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왕후

소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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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복수로 탄생한 성군
세종에게 보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방원은 무고한 소헌왕후의 아버지와 숙부를 잔인하게 죽이고 어머니를 천인으로 만드는 등 가문을 아작낸다. 이에 대해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함이었다는데 이 장면 낯설지 않다.
앞서 이방원은 자신에게 권력을 안겨준 아내 원경왕후를 향해 ‘잔악무도하고 교활한 여자’라 실록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모질게 저주를 퍼붓고 처가를 몰살시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개털에 불과했던 이방원은 권력을 쟁취하자 오로지 자신의 전유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원경왕후가 그를 좌시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 간 권력 싸움 결과 왕후의 친정은 초토화되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아내를 경계하고자 처가를 몰살시켰듯 고려의 명문 세족 출신으로 원경왕후에 비견되는 자질을 지닌 소헌왕후가 권력에 개입할까 보아 왕후의 친정을 박살낸 게다.
그런데 소헌왕후가 이를 좌시했을까? 세종과 혈기왕성하게 사냥터를 누비던 이방원은 54세에 졸지에 죽음을 맞이한다. 왕후가 이방원에게 30대의 과부 두 명을 후궁으로 들인 지 4개월 후다.
왕후는 이방원이 죽기 바로 직전에도 가례색을 통해 세 명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이려 했으나 이방원의 죽음으로 무산된다. 결국 왕후는 호색한 이방원의 경쟁력인 여색으로 완벽한 복수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이방원 사후 세종과 소헌왕후는 이방원을 반면교사로 삼아 권력을 주인인 백성들에게 돌려준다. 그 과정에 소헌왕후는 실질적인 내명부의 수장 그리고 세종 부재 시 용상에 오르며 굳건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다.
소헌왕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세밀하게 살피면 그녀의 업적을 유추해낼 수 있다. 관청에 소속된 여자 노비들 더하여 그 남편들에게도 출산 휴가를 주고 명나라에 바치던 처녀 조공을 멈춘 대목 등이 그러하다.
그녀의 치적 중 압권은 불교에 귀의한 일이다. 이는 조선의 국시인 유교를 정면으로 배격하는, 이방원에게 치명타를 안기는 행위로 비칠 수 있으나 그 중심에는 고단한 백성들이 있었다.
권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고 수양대군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는 등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하면 왕후 역시 성군으로 지칭해도 무방하다.
저자

황천우

1959년서울노원에서태어났다.연촌초,재현중,대광고,서울시립대영문학과를졸업하고공채를통해정당사무처에입사하여중앙사무처당직자로13여년근무했다.이후다시시험을치르고서울과학기술대문예창작과에입학하면서소설가의길을걷기시작했다.
그과정에사단법인한국미래산업연구소사무처장,사단법인세계孝문화본부홍보실장을경험한바있으나줄곧소설과칼럼집필을오로지했다.

목차

단초
겹사돈
압박
고속가례
2월16일
일상
이중사돈
탐색
징후
자중
세자빈
보위에오르다
전위사기
사은사심온
강상인옥사
운명
아버지의마음
가슴에품다
대비의유언
반전
태상왕과두과부
간계
조선,첫단추를잘못꿰다
역할분담
완급조절
부전자전
대리임금
폐빈사건
권력승계
불교에귀의

출판사 서평

원경왕후와소헌왕후,두걸출한여인의삶은나란히겹쳐진다.명문가의여식으로태어나왕의반려가되었고,이방원의손에멸문지화를당했다는점까지도닮았다.그러나그이후,두왕후의생애는전혀다른궤적을그린다.원경왕후가이방원의그늘아래서끝내총기와재능을온전히펼치지못한채한많은생을마쳤다면,이방원사후의소헌왕후는정숙한왕후를넘어왕의굳건한정치적동반자로자리매김한다.

전작《원경왕후》에이어황천우는역사적진실과소설적재미를촘촘히엮어낸다.실록에서발췌한사실과작가가예리하게포착해낸진실이맞물리며,소설은끝을향해힘차게치달아간다.탁월하고유창한문장으로황천우는《원경왕후》이후의시간을《소헌왕후》를통해증언한다.이방원의치세를두고‘조선은첫단추를잘못꿴나라’라신랄하게비판했던그는,소헌왕후의입과몸을빌려무엇이나라인지를끝내강변한다.

역사가기록하듯이방원은죽고,소헌왕후는그보다오래살아남는다.단단하고옹골찬정숙한낭자는복수보다더큰비원을끝내이루어낸다.그녀의마지막말에서읽을수있듯,조선의첫단추는,비로소이지점에서제자리를찾았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