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책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양장)

환희의 책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양장)

$15.00
Description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쉰두 번째 책 출간!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두 번째 소설선, 김멜라의 『환희의 책』이 출간되었다. 2023년 10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대상인 연인이 치열하게 사랑하고, 때론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삶과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그 눈동자”에 관한 한 편의 긴 우화!

저자

김멜라

저자:김멜라
1983년서울에서태어나2014년『자음과모음』으로등단했다.소설집『적어도두번』『제꿈꾸세요』,장편소설『없는층의하이쎈스』등이있으며,<젊은작가상><문지문학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비생식연구네트워크11
가을짝짓기와구애27
겨울고치안에서63
이른봄허물벗기71
늦봄허물씹어먹기86
초여름영역넓히기108
한여름빛아래에서118
늦여름그늘을찾아130
가을초입당분을모아150
그들의한살이166

작품해설190
작가의말214

출판사 서평

이들을만나기이전과이후의시간은같을수없다
우리는이제자연으로돌아간다

이여름,긴긴잠을끝내고두날개를펼치며뜨거운햇빛을만끽하고있는지금이순간,나는그들의기록앞에서알수없는떨림을느낀다.놀람과경이,신기함과아름다움,그리고이모든느낌을압도하는자연의거대한흐름!이연구물의제목에적힌‘환희’는바로이모두를아우르는말이다.(......)기록물의형태로나마그들의삶을간접경험하고마주한이계절은실로환희의여름이다.나의두날개가겨울을지나이여름에드디어태어났듯,이연구를읽는모든독자는예외없이탈피할것이다.이연구와검토서를읽는동안당신의손끝에서만져지던것은다름아닌당신의허물이다.그러므로당신이호랑과버들을만나기이전,그리고이후의시간은결코같을수없다.우리는버들의주문에따라,자연으로돌아간다.
―전승민,「작품해설」중에서

작가의말

어느한시절에저와연인이세상과동떨어져힘겨운시간을보냈다해도,우리는둘만있었던것이아니었습니다.미처알지못했을뿐,우리가웃거나아파할때우리를지켜보는무수한눈과섬세한몸들이함께였습니다.저는그분명한사실을소설로기록하고싶었습니다.그깨달음이준환희를세상에전하고싶었습니다.

책속에서

나는우리의저술가들에게말했다.
믿기어려울정도의사소함,그것이우리가부여받은필력이다.가라,톡토기답게튀어올라유한한두발이의삶을무한한갉작임으로기록하라.모기답게깊숙이침을찔러익은복숭아같은인간의외피에서비탄의적혈구를뽑아내라.거미답게단백질실을엮어우리를눌러죽이는그들의엄지와검지사이에방사형텍스트를수놓아라!
-26쪽

누선생의말씀대로지구의모든구성원에겐실상어떤이름도어울리지않는다.이름이란하나로고정할수없는우리의탈바꿈을가둬놓는두발이엄지의형식이다.우리는한시도멈춰있지않고늘다른것으로흐른다.물방개와물땅땅이는두꺼비에게로흘러구름이되고,왕풍뎅이와산누에나방은동고비에게로흘러빗방울이된다.꽃과나무는나비로날개를갖고,땅과바위는벼룩의도움으로점프한다.느낄수있겠는가?위가들리고밑이빠지는쾌감을,삼키는뜨거움과씹히는상쾌함을,구름으로응결되고빗방울로추락하는기쁨을.두발이엄지도우리처럼믿고느끼는가?
-30-31쪽

시간의풍화와침식작용에도사라지지않는불안의난반사와응어리진충격파가필자의윗입술을떨리게한다.그러나,그렇다고해도,버들의팬티검사기억과호랑의욕실구멍기억은두암컷엄지의내면진피와관절지형성에주요영향을미쳤기에필자는모른척지나칠수없다.
-104쪽

세상엔한시라도빨리자연으로돌아가야할‘자돌이’가많았으나,그러나,그렇다고해도,그런세상이라도,세상은버들을만들어호랑의곁에보내주었다.그것이호랑이이세상이증오로가득차있지만은않다고믿는이유였다.그것이호랑이버들의옷과신발을정리하며버들의욕망과버들의상처,버들의조증을이해하려는이유였다.
-107쪽

나도그렇다고,나에게도당신의그상처가있다고.그렇게입을열어자신의생채기를꺼내보이면어떤이들은버들앞에재판소를세워땅땅땅판사봉을때렸지.냉소와야멸찬웃음으로버들의진심을내동댕이쳤어.그렇게멍들고찢어져도버들은계속사람들과연결돼있고싶어했어.「왜너자신을낭비해.왜그렇게너자신을꺼내서진열해놔.」호랑은버들을이해하지못했어.버들의마음은알았지만버들의방식은위험하고어리석어보였지.하지만기절하듯쓰러져잠이든버들을보고있으면,세상의몰인정함뿐아니라자기자신과끝없이싸우고있는버들을느낄수있었어.
-110-111쪽

버들나는언제나네가전부야.네가,내,전부야.
호랑그럼됐네.내가전부니까세상이망하든말든상관없잖아.
버들나는괜찮아.난받아들였어.근데넌어떡해?
호랑내가왜?
버들넌무서워하잖아.죽는것도사는것도.그래서나랑못헤어지는거잖아.
-136쪽

여전히번개가내리치던어느밤,침대에누운호랑이버들의허벅지를끌어안았다.버들은호랑의옷속에손을넣어등을만졌고,호랑은버들의아랫배에뺨을문질렀다.두사람의팔과다리가등나무의줄기처럼엇갈려있을때,불현듯버들이고개를들어창가를봤다.기척을느끼고귀끝을움찔하는개나고양이처럼.잠시뒤창밖에서빛이번쩍했다.버들은번개가치기도전에번개의기미를알아차린것이다.고양이를어루만질때야옹하고고양이가울기전그르릉하는배속의울림을먼저느끼듯이.
저얼굴이그얼굴일까.
호랑이버들을바라봤다.
그래,이제나도괜찮아.죽음이든삶이든.그러니나에게무너져내려.
-148-149

호랑다른사람이그렇게중요해?
버들안중요해.그래도그사람들이없으면……상상해봐.

몇초의시간이흐른뒤호랑이휴대전화를바닥에탁내려놓는다.

호랑상상했어.난괜찮아.난너만있으면괜찮을것같아.
버들난아냐.

그말에호랑이버들을뚫어져라본다.입술을깨문다.욕을내뱉고싶은얼굴이다.팔다리에힘이빠지고귓속에짧은이명이울린다.버들은고요하다.네심정은이해하지만,나도그랬지만,너의선택은용납해줄수없다는표정이다.
-160-161

호랑이헛웃음을지으며양손으로얼굴을감쌌어.뭐라고설득해야할지몰라눈앞이막막했지.호랑에겐버들의마음을돌릴근거나당위가남아있지않았어.버들이자신에게어떤사랑을주든,그마음의크기가어떻든,지는사람은언제나자신이어야했으니까.그래야버들이조금이라도덜아플테니까.세상을사랑하는너는언제나세상에지게되어있고,널사랑하는나는그렇게세상에두들겨맞고돌아온너를또다시아프게할수없으니까.그게내가아는사랑,너에게배운사랑의방법이니까.
-163

신이악이라면,그악이우리의날개를만들고두발이엄지를만들었다면,나는그악에올라타겠어.번식하고살아남아나와이어진다른생명들에게내느낌을전해주고싶어.나는수레바퀴를굴리겠어.그바퀴에내몸이짓이겨진대도,우리가낳은인간이또다시같은잘못을되풀이한대도,나는또다른버들과호랑을만들고싶어.설령그게악이라해도그악은끝없이희망을품고이세상에새로운생명을만들어내니까.태어난아이들과태어날아이들과태어나지못한아이들.터무니없을정도로흥겨운나의이도약과떨림을그애들에게도전해주고싶어.그러니버들과호랑은비생식암컷엄지가아니야.나를낳았으니까.내안에서어리석은꿈을일으켰으니까.나는다시나에게서탈피하고있어
-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