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대화는
왜이지경이되었을까?”
사회학자오찬호,
모욕과사이다로가득한
대한민국의망가진소통을파헤치다
베스트셀러《우리는차별에찬성합니다》이후우리사회의민낯을용감하게응시해왔던사회학자오찬호가신작《납작한말들》로돌아왔다.오찬호는작가로활동하면서목격하고체험했던한국사회의풍경들을묘사한다.빈부격차에대한지적에돌아오는“북한에가라”라는빈정거림.비정규직의처우개선요구에돌아오는“그런일하라고누가칼들고협박했냐”라는조롱.복잡한사회적맥락들이삭제되고,모욕으로상대의입을막는대한민국의망가진공론장이오찬호특유의날카로운시선속에서적나라하게드러난다.
《납작한말들》은생각과언어의간편함이어떻게타인의삶을찌그러트리는지,능력주의와생존주의가어떻게일상의언어를타고흐르며차별과폭력을공고히하는지이야기한다.젠더,인권,일상,자기계발,사회라는5가지주제를통해정리한풍경들속에는한국사회의핵심을이루는능력주의,생존주의,그리고우월함과열등함의수직구조가담겨있다.‘사이다,참교육,긁혔냐?’같은게으른언어에지친이들에게한걸음더나아간논쟁의가능성을제시하는책이다.
건강도실력이다?사회탓하지마라?
모든논쟁을가로막는능력주의신화
이책에는수많은‘납작한말들’이등장하는데그중에서도능력주의에대한맹신으로만들어진말들이다수를차지한다.‘스타강사의팩트폭격’,‘일타강사의쓴소리’등의제목이붙은유명강사들의영상은릴스와유튜브를점령한지오래다.그들은자신이오랜시간살아보니알겠다며‘모든이들의조건은같다’라는왜곡된평등론을퍼뜨리고,‘인생을대충사는인간들은실패하기마련’이라며어떤이들의삶을조롱의재료로삼는다.
능력주의가세상의모든일을설명하는절대진리로통하니구조적문제를살펴야하는영역에서조차‘개개인의능력이문제’라는잣대가등장한다.장애인특별전형이나장애인의무고용과같은최소한의해법은‘왜능력도없는사람에게자리를주냐’,‘나는노력해서여기까지왔는데이건공정하지않다’등등의말에가로막힌다.‘알파걸’과‘슈퍼맘’같은용어로여성들의성공사례를이야기하자,성차별은충분히극복할수있는문제라는인식이퍼진다.한정치인은자신이하버드대출신이라는걸항상언급하며하버드‘아래’가감히알리가없다는뉘앙스의말을하고,목동에서같은학년700명끼리치열하게등수를다퉜던자신의학창시절이‘완벽하게공정한경쟁’이었다고표현한다.
《납작한말들》은모든현상을능력차이로만설명했을때어떻게차별과고통이은폐되는지를보여주며,‘팩트폭격’과‘쓴소리’너머의세계를바라보길촉구한다.누군가의좋은성적뒤에있는계급,지역,부모,시간이라는조건을보지않는다면,고학력여성조차유리천장에막히는현실을보지않는다면,비장애인에게는당연한권리조차투쟁해야얻을수있는장애인의상황을보지않는다면모든사회적문제는‘원래그렇다’라는설명으로끝날것이기때문이다.
‘혐오할자유’라는비상식의언어
언어가왜곡되면사회가뒤로간다
2025년1월19일,서부지법이공격당한사건은민주주의에대한명백한테러였다.그런데어떤이들은‘시민불복종’과‘국민저항권’이라는단어로테러를감행한사람들을옹호하였다.본래시민불복종과국민저항권은권력에저항하면죽는상황에서인간의존엄성을위해용기를낸이들의말이었지만,민주주의에대한불복을정당화하는말로오용된것이다.
이책은평등과민주주의의뜻을담고있던말들이어떻게정반대의가치에복무하게되는지를살핀다.가령공정은시험성적에무조건승복하고모든불평등을받아들여야한다는의미로변해버렸다.자유는‘소수자를혐오할자유’와같은차별의논리와‘최저임금보다적게받을자유’같은폭주하는시장논리에동원된지오래다.
건강한논쟁이진행되려면상식과비상식을구분하고,차별과혐오의정당화를배제해야한다.그러나편견이지배하고,입체적인사유를거부하는논쟁에서는고정관념만이공허하게울려퍼진다.‘혐오할자유’같은말은애초에성립이불가능하다고이야기하면‘다양성을인정하지않는꼰대논리’라는답변이돌아온다.이책은오용된단어들이한국사회의논쟁을어떻게왜곡하는지설명하며,그단어들이본래갖고있던의미와가치를실현할수있는사회를그려본다.
납작한언어가아닌,
타인의삶을상상하는언어로
‘납작한말’은한마디로설명할수없는누군가의삶을납작하게만드는말이기도하다.이책의한에피소드에등장하는홍길동씨는회사에서언제나‘착한장애인’으로살아야했다.하지말아야할업무도쉽게거절하지못했고,상대가잘못한상황에서도책임을묻지못했다.조금만강하게이야기해도‘특별히배려받아회사다니면서왜저러냐’는다른사람들의수군거림을경험해야했기때문이다.회사홍보영상에서도,신입사원연수에서도홍길동씨는우리회사는차별이없는회사이며,나는항상감사하게생각한다는메시지를보내야했다.결국회사에서장애인용화장실을만들고,이를홍보하기위해환하게웃으며사진을찍던날그는퇴사를결심했다.비장애인들은하지않는감사인사를일상적으로해야하는것,그리고장애인이동권시위에던져지는‘홍길동씨처럼착하면주변에서다잘해주는데저사람들은왜저렇게거칠기만하냐’같은말에지쳤기때문이다.
이책은또한젠더문제를비논리적으로뒤트는말들에대해서도다룬다.가령‘여자도군대가라!’라는메시지는논리적인방식으로사용된적이거의없었다.여자도군대에가야한다는주장은대부분왜남자만차별받아야하느냐는논리를바탕으로한다.저자는남자가국가로부터차별받는다는핵심은사라지고,‘여자는왜차별안받냐!’는괴상한불만을원초적으로만족시키려는고통의평준화에어떤사회적이익이있는지를되묻는다.그리고한정치인이가사성평등을위해서는병역성평등이함께이뤄져야한다고주장했던사례를들면서,‘여자도고생해봐야남자가힘든걸알지’라는주장을진지하게인정하다보니가사노동과병역이라는전혀다른두문제를억지로연결하게된것이라고지적한다.
구태의연한언어습관속에는개개인의삶을옥죄는구조적문제가담겨있다.늘그랬는데왜갑자기화를내냐고따지기전에나의오래된사고방식을돌아봐야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납작한말들》은어제의물줄기가움직임을멈추고방향을틀어야변화가가능하다고이야기한다.자연스럽게흐르는말들을자연스럽게여기지않고,그안에담긴부조리를제대로바라볼수있도록도와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