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을대표하는번역의대가가전하는,
결코AI가대체할수없는번역·언어의본질
생성형인공지능의등장이후로번역은이제너무나도손쉬운일로여겨지지요.언어의장벽이눈에띄게낮아졌다는감각속에서,더이상인간번역가가필요하지않을거라는섣부른전망도있습니다.그런데정말,기계는번역이라는수고스럽고고된작업에서인간을해방하고있는걸까요?무슨뜻인지대략알수있고적당히자연스럽게읽히기만한다면충분한걸까요?애초에‘번역’이라는행위는정확히무엇이고,언어속에서살아가는우리에게어떤의미로다가올수있을까요?
숱한노벨문학상수상작품들을영어로옮겨온,당대최고의문학번역가로평가받는이책의저자데이미언설스는이렇게말합니다.“인공지능이내직업에실존적위협이된다는주장은전혀말이안된다고생각한다”고요.한쪽에서는AI가번역이라는문제를다해결할거라고기세등등하고또한쪽에서는애초에‘완전한번역’이란불가능하다고냉소하는사이에서,저자는번역의본질을탐구하기시작합니다.번역가가실제로‘번역’이라는행위를수행할때,과연어떤일이일어나는지세심하게따져본것이지요.원문과얼마나똑같은지만을따지는기존의소모적인번역논쟁의틈에서,저자는왜번역이인간고유의언어경험을고스란히드러내는창조적행위인지끈질기게찾아나갑니다.
우리는언어를통해세계와접촉하고소통합니다.언어는“자아와세계의복합적인상호작용”그자체이지요.그런면에서한언어를다른언어로옮겨내는번역은,인간의언어경험이가장세심하게드러나는행위일수밖에없습니다.주관적이지도객관적이지도않은언어라는경험속에서,낯선언어를최대한으로받아들여새로운맥락에서표현해내는일이니까요.그런면에서번역은멀리떨어진원본을최대한비슷하게모방한텍스트를만드는일을넘어,끝없이생동하는언어의가능성을최대한으로실현하는일이됩니다.이책에서저자는번역사상의역사를되짚고구체적번역예시를제시하며,‘번역’의본질과의미로에두르지않고직진합니다.
“번역이란궁극적으로사랑의행위다”
새로운독자를향한지극히인간적인실천
저자가보기에번역행위의핵심은바로‘읽기’입니다.번역가로서읽기가중요한까닭은,번역이결코텍스트의의미를기계적으로옮기는일이아니기때문입니다.번역가가옮기는것은단어나문장의뜻이아니라‘언어의사용’자체입니다.텍스트는늘특정한언어의맥락안에놓여있지요.각언어에는사용자들에게자연스럽게여겨지는발화방식이있고,각각의텍스트는그자연스러운기준선을넘나들며특유의표현과의도를내보이며개성을구축합니다.또어떤이들을대상으로쓰였는지에따라서도그에맞춘언어가사용되고요,번역가는텍스트의특정한방향과특수한작용을읽어내고,그언어사용자체를다른언어로구현하는사람입니다.단어나문장의의미를기계적으로옮겨내는일이아닌것이지요.
그런의미에서번역가는우선‘읽는사람’입니다.번역하고자하는텍스트가해당언어의맥락에서어떻게특수하게작용하고있는지를세심하게읽어내야만,작가와텍스트의의도와방향을제대로표현해낼수있을테니까요.번역가는문장이독자에게다가와“멱살을잡고,얼굴을들이대고,말을걸고유혹하는방식”을옮깁니다.새로운언어에서기존텍스트의고유함을보존한채“원문의저자와새로운독자가서로최선으로상호작용할수있도록”노력하는것이지요.단어하나를사전적으로갈아끼우는것이아닌,번역가는소리·사용·연상·움직임까지염두하며저자와독자를연결합니다.그런의미에서저자에게번역은“정성을들이는행위,궁극적으로는사랑의행위”가됩니다.
번역가는항상‘자신이읽은텍스트’를옮깁니다.사실모든‘읽기’가그렇지요.세상에는무언가를읽는수백,수천가지방식이있으며,또텍스트를번역하는방식역시그렇습니다.모든번역문은번역자가원문을지나간고유한‘궤적’이지요.나만의방식으로읽을수밖에없다는것은,한계가아닙니다.오히려그렇기에텍스트고유의개성을세심하게파악해,생생하고구체적인개인으로서언어생태계에참여할수있는것이니까요.기계는인간의언어를모방해그럴싸한표현을만들어낼수있지만,생동하는언어를고유한관점에서‘읽고쓸수는’없습니다.이책에서저자가끈질기게탐구한번역의본질을통해인간고유의‘읽기-쓰기’를함께되새길수있기를바랍니다.
책속에서
번역은불가능하다는짜증나는주장은사실번역이가능하고늘이루어진다는빤한사실에기반하고있다.성공적번역이있을수없다면오역도있을수없다.무엇을하지못하고실패했는지말할수가없기때문이다.내고양이가야옹거린다면그건내가방금한말의오역이아니라아무상관이없는소리일뿐이다.번역이정말로불가능하다면고양이울음과다를바없을것이다.따라서오역의존재는제대로된번역이존재함을입증한다.
―<지각과제공성>
번역가는단순히거기에있는것을‘인식’하는게아니고그것을그것이아닌것으로‘바꾸는’것도아니다.암실에서더적극적으로개입하거나덜개입할수는있지만.우리가하는일은원본텍스트의세계에서돌아다니는일이다.번역가로서나는원본의제공성을받아들여그안에서거닐며특정한방식으로응답하도록끊임없이유도를받는다.우리는책을읽지만,우리가특정관점에서읽는것이며그안에서특정방식으로거니는것이다.번역은원문과같으면서또같지않다.번역은번역자가원문을지나간궤적이다.
―<지각과제공성>
단어는아무것도의미하지않는다.사람이단어로의미를나타낼뿐이다.누군가가‘좋은아침’(Goodmorning)이라고말할때‘good’은반드시‘좋다’는뜻은아니고(이를테면재앙이일어난이튿날지치고체념한상태로이말을내뱉을때),‘morn-ing’도언제나아침이아닐수있다(늦잠을잔배우자에게과하게명랑한톤으로말할때).의미는사전이실제맥락속에있다.우리는주어진상황에서어떤발화장르를활용할지자유로이선택할수있다.또그장르를‘변조’할수도있다(비꼬듯이,열렬하게,마지못해,놀라울정도로진지하게……).어떤장르(플러팅·소설)가다른장르(군사명령·업무서한)보다변조가더잘되고안되고의차이는있지만언제나개인이장르를개성적으로활용할수있는가능성이있다.“완벽히중립적인발화란있을수없다.”
―<기준선과별자리>
번역을일종의읽기로보아이르게되는뜻밖의종착점은,우리가번역하는것은텍스트가아니라는것이다.번역가는‘자신이읽은’텍스트를번역하는것이며,사람은누구나다른읽기경험을한다(다른독자의경험과다르고시대에따라서도다르다).충실성이라는이상은어떤고정성을전제(하늘에별자리가고정되어있다고보듯이)하는데반해,읽기로서의번역은번역가를다른사람과어울려살아가는사회적이며정치적인개인이자저마다취향과삶의이력과상대적으로크고작은권력을지닌존재로보고번역을이특정한삶의맥락에서이루어진행위로보게한다.번역을가장잘하는방법을정의하려는시도는영화에서배우가외투를어떻게몸에걸쳐야하는지를정의하려는것과다를바없다.
―<충실하게번역하기>
번역은읽기와연결된일종의쓰기이다.다른텍스트,원본을반드시읽어야한다.챗지피티는줍고고르고흉내내고베끼고짜깁기할수있고그런선안에서‘쓸’수있지만,읽을수는없다.그래서챗지피티는실제로존재하지않는판례를언급하고가짜글이나실제로없는문구를인용하곤한다.텍스트를공급받고그것을가지고작업할뿐실제로세계와접촉하지는못한다.다시말해서,챗지피티가대체할수없는창의성과사고같은‘본질적으로인간적인활동’에관해이야기할때,인간의고유한활동이란사실‘읽기’임을번역을통해알수있다.읽기는개별적인간이우리가공유하는현실에재하는무언가에관여하는주관적이면서동시에객관적인과정이다.
―<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