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허공에 슬며시 몸을 밀어 넣다

$15.00
저자

문학철

저자:문학철
《주변인과문학》편집주간역임
한송예술협회이사장역임

시집,『산속에세들다』외다수
장편소설,『황산강』
시감상집,『관광버스궁둥이와저는나귀』

목차


시인의말

1부입동즈음에

명예
감꽃
허공에슬며시몸을밀어넣다
빗소리읽다
삼성반월교
봄날아침에
봄비에널다
못과소금
입동즈음에
살구나무꽃그늘에서
피안彼岸으로가는길
산천은바쁘다
빈집에드네
솔잎도나도
극락암영지影池에서

2부옛날옛적에

나뭇잎편지[葉書]
구절초
옛날옛적에
그대하늘에귀하나걸다
부처님오신날
인연
귀신,씻나락까먹는소리
달무리
귀울음
모순
이별가
다시,고군산군도
다담茶談
민들레꽃
토닥토닥

3부외줄한가닥

저물녘고향
사자평에서
손칼국수를먹으며
외줄한가닥
코뚜레
이봄에
저문날을걷다
입추에변명하다
청복淸福
머위같은시한편
감나무,단풍,시
지우개
깊은밤,비에젖다
오십천지품가는길
깃발

4부부치지않을편지

또,봄날은
너는누구냐
봄눈
우수경칩어름에
신록
이산移山
뗏목
처서處暑무렵
떨감
부치지않을편지
초우初虞지내고
상족암동굴에서
구절초새로쓰다
나뭇잎에쓰네
붉은해속으로

평설

출판사 서평

“비우지않고도가벼운것들이꽃으로핀다”
삶과죽음사이,허공을건너듯써내려간시의언어

문학철시인의시에는과장된슬픔이나요란한감정이없다.대신솔숲을스치는바람과빗소리처럼조용히스며드는문장들이있다.『허공에슬며시몸을밀어넣다』는삶의무게와상실의시간을지나온한시인이자연속에서다시삶을받아들이고,천천히마음을비워가는과정을담아낸시집이다.
시인은이번시집에서끊임없이자연의움직임과삶의시간을겹쳐놓는다.새는“뼛속까지비워/허공에/길을내고”,봄비는솔잎사이로스미며숲을깨운다.강물과바람,구절초와감나무같은익숙한풍경들은단순한배경이아니라삶을견디고건너가게하는존재들로시속에머문다.
특히시집곳곳에는먼저떠난아내를향한그리움과애도의마음이잔잔하게흐른다.「달무리」,「다담茶談」,「귀울음」같은시편들은함께살아온시간과사소한일상의기억들을담담하게불러낸다.그러나시인은슬픔만을붙들고머물지않는다.상실이후에도계절은다시오고,산천은바쁘게흐르며,삶은끝내다시살아내야할시간이된다.
이번시집은불교적사유와자연친화적감각또한짙게배어있다.‘피안’,‘허공’,‘만월’,‘청복’같은시어들은비우고내려놓는마음의태도를드러내면서도,어렵거나관념적으로흐르지않는다.오히려메로나,칼국수,머위,우산같은생활의사물들을통해삶의온기와그리움을더욱선명하게보여준다.
무엇보다문학철시의힘은담백함에있다.천천히읽다보면,삶과죽음사이의아득한숲길을더듬더듬걸어가는한사람의마음이조용히전해진다.그리고그길끝에서독자는어느새자신의삶과그리움또한함께돌아보게된다.

책속에서

비우지않고도가벼운것들이꽃으로핀다

새는뼛속까지비워
허공에
길을내고

커다란바퀴굴리지않아도굴러가듯이,

(중략)

무게없이떠오른물빛,솔잎에맺혀
마침내빗방울로
투닥


투닥닥
우산위에서봄비로노닌다

그소리내몸드나들며

가득채운다
산천을
깊은잠에서깨운다

낙락장송위로올만월滿月을기다려
연둣빛우산받쳐들고
바람살랑이는그늘깊은솔숲길
젖빛허공에슬며시몸을밀어넣는다

안거安居푼진달래손톱끝진홍으로붉다

_「허공에슬며시몸을밀어넣다」중에서

잊히지않는기억은감정의못에박혀있다

기쁨보다는슬픔이슬픔보다는억울함이
억울함보다는무서움이분노가
들은것보다는겪은것이

(중략)

상처를건드리는말은소금이다

아프면내게묻는다
상처에스친소금은아닌지
아파하면
저의상처를헤집은건아닌지

감염되면
작은것도큰흉터로남는다
대못으로남는다

오랜세월박혀뽑지못할못이된다

_「못과소금」중에서

월급을명세서가붙은누런봉투로받을때였습니다
시골에아파트를마련했습니다

전업주부인선녀는
월급전날
만원하나만있었으면노래했습니다

거실에서빨래를개고있었습니다
선녀가환호성을올렸습니다
남방주머니에선가천원한장나왔나봅니다

(중략)

선녀의함박웃음으로거실이환했습니다

통나무집에서생맥주한잔?

아이들은잘자고있고
선녀랑살짝아파트밖으로나와
우산하나로
아파트마당을가로질러내려갔습니다

안주안시켜도되나요?
선녀가
가게문을열고
얼굴만들인채조심스레물었습니다

반층높은뒤뜰창가자리에앉았습니다
500cc두잔팝콘한접시앞에두고
세상,넉넉하고푸근했습니다

가끔투둑투둑빗소리가창문을두드렸습니다
_「옛날옛적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