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렬
저자 : 윤홍렬
서울시(재무국, 문화관광국, 디자인서울총괄본부, 주택정책본부, 안전총괄실 등)·서울시 각 자치구·국민고충처리위원회(現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건축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비전공자인 저자가 이 글은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실을 파고드는 탐구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완하며
제3권에 들어가며
2-4 독재 권력의 출현 BC 88년∼BC 27년
마리우스의 욕망과 술라의 권리(BC 88년) / 플라쿠스(Flaccus)의 실패(BC 86년)와 핌브리아(Fimbria)의 죽음(BC 84년) / 아테네 최후의 날(BC 86년) / 술라의 담판(BC 85년) / 킨나의 죽음(BC 84년) / 술라의 식언(BC 81년) / 마리우스의 부관참시 / 안티스티아(Antistia)의 불행 / 술라의 잔혹성 / 스테니스의 정직함 / 술라의 역행 / 술라의 악행과 기행 / 여인을 통한 소망의 실현(BC 74년) / 크라수스(Crassus)가 받은 의심(BC 73년) / 크라수스의 축재 / 루쿨루스(Lucullus)의 위기(BC 71년) / 폰투스 왕 미트라다테스(Mithradates) 6세 가족의 최후(BC 71년) / 키케로(Cicero)의 등장(BC 70년) / 폼페이우스(Pompeius)의 군 복무 해제 신고(BC 70년) / 카이사르(Caesar)의 한탄(BC 69년) / 폼페이우스의 위선(BC 66년) / 루쿨루스의 추락(BC 66년) / 티그라네스(Tigranes) 2세의 항복(BC 66년) / 노예 신분의 변화 / 기강을 세운 재무관 카토(BC 64년) / 카틸리나(Catilina) 음모(BC 63년) / 크라수스의 성품 / 체면 깎인 폼페이우스(BC 61년) / 로마에서 루쿨루스의 삶 / 제1차 삼두 정치(트리움비라투스triumviratus)(BC 60년) / 굴욕을 당한 집정관 비불루스(Bibulus)(BC 59년) / 클로디우스의 복수(BC 58년)와 키케로의 부동산 / 헬베티족 대이동에 대한 카이사르의 판단(BC 58년) / 리스쿠스의 고백과 디비키아쿠스의 눈물(BC 58년) / 루카 회담(BC 56년)과 카르하이 전투(BC 53년) / 카이사르의 결혼과 동성애, 여성 편력 / 카이사르의 계책과 원로원의 판단(BC 55년) / 율리아의 묘지(BC 54년) / 티투리우스 사비누스(Titurius Sabinus)의 실책(BC 54년) / 카르누테스(Carnutes)족의 항거 / 갈리아(Gallia)인들의 파문 / 콤미우스(Commius)의 분노(BC 51년)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유린 / 쿠리오(Curio)의 조삼모사(BC 50년) / 루비콘강을 건너다(BC 49년 1월 10일) / 카이사르(Caesar)와 폼페이우스(Pompeius)의 클리엔스 / 쿠리오의 죽음과 누미디아 왕 유바의 판단(BC 49년) / 카이사르 진영과 폼페이우스 진영 / 폼페이우스가 받은 의심과 파르살루스(Pharsalus) 전투(BC 48년) / 코르넬리아(Cornelia)의 통곡(BC 48년) / 카이사르 군의 항명(BC 48~47년) / 폼페이우스의 최후(BC 48년) / 떠난 자에 대한 예의와 키케로의 표리부동 / 카시우스(Cassius)의 배반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BC 47년) / 키케로에 대한 카이사르의 우정(BC 47년) / 카토의 죽음(BC 46년) / 카이사르의 독전(督戰) / 카이사르의 악행과 기행 / 카이사르의 특권(BC 45년) / 안토니우스(Antonius)의 경거망동(BC 44년) /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오판(BC 44년) / 카이사르 암살의 전설 / 브루투스(Brutus)의 루비콘강 / 키케로의 필리피카(BC 44년) /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의 결혼 / 옥타비아누스의 인내와 카이사르의 평가 / 원로원의 책략(BC 43년) /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의혹과 제2차 삼두 정치(BC 43년) / 필리피 전투와 브루투스의 죽음(BC 42년) / 풀비아(Fulvia)의 분노와 브룬디시움 협약(BC 40년) / 살비디에누스(Salvidienus)의 변절(BC 40년) / 미세눔 협약(BC 39년)과 섹스투스 폼페이우스(Sextus Pompeius)의 실패 / 해임된 벤티디우스(Ventidius)(BC 38년) / 레피두스(Lepidus)의 오판(BC 36년) / 옥타비아누스의 폭로(BC 32년)와 악티움 해전(BC 31년) / 헤롯 왕의 연명책 / 승리자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시기심
부록 군사제도 │ 연대표
참고문헌
공화정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로마 내부의 탐욕과 분열이었다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화려한 번영의 이면에서는 공화정의 토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정복 전쟁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귀족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가난한 시민들의 불만은 날로 깊어졌다. 시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정치 제도는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렸으며, 국가에 충성해야 할 군대는 점차 장군 개인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변해 갔다. 마리우스와 술라의 대립으로 시작된 무력 충돌은 로마의 정치 질서를 뒤흔들었고, 이후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경쟁, 카이사르의 독재와 암살을 거치며 공화정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공화정의 수호자를 자처한 이들은
어떻게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주역이 되었는가
『로마의 선택과 결정 ③ 공화정 종식』은 로마 공화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권력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미트라다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둘러싼 마리우스와 술라의 갈등, 술라의 로마 진군과 독재, 폼페이우스의 군사적 성공과 정치적 야망, 카이사르의 루비콘강 도하와 내전, 브루투스가 가담한 카이사르 암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립과 악티움 해전까지, 각각의 사건은 공화정이라는 정치 체제가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고 끝내 무너졌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 장면이 된다.
이 책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힌 로마 말기의 정치사를 사건별로 정리하면서, 그 이면에 작용한 인간의 욕망과 판단을 함께 살핀다는 데 있다. 저자는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흐름을 설명한 뒤 주요 인물들의 행동과 그 결과를 구체적인 일화로 풀어 간다. 카이사르의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야망, 폼페이우스의 명성과 한계, 키케로의 정치적 신념, 브루투스의 결단, 옥타비아누스의 인내와 권력 장악 과정 등은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권력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보여 준다. 독자는 이들의 성공과 실패를 따라가며 개인의 선택이 국가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카이사르의 죽음으로도 되돌릴 수 없었던 공화정,
그 몰락의 역사는 오늘의 정치에도 질문을 던진다
카이사르의 암살은 로마 공화정을 되살리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그 결과는 암살자들의 기대와 달랐다. 카이사르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또 다른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고, 로마는 다시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였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협력과 대립을 반복하다 결국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었으며,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올랐다. 공화정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반복된 투쟁은 역설적으로 공화정의 종말을 앞당긴 셈이었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의 부족한 부분과 오류를 보완하면서 로마 공화정 말기의 복잡한 사건들을 더욱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권력 투쟁과 전쟁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 인물들의 관계, 군사 제도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다루어 독자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은 2천 년 전의 역사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때 국가는 어떻게 변하는가. 정치적 타협이 사라진 사회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 제도를 지키려는 명분은 언제 개인의 야망으로 변질되는가. 『로마의 선택과 결정 ③ 공화정 종식』은 로마의 마지막 공화정 시대를 통해 권력과 책임, 제도와 인간성, 정치적 선택이 공동체의 미래에 남기는 영향을 되짚어 보는 역사 교양서다.
책 속에서
국가 권력과 부를 송두리째 쥐고 있던 로마의 귀족들은 호민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어린애처럼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들의 이웃과 동포들은 굶주림과 상심으로 분노하고 있었고, 이들을 달래어 병사로 삼은 로마 장군들은 정복 전쟁을 통하여 전리품을 나누어 주고 사병화시킨 다음 이 군사력으로 독재의 기초를 닦았다.
-8쪽, 〈제3권에 들어가며〉 중에서
술라는 우연히 마리우스 집으로 피신했는데, 추격자들이 그 집을 지나친 후 마리우스의 안내로 다른 문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는 술라가 마리우스의 경쟁자임에도 마리우스가 술라에게 베푼 너그러운 호의였다.
-72쪽, 〈마리우스의 욕망과 술라의 권리〉 중에서
정치적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세력을 등에 업고 집정관 선거에 나섰다. 그는 권력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재계의 수장인 크라수스를 합류시키는 세밀함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로써 공화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모든 로마 세계에 울려 퍼졌고, 당시 로마인들은 삼두 정치를 3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이라고 표현하며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바로 그곳이 전제정의 낭떠러지였기 때문이다.
-202쪽, 〈제1차 삼두 정치(트리움비라투스)(BC 60년)〉 중에서
카이사르는 무력으로 성공한 자가 무력의 기반인 군대를 포기한다면 정적들로부터 멸시와 보복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운명을 건 모험을 시도한다면 누구나 긴장되는 법이다. 하물며 목숨을 담보로 정권 탈취를 꿈꾼다면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으랴? 대담한 영웅 카이사르도 루비콘강 앞에서 갈등했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도전하는 자의 품에 안기게 마련이다.
-282~283쪽, 〈루비콘강을 건너다(BC 49년 1월 10일)〉 중에서
기병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카이사르는 기병의 돌격력을 제지할 보병 별동 부대 2천 명을 편성하여 승리의 단초를 마련했다. 카이사르는 별동 부대에게 적의 기병을 맡게 했고, 기병과 맞설 때 투창을 던지지 말고 적의 얼굴을 향해 찌르라고 명령했다.
-304쪽,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전투 장면 중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함부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죽였으며, 비열한 속임수로 아르메니아 왕을 사로잡았고, 클레오파트라와 바람이 나서 본처인 옥타비아를 멸시하며 모질게 다루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브룬디시움 협약 때 이탈리아에서 병사들을 모집하는 것에 동의하고서도 정작 이를 방해했고, 자신의 휘하에 있다가 제대한 병사들에게 정당한 토지 보상을 해 주지 않았으며,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에게 승리한 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시킬리아를 점유하고 레피두스를 쫓아 버렸다고 분노하며 비난했다.
-440쪽, 〈옥타비아누스의 폭로와 악티움 해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