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책이나마찬가지겠지만이책도저혼자써나간것은아닙니다.글씨를새겼다고제가오롯이썼다는것은어리숙한표현일것입니다.듣고보고읽기를거듭한결과이겠지만그것만으로책을만들기에는역부족이었습니다.제가언어의마술사도아니고언어의천재성을가지고태어나지도않았습니다.그렇다고스마트하고말쑥한인격이나외모를지닌것은,더더욱아닙니다.그러니저혼자정지용선생님곁에가까이가기에는힘도능력도버거웠습니다.이때구술해주시는분들이계셨습니다.몇몇은유명을달리하시고또어떤분은노환으로고생하시기도합니다.그러나그분들이계실때기록해두어야만하였습니다.한가지라도더들어야하였고한줄이라도더읽어야만하였습니다.그것만이제‘사명을제대로하는것’이라생각하였기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이러한일련의과정이나행동은그렇게거창한것은아니었습니다.그러나시간이많이필요하였기에남들과어울릴시간이줄어들었습니다.그것은외로움과직결되기도하였습니다.철저히혼자공부하는법을깨달아야만하였습니다.외로움,그것은견디기어렵다지만그만그만잘지나가주었습니다.지극히외롭다는것.그것은또다른무엇인가에몰두하는데,도움이되었습니다.하나를잃고하나를얻는지극히평범한법칙을깨닫게되었습니다.이것또한고마운일입니다.
정지용선생님도외로움에면역이좀되셨던가요?아니면치유가되셨나요?일제강점기라는다리를건너고좌우익의소용돌이속에서지독한고독을견뎌내셨던것말입니다.
뭐특별할것도,그렇다고훌륭하지도않은그야말로“아무렇지도않”을것만같은글을책으로만든다니좋기도하지만,떨리기도하였습니다.종잇값은할는지,누군가에게읽히는책은될는지,걱정이많습니다.
??정지용만나러가는길두번째이야기는정지용의생애나문학또는그의주변이야기를정리하여신문에실었던것과,틈틈이써모은글입니다.부족하겠지만이러한이야기가누군가의가슴속에서생동하기를바랄뿐입니다.
책속에서
「日本の蒲團は重い」(「일본의이불은무겁다」).
다소생경하겠지만,식민지지식인의애끓는비애를적은정지용의산문이다.그는1926년일본인을대상으로한잡지『自由詩人』4호에「日本の蒲團は重い」를발표한다.
당시정지용은한국어로식민지지식인의비애나조선에대한애타는그리움을노래하고싶었을것이다.그러나지금처럼원고를원하는곳에메일로보낼수있는형편도아니고우편으로보내는것도상황이여의치는않았으리라.
즉당시정지용의작품활동여건을충족시키는잡지가만만치않았으리라는생각이다.물론일제강점기라는특수한상황에서도글은쓰여지고발표되고읽혀지고있었다.일제말기상황보다1926년문단상황은양호한편이었다.그러하더라도정지용의일본유학시절(그가일본에서정식시인으로인정받기이전),그에게도여전히어려운시간들이지났으리라고본다.이는「日本の蒲團は重い」에서도쉽게짐작해낼수있다.
정지용은기타하라하쿠슈가주관한『근대풍경』1월호에「海」를실었다.이후기성시인대우를받게된다.여러이견이따르겠지만(이러한관점에서보면)1927년을정지용이일본에서두각을드러내는시점으로잡을수있다.그렇기에여기서는1927년을그의문학을일본에서인정받은시점으로보기로한다.
한편,정지용은일본인에대한직접적인비판을표시나게고발하는목소리를낼수없었다.또그의비애를형언할수없는환경에있었다.그랬을것이다.그렇기에일본어로「日本の蒲團は重い」고쓰고있다.그것도“せんちめんたるなひとりしゃべり”(센티멘탈한혼잣말)이라는표제와함께발표한다.이는정지용의식민지지식인의비애에대한또다른표현은아니었을까?애써“せんちめんたるなひとりしゃべり”라며‘혼잣말’이라는위로를한것은아니었는지.애타게조선과고향을그리워하며압천을홀로걸어하숙집으로향하였을정지용의모습이그려진다.슬프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