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속물성의기묘한공존:
고결한정신이면에숨겨진현대인의결핍과고독에관하여
솔벨로는1915년캐나다퀘벡주의러시아계유대인이민자가정에서태어나아홉살때시카고로이주했으며,인류학과사회학,영문학을전공한후여러대학에서오랫동안인류학과문학을강의했다.유대인이라는민족성과다양한언어환경,급격하게변화해가던20세기미국사회,대학을중심으로한지식인,예술가공동체는벨로의작품세계전반에서중요한자리를차지한다.이민경험과정체성,도시성,지적자기의식,가족갈등등을미국현대문학의핵심주제로끌어올린데는개인적경험이상당한역할을했다.
이책에실린작품들에서자주눈에띄는것도화자를비롯한주요인물들의특징이다.그들은대개유대인이자미국인이며,부유하거나유명한지식인남성이다.일상적으로철학·예술·정치·역사적주제를떠올리고다양한외국어와속어를섞어농담을즐기지만,삶을제대로들여다보면가족내에문제가있거나과거에사로잡혀지내거나고독에빠져있고,진지하게고민하는데도상황은종종희극으로치닫는다.벨로는이들을통해지성을찬양하면서도동시에가차없이조롱하는데,우아한문체로생생하게빚어진이인물들은기이하면서도절묘하게현실적이다.
가령「해선안될말을한남자」는이러한거장의인간탐구가선명하게드러나는작품이다.화자인해리는현란한독설과통제되지않는‘말의과잉’으로주변의모든관계를파괴하고스스로를고립시킨음악학자다.그는자신이남들보다지적으로우월하다는오만함에사로잡혀거침없이독설을쏟아내지만,그수다스러운참회록의이면에는타인에게인정받고연결되고싶어하는현대인의지독한고독과결핍이숨어있다.벨로는지식인의화려한달변을찬양하는듯하다가도,그것이파멸을부르는순간을신랄하고유머러스하게폭로하며독자에게지적쾌감과씁쓸한여운을남긴다.
지성의허위의식과실존적불안은다른작품들에서도다채롭게변주된다.「오늘하루어땠나요?」에서는세계적석학인빅터울피와그의내연녀인카트리나의관계를통해학문적고결함뒤에감춰진인간의속물성과허영을들춰낸다.고매한정신적가치를논하는빅터울피는연인과의관계에서조차지적권위와자기중심성을내려놓지못하고,지적세계로의신분상승을꿈꾸는카트리나역시세속적인욕망으로부터자유롭지못하다.폭설로고립된공간에서벌어지는두사람의심리전은고상한학문적성취뒤에숨은인간의가식적인초상을뼈아픈코미디로승화시킨다.
“삶의가치는성공이아니라품위에있다”
인간에대한이해와현대문화에대한섬세한분석
20세기후반의수십년을다룬이단편집에는전후의혼란속에서세계최고의강대국으로떠오른역동적인국가이자인종과문화의혼성공간으로서미국사회가묘사되어있다.이민자들의나라,비슷하면서도다른종교,범죄와갈등으로얼룩진도시,물질주의와소비문화의확산속에서피상적존재가되어가는인간,확고해진냉전체제,기존의가치가해체되는이시기가작품곳곳에서다양한각도로조명된다.
이런양상은작품속에서대표적으로가족이나친척간갈등으로나타난다.가부장적이었던유대인대가족은미국사회에동화되는정도에따라극심한세대갈등을겪고,끈끈한유대를잃고흩어져서서로를속이고이용하는가하면,그럼에도여전히서로를아끼고돌보는모순이공존한다.
「사촌들」은전통적유대가해체되어가는현대사회에서도지독하리만치강한결속을요구하는유대인공동체의초상을그린다.폭력조직의일을봐주다수감된사촌을위해탄원서를써달라는요청을받은주인공의딜레마는세속화된미국사회에서도결코끊어낼수없는혈연의사슬을질문한다.이러한혈연의애증은「은접시」에서정점을찍는다.우디에게는불우했던어린시절,자신을아껴준은인의집에서은접시를훔치던아버지를막아서며처절한육탄전을벌인기억이있다.이강렬한기억은세월이흘러예순이넘은우디가아버지의임종을지키는병실로이어지는데,죽음이라는절대적단절앞에서도아버지를필사적으로붙잡으려는아들의먹먹한연민은가족이라는운명의복잡성을깊이있게드러낸다.
또한벨로는등장인물의입을빌려현대사회에서점차자리를잃어가는이념의문제를논하기도하고,전위적인탐색을시도하는당대문학과예술에대한의견도피력한다.작품곳곳에는20세기후반을뒤흔든정치가와문화예술계의거장이실명으로거론되기도하는데,이는소설적허구를넘어당대지식인사회의지형도를생생하게복원해내는효과를낳는다.이처럼천연덕스럽게시대의명암을가차없이파헤치면서도특유의냉소와위트로사회를간파하는솔벨로의통찰은“인간에대한이해와현대문화에대한섬세한분석”을보여주었다는노벨문학상수상사유를다시금떠올리게한다.
“삶은곧기억이다”
:죽음을앞두고도냉소와허무에지지않는정신
솔벨로는61세인1976년에노벨문학상을수상한후에도지치지않는창작열을보여주는데,왕성한노년은그의작품전반에서중요한문학적자양분이되었다.여러단편에서주요인물은노인이고,친밀한이들의죽음을여러차례목도했거나본인이죽을위기를간신히넘긴처지다.은퇴이후관계가축소되고고립된처지에놓인이들은육체는비록쇠약해졌음에도정신은여전히건재하다.죽음이후에무엇이남을지를고뇌하며삶의의미를집요하게찾으려하고,죽음을예감하면서도욕망을드러내며,자신의이야기를들어줄상대를끊임없이갈구한다.
이러한노년의실존적고투는작가가시간을다루는미학적장치와맞물릴때한층더깊은울림을준다.솔벨로는기억의서사를통해시간의길이를자유자재로압축하고확장하는데,일례로노년의화자가성인이된외아들에게들려주는회고담형식의「나를기억하게해줄것들」에서는대공황시절어머니의임종을둘러싼‘단하루’가고스란히담기는반면,홀로코스트의상흔과망각을다룬「벨라로사커넥션」에서는‘수십년의생애’가몇개의굵직한에피소드와장면들로요약된다.이처럼현재의서사속으로불쑥틈입하는회상들은비록이미결말이정해진과거의편린이라하더라도,노년의주인공들이오랜시간을지나다시되돌아볼때비로소삶의새로운의미를발견하게된다.
결국솔벨로가노년에이르러치열하게복원해낸이기억의서사들은단순한과거의회고에그치지않는다.그것은시대의소음과죽음이라는절대적허무에맞서는,인간이지닌고유의정신적빛과존엄성을끝끝내증명해내려는거장의필사적인분투이다.늙어감과소멸의과정을이토록품위있고생동감넘치게그려낸그의후기작들은사라져가는시간속에서우리가끝내기억하고붙잡아야할삶의본질이무엇인지를독자들에게엄숙하게묻고있다.
수록작품소개
「사촌들」(1984)
법조계출신유명인사아이자는사촌유니스로부터폭력조직의일을봐주다가형을살게된사촌탱키를위해판사에게탄원서를써달라는요청을받게된다.세상의온갖유대가해체되어가는와중에도유대가너무강한유대인가족.사촌이너무많다!
「어떤도둑질」(1989)
여성패션분야의저널리스트이자출판사임원이며네번째결혼생활중인클라라는오래전에사귄이시얼에게서받은에메랄드반지를잃어버리고엄청난상실감을느낀다.둘이합쳐일곱번의결혼이이어지는동안서로의곁을맴도는두사람의편력기.
「벨라로사커넥션」(1989)
모든것을기억하는남자가홀로코스트생존자폰스타인과의만남을회상한다.절름거리는다리로나치를피해달아나야했던폰스타인은의문의인물에게도움을받아목숨을구하는데,쇼비즈니스업계의탕아인빌리가수많은유대인을구출했다고?
「나를기억하게해줄것들」(1990)
노인이된화자가평범하게돌아가던일상에균열이생긴날을회상하면서아들에게전하는이야기.공부도그저그렇고인기도없던소년은임종이가까운병든어머니에게인사를건네고집을나서는데,평소처럼시작된하루에차마웃지못할시련이닥쳐온다.
「세인트로렌스강가에서」(1995)
죽음의문턱에서간신히살아난나이든비평가로브렉슬러가강연을위해맥길대학에가는길에고향라신에들른다.모든것이변해버린세인트로렌스강가로그가돌아온이유는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