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

$14.00
저자

김영건

강원도속초에있는작은동네서점에서태어났다.1990년대서점호황기의끝자락을서점창고에서친구들과숨바꼭질하며보냈고,2000년대이후서점불황기에는서점바깥에서영화를보거나음악을들으며보냈다.서점이야어떻게되든상관없는삶을살았다.대학에서불어불문학을전공했다.r발음과『이방인』의세계에서읽고떠들고헤맸다.내삶이어느요절한불란서시인의삶처럼굳세고강렬하기를소망했지만,졸업후공연기획비정규직노동자로일했다.매일보도자료를썼고포스터와소책자를만들었으며,이따금소책자등을서울에있는몇몇독립서점에배포하며뿌듯해했다.고향을떠난지구년만에속초에돌아와아버지의서점을잇고있다.1956년에개점한서점을지금의시간에이식하고자발버둥치지만,녹슨세월앞에서자주고개를떨군다.다시고개를들면수만권의책들이일제히바라보고있다.육십일년된서점의이년차서점사람으로주육십오시간을서점에서근무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속초에서보내는편지

1사람의풍경,서점의초상
밤의서점에서
서점이뭔데요
눈길위에서휘청이며걷던사람은
시그니처북
당신의아름다운세탁소
너의세계로갈게
인증샷에담긴코닥모멘트
서점정원연대기
오늘의간판
내게는낡은비닐봉투가있었네
선별의미학
세월을품은보금자리

2읽는마음
우리가보낸첫여름
부부싸움중에죄송하지만책좀추천해주시겠어요?
한톨의마음
스스로답을찾을때까지
얼룩을지우는법
성장통의맛
무뎌졌다고믿었던마음은
목이마르지않은이유
초상화를이어붙인풍경화
평정심이라는시기

3책들이여,맡기신분들을찾아가세요
유디트헤르만을좋아하세요?
나의그림책선생님
딸을키우는아빠라면
엄마와봉선화
글쓰기를위한99개의이야기
읽고싶어도읽을수없는
맹지와고향역
설악의시인
고독이몸에미치는영향
좋은책을고르는방법

출판사 서평

작가들이사랑하는서점,속초를‘책의도시’로만든곳
동아서점운영자김영건의첫독서생활문

속초를‘닭강정’의도시에서‘책의도시’로만든곳,동네책방을넘어전국구서점이된속초동아서점운영자김영건대표의에세이가출간되었다.신간『우리는책의파도에몸을맡긴채』는전작에서서점을운영하게된이야기(『당신에게말을건다』)와고향이자정착지인속초에관한이야기(『대한민국도슨트-속초』)를단정하고도유려한문장에담아내독자들의사랑을받았던그가처음펴낸독서에세이다.
66년간3대에걸쳐운영중인동아서점은이제‘속초’하면떠오르는자동완성어가되었고,여러작가들이사랑하는서점으로이름나있다.동아서점을찾는이들은공간이주는아늑함과함께이곳만의남다른큐레이션을가장큰매력으로꼽는다.
그바탕에는수만권에달하는책을직접선별하고분류할정도로서가구석구석손길닿지않은데없는김영건대표의남다른독서이력이있다.저자는“손님이서점에없는책을주문하면덩달아읽고싶어두권을주문하고,그날의매출이목표치에이르지못하면얼른읽고싶은책을골라계산하고나서야문을닫는”,서점주인이기이전에한명의독자로서다른이들을책의세계로이끄는친절한안내자를자처한다.
바닷가관광지의오래된동네서점,낯선방문객이무수히들고나는동안묵묵히자리를지키며책의세계를방문하는이들을자기만의방식으로환대하는동시에,책을통해좋은사람이되고자부단히애쓰는저자의태도가독자들의마음에진한여운을남길것이다.‘한국에서가장아름다운책’으로선정된『곁에있어』의휘리작가가그림을그려더욱소장하고싶어지는책이다.

더잘하고싶어서,더좋은사람이되고싶어서
불꺼진서점에서써내려간각별한애정의말들

책의유용성을논하는일이민망해진시대라지만,저자는항상책에서답을찾는다.눈앞의일을더잘하고싶어서,서점에드나드는사람과소통하고그들을이해하기위해서행했던독서의기록인이책을저자는“책이한사람에게얼마나깊이영향을미칠수있는지에대한어느서점주인의자가실험보고서”라고부른다.
그래서이책에는“하루하루의발랄한기지개보다일터에서의고민과삶에서마주한곤궁,내면의성장을향한집념같은것”이촘촘히담겨있다.매일반복되는일이끝이보이지않아지쳐갈즈음,번역가의산문집을읽으며“한계앞에멈춰서면서도,그한계를넘어서완전함에도달하는것을포기하지않는마음”을(「스스로답을찾을때까지」)받아들이고,손님들의선택을받지못해늘그자리에꽂혀있는책이안쓰러울때면세탁소의정경을노래한시를읊으며잘다려진세탁소의옷처럼책들이주인을찾아떠나길기다린다(「당신의아름다운세탁소」).저자는책에서삶의해답을찾는자신을‘고리타분하다’고말하지만,성실하고우직하게자신을지켜내고서점까지도자신을닮게만들어온내공이여기에서비롯되었음을인정하지않을수없다.
이런삶의태도에는책을향한,그리고사람을향한저자의각별한애정이담겨있다.하루의영업을마감한서점에서홀로불을밝히고써내려간이책에서,저자는조심스럽게“책을읽고더조금이라도나은인간이되자고가만히다짐하는사람,책의말하는슬픔과같은슬픔을품은사람,귀기울여야겨우알아챌수있는책의자그마한목소리를들어줄수있는좋은사람”이되어보자고말을건넨다.이책은삶이라는,세상이라는파도에맞서기위해책의파도에몸을맡긴어느서점주인의고요하고도치열한‘독서생활문’이다.

“서점은책과사람들의이야기가모이는곳”
흥미로운이야기가쉼없이펼쳐지는무대에서쓰여진책

“사람들이책을읽는이유는타인의서사가궁금하고타인의이야기가궁금해서일것입니다.서점또한책을매개로한여러사람의이야기가모이는공간입니다.”
2022년서울국제도서전연사로나선김영건대표의이한마디는이책에실린글들이어떻게쓰였는지를가장잘설명해준다.하루12시간,주6일을서점이라는좁은반경에서생활하는저자는때론다른곳으로떠날수없는처지에한숨쉬기도하지만,결국자신이속한풍경을더골똘히바라봄으로써더넓은세계를만난다.서점을찾는사람들을바라보고,그들이책에대해하는말들을귀기울여듣고,가족들이건네는말을곱씹으면서그는책을읽는다.
이책속에서서점이라는공간은흥미로운이야기가쉴새없이펼쳐지는무대가된다.그곳에는자식이견뎌야할세상의무게를조금이나마덜어주고자얼어붙은눈길을걸어서점을찾아온부모의간절함이있고,마음껏뛰놀수없는서점을울분으로견뎌야했던아이가있으며,마치서점의일부가된듯한구석에서미동도없이문예지를정독하던속초의시인이있다.그리고사람과세상을더잘이해하기위해절실한시간을견뎌온저자자신이있다.그시간들을통과해온저자는이제독자에게함께책의세계로가자고,그풍경의일부가되어함께이야기를만들어가자고말을건넨다.

책속에서

그렇다.나는정말로‘불편하게’라고말했다.그단어가본래의의미이상의,뒤따라올조치를요구하는일종의강압적인언어라는것을모르지않았다.나는그뜻을알고그렇게말했다.돌아온어머니의대답은내가예상했던것과달랐다.
“서점이뭔데요.”
나는정전이일어난것처럼어리둥절해져그만아무말도잇지못했다.속으로같은문장을곱씹을뿐이었다.글쎄,서점이란정말무엇일까.-24쪽

한번은중년의여자손님이자기아들에게줄책을골라달라고했다.아들이몇살쯤되었는지묻자그는울먹거리기시작했다.아들이교도소에수감되어있다는말을더듬거리면서.마음에위로를주거나인생에도움이될만한좋은책을골라달라고했다.나는자신없이고른책몇권을권해드렸다.어두운방에있는자식을위해책을사려는부모의마음도,내가고른책이진정으로그이에게위로나도움이되리라는가능성도,그순간모두내겐까마득할뿐이었다.-30쪽

“안녕하세요.저,혹시책좀추천해주시겠어요?”
부부싸움도중졸지에책추천이라니.잠시의식이혼미해지며명쾌한대답이나오질않았다.거울을보진않았지만내표정은웃는것도우는것도아닌채괴상하게일그러졌으리라.여긴어디이고,나는누구인가.손님의입가에묻은엷은미소로보건대우리의부부싸움은조금도알아채지못한모양이었다.정신차리자.여긴서점,나는서점주인이다.말다툼엔잠시책갈피를꽂아두고,어서눈앞의신사에게책을추천해드려야했다.-100쪽

“가장좋아하는작가가누구예요?”
같은질문에목적어만바뀌었을뿐인데일말의망설임없이목소리가나온다.“유디트헤르만입니다”하고.책을묻는질문과작가를묻는질문,무엇이다른걸까.어떤책이아니라어떤작가를좋아한다는건책날개에실린사진속그‘사람’을좋아한다는뜻이기때문일까.그가말하는방식을좋아하고,세상을바라보는그만의각도를흠모한다는것.나아가어떤작가를‘가장좋아한다’고말할땐,수없이반복해읽어서그의훌륭한점도부족한점도알아차리게되지만,모든걸묵인하고서라도그를지지하게된다는뜻인지도모르겠다.-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