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되는 박성호 작가만의 문장들 『당신이 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는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결국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시집입니다.
부디 천천히 읽어주세요. 그리고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잠시 그 문장 곁에 머물러주세요. 그렇게 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처럼, 이 책도 오래 여러분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책 속에서
당신 없이도 모든 계절은 흘러갔지만 그 속엔 늘 당신이 있었습니다
당신 없이 살아낸 날들도 당신으로 살아낸 날들이었습니다 - ‘언제나’ 중에서
헤어진다는 것이 때론 빈 들녘 지나면서 벼 익는 냄새 맡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헤어진다는 것이 때론 아무 일도 없는 듯 섶길에 핀 꽃을 보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헤어진다는 것이 때론 더위를 피해 강줄기 발 담그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헤어진다는 것이
참, 헤어진다는 것이 - ‘헤어진다는 것이’ 중에서
우리의 시차는 당신이 남긴 기억의 깊이만큼 멀어져 나는 여전히 당신이 두고 간 겨울을 입고 서 있습니다
나의 사랑은 가난해서 그 텅 빈 거실은 매일 밤 작은 풍랑을 겪고 당신의 사랑은 넉넉해서 비좁은 마음은 매일 밤 잔잔한 항구가 되더니
어느덧 나의 우주가 온통 당신이 되어서는 이제 당신이 없는 곳으로 가려면 나는 내 생애를 통째로 버려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없는 곳으로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의 우주가 온통 당신이 되어서는 - ‘나의 우주’ 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사랑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를 때 서로는 언제나 애써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람 불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으로 서로를 밀어 넣는 심술 뒤이어 흩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모아들이는 마음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표정으로
우리는 다시 아무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 ‘비밀연애’ 중에서
나는 꽃이 피기 이전의 들판을 사랑합니다
꽃잎이 무성해 누구나 사랑하는 모습이 되기 이전에
푸름이 가득해 누구나 사랑하는 공간이 되기 이전에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아서 여전히 당신, 꽃피우지 못하였어도 나는 당신을 들판처럼 사랑합니다 - ‘아무것도 아닌 너를 사랑해’ 중에서
어쩌면 당신을 밀어내는 일은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떠나가는 당신을 향해 내 마음 가장 길게 늘어나는 일
구태여 멀리멀리 보내서는 뒤돌면 보이지 않을 당신을 어딜 보든 당신만 보이게 만드는 일
애써 그립지 않은 척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일 - ‘당신을 밀어내는 일’ 중에서
당신이 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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