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양장)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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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세 번째 소설선, 안보윤의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가 출간되었다. 2024년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일 뿐으로 존재감 없이 살았던 수영이 무작위적 폭력성을 가진 언니 수미, 이타적인 행위를 가장한 폭력성을 지닌 노견 클리닉센터 원장의 모습을 통해 선택 불가했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변화를 갖는 내용의 소설이다.

저자

안보윤

저자:안보윤
1981년인천에서태어나2005년<문학동네작가상>을받으며등단했다.소설집『비교적안녕한당신의하루』『소년7의고백』『밤은내가가질게』,중편소설『알마의숲』,장편소설『악어떼가나왔다』『오즈의닥터』『사소한문제들』『우선멈춤』『모르는척』『밤의행방』『여진』등이있으며,<자음과모음문학상><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세상모든곳의전수미9
작품해설178
작가의말192

출판사 서평

세상모든곳의‘전수영’들에게보내는헌사

‘전수미’의그림자속에서도꿋꿋하게허리를펴고자라난세상어느곳의‘전수영’들은또다시악착같이나타날것이고어떻게든고발을이어갈것이다.물론그것은쉽지않은일이다.뒤틀린세상속엔이미나자신이포함되어있는탓에지금이곳의고발자는곧자신의치부까지도들춰낼결단을동반한“나자신의고발자”가되어야하기때문이다.하지만(......)최소한“전수미가되지않기위해기를쓰고살아왔”던‘나’의끈덕진고집처럼누군가의오기와진심은다른이의용기가되어바깥으로조금씩이어질것이다.그러니이소설은선과악에대한,불가해한악의와위험한매혹으로똘똘뭉친‘전수미’에대한서사가아니다.“고작이정도의인간”,한참을고뇌하고방황한뒤에야가까스로최소한의인간을지켜낸세상모든곳의‘전수영’들에게헌사된이야기이다.
―조대한,「작품해설」중에서

저자의말

무덤이나납골당에무기한수납되고싶지않다.3년쯤지나면추모팻말을뽑아버리는수목장은없을까.죽음이후아무것도갱신할필요가없는곳.그런곳을찾아달라고하면나의언니는서운해하고많이울고내게너무한다고욕을하다끝내는찾아줄것이다.도움을청할가족이나친구가주변에있으신가요?네,있어요.틀림없이있어요.

그러시군요.
그것참다행이네요.

책속에서

나는전수미를전수미라부른다.종종수미년이라부르기도한다.수미년이또사고를쳤구나.그런대사를늘입안에담고지냈으니당연한일이다.
나는전수미때문에달력뒷면에인쇄된그림처럼살았다.백지로남겨두기뭣해서인쇄는했지만1년이다가도록누구하나뒤집어보지않는뒷면그림말이다.달력을버리기직전에나성의없이넘겨보다이내덮어버리게되는조악한것.그럼에도1월에는해돋이를,3월에는벚꽃을,9월에는보름달을채워넣는악착같은마음으로나는살았다.
-9-10쪽

엄마도도망가고싶어.아빠도머리가너무아프다.지금은언니가큰일이잖니.오늘하굣길에언니가자전거를다섯대나부쉈다는얘기들었지?경찰서에학교에수리점까지다니느라정신이하나도없다.우선언니부터해결하고너는조금만뒤에.우리수영이는똑똑하니까아빠말이해하지?엄마가믿을사람은수영이너뿐이야.알지?
-27쪽

돌이켜보면전수미는자신을해치는일만큼은단한번도하지않았다.수치와모욕을견디는건항상주변인들이었고,평안을구걸하는것도항상주변인의몫이었다.멋대로사람을휘둘러지배력을확인하는것,자신의영향력을과시하기위해일부러모든것을망쳐버리는것.전수미는엄마아빠의불안을양분삼아하루가다르게전능해진셈이었다.
-32쪽

“저쿠팡물류센터에서3년일했어요.인내심,끈기,체력,정신력,다자신있습니다.”
“그런데왜3년만했어요?”
“어깨인대가끊어져서잘렸어요.”
물류센터에서같이일했던사람들이그랬다.여긴지옥이지만여기서버텼다는건굉장한이력이될거라고.어디가서일하든쿠팡에서견뎠다는말만하면돼.인대가끊어졌어도산재처리안받았다고,아무것도묻지도따지지도않고단한번도결근하지않고매일그자리에서일만했다고말해.전부사실이었으므로나는그들의말대로했다.말하면서잠깐의아해지기는했다.그토록완벽한지옥을견뎌냈다고말해야채용될수있는곳이라면이곳도그에못지않은지옥인거아닐까.
-45-46쪽

개들은모두조용하고안전하게죽는다.
사랑하는주인의품에서,
대부분금요일밤에.
왜궁금해하지않을까.이곳의개들이왜금요일에많이죽는지.사실은여러요일이있다.자영업자의개는월요일에,회사원의개는금요일에,프리랜서의개는수요일과목요일한낮에죽는다.그것을나는안다.소란도알고야간근무하는하림도알것이다.수의사가상주하는돌봄센터니더없이명확한치료와돌봄이이루어지겠지.사실이다.우리는정말그렇게한다.하지만보호자들은진짜로모르는걸까.개들을치료하는것도개들을안락사시키는것도모두수의사의일이다.
-53-54쪽

처음엔다들저렇다.애틋해하고안타까워하고미안해하고당장이라도개를끌어안고도망칠것처럼여지를남긴채머뭇거린다.그러다곧멀어지고둔감해지고뜸해지고어디에도발그림자를남기지않는다.보호자들은기계적으로홈캠을돌려보며우리에게따진다.제대로케어하고있는거맞아요?왜우리개만이렇게우울해보여요?개가우울해하지않도록자주면회를와달라부탁하면더큰소리를낸다.도무지시간이나질않으니거금을들여센터에맡기는거잖아요.내삶이얼마나고된지알기나해요?내가지금어떤상황인지당신이짐작이나할수있겠어?기껏해야개똥오줌이나치우고있는주제에.
-74-75쪽

나는가장낮은곳에서일하고제일먼저무시당하고항상크게다쳤다.급여의상당부분을떼어먹히고손쉽게교체당했다.그래도나는매일같이노력했다.전수미와살면서유일하게배운것은그것뿐이었으니까.3월에는벚꽃을9월에는보름달을12월에는크리스마스트리를그려넣는마음으로악착같이살았다.악착같이버티는사람이제일참담하게부러지는줄도모르고.
-117쪽

반려동물도가족이라는말이세상에서제일같잖은소리라고생각해요.의사결정권도선택권도권리행사능력도없는게무슨가족인가요.개들이짖거나물건을부수면인간들은아무렇지않게개를내다버립니다.개가이웃을물기라도하면세상합당한이유를찾았다는듯안락사시켜요.그저시간이흘러개가늙었을뿐인데도인간들은억울해합니다.개한테서악취가난다고,털이빠지고피부병이생겨흉측해졌다고,돈이많이든다고화를내요.세상에그런가족이어딨습니까.”
-127쪽

끝까지비겁하구나,나는.불현듯그런생각이든다.나는상상에서조차뒤로물러서있다.보호자가알아서진실을캐내기를,직접나를응징하러이곳까지오기를다만기다리고있다.구원장에게했던거짓말이떠올라얼굴이뜨거워진다.나는고작이정도의인간이니또그런짓을할지모른다.구원장에게했던것처럼,나를찾아온보호자에게뻔뻔한얼굴을하고또그렇게말할지도모른다.
어쩔수없는일이었어요.제가어떻게짐작이나할수있었겠어요.
지금거울을보면그안에있는건나일까전수미일까.몸속이소리없이일렁인다.더듬이들이진저리치듯떨고있다.
-157쪽

잘나가던업체가갑자기망하는건으레그런이유다.반윤리적인행위와내부고발.나는구원장의돌봄센터가망하길바란다.그러니기꺼이내부고발자가될것이다.나는전수미가자신이저지른만큼의,꼭그만큼의형량을받길바란다.그러니기꺼이가족고발자가될것이다.그러고나면나는나자신의고발자도되어야한다.태풍이의병증을내가어떤식으로외면했는지,더나아가그날자작나무숲에서무슨일이있었는지,남자가내게했던일과내가남자에게했던일이무엇인지하나하나전부설명해야할것이다.
-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