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정
저자 : 조민정
책을 읽고, 전시회를 다니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즐기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취미들은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스물셋이 되던 해, 세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미술관 투어를 알아보던 중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비용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도록 수십 권의 미술사 책을 읽고, 필요한 내용을 모아 한 권의 가이드북을 만든 뒤 여행을 떠났습니다.
직접 만든 가이드북을 들고 유럽 미술관을 여행하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미술사 강의를 찾아 들으며 배운 내용을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했고, 여행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경험과 미술관 감상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서문
이 책에 등장하는 미술관
【 1부 】 명화로 읽는 성경
수천 년을 이어 온 인류 구원의 이야기
1. 서양에서 1부터 12까지 숫자가 의미하는 것들
2. 예수의 탄생과 생애
수태고지 | 동방박사의 경배 | 이집트로의 피신 | 헤로데 왕의 영아 학살 | 예수의 세례받음 | 그리스도의 변용 | 가나의 혼인 잔치 | 성전을 정화시키는 예수
3. 예수의 수난과 부활
최후의 만찬 | 고뇌하는 그리스도 | 빌라도의 심판 | 골고타 언덕에서 이루어진 예수 십자가 처형 | 예수의 매장 | 예수의 부활
4.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성경 속 인물들
미카엘 대천사 | 사탄 루시퍼 | 최초의 남녀: 아담과 이브 | 카인과 아벨 |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 세례자 요한과 살로메 | 천국의 열쇠를 쥔 성 베드로 | 4대 복음사가: 마태오, 요한, 루카, 마르코 | 화살비 속에서 무사했던 성 세바스찬 | 사자를 길들인 성 히에로니무스 | 기타 성인들
【 2부 】 명화로 읽는 신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
1. 왜 ‘그리스 + 로마’ 신화일까?
2. 그리스 신화의 계보: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태고에 하늘과 땅이 있었다: 우라노스와 가이아, 최초의 결합 | 하늘을 거세하다: 크로노스의 반역 | 삼켜지지 않은 아이: 제우스의 탄생 | 신들의 전쟁, 티타노마키아 | 신과 거인의 전쟁, 기간토마키아
3. 올림포스 12신 소개
하늘과 질서의 신, 제우스 | 결혼 수호의 신, 헤라 | 바다의 신, 포세이돈 | 전령의 신, 헤르메스 | 지혜와 전술의 신, 아테나 | 전쟁의 신, 아레스 | 빛과 예언, 음악의 신, 아폴론 | 달의 신, 아르테미스 | 포도주와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 | 농경과 풍요의 신, 데메테르 | 저승의 신, 하데스
4. 명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신화
최초의 여성, 판도라 | 페르세포네의 납치 | 저주받은 시선, 메두사 | 거미가 된 여인, 아라크네 | 레다와 백조 | 파리스의 심판 | 자기애의 상징, 나르시소스 |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남자, 피그말리온 | 프시케와 에로스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작가의 말
부록
참고 문헌
“아는 만큼 보이고, 알수록 재미있다
그림 속 단서를 따라 떠나는 특별한 명화 여행”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방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름난 작품 앞에서 감탄하며 사진을 찍지만, 정작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알지 못한 채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수백 년 전의 인물과 사건을 그린 작품들은 배경지식이 없다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작은 단서 몇 가지만 알아도 감상은 전혀 달라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와 열두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중 배신자 유다는 누구일까? 레오나르도는 유다의 얼굴을 어둠 속에 배치하고, 손에는 돈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곁에 엎어진 소금통 역시 그를 알아보는 단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는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뿐 아니라 하느님과 천사들을 감싼 붉은 망토에도 주목할 만하다. 그 윤곽이 인간의 뇌나 심장을 닮았다는 해석을 알고 나면 익숙했던 그림도 새롭게 보인다.
이처럼 명화는 단순히 감상하는 대상을 넘어, 그림 속 요소를 하나씩 살피며 이야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즐거움을 독자에게 전한다.
성경과 신화, 서양 미술을 이해하는 두 가지 열쇠
서양 미술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다. 오랫동안 성경은 종교화의 중요한 소재였으며, 그리스·로마 신화는 신과 인간의 사랑, 욕망과 갈등을 표현하는 풍부한 이야기의 원천이 되었다. 수많은 예술가가 이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았다.
1부 ‘명화로 읽는 성경’에서는 숫자의 의미를 시작으로 예수의 탄생과 생애, 수난과 부활을 따라간다.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최후의 만찬, 십자가 처형과 부활 등 미술관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들을 소개하고, 아담과 이브, 유디트, 성 베드로와 여러 성인의 이야기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독자는 비슷해 보이는 종교화 속에서도 인물과 사건을 구별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2부 ‘명화로 읽는 신화’에서는 카오스에서 시작되는 신들의 계보와 올림포스의 주요 신들을 소개하고, 판도라와 메두사, 나르시소스, 피그말리온, 프시케와 에로스 등 명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들을 만난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가 왜 조개껍데기와 함께 그려지는지,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직접 바라보지 않고 방패에 비친 모습을 살핀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 가는 과정에서 그림 속 상징과 장면들이 하나씩 의미를 드러낸다.
도슨트 없이도 그림을 읽는 즐거움, 나만의 속도로 즐기는 미술관
이 책은 단순히 유명 작품을 나열하거나 미술사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실제 그림 앞에서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지 안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책 말미에는 성경과 신화 속 인물들의 대표적인 상징물과 그림 속 단서를 정리한 부록도 수록했다. 열쇠를 든 성인,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신, 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처럼 눈에 보이는 특징을 바탕으로 인물과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어 미술관에서 활용하기에도 좋다.
명화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미술사에 정통하거나 전문 해설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와 몇 가지 단서만 알아도 그림을 바라보는 눈은 달라진다. 이 책은 독자가 미술관에서 자신의 속도로 작품을 감상하고, 처음 보는 그림 앞에서도 스스로 이야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책 속에서
화면의 중심에는 예수가 홀로 자리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성인들의 머리 위에 관습적으로 그려지던 금빛 광배를 생략했지만, 예수 뒤로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하늘이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를 감싸도록 배치했습니다. 또한 예수의 머리와 양팔을 따라가 보면 안정된 삼각형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세 변을 가진 삼각형은 기독교 미술에서 삼위일체를 떠올리게 하는 도형으로 자주 사용되었기에, 화면 한가운데 자리한 예수의 신성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
이처럼 치밀하게 짜인 화면 속에서 배신자 유다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레오나르도는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분리하지 않고 같은 식탁에 앉혔지만, 몇 가지 단서를 남겨 두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듣고 몸을 움직이며 격렬하게 반응하는 사이, 유다는 몸을 뒤로 물리면서 얼굴이 어둠 속에 잠깁니다. 또 유다의 손에는 돈주머니가 들려 있습니다. 예수를 넘겨주는 대가로 받은 은 서른 닢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단서입니다. 그의 곁에는 소금 통이 넘어져 소금이 흩어져 있는데,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소금을 엎지르는 것을 불운의 징조로 여겼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처럼 작은 단서들을 곳곳에 남겨 관람자가 열두 제자 가운데 배신자를 찾아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 성당이나 미술관에서 〈최후의 만찬〉을 마주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배신자 유다인지 먼저 찾아보세요. 앞서 살펴본 소금과 돈주머니,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는 다른 자세와 표정은 유다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89쪽)
그런데 우리가 미술관에서 만나는 히에로니무스는 책상에 앉아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으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광야에서 고행했던 그는 성화 속에서 거친 광야에 홀로 앉아 돌로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는 모습으로도 자주 그려집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그 역시 세속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이었고, 몸에 고통을 주면 서까지 욕망을 다스리고 신앙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그의 곁에 놓인 소품에도 저마다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해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과 삶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하고, 성경과 깃펜은 평생 성서를 연구하고 번역했던 그의 학자적 면모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히에로니무스를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가 바로 사자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히에로니무스는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 주었고, 이후 사자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충직한 동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미술에서 사자는 히에로니무스를 알아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를 그린 수많은 명화 가운데, 제가 특히 좋아하는 작품 은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입니다. (중략) 채색이 채 끝나지 않은 이 미완성작은 오히려 그 덕분에 그가 성인의 근육과 뼈마디를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 줍니다. 특히 고행 중인 성인의 야윈 목 근육과 긴장된 어깨의 골격 구조는 당시 다 빈치가 이룩한 해부학 지식의 집약체라 할 만합니다. 후대의 연구가들이 “다 빈치는 피부를 그리기 전, 이미 그 밑의 근육과 신경 조직을 먼저 완성해 놓았다”며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완성되었다면 채색 아래 가려졌을 다 빈치의 치밀한 탐구 과정을, 미완성인 덕분에 오히려 우리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입니다. (178~180쪽)
미술관에서 아테나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단서는 투구와 창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상징을 더 기억해 두면 다른 여신들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여겨볼 것은 부엉이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앞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부엉이는 오래전부터 지혜를 상징했고, 자연스럽게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대표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아테나가 들고 있는 방패 아이기스도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보기만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메두사의 머리가 달려 있습니다. 아테나는 훗날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할 때 도움을 주었고, 그가 가져온 메두사의 머리를 자신의 아이기스에 달았다고 전해집니다. 투구와 창에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아이기스까지 보인다면 아 테나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아테나의 상징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화면 속 아테나는 투구를 쓰고 창과 아이기스를 든 채 켄타우로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본능과 충동을 상징합니다. 본능과 충동을 상징하는 켄타우로스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차분하게 제압하는 모습은, 이성과 절제로 본능을 다스리는 그녀의 힘을 잘 보여 줍니다.
올리브나무는 아테나를 상징하는 가장 평화로운 표식입니다. 앞서 포세이돈 이야기에서 살펴보았듯, 아테나는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올리브나무를 선물했습니다. 사람들은 바닷물을 솟게 한 포세이돈의 선물보다 열매와 기름을 제공하는 올리브나무를 선택했고, 그 결과 도시는 아테나의 이름을 따 ‘아테네’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아테나의 이름과 상징은 도시와 예술 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34~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