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농부의아들로태어난‘청주토박이’서승우,
3명의대통령을모신남자,지역발전과국익을위해헌신한30여년”
이책은청주장재리에서자란청년이55세의일꾼이되어주민들께제출하는일종의자기소개서로,청주토박이의일상과부모님으로부터물려받은소중한유산인‘신의’를행정고시로공직에입문해30여년간의공무원생활동안지켜오고지역발전과국익을위해헌신한이야기를담고있다.
시골에서농사짓고소키우는집의3남매중둘째로태어나초등학생때부터지게질과농사일을돕고,중학생시절갑자기신부전증으로쓰러져아픈유년시절을거쳐성장한‘흙수저’의치열한삶을진솔하게털어놓았다.이후행시37회로충북도행정부지사,행안부지방행정정책관,대통령실자치행정비서관등을지낸그가국익과지역발전을위해헌신한30여년의세월이행간에녹아있다.
‘서승우’하면‘대통령들의남자’라는수식어가붙는다.2008년이명박대통령당선자인수위원회에합류한후청와대행정자치비서관실행정관으로발탁되고,2015년박근혜정부의행정자치비서관실선임행정관으로다시발탁된데이어,2022년윤석열대통령정무수석실자치행정비서관으로발탁되었기때문이다.세번이나대통령의부름을받았다는것은친소관계로발탁되지않았음을의미한다.해당직무에있어대한민국최고의공무원이라는뜻이기도하고,적어도두번의청와대근무가좋은평가를받았다는것을뜻하기도한다.
그런그가장차관·기관장등의꽃길을마다하고돌밭을걸으려하냐는주위의만류에도불구하고,청주시청원구국회의원의출마의사를밝혔다.행정전문가·실물정책전문가이며대통령실정무수석실자치행정비서관으로국가로부터인정받은능력을이제는고향인청주청원구의발전을위해바치겠다는그의비장한각오가담긴이책,한곳만을바라보았던한청원청년의망향가(望享歌)이자연서(戀書)를,희망의마음을담아읽어보자.
책속에서
아버지가생각하신신의는그저사업을위한신용만은아니었습니다.10년전이었을겁니다.아버지가트럭에쌀포대를싣고멀리강원도에다녀오신적이있었습니다.아버지가사업에실패해작은집을구해야할때,아주싼값으로집을구해주며도와주신분을뵈러간다고했습니다.전화번호는없고다만그동네는알고있기에무작정떠나신다는겁니다.다행히아버지는그분을만나은혜를갚을수있었다고만족스러워하셨습니다.
나중에아버지가혈액암4기진단을받고몸져누웠을때에도이신의는빛을발했습니다.아버지의지인들이수시로집에들러쇠고기와버섯,약재등을두고가서주방이가득찼다는말씀을어머니로부터전해들었습니다.돈은있다가없을때가있지만,돈없을때에도‘내사람’이많으면살수있겠구나싶었습니다.
사람을귀하게대하고,작은약속이라도지켜야한다는생각은점차나의인생관으로자리잡았습니다.아버지의생활이나에겐가장위대한유산이었습니다.(22-23쪽)
충청북도공무원연수원에서의1년6개월은고향(충청북도)의현실을배우는기간이기도했습니다.강단에서있었지만,지역공무원들의질문속에서고뇌도함께읽을수있었습니다.공무원의역량을성장시키는교관생활은보람있었습니다.하지만나는강단위에서도현장으로가고싶다는열망을키워갔습니다.내가땀흘려서구체적으로바뀌는현실을직접목도하고싶었습니다.
당시내가슴한복판엔오래된그무엇이똬리를틀고있었습니다.나는늘그똬리에서울리는소리를따라방향을가늠했습니다.서울대외교학과에들어가외교관이아닌국가행정을담당하는행정공무원을선택했고,첫근무지를굳이중앙이아닌충청북도로가겠다고결심했었습니다.내가걸어야할길은‘고향길’이되어야한다고생각했기때문입니다.(72쪽)
2007년12월에이명박후보자가대통령으로당선되었습니다.그해성탄절에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곳에합류했습니다.처음인수위로부터합류제안을받았을때에는들어가지않겠다고했습니다.행정자치부에서일한지1년밖에되지않았고,나보다행자부일을잘아는선배들이수두룩했습니다.내가들어갈자리가아니라고생각했던겁니다.
그날밤,내말을들은친구도현이는펄쩍뛰었습니다.(중략)그날밤나는다시전화해서인수위에합류하겠다는의사를밝혔습니다.법무행정분과실무위원으로행자부,법무부,법제처,국정홍보처,검찰청,경찰청에대한대통령의공약사항과국정과제를정리해서보고하는것이주임무였습니다.업무량이어마어마했습니다.각종회의자료를비롯해보고서,‘국민제안’의정리등두달남짓한기간동안매일14시간정도일해야했습니다.이후대통령님의임기가시작되자,청와대정무수석실자치행정비서관실행정관으로차출되었습니다.이때나는국정이어떤방식으로운영되는지,그리고현안이발생했을때청와대와부처가어떻게움직이는지를배웠습니다.(132-133쪽)
충북을떠난지8년후,나는다시돌아왔습니다.2015년12월충청북도기획관리실장으로부임했습니다.행정자치부를거쳐청와대로,그리고다시시드니로떠났으니먼길을돌아서온기분이었습니다.이곳에서2년4개월간이시종지사님을모시고일했습니다.
과거이원종지사님을모실때나는그로부터공직자로서의철학과품성을배울수있었다면,이시종지사님으로부터는‘일꾼의사업방법’을배울수있었습니다.이시기충청북도는정부합동평가6년연속전국최우수,정부예산5조원,충북도예산4조원확보,중부고속도로확장,청주국제공항활성화,강호축발전축구상,바이오헬스혁신융합벨트사업으로질주했습니다.
이원종지사께서충북발전의그림과토대를닦았다면,이시종지사님은말을탄기세로과실을수확해나갔습니다.‘일을제대로하려면저렇게뛰어야한다.’는것을곁에서배울수있었습니다.이시종지사는타고난충북맨이었습니다.사업이든예산이든충북에도움이되는것이라면작은부분에서도결코손해보는일이없었습니다.(155-156쪽)
2008년이명박대통령당선자인수위원회에합류한후청와대행정자치비서관실행정관으로발탁되었습니다.그리고2015년박근혜정부의행정자치비서관실선임행정관으로다시발탁된데이어2022년윤석열대통령정무수석실자치행정비서관으로발탁되었습니다.(중략)
나는‘대통령들의남자’라는말이더좋습니다.세번이나대통령의부름을받았다는것은친소관계로발탁되지않았다는의미입니다.해당직무에있어대한민국최고의공무원이라는뜻이기도합니다.그리고적어도두번의청와대근무가좋은평가를받았다는것을뜻하기도합니다.(184-186쪽)
내가국회의원출마결심을밝히자서울의친구들은행정부1급공무원이왜장차관,기관장등의꽃길을마다하고돌밭을걸으려하냐며만류했습니다.나는언제나새로운일을갈망했고,내땀이세상에유용하길바랐습니다.
충북도청에서일하던시절,통상업무를위해출국하고며칠후벌건눈으로인천공항에서버스를타고청주터미널에내렸던일을생각했습니다.고되었지만,보답이확실한일이었습니다.청주와해외를오갔던수만쪽팩스속숫자는결국청원의빈터에솟은연구단지와공장건물,그리고일자리와유입된젊은이들의숫자로현실화되었습니다.
나는사람이만들어내는그변화의힘에전율하곤했습니다.그것은구체적으로정치의힘이었습니다.내가보았던정치란사람들의염원을현실화하는것이었습니다.국회의원이되면응당더많은일을해낼수있습니다.(중략)
29년의공직생활을통해나에겐‘중앙과지방을훤히꿰고있는지방행정전문가’라는수식이붙었습니다.내핸드폰에는1만여명의연락처가있습니다.충청북도와중앙부처,해외공관등일하는사람들과쌓아온인연입니다.지금까지와같이나는이번일을잘해낼수있을것같습니다.(233-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