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소식

무명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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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시은 소설집. 제91회 서정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作인 「비둘기」, 문학잡지〈다정한시간〉 제1호 수록작 「외계인」, 제16회 ‘동서문학상’ 소설부문 맥심상 수상작 「너와 나의 거리」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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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을 썼냐고 묻는다면, "부족한 사람들의 부족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답하고 싶다.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이해란 내 안의 너를 발견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교수님의 어떤 수업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만큼은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 하나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타인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연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어떤 이들에게서 독자님의 모습을 한 줌 발견하신다면, 그들을 조금은 이해하고 가끔은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보낸다.

왜 글을 썼냐고 묻는다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라고 답하고 싶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그 글을 세상에 보여주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어떤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

저자

박시은

충남대학교에서철학을전공했다.2023년단편소설‘비둘기’를통해제91회서정문학소설부문신인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같은해대전의청년작가들과함께문학잡지〈다정한시간〉을기획,출간했다.현재문학커뮤니티〈다시〉의대표를역임하고있다. 
브런치brunch.co.kr/@s2eun2

목차

비둘기
냄새
외계인
보금자리
중앙선
도미노
너와나의거리
무명의소식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비둘기가싫다.싫다는표현으론부족하다.혐오,소름이끼칠정도다.내게가장심한욕은‘새대가리’,‘비둘기같은놈’이다.조류란조류는모두싫지만,비둘기를유독싫어하는가장큰이유는비둘기의뻔뻔함이다.비둘기는사람이흘리거나버린음식물을마치원래부터주식으로삼아온것처럼보인다.심지어사람의위胃에들어갔다나온토사물따위도주저하지않는다.다른새와는달리,사람이다가가도제집앞마당인양거리거리를점령하고있는것을보자면나도모르게욕지기가나오고마는것이다.
오늘아침출근길도그랬다.집을나서자마자날맞이한건비대한비둘기한무리였다.‘과연날수있을까’생각하면서나도모르게비둘기무리를피해다른길로향하고있었다.덕분에타야할버스를눈앞에서놓쳤고,서둘러택시를탈수밖에없었다.오늘따라택시기사는유난히말이많았고,택시는신호마다멈춰섰다.출근길내내답답함과짜증,불안감이교차했다.벌써이런경우가몇번째인지세기도힘들다.
출근시간직전이되서야사무실에도착해안도의한숨을쉬었다.

“이게모두비둘기때문이야.”
-‘비둘기’중에서

묵은담배냄새와버리지않아쌓여있는음식물쓰레기냄새가나는그의작은방은,효림에게좋아하지않는반찬에더가까웠다.
긴수험생활끝에공무원시험에합격한남자친구는돈한푼쓰지않고데이트를할수있는장소가있는데,굳이밖으로나갈필요가없다고생각했다.침대모서리에서휴대폰을만지던효림은방안의냄새와자신에게지분거리는남자친구의땀냄새가겹치자코로숨을쉬는것을멈추고입으로숨을‘후우’하고뱉었다삼켰다.자정이다되어남자친구가얼렁뚱땅효림의손에쥐여준쓰레기봉투를들고나가면서효림은왜인지B팀장이떠올랐다.
-‘냄새’중에서

“너,네가외계인이라는거알아?”
“그게무슨…….”

성우에게대뜸반말로말을건영화는당혹스러운표정을한성우를아랑곳하지않고,씩웃으며핸드폰을내밀었다.성우는문밖에서일행이돌아오는것이보여얼떨결에명함을건네주고말았다.일행에게그런모습을보여괜한오해를사고싶지않았기때문이기도했지만,오랜만에듣는외계인이라는단어에자신도모르게마음이동했기때문이기도했다.
다음날영화는성우에게전화를걸어왔다.명함에적힌회사주소를보고회사앞으로찾아온것이었다.술김에명함을건네주기는했지만,영화가찾아올거란생각은전혀하지못했던성우는영화의방문이우산이없는날갑자기내리는비처럼느껴졌다.영화는여전히진지한얼굴로자신이외계인이라고주장했다.성우는영화가단단히미쳤다는생각이들어대충얘기를들어주는척하다집으로돌려보내기로마음먹었다.요즘애들이취업스트레스가많다더니이렇게정신병이걸리는구나싶었다.
영화는동족남자를찾아서같이자기별로돌아갈계획을세우고있다고말했다.흥분해서말하는영화의피부가햇빛을받아반짝거렸다.화장기없이도매끈하고광이나는피부였다.성우는영화가성우주변의중년여성들사이에있으면정말외계인처럼보일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
-‘외계인’중에서

지운은태어날때부터남의자리를뺏고태어난아이였다.지운의어머니는예정일보다열흘빨리진통을느꼈다.간호사였던지운의친할머니덕에원래수술이잡혀있던산모대신어머니가수술방에들어가게되었다.수술이늦어진산모도무사히출산했으니큰일은아니라고할지몰라도,지운이태어날때부터남의자리를뺏어서태어난것은사실이다.우습게도지운의할머니에게는이일이퍽자랑거리였던지라,지운은머리가꽤클때까지도자신이태어나던날의이야기를지겹게들어야했다.
-‘보금자리’중에서

“저는사실어제,제막냇동생을죽였어요.어릴땐온몸이아주말랑말랑,귀여운아이였어요.커서는취직도못하는퀴퀴한젊은이가되어버렸지만요.곧뉴스에도나올걸요.”

그녀의얼굴은언뜻보면태연한것처럼보였지만자세히들여다보면입가가씰룩거렸다.내가놀라기를기대하는모양이었다.그렇지만나는그녀의욕망을채워줄생각이없다.살인자의마음이란,이미오래전에해결한호기심이었기때문이다.

-‘무명의소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