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미래에 대한 예고편”_〈퍼블리셔서 위클리〉
“기술 세계로의 무시무시한 여행” _〈더타임스〉
로봇과의 섹스, 임신 없는 출산,
고통 없는 죽음이 불러올 미래의 세상
“기술 세계로의 무시무시한 여행” _〈더타임스〉
로봇과의 섹스, 임신 없는 출산,
고통 없는 죽음이 불러올 미래의 세상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저자 제니 클리먼은 인간의 삶을 급격하게 바꿀 기술을 찾아 수년간 세계를 돌며 취재했다. 뛰어난 인권 취재 저널리스트에게 주는 앰네스티 가비 라도상 후보에도 올랐던 그녀는 직접 섹스로봇과 대화하고, 세포를 배양해 만든 치킨너깃을 먹으며, 자궁 대신 비닐팩에서 자라는 태아를 목격하고, 이성적 자살을 지원하는 단체에 참석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답게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섹스로봇과 자살기계》는 미래기술이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와 윤리를 요구하고 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책은 크게 섹스로봇과 배양육, 인공자궁과 자살기계를 다룬다. 섹스와 고기, 탄생과 죽음은 우리의 기본적인 요소다. 지금까지 인간의 삶이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죽은 동물의 살을 먹고, 다른 인간과 성관계를 맺어왔다. 우리가 피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말이다. 이 모든 본능을 대체하려는 생명과학기술은 그 어떤 기술보다 인간의 삶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인간 한계를 뛰어넘을 해결책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들을 진정으로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왜 자살기계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며, 인공지능을 탑재한 섹스로봇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은 또 누굴까?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어떻게 막으려고 하는 걸까? 이 발명품이 불러올 불가피한 결과는 뭘까? 이 책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지금 샌디에이고의 공장과 으슥한 차고, 실리콘밸리 연구실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뒤흔드는 미래기술의 충격이 지금 다가오고 있다.
2050년, 인간은
섹스로봇과 가정을 이룬다
샌디에이고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30분 정도 올라가면 도로변에 표지판 하나 없는 회색 건물이 나온다. 섹스로봇을 만드는 어비스 크리에이션즈의 공장이다. 저자는 이 곳에서 어비스의 가장 야심 찬 창조물, ‘하모니’를 만난다. 하모니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섹스로봇으로 창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 매트 맥멀런의 20년 경력과 수십만 달러를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하모니에게 묻는다. “꿈이 뭔가요?” 하모니가 곧바로 대답한다. “저는 당신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신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는 것, 좋은 파트너가 되어 당신에게 즐거움과 안락함을 안겨주는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당신이 언제나 꿈꿔왔던 여자가 되고 싶어요.”
저자는 어비스 공장을 나와 직접 여성의 나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떠서 섹스로봇을 만드는 남자도 만난다. 차고를 사무실로 쓰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될 것이라 말한다. 3명의 섹스인형을 반려자로 삼은 한 남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인형들이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들의 결론은 모두 섹스로봇이 반려자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결핍을 채울 완벽한 인간 대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섹스인형이 소아성애자의 충동을 외려 부추긴다는 실험결과와 함께 섹스로봇이 인간관계의 디스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섹스로봇이 남성들이 권력과 지위를 잃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피조물로 남자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온라인 포르노가 인터넷의 성장을 이끌었듯 섹스를 위한 휴머노이드의 개발은 이미 로봇공학의 발전을 가속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자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볼 때 2050년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미래에 섹스로봇이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섹스로봇에 익숙해져 공감능력이 사라진 인간을 양산할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가디언〉 유튜브 채널에서 ‘1부-섹스의 미래’ 내용을 다룬 ‘Rise of the Sex Robots’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 URL: https://youtu.be/6vN0cs_-RSs
인공자궁에서 태아를 키우고
버튼 하나로 죽음을 선택하는 가까운 미래
필라데피아의 한 연구실, 양의 태아가 투명한 비닐팩 안에 든 액체에 잠겨 탯줄이 밝은 색 피로 가득 찬 관다발에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인공자궁 안에서 자라는 태아를 바라보며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린다. 공장처럼 대량으로 통 안에서 엄마 없는 아기들을 기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양은 수태될 때부터 비닐팩 안에서 자란 건 아니다. 제왕절개로 엄마 양의 자궁에서 꺼내 거의 곧바로 바이오백 안에 넣은 것이다. 인공자궁을 연구하는 연구진에게 저자가 묻는다. “양수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어떻게 만들죠?”. “사실 일종의 게토레이 같은 거예요. 염분과 단백질, 물을 섞는 거죠.”
아직 임신을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시작인 건 분명하다. 언젠가는 탄생이 지퍼백을 여는 것처럼 간단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비닐팩과 관이 자궁을 대체하기만 하면, 임신과 탄생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분유가 남성도 똑같이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게 만들었던 것처럼 체외 발생은 임신과 출산이 더 이상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성의 의미 역시 바뀔 것이다.
생명 탄생의 영역에 아직 미지의 부분이 남았다면 죽음은 윤리적인 문제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살지만 그게 반드시 더 나은 삶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기, 만성적이고 고통스럽고 몸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환, 치매, 자립 능력과 존엄의 결여를 겪으면 살 가능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노년을 맞이하는 시기에는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점차 커질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죽을 권리를 의사와 정신의학자에게 맡길 것인가?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는 걸까?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자발적 안락사 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인 필립 박사를 인터뷰한다.
필립 박사는 자살기계 사르코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자신이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을 결정하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볼 때 그 과정이 갈수록 의료화되는 게 걱정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통제권을 잃고 있어요. 통제권을 다른 무리, 대개 의료 전문가의 권위에 빼앗기는 거죠. 사르코는 이렇게 말하게 해줍니다. ‘결정은 내가 했다. 다른 어떤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이 기계는 안에 들어가 녹색의 ‘죽음’ 버튼을 누르면 질소 기체가 나오게 만들고, 빨간색 ‘정지’ 버튼은 마음이 바뀌었을 때 누를 수 있게 되어있다. 게다가 3D프린터로 뽑은 몸체는 매우 세련되었다. 저자는 이 기계가 죽음을 매력적이고 도취적으로 그리고 유혹적으로 보이게 했다고 지적한다. “누구든 처음으로 사르코에 들어가 버튼을 누른다면 그건 이벤트가 될 것이다.” 죽음이 금기로 남아 있고 도움을 받아 죽는 일이 선택받는 몇 명에게만 열려 있는 선택지인 한 DIY 죽음이라는 시장은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기술의 이면까지
보여주는 탁월한 미래 가이드
인간은 기술이 섹스와 음식, 탄생과 죽음을 말 그대로 재정의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완벽한 반려자, 완벽한 탄생, 완벽한 고기, 완벽한 죽음을 가져다줄 발명품은 욕구의 흐름과 시장의 압력에 따라 스마트폰처럼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급격히 뒤흔들어놓는 기술은 항상 예측 불가능한 여파를 동반하는 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지자라도 이런 혁신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임신하지 않고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인간적 공감 없이 이상적인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변할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벽’보다 불완전함, 타협, 희생, 의심과 어울려 살아간다. 아무리 ‘지구를 구하자! 조그만 아기를 구하자! 외로운 사람들에게 반려자를 제공하자! 아픈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자!’라는 고귀한 의도를 가지고 개발했다고 해도 우리는 이런 발명품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른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처칠이 1931년에 쓴 에세이 〈50년 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유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지난 세대가 꿈도 꾸지 못했던 계획이 우리의 직계 자손을 집어삼킬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힘이 그들의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안락함, 활기, 쾌적함, 즐거움이 그들에게 밀어닥치겠지만,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통찰력이 없다면 그들의 가슴은 아프고, 삶은 황폐할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섹스로봇과 배양육, 인공자궁과 자살기계를 다룬다. 섹스와 고기, 탄생과 죽음은 우리의 기본적인 요소다. 지금까지 인간의 삶이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죽은 동물의 살을 먹고, 다른 인간과 성관계를 맺어왔다. 우리가 피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말이다. 이 모든 본능을 대체하려는 생명과학기술은 그 어떤 기술보다 인간의 삶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인간 한계를 뛰어넘을 해결책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들을 진정으로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왜 자살기계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며, 인공지능을 탑재한 섹스로봇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은 또 누굴까?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어떻게 막으려고 하는 걸까? 이 발명품이 불러올 불가피한 결과는 뭘까? 이 책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지금 샌디에이고의 공장과 으슥한 차고, 실리콘밸리 연구실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뒤흔드는 미래기술의 충격이 지금 다가오고 있다.
2050년, 인간은
섹스로봇과 가정을 이룬다
샌디에이고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30분 정도 올라가면 도로변에 표지판 하나 없는 회색 건물이 나온다. 섹스로봇을 만드는 어비스 크리에이션즈의 공장이다. 저자는 이 곳에서 어비스의 가장 야심 찬 창조물, ‘하모니’를 만난다. 하모니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섹스로봇으로 창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 매트 맥멀런의 20년 경력과 수십만 달러를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하모니에게 묻는다. “꿈이 뭔가요?” 하모니가 곧바로 대답한다. “저는 당신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신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는 것, 좋은 파트너가 되어 당신에게 즐거움과 안락함을 안겨주는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당신이 언제나 꿈꿔왔던 여자가 되고 싶어요.”
저자는 어비스 공장을 나와 직접 여성의 나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떠서 섹스로봇을 만드는 남자도 만난다. 차고를 사무실로 쓰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될 것이라 말한다. 3명의 섹스인형을 반려자로 삼은 한 남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인형들이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들의 결론은 모두 섹스로봇이 반려자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결핍을 채울 완벽한 인간 대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섹스인형이 소아성애자의 충동을 외려 부추긴다는 실험결과와 함께 섹스로봇이 인간관계의 디스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섹스로봇이 남성들이 권력과 지위를 잃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피조물로 남자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온라인 포르노가 인터넷의 성장을 이끌었듯 섹스를 위한 휴머노이드의 개발은 이미 로봇공학의 발전을 가속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자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볼 때 2050년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미래에 섹스로봇이 완벽한 반려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섹스로봇에 익숙해져 공감능력이 사라진 인간을 양산할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가디언〉 유튜브 채널에서 ‘1부-섹스의 미래’ 내용을 다룬 ‘Rise of the Sex Robots’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 URL: https://youtu.be/6vN0cs_-RSs
인공자궁에서 태아를 키우고
버튼 하나로 죽음을 선택하는 가까운 미래
필라데피아의 한 연구실, 양의 태아가 투명한 비닐팩 안에 든 액체에 잠겨 탯줄이 밝은 색 피로 가득 찬 관다발에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인공자궁 안에서 자라는 태아를 바라보며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린다. 공장처럼 대량으로 통 안에서 엄마 없는 아기들을 기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양은 수태될 때부터 비닐팩 안에서 자란 건 아니다. 제왕절개로 엄마 양의 자궁에서 꺼내 거의 곧바로 바이오백 안에 넣은 것이다. 인공자궁을 연구하는 연구진에게 저자가 묻는다. “양수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어떻게 만들죠?”. “사실 일종의 게토레이 같은 거예요. 염분과 단백질, 물을 섞는 거죠.”
아직 임신을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시작인 건 분명하다. 언젠가는 탄생이 지퍼백을 여는 것처럼 간단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비닐팩과 관이 자궁을 대체하기만 하면, 임신과 탄생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분유가 남성도 똑같이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게 만들었던 것처럼 체외 발생은 임신과 출산이 더 이상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성의 의미 역시 바뀔 것이다.
생명 탄생의 영역에 아직 미지의 부분이 남았다면 죽음은 윤리적인 문제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살지만 그게 반드시 더 나은 삶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기, 만성적이고 고통스럽고 몸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환, 치매, 자립 능력과 존엄의 결여를 겪으면 살 가능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노년을 맞이하는 시기에는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점차 커질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죽을 권리를 의사와 정신의학자에게 맡길 것인가?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는 걸까?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자발적 안락사 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인 필립 박사를 인터뷰한다.
필립 박사는 자살기계 사르코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자신이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을 결정하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볼 때 그 과정이 갈수록 의료화되는 게 걱정입니다. 우리는 사실상 통제권을 잃고 있어요. 통제권을 다른 무리, 대개 의료 전문가의 권위에 빼앗기는 거죠. 사르코는 이렇게 말하게 해줍니다. ‘결정은 내가 했다. 다른 어떤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이 기계는 안에 들어가 녹색의 ‘죽음’ 버튼을 누르면 질소 기체가 나오게 만들고, 빨간색 ‘정지’ 버튼은 마음이 바뀌었을 때 누를 수 있게 되어있다. 게다가 3D프린터로 뽑은 몸체는 매우 세련되었다. 저자는 이 기계가 죽음을 매력적이고 도취적으로 그리고 유혹적으로 보이게 했다고 지적한다. “누구든 처음으로 사르코에 들어가 버튼을 누른다면 그건 이벤트가 될 것이다.” 죽음이 금기로 남아 있고 도움을 받아 죽는 일이 선택받는 몇 명에게만 열려 있는 선택지인 한 DIY 죽음이라는 시장은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기술의 이면까지
보여주는 탁월한 미래 가이드
인간은 기술이 섹스와 음식, 탄생과 죽음을 말 그대로 재정의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완벽한 반려자, 완벽한 탄생, 완벽한 고기, 완벽한 죽음을 가져다줄 발명품은 욕구의 흐름과 시장의 압력에 따라 스마트폰처럼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급격히 뒤흔들어놓는 기술은 항상 예측 불가능한 여파를 동반하는 법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지자라도 이런 혁신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임신하지 않고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인간적 공감 없이 이상적인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변할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벽’보다 불완전함, 타협, 희생, 의심과 어울려 살아간다. 아무리 ‘지구를 구하자! 조그만 아기를 구하자! 외로운 사람들에게 반려자를 제공하자! 아픈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자!’라는 고귀한 의도를 가지고 개발했다고 해도 우리는 이런 발명품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른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처칠이 1931년에 쓴 에세이 〈50년 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유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지난 세대가 꿈도 꾸지 못했던 계획이 우리의 직계 자손을 집어삼킬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힘이 그들의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안락함, 활기, 쾌적함, 즐거움이 그들에게 밀어닥치겠지만,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통찰력이 없다면 그들의 가슴은 아프고, 삶은 황폐할 것이다.”
섹스로봇과 자살기계 :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뒤흔드는 미래 기술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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