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토끼 걱정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8 (양장)

겨울밤 토끼 걱정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8 (양장)

$10.00
Description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마흔여덟 번째 출간!
유희경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에 ‘이야기’라는 하나의 제목을 부여하며 부제로 각각의 이야기에 설명을 덧붙인다. 그는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떠올리면 골목 끝에 있던 빵집이 떠올랐다고 한다. 갖가지 빵 중에서 그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롤 케이크의 맛을 궁금해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상상하는 롤 케이크를 맛보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이야기를 의식하는 방식이다. 무수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기억을 끌어내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가닿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의 노력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유발하는 낯선 감정을 섬세하게 발견”하게 한다. 그는 ‘나’라는 주어를 앞세워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거나 숨어 있으면서 그 발견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세상에는 증명하기 힘들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유희경 시인은 선뜻 공감하기 힘든 사건을 통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간다”(김복희)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유희경 시인의 ‘이야기’는 할머니가 타래에서 실을 뽑으며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할머니의 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고, ‘나’는 할머니의 노래를 기억하며 아득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나’는 늙은 나무가 “가을이 되면 저 위태로운 각도의 잎들을 모두 벗고 중심의 방향을 드러”(「이야기─원형」)내기를 기다린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불러준 노래처럼 생경하고도 선명한 장면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시집에는 기억, 상실, 그리움의 심상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화자는 창밖을 보며 가로등 아래에 토끼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 버려진 빵 봉투 같은 토끼에 대고 “저것은 토끼가 아닙니다 저것은 토끼가 아니에요”라고 외쳐보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결국 ‘나’는 “너무 추운 것은 아닐까 토끼는 무사한 것일까” 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토끼를 걱정하게”(「이야기─겨울밤 토끼 걱정」) 된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시에서도 대부분의 “문제는 사랑 때문에” 생긴다. 그 전모를 알거나 운다고 해서 해결될 리 없는데도 화자는 운동장 한복판에 서서 기울어지는 사방을 확인하며 사건을 더듬어본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 작고. 사실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도 전모를 알 수 없는 것이다.”(「이야기─밤의 운동장」)
이야기는 불완전한 기억, 이해, 언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화자는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저기 사람이 있다고 대답하기 위해, 사실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바라는 내부의 모습을 이해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도 나의 어깨를 툭 치지 않았으므로 내게 무슨 일이냐 묻지 않았으므로”(「이야기─지독하게 추웠던 어느 밤」) 겨울밤의 간절함만이 남아 상상을 거듭하게 된다. 유희경 시인의 ‘이야기’는 꿈속 사람이 실을 푸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그것이 시름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어서 감고 감고 또 감고 있었다.”(「이야기─만단정회」) 그것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가위를 건네, 이야기를 여기서 툭, 끊어지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가 끊어진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유희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모든 사건이 시와 마주치는 순간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며 끊임없는 자기 고백을 통해 이야기와 하나 되는 경험을 전달한다. “이 시집 속 시들이 당신 어딘가를 어둑하게 만든다면, 그저 어두운 것이 아니라 하얀 점 하나를 밝혀둔다면 기쁘겠”다는 유희경 시인의 바람처럼 그의 작품은 우리의 마음에 환한 빛을 밝혀줄 것이다.
저자

유희경

1980년서울에서태어나2008년『조선일보』로등단했다.시집『오늘아침단어』『당신의자리-나무로자라는방법』『우리에게잠시신이었던』『이다음봄에우리는』이있다.〈고산문학대상신인상〉〈현대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I

이야기─원형
이야기─겨울밤토끼걱정
이야기─겨울의모자
이야기─벽돌이많은커피숍
이야기─너는단지네불행만을알뿐이다
이야기─금
이야기─피를로에대하여
이야기─우리모두우리가가진특별한모습의희생자다
이야기─차선긋는사람들
이야기─水紋
이야기─조용히,심지어아름답게무성해지고있다는것이다.
이야기─삼월밤
이야기─사월사일
이야기─손바닥만한사진한장
이야기─지독하게추웠던어느밤토끼와고슴도치─이야기
이야기─떨어진것은동전이다그것은좁은소리를따라굴러갔으며동그랗고부드럽게흔들리다가마침내멈추었다

II

이야기─사월만월
이야기─확장
이야기─밤의운동장
이야기─이야기
이야기─늙은몸
이야기─감기
이야기─꾀꼬리인형
이야기─나의오후
이야기─한밤의택시
이야기─믿음
이야기─늦여름아니면초가을
이야기─대가
이야기─그것은처음부터거기에있었다
이야기─책에파묻힌사람
이야기─반복이아닌반복이전에반복없이존재하는반복의기원같은것
긴사이─이야기
이야기─우리는그저이런저런이야기에휩쓸려다닐뿐이지요.
이야기─겨울숲의이야기들
이야기─만단정회萬端情懷
이야기─해제

에세이:이야기,나의반려伴侶

출판사 서평

유희경시집『겨울밤토끼걱정』

유희경시인은이번시집에서시에‘이야기’라는하나의제목을부여하며부제로각각의이야기에설명을덧붙인다.그는어릴적살던동네를떠올리면골목끝에있던빵집이떠올랐다고한다.갖가지빵중에서그는비밀이숨겨져있을것만같은롤케이크의맛을궁금해했지만,그는아직까지도자신이상상하는롤케이크를맛보지못했다.이것이그가이야기를의식하는방식이다.무수한이야기를상상하고기억을끌어내면서자신이하고자하는말에가닿으려는노력인것이다.그의노력은“이질적인요소들이유발하는낯선감정을섬세하게발견”하게한다.그는‘나’라는주어를앞세워이야기속에서드러나거나숨어있으면서그발견에서느꼈던감정들을“여전히이해하지못한다고,고백”한다.세상에는증명하기힘들지만아무일이없었다고말하기어려운일들이있다.유희경시인은선뜻공감하기힘든사건을통해“우리의삶이우리의이야기를계속만들어나간다”(김복희)는것을선명하게보여준다.

유희경시인의‘이야기’는할머니가타래에서실을뽑으며노래하는장면에서시작한다.할머니의실은이쪽에서저쪽으로넘어가고,‘나’는할머니의노래를기억하며아득한장면을떠올려본다.‘나’는늙은나무가“가을이되면저위태로운각도의잎들을모두벗고중심의방향을드러”(「이야기─원형」)내기를기다린다.그는어린시절할머니가불러준노래처럼생경하고도선명한장면을불러일으키며이야기의중심으로나아간다.

시집에는기억,상실,그리움의심상이시간의흐름속에서복합적인감정을만들어낸다.화자는창밖을보며가로등아래에토끼가있다고생각한다.언뜻보기에버려진빵봉투같은토끼에대고“저것은토끼가아닙니다저것은토끼가아니에요”라고외쳐보지만주위에는아무도없다.결국‘나’는“너무추운것은아닐까토끼는무사한것일까”하고,“나는어쩔수없이토끼를걱정하게”(「이야기─겨울밤토끼걱정」)된다.모든이야기가그렇듯시에서도대부분의“문제는사랑때문에”생긴다.그전모를알거나운다고해서해결될리없는데도화자는운동장한복판에서서기울어지는사방을확인하며사건을더듬어본다.그러나“사건은너무작고.사실은점점더작아지고있었다.그러니누구도전모를알수없는것이다.”(「이야기─밤의운동장」)

이야기는불완전한기억,이해,언어에서비롯되기도한다.화자는창밖에서안을들여다보며누군가가자신에게말을걸어주기를바란다.저기사람이있다고대답하기위해,사실과는다르지만자신이바라는내부의모습을이해시키기위해계속해서기다리는것이다.그러나아무리기다려도그런일은일어나지않는다.“누구도나의어깨를툭치지않았으므로내게무슨일이냐묻지않았으므로”(「이야기─지독하게추웠던어느밤」)겨울밤의간절함만이남아상상을거듭하게된다.유희경시인의‘이야기’는꿈속사람이실을푸는장면으로마무리된다.그는“그것이시름인지감탄인지알수없어서감고감고또감고있었다.”(「이야기─만단정회」)그것을차마지켜보지못하고가위를건네,이야기를여기서툭,끊어지게한다.그러나우리는이야기가끊어진곳에서부터다시시작될것임을이미알고있다.

유희경시인의이번시집은모든사건이시와마주치는순간이야기가된다는것을증명하며끊임없는자기고백을통해이야기와하나되는경험을전달한다.“이시집속시들이당신어딘가를어둑하게만든다면,그저어두운것이아니라하얀점하나를밝혀둔다면기쁘겠”다는유희경시인의바람처럼그의작품은우리의마음에환한빛을밝혀줄것이다.

핀시리즈공통테마〈에세이〉_‘반려’

[현대문학핀시리즈]시인선에붙인에세이는,시인의내면읽기와다름없는하나의독자적인장르로출발한다.이로써독자들이시를통해서만느꼈던시인의내밀한세계를좀더구체적이고심도있게다가설수있게해준다.나아가이에세이가‘공통테마’라는특별한연결고리로시인들의자유로운사유공간의외연을확장시키고자신만의고유한정서를서로다른색채로,서로다른개성으로보여주는,깊숙한내면으로의초대라는점은핀시인선에서만볼수있는매혹적인부분이다.새로운감각으로여섯시인이풀어나가는이번볼륨의에세이주제는‘반려’다.

책속에서

토끼와토끼가아닌것사이에서나는고통스러워더이상창밖을보지않으리라다짐까지했는데다시혹한의겨울밤이되면마른바람이찾아와창문이덜컹이고뼛속까지시려잠이들지못하는그런밤이찾아오면나는어쩔수없이토끼를걱정하게됩니다너무추운것은아닐까토끼는무사한것일까슬그머니창밖을내다보고싶어지는것입니다
---「이야기―겨울밤토끼걱정」중에서

여전히그치지않는창밖의눈거리에는이제사람들이보이지않는다그들은각자의모자를찾아행복할까행복할수있을까
---「이야기―겨울의모자」중에서

바에앉아나는해결되지않는문제들을내버려두고커피를마신다당신은오지않고가방은벽돌이든것처럼무겁고나는가방에서벽돌의무게를꺼내놓고싶다그러면정말가방엔벽돌이있는것같고벽돌하나만큼기울어질커피숍과기울인커피잔의애틋한사이미련없이차가운겨울바람이불어지나갔다
---「이야기―벽돌이많은커피숍」중에서

비가그쳐가고있었다부옇게밝아오는창밖을보며나는장마가끝났다는것을,다시는딱따구리를볼수없다는사실도알수있었다조용히,무성해져가던여름에있었던일이다많은것을잊었지만딱따구리와함께보낸장마는잊히지않는다어떻게잊을수있겠는가
---「이야기―조용히,심지어아름답게무성해지고있다는것이다」중에서

안다는것은무엇일까미래의침묵가능성의보류뜻밖의이해마침내그는동전의결정을배반하기로했다지쳤기때문이다어두운방에서그는생애의마지막동전을던진다
---「이야기―떨어진것은동전이다그것은좁은소리를따라굴러갔으며동그랗고부드럽게흔들리다가마침내멈추었다」중에서

밤에나는오직나,벌거벗은나,누가안다면유치하기짝이없다고놀려댈나에게만집중한다.거기에는어떠한감정도없다.그러니실패를위한틈도없다.삶도죽음도없다.잠시있다완전히사라져버리는시공간이다.그러므로완벽한이야기이다.
---「에세이:이야기,나의반려伴侶」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