히지않았다.겨우연결이되어뭐라도좀찾아볼까싶으면바로와이파이가꺼졌다.이래저래답답한지경이었다.게다가화장실에서샤워를하다바퀴벌레를만나기도했다.배수구구멍에서올라온것이다.씻어도개운하지않고,오히려찝찝함만남기는샤워였다.
-‘컴플레인하길참잘했지’중에서

시작부터엄청가파른오르막길이었다.보이는것이라고는아무것도없는캄캄한밤에그저앞에난발자국들을쫓아서한걸음,한걸음을내디뎠다.충분히많이걸었다고생각하여위를올려다보면,앞서간이들의헤드랜턴빛만이촘촘히펼쳐져있었다.그끝은보이지않았고,나는좌절했다.참으로더디고무거운시간이었다.
걷고걷다지쳐그저길바닥에눕기도했다.‘나는더이상못걷겠다.’라는말조차내뱉기힘겨웠다.하지만그럴때마다10초이상을견디지못했다.눈밭위에눕자살인적인추위가느껴졌기때문이다.마치불에데이듯허겁지겁바닥의눈을피해일어났다.
내가할수있는것은정말이지걷는것밖에없었다.니콜라스는계속해서“폴레폴레(PolePole)”를주문처럼외웠다.그뜻은‘천천히,천천히’이다.탄자니아문화를가장잘보여주는말이기도하다.사방은여전히어둡고,나는멈출수도달릴수도그렇다고누워버릴수도없는킬리만자로의눈덮인길위에서니콜라스의“폴레폴레”를마법사의주문처럼들었다.
킬리만자로정상에서일출을보는것,을해낸이가있기는한걸까?
-‘세개의봉우리,가장높은곳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