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돌아가셨다
나는할머니의노화를가장가까이에서목격한사람이다.
한사람이저물어감을보며오래도록이별을준비했다.
나의할머니는자녀여섯과손녀둘을자기손으로키워낸사람이다.
도시에서늙도록살다간노인이다.그리고나를이루고있는것들을만들어준사람이다.
할머니의부재를그대로바라볼수있을때,비로소할머니가남긴것들을쓸수있게되었다.
책속에서
내가기억하는할머니는외유내강슈퍼우먼이다.사람은비자발적으로도강해질수있다.할머니는이렇게고역스러운삶속에서도틈을벌려새끼가낳은새끼를아끼고사랑하기까지했다.살아있는모든어미가이런일을하고있다는것이놀랍고한편으로는슬프다.할머니는창피하지만좋은사람.허약하지만강한사람.온갖모순을다버무려놓은것같은사람이었다.그래서나는할머니가싫기도하고좋기도했다.(p22)
할머니가다칠수있다는걸미리알았다면빨래를널지말라고칭얼거리며보챘을거고,아마할머니는내말을들어주었을거다.사고나이별같은것이예고없이찾아오기마련이라는걸알게되니이미나는다자라버린후였다.그후로도할머니는예고없이자주입원했다.늙어갈수록할머니는아팠고입원하는기간도점차길어졌다.할머니가없는집에서그분이남기고간구멍은분명할머니의몸집보다거대했었다.마치싱크홀이뚫린것처럼휑한공허가집한복판에있었다.시간이지나며그구멍은할머니의작은체구만해졌다가할머니의체구보다작아졌다가,어느덧할머니가계시지않아도모든것이그대로유지될만큼작아졌다.자주아픈할머니가짐처럼느껴지다퍼뜩밀려오는자기혐오를맞닥뜨릴때,사람의빈자리가느껴지지않는것만큼슬픈일이어딨을까생각했다.그래서아무래도괜찮을줄로알았던것이고그할머니가영영떠나버린지금은….그가다시돌아올수없게되어서야할머니가남긴구멍이물리적공간이아닌나의마음에나있다는걸깨닫는다(p27)
할머니도그런것들을피하지못하고고스란히맞아들였다.우선허리때문에걷는것이더뎌졌다.할머니는성당에서새벽미사로하루를시작하곤했는데,성당까지가는길부터가무척험난했다.몇번이고멈추어주변에걸터앉을수있는곳을찾아잠시쉰뒤다시일어나천천히몸을옮겼다.누군가가부축해주어도마찬가지였다.다리를여러번움직이는것자체가무리인모양이었다.(p32)
할머니가앓아눕는빈도는해가갈수록잦아졌다.그래서누군가는이렇게말했다.“할머니가자식들보고싶으면저러시나보다.어린애들이저래.나좀쳐다봐줘,하고갑자기아프고그러는거야.할머니도어린애가되나보다.”할머니의고유한성품인다정함과자애로움이흔들림없이유지됐던건불행중다행이었다.현명함은조금씩흩어지는것같았지만,할머니는여전히따스하고다정했다.그게사라진다면할머니를더는할머니라고생각할것같지않았다.소진해가는기능처럼할머니가지녀온성품도그끝이닳아갈수있다고생각했지만,그걸입밖으로내면정말로그렇게될까봐누구에게도말하지않았다.(p34)
할머니도태어나할머니가되기까지분명소녀의시간을거쳤을것이다.할머니의옛날사진에는시대를뛰어넘는‘고움’이있었다.주름살이하나도없지만,표정또한없는그얼굴은고모와쌍둥이처럼닮아있었다.사진속할머니가말하거나움직이는것을고모에대입하여상상하면재미있었다.할머니는사랑스럽고겁많은소녀였을것이다.재미있는일이생기면높게호호호,깔깔깔웃었을테고,친구가속상해하는일에함께욕해주는든든한지원군이었을테다.어쨌든귀여웠을것같다.귀여운건시대를불문하고최고다.(p40)
할머니는할아버지밥만이라도챙겨야겠다며냉장고에있는반찬통을그대로꺼내놓고밥상을차렸다.할머니가만들지않은할머니의밥상.할아버지는다먹고난그릇을수돗물에스치듯흔들며설거지했다.두사람의식사자리가끝나면음식물찌꺼기가그대로묻어있는그릇들이선반에즐비했다.그또한노화의흔적이었고,나는강제로마주하는노화의흔적이질리고슬펐다.(p51)
할머니는거리낌없이스포츠를즐기는내모습도좋아했다.태권도학원에서몸쓰는것에익숙해지자가족에게롤러스케이트를선물받았다.롤러스케이트는당시잘나가는초등학생의필수품이었기에나는그걸탈때마다즐거웠고,할머니는그걸타는내모습을보고무척즐거워했다.롤러스케이트를신고공터를누비고있으면할머니는멀찍이서지켜보며가끔“잘탄다.”,“멋있다.”라는식으로추임새를넣으며응원해주었다.(p57)
할머니는마치주문처럼당신의소망을몇번이나속으로만되뇌었을것이다.그리고그소망은마지막으로입원하기전날까지계속된새벽기도에서도이어졌을것이다.‘손녀가큰사람되게해주세요,큰사람되게해주세요.’하고.나름대로세상을겪고회복하고일어서본지금까지도그말이내마음에새겨져있는것을보면말이다.그말앞에부끄럽지않게살고싶다는소망또한할머니가남긴것일테고.(p62)
틀니를뺀할머니입은‘옹’하는모양새로오므라졌다.유리컵에담가놓은틀니가만화속괴짜과학자의연구실에놓인실험표본처럼보였다.그걸입속에끼우는장면도신기했다.“할머니,그거다시해봐.”내가장난스럽게요청하면할머니는딱한번씩만더보여주었다.할머니는틀니때문에산해진미를먹어도그맛을모르겠다했지만,그와함께위장기능이약해져애초에그런것을맘껏먹을수없었다.몰래방문하는기술자대신전문의의도움을받아야할때가오고만것이다.(p72)
이것은모두할머니에게매순간친절하고다정하기위한나의노력이다.할머니를위한일은미루지말고지금당장해야한다고생각했다.나와할머니앞에남은시간이얼마나될지알수없으므로현재를낭비할수없었다.나는‘이세상에할머니를꼭붙들어놔주세요.’라는기도대신‘할머니가평온하게눈감게해주세요.’라는기도를한지오래였다.퉁명스럽게받아친대화가할머니와의마지막대화가된다면평생마음의짐으로남을것같았다.할머니와시간을보내고헤어질때,이제가보겠다고인사할때마다나는그얼굴을눈에담으려고노력했다.현관문을열면서말로만하는인사가아닌,눈을맞추고미소를주고받으며하는인사를해야마음이편했다.그래서한편으로나는자신있었던것같다.앙금으로남은것이하나없이할머니를훌훌잘보내줄수있을거라고.(p82)
할머니의유일한반응은‘너도힘들겠구나.’였다.감정을다정리하고그저열심히할밖엔방법이없음을받아들이며다음일을하기시작했을때였다.어떤조언도충고도없는말한마디가도리어큰위로가되었다.날카로운말을뱉고한참을후회하며자책하던차에할머니는투박한손으로내마음을어루만져주었고,나는거기에기대어한숨을돌린다음다시뚜벅뚜벅나아갈수있었다.할머니가없으면어떡하지.할머니의툭툭한손이없어지면어떡하지.할머니에게절대사라지지말아달라고빌고싶은날들이었다.(p89)
할머니는산후둘째날에가족들과함께나를보러왔다.몸을많이움직이고싶지않아서입원실침대에서사람들을맞았다.얼른이시간을끝내고한숨자고싶은생각뿐이었다.할머니는침대오른쪽으로와서내손을꼭잡았다.“내새끼,고생했다.”그말을듣는데이제껏말라있던눈가가찌르르울리더니눈물이뚝뚝떨어졌다.할머니는“고생다해놓고왜울어.”하면서같이울었다.엄마를봐도남편을봐도흐르지않던눈물이온통다쏟아졌다.갓태어난아기는상상했던것보다훨씬작고연약했다.세게안으면다칠까봐,잘못안으면품에서떨어질까봐,손끝부터팔꿈치까지모두덜덜떨렸다.아이를키우며앞으로해야할일들,다가올날들이두려웠다.그리고,끝내입밖으로꺼내지는못했지만,할머니께고맙고미안했다.쉴새없이아이를낳고기른할머니가존경스러웠다.나는할머니와같은일을겪은사람이되어버렸다.(p94~95)
할머니와대화할때는최대한밀착해앉아야했다.가까이서말해야할머니가그나마알아들었다.할머니의질문에크게손짓하며답하기시작했다.‘할머니,저밥먹었어요’를말하고싶으면손을가슴에대서‘나’를표시하고이후밥을떠먹는시늉을하며“먹었어요.”를말하는식이었다.입모양과표정도크게쓰며말했다.이요란한대화방식에는큰에너지가들었다.그러나할머니앞에서늘어놓는나의하루와동선과인상적이었던것들에관한이야기는사실그내용자체를전달하기위한것이아니었고대화에특별한정보라고할것이없었다.할머니는그저말할상대가필요한것일뿐,그게꼭나일필요도없었다.점차서로가이대화에지쳐가는것이느껴졌다.(p102)
할머니의마지막입원무렵에는몹쓸전염병이온세계를휩쓸고있었다.그탓에잦은병원면회가차단됐다.멀쩡한사람이대학병원에드나드는것이금기시되었고보호자출입카드는한장만제공됐다.늙은자식들은입원한할머니를자주볼수없었고줄줄이딸린손주들또한자기살기바쁠뿐할머니를굳이떠올리거나챙기지않았다.엄마는‘이고생은그냥나한테서끝내고싶다’라는생각이커서내가할머니면회를가지못하는것에안도했다.그러면서도한장받은출입카드를아빠와서로주고받으며열심히할머니를챙기러다녔다.(p114)
오래입원중이던할머니의얼굴은어땠을까.병원다인실에서옆자리할머니와과일을나누어먹고가벼운농담이라도주고받을수있으면좋았을것이다.그게할머니의‘원래모습’에가까웠을테니까.여기저기전화하여신세한탄을늘어놓는모습이어도괜찮았을것이다.평소에그러는분이아니니모두할머니의상황을이해해주었을테니까.다만홀로우두커니앉아있는모습만은아니길바랐다.내가오래기억하게될할머니의마지막얼굴이끝없이이어지는실내생활에숨이막혀노랗게뜬그얼굴이라면,현관문을쾅닫던나자신을용서할수없을것같았다.할머니에게미안했지만,그보다더,나를향한혐오감을걷어내고싶었다.(p126)
할머니와마주보았지만정작무슨말을해야할지잘떠오르지않았다.작별인사를하려했으나나만느끼는어떤감정을할머니에게퍼붓는꼴이될까봐,그래서할머니를더욱편찮게할까봐,그러면안될것같았다.나는할머니에게‘사랑해’라고말하는대신할머니를안거나손을꼭붙잡는식으로마음을표현하곤했었는데,그날침대에묶이다시피한할머니앞에서는차마그럴엄두가나지않았다.그렇다고지켜보는사람이많은가운데할머니께사랑한다고말하자니굉장히멋쩍을것같았다.그래서나는내가느끼는감정들을거르고걸러잘낫고나와서다시만나자고말했다.(p130)
3월의어느날꿈을꾸었다.나는혼자침대에왼쪽으로돌아누워자고있었다.돌아누운방향까지알정도로절반정도는깨어있는상태에서꿈속장면들이이어졌다.선잠을자나보다생각했다.갑자기할머니가가까운곳에오신것같다는이상한느낌이들었다.‘할머니가어떻게여기계시지?’나는할머니를여러번불렀다.“할머니!할머니!”그러자할머니가“네뒤에있어.”라고다정하게말했다.눈을감고있었으나눈앞에반짝이는은색이미지의벽이보였다.‘뭐야,우리집냉장고문같은색깔이네.’엉뚱하게그런생각을했다.할머니가뒤에있다하니돌아눕고싶었지만,몸이마음대로움직여지지않았다.아예자리에서일어나볼까했지만꿈이끝나버리면할머니의목소리도사라지니잠에서깨어서는안됐다.터널에들어간것처럼색깔있는빛들이내옆을빠르게지나갔다.할머니는어떤감각으로만남아있었다.할머니를만나면무슨말을하려고했더라.생각을정리할시간도없어나는외쳤다.“할머니,사랑해!사랑해!”잠에서깼다.불길한느낌이들어아이를안고많이울었다.(p137)
유리벽너머의할머니라도마지막으로보았으면얼마나좋았을까생각한다.나는당연히나를닮은아이를데리고함께갔을것이다.귀하게여기는존재를보이며할머니마음에온기를심어드리고싶었다.귀엽고사랑스러운것을보면머릿속이화사해지며하루를견딜힘이나니까말이다.‘아이가커가는것을한번보세요.이제는노래도잘부르고할줄아는말도많아졌어요.’수화기가없어도나의마음은유리벽너머할머니께전해졌을거다.할머니의굳은얼굴에는미소가떠올랐을것이고,그리고,할머니는분명조금더살다가셨을것이다.(p144)
구급차에는두아들이동행하고,나머지가족들은택시를타고장례식장으로이동했다.할머니의임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