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어떻게바꿔야백성이편안하게살수있을까?
간절히조선을바꾸고싶었던개혁가7명의이야기!
《조선최고의개혁가배틀》은조선사회를바꾸려한개혁가일곱명을엄선해그들일생과주요개혁내용을쉽고흥미롭게들려준다.개혁가일곱명은정여립,허균,김육,윤휴,유형원,박지원,최제우.김육,유형원,박지원을빼고는역적으로처형된인물들이다.변화는반역을내포한다.기존의것을뒤흔들지않고는그사회를바꿀수없기때문이다.이들이목숨을내놓으면서까지조선에서바꾸고싶어한것들은무엇일까?
왜이씨만왕이되어야할까,
왜신분이다르다고차별받아야할까?
정여립은‘천하공물(天下公物)’을주장했다.천하는모두의것이란뜻이다.그러므로왕도무능할때는갈아치울수있다고보았다.왕은하늘이내린것이고,이씨혈족만이그자리를이을수있다고굳게믿던사회에서이런생각은가히혁명적이다.정여립을‘조선의공화주의자’라부르는이유다.
조선은철저한신분제사회였다.허균은《홍길동전》을통해서얼차별을부각함으로써신분제가정당한지묻는다.
“하늘이사람을낼때귀한집자식이라고해서재주를더주는것도아니요,천한집
자식이라고해서재주를덜주는것도아닌데,신분때문에사람을차별하는게말이되는가.”-51쪽에서
신분제덕분에온갖특혜를누리는기득권층,즉양반들이이런문제제기에가만있을리없다.결국허균역시정여립과마찬가지로역모죄를뒤집어쓰고죽임을당한다.
최제우는여기서더나아간다.그는동학을창시해조선의신분제를뿌리부터뒤흔든다.
최제우는모든인간안에는신성이있으니,하늘아래인간은모두평등하다고설파했다.그렇잖아도임진왜란,병자호란이후신분제가흔들려불안한양반들은최제우역시혹세무민등여러죄명을갖다붙여참형에처한다.
남과다르게생각하면안되는걸까,
내생각대로쓰면안되는걸까?
조선은성리학중에서도주자성리학만을신봉했다.주자와다른해석을하면사문난적으로낙인찍혔다.대표적인희생자가윤휴다.윤휴는주자의글은일점일획도고칠수없다는근본주의자송시열에게“선생님,천하의많고많은이치를어찌주자만알고저는모른단말입니까”라고반문한다.그러면서“주자가살아온다면저의학설이인정받지못할것이나,《중용》을지은분이다시온다면저의학설이인정을받을것입니다”며맞선다.학문과사상의자유를허용하지않고,상대성과다양성을인정하지않은이런조선의태도는조선이새로운문물을받아들이는데걸림돌이되었고,결국조선이망하는한원인이된다.
학문과사상의자유만없었을까.조선후기정조때에는문체마저검열의대상이되었다.정조는박지원을필두로당대의선비들이기존전통적인문체가아닌중국패관문학풍의문체를구사하는것을크게우려한다.자칫나라기강이흔들릴수있다는이유에서였다.“그런글을읽고쓰다보면세상풍속과인심이바르지않게되고,풍속과인심이바르지않으면나라의질서가무너지고말것이다.”이런정조를당대의명문장가박지원역시못마땅해한다.
“전하께서는문체가무너지면세상질서가무너진다고생각하는것같네.그래서성리학적질서를유지하기위해문체에집착하시는거겠지.이것만보면전하는개혁군주라는명성과달리참으로보수적인임금이신거같네.”-189쪽
하지만연암이후조선에서는자유로운글쓰기가큰흐름이되었고,그물줄기를되돌릴수는없었다.
땅을국가가갖고나눠주면안되는걸까,
세금을공평하게거둘방법은없는걸까?
경제분야에서개혁을시도한이들도있다.대표적인인물이유형원과김육이다.유형원은18여년동안조선사회전반에걸친개혁안을담은《반계수록》을썼는데,이중가장심혈을기울여쓴파트가바로토지제도개혁이다.조선은농본국가여서토지문제가아주중요했지만,토지를대부분양반들이갖고있어번번이개혁을이루지못했다.유형원은모든토지를국가가소유한후양반,노비차별없이백성들에게토지를고르게나눠주는균전제를제안했다.
일곱명의개혁가중유일하게살아생전에자신의뜻을관철한사람이김육이다.김육은세금의일종인공납문제를해결하는데평생을바친다.공납은땅이많은부자나밭한뙈기없는서민이나같은양을내야하는데다자기지역에서나지않는것까지납부하게하는등제도의허점이많아조선시대백성들을가장괴롭힌세금이다.김육은이런폐단을없애기위해대동법을거듭제안한끝에생애말년에시행되는걸본다.대동법은지역특산물대신토지1결당쌀12두를내게한제도다.자연땅을많이가진양반들이세금을더낼수밖에없었다.대동법이시행되었을때농민들은덩실덩실춤을추지않았을까.
조선은고루한사회?
인물로보는생동하는조선사
이책은조선시대하면공자,맹자왈하는고루한시대로생각하던청소년들에게그시대안에도변화를꿈꾸는사람들이들끓고있었음을보여줌으로써조선시대를다른각도에서볼기회를준다.또한7명의개혁가가문제시한것들이현재도숙제로남아있음을알려줌으로써역사적인물과의거리감을좁힌다.
이책은‘라이브역사청문회’시리즈두번째다.1권《새지폐에는나를넣으시오》처럼청문회형식이라술술읽히고,각개혁가의일생과주요개혁내용을구현해놓은‘카드뉴스’는마치유튜브를보는듯한생동감을선사한다.이번책에서는‘조선사회더깊이알기’란새코너도넣었다.붕당정치,서얼,세금,유교,노비제도,실학,세도정치와동학농민운동등핵심키워드를뽑아조선사회를더깊이보여준다.
<책속에서>
“지금나라에임금이계신데어찌다른이를임금으로세운단말씀입니까”
정여립의눈매가날카로워집니다.
“나라는온백성의소유물인데,어찌정해진임금이있겠느냐.”
제자들은벌린입을다물지못했지요.왜안그렇겠습니까.이씨만이왕위를이을수있는나라에서다른임금이라니요!역적이나할소리아닙니까!-24쪽
지금의정당을조선시대에는붕당이라고했다.붕당(朋黨;)이란뜻을같이하는무리라는뜻이다.공자는붕당을“정치를어지럽히는사악한무리”라며부정적으로봤지만,송나라성리학자주자는“붕당이라고해서다나쁜건아니다.소인배들이모인당은나쁘지만,군자들이모인당은좋은것”이라고말했다.이이는“붕당이문제가아니라군자와소인의구별이중요하다”며주자의주장을옹호했다.-38쪽
친구들은한가닥희망을품고상소를올렸지만별반응이없었습니다.친구들은크게낙담했지요.그모습을보니허균은착잡하고씁쓸했습니다.
‘하늘이사람을낼때귀한집자식이라고해서재주를더주는것도아니요,천한집자식이라고해서재주를덜주는것도아닌데,신분때문에사람을차별하는게말이되는가.그러면서
인재가없다,인재가없어하니이보다더한탄스러운일이또있을꼬.’-51쪽
이런서얼차별이부당하다며없애야한다는목소리도있었다.조광조는“땅이좁아인물이적은데중국과달리서얼과노비까지제외하니좋은인재를얻기어렵다”며서얼차별철폐를주장했고,이이도같은주장을했다.류성룡은임진왜란이일어나자서얼은물론천민까지공을세우면관직에오르도록하자고건의해실제로서얼이관리가된경우도있었다.하지만전쟁이끝나자등용건은다시흐지부지된다.-65,66쪽
대한민국에는신분제가없다.그렇다고해서차별이없을까.가난해서,성정체성이달라서,여자라서,장애인이라서,피부색이달라서,민족과국가가달라서등등의이유로차별받는사람들이곳곳에있다.허균이지금사회를본다면어떤반응을보일까?싸워야겠다며다시머리띠를질끈동여맬까?-68쪽
대동법은지역특산품으로내던공물을쌀로대신내게하는제도로,토지1결당
12두씩내게했죠.벼농사가힘든산간지역사람들에게는삼베,무명등을받았고나중에는동전으로도거두었지요.땅이없는가난한소작농을비롯한백성들이얼마나좋아했을지눈에선합니다.
김육은온인생을대동법실현에바쳤다고해도과언이아닙니다.백성들이세금때문에얼마나힘들게사는지직접보고겪었기때문이지요.-74쪽
김육은백성을가장힘들게한것이공납이라는사실도알게됩니다.이를테면제주도에서는감귤,통영에서는전복,가평에서는잣따위를정부에바쳤습니다.이공납이왜백성을힘들게했냐면,땅이많은부자나밭한뙈기없는서민이나같은양의공물을내야했고,자기지역에서나지않는공물을내라고하면공물을취급하는방납업자에게사서내야했는데그가격이매우비쌌기때문이지요.-75쪽
위원장모처럼바람직한개혁가와개혁방안이나와서제마음이다흡족합니다.
위원평생자신들을위해애쓴걸알았던지김육이죽자충청도어느마을에서는김육을기리는공덕비를세우기도했지요.김육은훗날실학자들에게도많은영감을준정치가입니다.-79쪽
농민들은군역때문에농사를제대로지을수없는데다서울까지가는비용도부담스럽고보인에게서지원받은면포1필로는끼니를잇기도어려웠다.실제로서울로올라가는길에다치거나물에빠져죽는사람이부지기수였고,간신히서울에올라왔지만면포를팔아산쌀이너무적어굶어죽는경우도있었다고한다.
현실이이렇다보니농민들입장에서는당연히자기대신군역을서줄사람이있다면그사람을사서보내는대립(代立)이훨씬나았을것이다.16세기이후대립이성행한이유다.-97쪽
어느날송시열이윤휴를찾아와이상하다는듯물었습니다.
“그대가《중용》을주자와다르게해석했다는게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송시열이다시물었지요.
“주자의해석은완전무결한것인데,어찌그리괴이한행동을하였는가?”
윤휴는의아하다는듯송시열의눈을바라보며대답했습니다.
“선생님,천하의많고많은이치를어찌주자만알고저는모른단말입니까?”
-108쪽
조선의유학자들이주자를성현으로떠받드는까닭이있습니다.주자는송나라의유학자로,유학의한종류인성리학을체계화한인물입니다.그는《예기》의한편이었던〈대학〉과〈중용〉을편집해《논어》,《맹자》와함께사서(四書)의반열에올려놓았습니다.조선유학자들은그의해석과분류를절대적으로신봉하여그와다른해석이나분류를용납하지않았지요.그런선비들의정점에송시열이있었습니다.-110쪽
유교는조선시대에수입된것이아니다.고조선때이미유교가전해졌는데,본격적으로전파된건삼국시대였다.고구려는소수림왕2년(372)에대학이라는국립학교를세우고학생들에게《시경》,《서경》,《역경》같은유교경전을가르쳤다.비슷한시기에불교가수입되고,훗날도교도전해져고구려에서는유불선이함께공존했다.-129쪽
“선생님,선생님이말씀하신균전제를실시하려면우선토지를국유화해야하는데,토지를몰수하면지주들이가만히있을까요?”
“양반들의토지를다몰수하는게아닐세.국유화한뒤양반들에게도주지않나.그뿐인가.그들의자녀나친척에게도땅이돌아가니그렇게억울해할일은아니라고보네.”-148쪽
광종이특별히노비를측은히여기는마음이커서그랬을까?그런면이없지는않았겠지만현실적인이유는따로있었다.광종이즉위했을때고려는호족세력의힘이왕권을위협할정도로컸다.광종은호족의힘을약화하고왕권을강화할목적으로호족들이소유한노비를양인으로면천시켜준것이다.의도대로호족의힘은약해지고,늘어난양인이세금을냄으로써국가재정도좋아졌다.-163쪽
조선의노비제도에서가장특이한점은세습된다는것이다.앞서설명한것처럼부모중한쪽만노비여도자식은노비가되었다.유형원은이건너무비인간적이라고생각했다.중국에서도죄를지은사람을노비로삼기는하지만그자식까지노비로삼지않는다며노비세습을철폐해야한다고주장했다.-168쪽
“전하께서는문체가무너지면세상질서가무너진다고생각하시는것같네.그래서성리학적질서를유지하기위해문체에집착하시는거겠지.이것만보면전하는개혁군주라는명성과달리참으로보수적인임금이신거같네.”-188,189쪽
위원장이야기잘들었소.글좀쓴다고해서최고개혁가후보에올리기는좀약한것같은데요.
위원글만이겠습니까?《열하일기》를보면아시겠지만그책안에는청나라의새로운문물에관한묘사가가득하지요.그러면서청나라의발달된문물을받아들여조선을개혁해야한다고주장합니다.그를달리북학파(北學派)실학자라하겠습니까?-189쪽
조선후기들어가장크게달라진점은통치원리로삼았던성리학에대한생각이다.두번의전쟁을겪고난백성들은양반들이그렇게강조하던성리학이나라를온전히지켜주지못한다는사실을알아차렸다.또한전쟁이끝난이후양반사대부들이반성은커녕여전히공허한탁상공론만일삼으며성리학적신분질서를강화하려는데크게실망했다.하지만모든양반이그랬던건아니다.백성들만큼성리학에실망한양반들이있었고,그들속에서싹튼것이바로실학이다.-203쪽
세도정치라하여권력을가진일부가문이정치를좌지우지하고,지방수령들은제잇속만차리느라백성의고혈을쥐어짜백성의고통이이만저만이아니었소.위아래할것없이탐욕에지배당하고윤리는땅에떨어진세상.이런세상에서민중은지푸라기라도잡는심정으로미신에의지해살아가고있었소.세상의질서가무너져가는걸목도했소.이런와중에서양세력이우리나라에들어와서학이라부르는천주교를포교하니,그야말로말세직전이아닌가싶었소.그모습을보면서나는누천년을이어온유교의도와불교의도로는이어지러운세상을구하지못할거라깨달았소.그래서세상을구할바른도를구해야겠다고생각한것이오.-219쪽
서양인들은천주의뜻이라하여부귀를취하지않는다고하면서도다른나라를공격하고있소.얼마전영국과프랑스연합군이청나라수도북경을침략하지않았소?바로이들이들여온것이서학인데,서학은침략을위한종교일뿐이오.게다가제부모가죽으면제사도안지내면서저는죽어천당에가게해달라고기도하는이기적인종교요.동학은인간의이기심이세상을타락시키는근본원인이라보고이기심을버리라고가르치고있소.-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