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남겨진 아이들 :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해야 했던 책임에 관한 이야기

코피노, 남겨진 아이들 :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해야 했던 책임에 관한 이야기

$17.00
저자

장영진

저자:장영진
2005년1년간의단기선교사활동을계기로현재까지필리핀과연결된삶을살아오고있다.7년간루손,비사야제도,민다나오등여러지역을오가며필리핀의다양한생활환경과사회적현실을가까이에서경험했고,2013년세부에다시정착하여약2년6개월간필리핀의골목과빈민가,수상가옥밀집지역등을찾아다니며지도에지역을표시하고200건이상의사례를기록했다.
이책은단순한동정이나외부자의시선이아니라,오랜시간코피노의삶을마주하고함께해온활동가의시선으로코피노문제의구조적모순과책임을기록한결과물이다.이책이더책임있는변화의시작이되기를바란다.

목차

추천사·4
구본창선생과의인터뷰·6
프롤로그·14

PART1코피노란누구인가?
1장코피노,그단어를처음현실로본순간·25
2장숫자로보는코피노의현실·28
3장왜코피노문제가반복되는가?·31
4장가장자주만났던코피노엄마들_농어촌에서세부로온사람들·37

PART2코피노어머니들은어떤사람인가?
5장가족을놓아줄수없는‘브레드위너’·53
6장화려함을놓지못했던그녀·61
7장다른방식으로남겨진사람·70
8장같은온도로대할수없던그녀·74

PART3남겨진아이들,그리고어머니들
9장그곳의아이들이자라는방식·83
10장경제적빈곤의구조_돈이있어도무너지는사람들·88
11장교육과신분문제·99
12장‘한국인아버지’라는그림자·107

PART4아버지에게묻는다_왜책임을피하는가?
13장어머니의잘못은아버지에게면죄부가되지않는다·117
14장양육비는선의가아니다·121
15장국제양육비추심의현실·131
16장법은어디까지가능한가?·135

PART5추적과지원의기록
17장한사람에게서시작된이야기·145
18장단체운영의현실·147
19장WLK는어떻게8년간운영해왔는가?·153
20장지원으로해결될수있는가?·159
21장구조가바뀌지않으면반복된다·165

PART6우리는무엇을해야하는가?
22장개인의책임_떠나지않은아버지도있다·175
23장친자확인은끝이아니다·179
24장국가의책임·189
25장코피노활동이후의사회_WLK가하던일을잇는방식·193
26장국제협약과제도개선방향·195

에필로그·198
참고문헌·200

출판사 서평

누구의잘못이었는지는따져야한다.
하지만그책임을아이에게묻지는말아야한다.
아이에게는죄가없다.

코피노문제해결을위해서는단순한선의가아니라,지속가능한시스템이있어야한다.아이와어머니를찾고,한국인아버지를추적하고,양육비를비롯한법적책임을요구하기위해서는일할사람,비용,법적인절차를연결하는체계가필요하다.

이책은구조적모순위에놓인코피노의삶과현실,그리고필요한지원을연결하는해결책까지를강구한다.개인의삶에조금더가까이다가가는마음과사회의빈틈을발견하는데에그실마리가있다.


책속으로

양육비는좋은마음으로내는돈이아니라,아이를낳았으면응당져야하는책임에따른돈이야.그여자를믿어서주는돈이아니라아이가있으니까보내야하는돈인거지.그런데남자들은양육비를말할때마다자꾸여자이야기를해.“그여자가어떤여자인줄아느냐,돈때문에접근한여자다.나만만난것도아니다”라고해.그러다가안되면“그여자한테는못주겠고,단체에후원하겠다”라고하면서아버지의책임을후원자의선의로바꾸려고하고.이렇게돈을내고좋은사람처럼빠져나가서는안돼.단체가아이아버지는아니잖아.아이의돈은온전히아이에게로가야해.
---p.11

아이몸의상처가눈에들어왔다.제때소독을못했는지허옇게고름이차있고,벌어진자리는얼핏봐도꽤컸다.밴드라도하나붙여주면좋겠는데,왜저렇게두었을까싶었다.죽은새끼고양이와아이가자꾸겹쳐보였다.1980년대한국에서내가자랄때도저아이보다훨씬나은옷을입고,훨씬덜위태로운환경에서컸다.한국인아버지를둔아이,지호가배수로옆에서저렇게자라고있었다.
적어도상처가곪도록내버려진채자라게해서는안됐다.그때부터코피노라는말은내게다른의미가되었다.세부마볼로에서“하프꼬레아노”,“코피노”라는말을들을때마다산탄데르의지호가떠올랐다.
---p.27

우선삶의무게가달랐다.한국남성에게는돌아갈나라가있었지만,여성들은그곳에살아야했다.가족을부양해야했고,외국인관광객과닿기쉬운자리에있는경우가많았다.돈의무게도달랐다.한국인들이대수롭지않게쓰는돈이필리핀에서는며칠치생활비가되기도했다.두사람사이에서돈이생계를잇는식비,방세일부,가족에게보낼현금등으로다른의미를지녔다.
---pp.31-32

그녀는2011년4월에아이를낳았다.남자는그보다석달전인1월에사라졌고,한국에잠깐다녀오겠다고말했다고했다.먹는영양제가떨어졌고,옷도좀챙겨와야한다고했다.그리고그는영영돌아오지않았다.그때그녀는열여덟살이었다.
---p.38

나는그때까지인생이란어느정도먼곳까지생각하며사는일이라고여겼다.성적,대학,취업,결혼,차,집.그런것들을미리걱정하고계산하며사는게보통의삶이라고생각했다.하지만그곳의삶은그렇게멀리까지내다보며흐르는게아니었다.하루벌어그날먹을쌀을사는것이그곳의삶이었다.
---p.45

코피노어머니들을이해하려면형편만보아서는안됐다.당장생활이막막한사람도있었지만,그렇지않은사람도있었고이들중에는가족이라는끈을놓지못하는사람이있었다.카트린도그런엄마였다.
---p.53

"나는돈을바라지않아.나는내아들에게아버지가생긴게너무기뻐아이에게아버지가있는건돈보다소중해."
---pp.78-79

코피노남자아이들도같은골목을지나자랐다.한국인아버지의얼굴이조금남아있다고해서다른길이열리는것은아니었다.처음에는동네형옆에붙어다니는아이였다가,학교를자주빠지는아이가되고나중에는심부름을하며돈을만지는아이가되었다.
---p.85

그들에게내일의나는꽤먼곳에있는사람처럼보였다.오늘빌린돈을갚아야하는것도,오늘미룬문제를다시붙잡아야하는것도결국내일의나였다.하지만그내일의나와지금의나가단단히이어져있어보이지는않았다.내일이아직오지않았으니지금은조금밀어두어도되는사람에까웠다.
---p.94

아버지의이름을알거나아버지의여권사본또는한국주소를아는경우에도답답하긴마찬가지였다.처음에는이들도간절했다.아버지를찾아야한다고했고필요하면소송도하겠다고했다.그정도정보가있으면나도움직일수있었다.그런데막상필요한서류를준비하자고하면일이멈췄다.출생신고서를발급받고,빈칸을채우고,관공서에가야할때가오면어머니들은알겠다고했다.미안하다고도했다.곧하겠다고했다.하지만몇주가지나도서류는나오지않았다.다시물으면조금만기다려달라고했고,나중에는연락을피했다.
---p.105

나는그집에아람배와정배만있는줄알았다.그런데또다른아이들이하나둘얼굴을내밀었다.어머니는임신중이었다.이들을함께책임지고있는아버지의흔적은보이지않았다.순간아이들의아버지가모두다를지도모른다는생각이스쳤다.나는이집의사정이내가들은것보다훨씬복잡하겠다고생각했다.
집안에들어서자살림살이가제대로정리된집이아니라는게더분명해졌다.밥그릇과옷가지,아이들의물건이여기저기놓여있었다.아이들이제때씻고밥을먹는집처럼보이지않았다.어린아이들은씻지못한얼굴로문가에서서나를바라보았다.
---p.110

지난12년동안나는코피노아이들이부랑아로밀려나거나골목을떠돌며마약심부름하는일에휩쓸리는것을보았다.민재가그런길로가고있지않다는사실에안심했다.그러나내마음속에는여전히2019년,골목에서만난민재의모습이남아있다.민재의부모가어떤사람이었는지는중요하지않다.민재는본인이선택해서태어난게아니다.아이에게는죄가없다.
---p.120

영애를보며다행이라는생각이들었다.성인이되어가는코피노아이들을십수년보다보면,아이들이디서부터달라지는지알게되는때가있다.학교에다니긴다니는지의심이들때도있었고,학생답지않은옷을입고밤늦게네온사인이반짝이는도심을돌아다니는것을포스팅하거나,비싸보이는휴대폰을들고다니는모습을볼때도있었다.유독여자아이들에게서그런모습을목격할때가많았다.그러나영애는학교생활을잘하고있어보였다.미라플로도그녀가똑똑하고학업성적이우수하다고했다.이아이가방황하지않고꽃길을걸었으면좋겠다는생각이들었다.
---p.126

30만원.아이하나를키우는데넉넉한돈은아니다.하지만그전까지아버지들의책임은사실상0원이었다.생일에도,크리스마스에도,학교에돈을내야하는날에도아버지들의책임은없었다.그래서30만원이라는숫자가필요한것이다.책임이선의가아니라,의무라는기준을세웠기때문이다.실제로돈이들어오기시작한집들이있었다.몇달간어김없이입금되었다.그런데다시끊겼다.법원판결까지받아냈지만,그이상을강제할방법은마땅치않았다.
---p.137

구본창선생은그일을그냥넘기지않았다.어떻게든그를찾으려했다.그런데아버지한명을찾으려들자비슷한사연이끝도없이이어졌다.사진만한장남은경우,이름은있으나성을모르는경우,오래된메시지몇줄외에아무런단서가없는경우들이었다.한아이를위한추적은금세여러아이가공통으로마주한현실과맞닿았다.한아이를따라들어간길끝에서,같은벽앞에서있는아이들이보이기시작했다.
---p.146

필리핀어머니들에게는소송을시작할돈이없었다.변호사를선임할여유도없고,한국쪽절차를따라갈정보도부족했다.하루벌어하루먹고사는사람에게착수금을먼저내라고하는건사실상시작하지말라는말과다르지않았다.그래서WLK가먼저움직였다.먼저아이를찾고,어머니를만나고,한국인아버지의이름과사진과연락처를확인했다.그런다음출생신고서를챙기고,진술을정리하고,한국쪽로펌과연결했다.돈은나중이었다.나중에결과가나오면그안에서비용을회수했다.
---p.154

한때는코피노어머니들에게일자리를연결해주려는시도도있었다.선교단체와연계해한국인들이운영하는프랜차이즈미용실인토니앤잭키취업을알아본것이다.물품을나눠주고끝나는지원이아니라,자기손으로돈을벌수있는길을만들어보려는시도였다.어머니들에게꽤괜찮은기회라고생각했다.
---p.163

나는가끔이아이들이결국어디까지갔을지생각한다.판결문을통해한국으로들어갈가능성은생겼지만,현실에서는길이되지못했다.이런사건들을보다보니‘끝까지갔다’라는말이무엇을뜻하는지자꾸헷갈렸다.판결문이나왔다는뜻인지,실제돈이들어왔다는뜻인지,아이가한국에들어와절차를밟았다는뜻인지알수없었다.종이위에서는한걸음전진했는데현실에서는사람이계속빠져나가고있었다.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