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냄새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양장)

태초의 냄새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양장)

$14.00
Description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마흔아홉 번째 소설선, 김지연의 『태초의 냄새』가 출간되었다. 2023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갑자기 후각을 잃어버린 K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얽힌 타래의 근원을 찾고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기억의 냄새들이, 일상 속 주변의 모든 것이 악취로 변하는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초상을 그린 소설이다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
비극과 죽음의 끝에서 만나는 것들!

2018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김지연은 2021년과 2022년 〈젊은작가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한국 소설 문단의 기대주가 되었다. ‘2022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교보문고 선정) 2위에 랭크는 등, 단순한 기대주가 아닌, 지금, 현재 한국 문학의 가장 뜨거운 소설가가 된 작가의 이번 작품은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장편소설 『빨간 모자』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하는 첫 중편 소설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짐작과는 다르게, 넘치지 않게, 그러므로 충분하게 채워”(최진영)주는 김지연은 이번 신작을 통해서도 주변부의 삶을 사는 인물들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며 등단 이후 5년 동안 더 단단해진 그만의 문학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지연의 이번 소설은 코로나 시대라는, 모두가 처음 겪는 펜데믹 상황이 소설의 배경이다. 2020년 전 세계를 혼돈에 빠트린 코로나 바이러스는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살게 만들었다.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인류는 공포에 빠지고 서로를 반목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K는 연인 P와 여행을 앞두고 코로나에 감염된다. 동선까지 공개되던 초기에 걸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하필 여행을 앞두고 감염된 자신이 지독히 ‘운’이 없다 생각한 K는 여행을 미루려 하나 P의 뜻을 꺾지 못하고 따라 나선다. 그러나 막상 떠난 여행지의 상황은 녹록치 않고,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만난 한 아이에게 그곳 주변에서 일어난, ‘운’이 없어 벌어진 비극들에 대해 듣게 된다.
여행지에서 눈을 뜬 다음 날 아침, K는 자신의 후각에 문제가 생긴 걸 알게 된다.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던 K의 후각은 그러나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후각이 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악취뿐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악취를 P는 유령 냄새라고 지칭하고, K는 악취의 진원을 사고로 그들 곁을 갑자기 떠난 S로 한정한다. 그 이후 악취는 K에게 더는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기억과 감정을 반복해 불러오고 결국 이 모든 파국을 불러온 것이 자신의 운 없음이 아닌, 자기 자신이며 언젠가는 스스로의 냄새도 악취가 되리라 예상하게 된다.

“K의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게 마련이라고. 아니다.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슬슬 그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풀풀.”(19쪽)
저자

김지연

2018년『문학동네』로등단했으며,소설집『마음에없는소리』,장편소설『빨간모자』가있다.〈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태초의냄새/9
작품해설/114
작가의말/125

출판사 서평

어쩔수없이악취가되어버린,
불가해에압도당한인물의불가해한삶을이해하기

『태초의냄새』는후각이라는감각을경유해기억과상실,계급과혐오,이해와몰이해,직면과회피의순간들을촘촘하게그려낸다.과장하거나억지부리지않는구체적인일상의장면들은그자체로도읽는즐거움을주지만,누적되는장면들을겹쳐읽다보면끝에서발견하게될한편의소설이라는건축물의세밀한설계도를상상하게된다.그러나또한김지연의소설은매번그기대를배반한다.끝에이르러보게되는것은반듯한설계도가아니라오래들여다보아야만하는추상화다.가장일상적이며구체적인장면들로축조된이기묘한추상의세계앞에서는대상의의미보다대상을해석하고있는나의마음을점검하게된다.아마도그것이독자가김지연의소설에감정적으로오래붙들리는이유가아닐까.붙들리는이유가아닐까.
-천희란,「작품해설」중에서

월간『현대문학』이펴내는「핀소설」,그마흔아홉번째책!

「현대문학핀시리즈」는당대한국문학의가장현대적이면서도첨예한작가들을선정,월간『현대문학』지면에선보이고이것을다시단행본출간으로이어가는프로젝트이다.여기에선보이는단행본들은개별작품임과동시에여섯명이‘한시리즈’로큐레이션된것이다.현대문학은이시리즈의진지함이‘핀’이라는단어의섬세한경쾌함과아이러니하게결합되기를바란다.

「현대문학핀시리즈소설선」은월간『현대문학』이격월25일출간하는것으로,내로라하는국내최고작가들의신작을정해진날짜에만나볼수있게기획되어있다.한국출판사상최초로도입되는일종의‘샐러리북’개념이다.

현대문학×아티스트오세열

「현대문학핀시리즈」는아티스트의영혼이깃든표지작업과함께하나의특별한예술작품으로재구성된독창적인소설선,즉예술선집이되었다.각소설이그작품마다의독특한향기와그윽한예술적매혹을갖게된것은바로소설과예술,이두세계의만남이이루어낸영혼의조화로움때문일것이다.

책속에서

“근데여기왜망했을까?완공됐으면제법멋진아파트였을것같아.평수도넓고경치도좋고…….이런데서살고들싶어할텐데.”
“운이나빴겠지.”
“넌맨날운때문이라고하더라.”
“운칠기삼몰라?사람은운이거의전부야.”
---p.48

“나냄새가안나.”
“정말?다행일지도몰라.나하루제대로못씻었더니머리냄새장난아니거든.너한테서는별로안나는것같은데.”
“냄새가아예안맡아진다니까.이거코로나후유증아냐?”
그건가장대표적으로알려진코로나의후유증이긴했다.코로나가유행일때유명한캔들제품의리뷰에향이거의나지않는다는항의가무척많았다는이야기도있었다.
---p.83

K는차를마실때마다그간향으로마셔왔다는걸새삼깨달았다.그래도적응해갔다.냄새가사라진세계에적응하는것이아주어렵지는않았다.가끔무언가가타는냄새를맡지못할지도모른다는두려움이있기는했다.그래서요리를할때는가스불을떠나지않았고방안에서향초를피우던취미도그만두었다.하수구냄새나뭔가가썩어가는것같은악취를맡지않아도된다는점에서는오히려맘이편해지기도했다.혹시자신에게서냄새가나지는않을지,그런게걱정이될때도있었다.그러나뭐어쩔것인가.K는이제냄새에관한것이라면아무것도알수가없었다.
---p.89~90

후각을잃은지몇주지나지않았을때,그래도여전히곧냄새를맡게될거라고굳게믿고있었을때영상통화를하다가P가그렇게물은적이있었다.냄새가그렇게중요한가?두사람은다른모든감각에비하면냄새는그리중요하지는않다고결론을내렸다.“그치?냄새는몇위쯤될까?꼴등이려나?좋아,한번생각해보자.만약내가죽었어.근데유품두가지중에딱하나만골라서가져갈수있대.내비밀일기가든메모리카드랑내가자주입어서내냄새가밴셔츠.넌뭘가져갈래?”
---p.104

태초에냄새가있었다면그다음엔뭐가있었는데?그날꿈에는할머니가나왔다.아주옛날에K가할머니에게했던질문이되풀이되고있었다.그다음엔작은바람이,입김이라고부를만한그런바람이있었지.오물오물한입을동글게말아태초의다음순간을흉내내는할머니의숨이방안에퍼졌다.할머니의싸구려담배냄새,동생의안전화냄새,무당벌레가싸우는냄새,투명한냇가의물비린내,반려견의냄새,들개의냄새,미처떠나지못한냄새들이K의삶곳곳에희미하게배어있었다.뒤섞여버리면어쩔수없이악취가되어버리는그냄새를꿈속에서맡고또맡았다.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