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로의 도피 : 한국어가 없는 곳으로 도망친 여행, 그곳에서 삶에 필요한 단어를 찾다

발칸 반도로의 도피 : 한국어가 없는 곳으로 도망친 여행, 그곳에서 삶에 필요한 단어를 찾다

$16.42
저자

석지호

미생물을연구하고가끔글을내립니다.삶에필요한단어는몇가지면충분하다고믿습니다.1994년서울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에서생명공학학사와석사학위를받았습니다.대한민국공군중위로전역해지금은조지아텍에서생명공학박사과정대학원생으로살고있습니다.
저서〈너의목소리를그릴수있다면〉,〈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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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Chapter1.
폴란드,지쳤어요
한국어가없는곳이필요했다010
마음을빌려줄여력이없었다015

Chapter2.
불가리아,고마워요
인생은세가지말로충분하다022
소원이하늘에닿지못해비로내렸다028
좋아하는것을말하지못한다034
여행은행복의역치를많이낮춘다039
창가를괜히몇번쓰다듬었다044
말은통하지않아도괜찮았다049
도망치기위해떠나야만했다054

Chapter3.
마케도니아,슬퍼요
서로가노력할필요가없는사이다062
한블록마다동상이있었다068
발치의강가는주름이졌다073
내취미는모든것에슬퍼하는일이다078
기분좋은배덕감을마셨다084

Chapter4.
코소보,예뻐요
지도에서이상한나라를발견했다092
마지막말은진심이었다097

Chapter5.
알바니아,미안해요
열병을앓았다104
적당한온도와미소로서로를대했다109
양대가리구이는우연이었다114
하산하며걱정이다시차올랐다119
벙커밑에서전쟁을상상했다124

Chapter6.
그리스,행복해요
대화에굶주린얼굴이었다132
낡은것도늙은것도아니었다138
내서른은아무것도없었다143
낭만이란그런쓸데없이멋진것이다148
신은있어야만하는존재였다153
그래도적당하게행복했다158
해풍맞는어포마냥멍하니있었다163

Chapter7.
튀르키예,사랑해요
바다가속마음을다내보이고있었다170
떠나기싫을때가있다175
온몸을두들겨맞고마침내행복했다180
하루에세번마주치면운명이다185
그래서그날짜를사랑하기로했다190
쓸데없이많은한국어를알고있었다195
이제는돌아가도될것같다200

출판사 서평

모든것을포기하는우리를위로하는이야기
저자는타인의시선이두려워한국어가들리지않는곳으로도망쳐야만했다고고백한다.한살한살나이가들고있지만,번듯한직업도벌어놓은돈도없었기때문이다.‘역대급’이익숙한세상이다.취업률,출산율,자살률.모두‘역대급’이다.몇년전에삼포세대라는말이유행했지만,이제는N포세대란다.N은무한대로발산하고있다.저자는독특한시선으로‘역대급’세상을살아가는사람들을위로하는메시지를책에담았다.저자는마케도니아강옆에걸터앉아발치의강가는주름이졌다며사람들의슬픔을말한다.알바니아의산을내려오며정상에서잊었던고민들이다시차오른다고이야기한다.그러면서도자신의미래에대한고민을계속하며한발짝더나아갈용기를나눈다.

결국세상은간단하지만따뜻한단어들로이루어지는것
저자는버릇처럼각나라의언어로된단어들을배우고말하려노력한다.‘고마움’,‘미안함’,‘사랑’이라는세가지로시작하여말할수있는단어를하나씩늘려간다.슬픔이나아름다움처럼삶에서가장중요하지만부끄러워서말할수없는단어들에대해배우며,발칸반도에서사유한감정을따뜻하게풀어낸다.삭막할줄알았던코소보의수도에서사람들의예쁜마음을마주하고,서른이되어버린그리스기찻길위에서는그래도나름행복하다며소소하게웃는다.저자는어느덧너무도많은한국어단어를알아버린나머지,정작중요한단어들을한국어로말하지못하는사람이되었다고고민한다.그리고긴여행의끝에서이제는한국어로그단어를말할수있다며돌아갈결심을한다.

책속에서

오랜만에경험하는다인실도미토리는재앙이었다.귀에거슬리는작은절규소리에잠이깼다.적막한새벽에같은공간에서누군가가울고있다는것은다소비현실적이었다.괜찮냐고물어봐야할지아니면조용히해달라고해야할지고민했다.잠에서깬것이조금화가나긴했지만,나는늘타인의슬픔을보았을때말문이막히고마는사람이었다.나는위로와공감에영재능이없었다.대체무슨말을해줘야할지생각하다가아무것도보이지않는어두운공간속에말을뱉었다.
“괜찮아?”
누구인지얼굴도모르는사람에게물었다.
“아니안괜찮아.미안해.정말미안해.”
얼굴도모르는사람이훌쩍이며말했다.2층침대에서내려오는소리가들려서커튼을잠시열고그녀를바라봤다.
“괜찮아?”
멍청하게같은질문을반복했다.
“미안해.남자친구가헤어지자고전화했어.”
그녀는슬픔에온몸을맡긴채로문을열고나갔다.
나가서위로해줘야하는건지고민했다.짧지않은고민끝에다시잠을청했다.타인의아픔을안기에는너무피곤하고지쳐있었다.마음을빌려줄여력이없었다.지쳐쓰러져도돌아갈곳하나없는나는그저침대에누워있었다.조금은이기적이라는생각을했다.
내게그저귀찮을뿐이었던그밤은,그녀에게는심장언저리에생채기가생긴그런아픈밤이었을것이다.눈을뜨고어둠속을바라봤다.이순간지구어딘가의어떤이는다시는잊을수없는행복을마주했을것이다.또다른대륙의누군가는평생잊고싶어할슬픔을겪었을것이다.같은날짜가다른기억으로남는다는것은참담한일이었다.늘그렇듯이시간은다르게적힌다.내게의미있는몇몇날들을떠올렸다.그날들은나에게서떠나간몇몇에게는더이상아무런의미도없을것이었다.
-‘마음을빌려줄여력이없었다’중에서


“왜불가리아에오셨어요?”
내가말했다.그녀는아주복잡미묘한표정을지었다.내가근몇달동안늘지어야만했던표정이그녀의얼굴에떠올라있었다.타인에게자신의인생을어디서부터어느정도나검토받아야하는지고민할때의표정이다.
여행자들은보통서로에대한배경지식없는대화만을나눈다.직업이나학교나회사따위를언급하지않고나라는인간과자신의감정에관해설명하는것은어색하지만재밌는일이다.
그런대화는‘이양송이수프엄청맛있는데?’라거나‘그냥일기쓰고있어.’같은형식으로시작한다.어색함이조금걷히면대화는‘느끼한것보다는매운음식을좋아해.’라거나‘부끄럽지만,취미로글을쓰고는해.’로바뀐다.낯선이와의대화가익숙해지면먹어봤던세계의여러매운음식들을설명하게되고이근처에서먹을수있는특이한매운음식들을알게된다.책을쓰고싶다는꿈에대해말하게되고또그러기에는내문체는너무맥빠지고서글픈것이라한동안글쓰는것을포기했던사실도말하게된다.
여행자의대화는나스스로재미없는인간이아니었음을깨닫게한다.나는매운것을땀을뻘뻘흘리며먹는것을좋아하고,이동네음식이너무느끼해서핫소스를챙겨다니는괴팍한사람이된다.또많은사람이내글을읽으며시간을보냈으면좋겠다는소망이있지만,막상그문장들의진짜의미를알수있는사람은내가사랑하던몇안되는사람으로한정되었으면하는모순적인인간이된다.자신을알아가는이야기를할수있다는것이여행의좋은점이다.다만그런대화는타지에서같은나라사람을만난다는것자체만으로쉽게깨지게된다.
-‘인생은세가지말로충분하다’중에서


미리공부해둔키릴문자는꽤큰도움이되었다.아예읽을수없는것과조금이나마읽을수있는것에는차이가크다.소피아와플로브디프라는짧은지명을읽는데앞사람두명이표를구매하고돌아설정도의시간이걸렸다.짧게인사하고플로브디프행표를구매했다.
언어가통하지않아도대화가통하는경험은늘흥미롭다.직원을바라보고부디내발음이맞기를기도하며플로브디프라고말했다.직원은시간표를가리켰고나는핸드폰달력을꺼내서내일표를원한다는표정을지었다.대체그표정이무엇인지설명할수는없지만제대로산것을보니아마완벽한표정이었던것같다.
이단출한성공이너무나도기뻤다.여행은행복의역치를많이낮춘다.버스표를사는것도,음식을주문하는것도,화장실을이용하는것도그들에겐그저삶일뿐이지만나에게는충분한도전이된다.그리고대화의끝에그들의언어로‘감사합니다’를연발하는것만으로도꽤따뜻한칭찬을받는다.
(...)
정체모를음식이하나나왔다.고기와치즈를뒤섞어뚝배기같은것에요리한음식이었다.직원에게음식이름을발음하는방법을물어봤다.직원은성심성의껏가르쳐주려고노력했지만나는결국발음하지못하고웃으며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다.한입을입에넣고우물거렸다.직원에게다시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다.불가리아사람들은고기와감자와치즈만으로사람을행복하게하는법을알고있었다.
-‘여행은행복의역치를많이낮춘다’중에서


여덟시간을넘게달려야한다는버스는별로크지않았다.동네태권도학원버스랑크게다르지않은구조였다.기사는아침일찍부터일어나서그런지화가많이나있었다.큰캐리어를두개나가져온미국인과실랑이를벌였다.
커피를홀짝이면서불가리아사람과미국사람이러시아사람의더듬거리는통역을통해싸우는것을보는것은재밌는일이었다.긴불가리아어와그보다더긴영어는머리를박박깎은러시아사람에의해본인머리보다짧은러시아어로바뀌었다.덕분에예상시간을조금넘어서출발했지만,불만은하나도없었다.어차피버스에서는지루할일밖에없기때문이다.
서로가노력할필요가없는사이다.버스를함께탄다는것은그렇다.같은출발지와같은목적지를가지지만굳이서로알필요가없어져버리고만관계다.꽤긴시간을어깨를맞대며가야하는데도그렇다.호스텔로비에서봤다면어색하게나마인사를했을사람들이버스에탔다는사실하나만으로아무런말이없어졌다.
대화할필요가없다는것이편하기는했지만그런관계가있다는것이조금슬펐다.아무런말없이버스는마케도니아로향했다.
‘서로가노력할필요가없는사이다’중에서


“너는되게인생을슬프게바라보는구나.그런데네인생은안슬퍼하고다른사람들에대해슬퍼하는게되게특이해.보통은자기사는게제일슬픈게당연하거든.”
리안이이어서말했다.
대답하는것이어려웠다.아무래도내취미는모든것에슬퍼하는일이다.슬픈것은우울한것이나무기력한것과는다르다.오래씹은슬픔은쓰지않고꽤단맛이난다.고급소금과도같다.글을써야할때면여기저기서눈물을모은다.눈물을잉크삼아글을쓰면언젠가말라자국만남는다.그눈물자국에서소금기를조금씩모은다.나는내눈에보이는슬픔을잘모아말려서누군가에게보여주고싶다는마음으로처음글을쓰기시작했다.그사람은삶을보는내시선을참좋아했다.지금은뭐하고사는지알방법도없는사람이다.
-‘내취미는모든것에슬퍼하는일이다’중에서


국경이점선으로되어있는나라였다.인터넷연결이이상한가해서앱을두번껐다가켜보아도결과는그대로였다.
이상한나라의이름은코소보였다.2008년에세르비아에서독립을선언했지만,그들의독립을인정하지않는나라도많은것같았다.우리나라는코소보의독립을인정하는나라중하나였다.원래대로라면호수가유명하다는마케도니아남부쪽으로내려갈예정이었지만갑자기목적지를바꾸게됐다.코소보입국도장이찍히는순간세르비아쪽은갈수없는것이뻔했지만신생국가를보게된다는것이더설렜다.
(...)
몇개의모스크를거치며거리를걸었다.여태까지의발칸반도여행이그랬듯무언가자랑할정도로볼만한것은없었다.단지사람을행복하게하는평화로움이모든곳에덧칠해져있었다.모르는외국인에게도예쁘게웃으며인사하는어린아이들을보며별이유없이행복해졌다.패트릭은거리에서만나는모든사람을아는것같았다.많은사람이패트릭을알아보고인사하러다가왔다.덩달아계속인사를했다.과일팔던아주머니는사과를닦아내게건넸다.담배를피우던아저씨는담뱃갑을꺼내한대피우겠냐고물었다.사과는입에물었지만,담배는그렇지않았다.그것과는상관없이코소보사람들과많은얘기를했다.패트릭은웃으며기다려줬다.
이상한나라였다.특히수도인것을감안하면더이상했다.어떤나라인지상관없이수도는그나라에서가장삭막한사막같은곳이다.하지만코소보의수도‘프리슈티나’의사람들은내가아는상식과는조금다른것같았다.대단한것을본것도아니고대화할수있는시간도짧았지만어째처음으로여행다운여행을하고있다는기분이들었다.그들의마음이너무나도예쁘고사랑스러웠다.
-‘지도에서이상한나라를발견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