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혼자가 아이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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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힘들었제? 그 맘 다 안다. 내도 외톨이인 줄 알았드만 아이더라.”
‘의술보다 더 큰 인술(仁術)’을 펼친 심재훈 박사의 88년 인생 드라마’
외톨이였지만 외롭지 않았던 아름다운 인생 드라마가 소설로 쓰였다.
영등포 쪽방촌 노숙자들의 희망 ‘요셉의원’에서 73세이던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3개월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날아와 ‘의술보다 더 큰 인술’을 펼친 심재훈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88세인 그는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자녀, 며느리, 사위, 손자에 이르기까지 11명의 박사를 둘 만큼 자식 농사도 잘 지어 해피엔딩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외톨이였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춘양→대구→수원→경성→부산→함안→교토→청송→의령→마산→부산→양산까지 친인척 집을 전전해, 삶의 조각을 모조리 이어 붙여도 부모와 함께한 시간은 3년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외로운 방랑자였다. 그렇게 정처 없는 떠돌이로 일제 강점기를 보낸 그가 해방 이후 선택한 곳은 학교 대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이 일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전에 입학하기까지도 방황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를 나락에서 끌어올린 것은 하나님, 마치 허허벌판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던 그가 삶의 중심을 잡고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종교의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의과대학 신입생 시절 마음먹은 의료봉사를 칠순을 넘긴 나이에 실행에 옮기면서 요셉의원에 밀려드는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자신이 일어섰던 절실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 속내를 알아요. 제가 그렇게 살았거든요.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어려울 것도 없는 거죠.”
저자

심재훈,김미조

1935년대구에서태어나성장기내내외톨이로일제강점기와6ㆍ25전쟁을겪었다.
혼자힘으로어렵게경북의대공부를마치고,1968년미국으로건너가의사로사는내내의료봉사를꿈꾸었다.삶에쫓겨미루기만하던의료봉사를2003년영등포요셉의원에서본격적으로시작했다.이후도미니카공화국,아이티등가난한카리브해연안국가로봉사를다니던중의료환경이열악해제대로된진료나처방이쉽지않았기에서양의학의한계를느꼈다.이에대한대안으로침술을생각하고,미국의한의대에들어가다시공부를시작해72세에정식으로미국한의사면허를받았다.
2015년까지요셉의원에서침술을병행한의료봉사를했고,미국에서는현재까지한인들에게무료로침술봉사를하며살고있다.

목차

프롤로그_1968년,사월의어떤이별
1부그여자들과어린방랑자
1934년,귀히의탈출기
1936년,시월의춘양
1939년,홀로남겨진아이
1940년,네엄마는가짜다
1941년,아이야,일본으로와
1942년,어린방랑자의선택

2부가시에찔려,헤매다
2008년6월,요셉의원에서시작된이야기
1945년,첫번째가출은바다를건너
2008년,내이름은재훈이
1950년,피난말고가출
2008년7월,과거에서온손님
3부흔들렸기에,흔들림을아는
1952년,미군부대의하우스보이
2011년,한발손수레에서내리지못한아이는
1953년,어른이된다는건
2015년6월,힘들었제,니맘안다
2015년8월,살아있으매

출판사 서평

“깡패가될놈을의사로맹글어놓은건하나님아이겠나?
우리병원에오는한국인환자는돈안받을란다.”

“아무리생각해도신이우리만잘묵고잘살라고내같은놈을의사로만든것같지가않다.내는나중에,더나이가들면의료봉사를할생각이었는데,이런생각이무슨소용이고.지금하지못하는일을나중에는하겠나.또나중에할수있는일이라면,지금몬할이유가머겠노.그래서말인데…….내는여사는한국인들에게진료비를받고싶지가않다.허락해도.”
“이미결정해놓고허락은무슨…….뭐…….당신말대로나중에할수있는일을지금몬할이유는또머있겠는교.하면되지.”
일제강점기,6ㆍ25전쟁을겪으며부모를잃고힘들게산사람들은참많았다.하지만심재훈처럼이혼한부모와떨어져산경험은그리흔치않았던시절이었다.엄마를싣고멀어져가는기차의기적소리가트라우마가되어,성인이되어서도기적소리가들리면고막을틀어막아야했던고통을얘기할때면지금도목이멘다고한다.엄마와살지못한그는술에찌들어밥도챙겨주지않던친척집,기생을끼고사는아버지집을전전하다가,8살어린나이에할머니가있는일본교토까지가야했다.그렇게방랑자였던사람이스스로벌어의과대학을졸업한것만으로도대단한데,1968년미국으로건너가어려운미국의사자격을취득하고1992년까지뉴저지주에서내과전문의로치열한삶을살다가이후최고연봉공무원인올랜도연방교도소의무과장을지내다의료봉사를위해조기은퇴한다.기왕이면고국,가장가난한사람들이찾는요셉의원에서봉사를시작한그는카리브해연안국가의열악한의료환경을접하면서한의학에관심을갖게된다.일흔이넘은나이에미국한의대에서침술자격을취득하여지금도한인들에게무료침술봉사를하며열정적인삶을만들어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