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첫번째민화교과서,지금까지이만한민화교양서는없었다
산수화에서춘화도까지,140여컷의생생한도판으로만나는K-컬처의원형
1.왜다시민화인가?
10여년전부터불어닥친‘민화배우기’열풍에힘입어현재대학부설민화교육기관만도70여개(연세대,이화여대,동국대,홍익대등)에이를정도이며,사설교육기관까지합하면무려그수가1000여곳에이른다고추정된다.미술계에서는‘인사동은민화가먹여살린다’는농담이나올정도로,화구점과화랑은민화를그리는재료와민화전시로성시를이루고있다.이에따라관련도서의수요도늘어나민화컬러링북이다수출간되고있으나,대중독자의눈높이에맞게‘민화의모든것’을아우르는인문교양서는거의전무하다.
2.초보자와숙련자모두를위한최고의민화교양서
이책은‘민화란무엇인가’부터시작해민화의종류,구성과색채,그리고그림각각에담긴의미를하나하나쉽고친절하게풀어낸다.
먼저민화를이해하는다섯가지키워드로‘장식’,‘토속신앙과세계관’,‘주술적신앙’,‘집단적감수성’,그리고‘뽄’을바탕으로하는양식적특성에대한이해를돕는다.그리고구체적으로민화를어떻게그렸는지,구성과색채의전반적인특성을살핀다.
그리고민화의종류를20여가지로분류해,각종류별특성과다양한그림들을소개한다.산수화,장생도,인물화,풍속화,기록화,도안화,춘화도,세화(歲畵)를비롯해꽃과나무(화훼도/화조도),채소와과일(소과도),동물과물고기(축수도/어해도),상상의수호동물(영수화),풀과벌레(초충도),집과병풍(옥우화/기용화),신선과불교(도석화),지도(지도화),옛이야기(설화화),그리고다양한그림들의결합(혼성화)에이르기까지,흥미진진한민화이야기를140여컷의생생한도판과함께만날수있다.
각그림들의특징은물론그안에담긴상징,때때로드러나는익살과해학을통해,우리선조들의삶속에깃든생활의단면과유쾌한미학을엿볼수있다.
3.140여컷의생생한도판,풍부한해설
초판출간이후30년가까이새로모은자료와연구성과를바탕으로,책의뼈대라할수있는도판의거의절반가량을새로이교체하거나추가했다.무엇보다민화입문자들의눈높이에맞춘다채롭고생동감있는구성과도판해설이돋보인다.
4.미술사를넘어‘민화의사회사’까지,K-컬처의원형을만나다
민화를통해우리선조들의생활의단면과유쾌한미학의결을세심하게따라가다보면,미술사를넘어‘민화의사회사’까지만날수있다.가장대중적이고가장한국적인,오늘날세계를휩쓸고있는K-컬처의원형을만나보자.
5.부록:한국의민화문양100선
‘부록’으로‘민화속가장많이쓰이는문양100선’을소개한다.화제(?題)로등장하는동물이나식물혹은문양을보고그림에숨겨진뜻과상징을단박에알아낼수있도록돕는다.
백성민(民),그림화(畵);백성이‘이그림’을사랑할수밖에없는이유
-대문에는호랑이,신혼집에는포도,회갑연에는굽은새우,수험생방에는물고기가용으로변하는그림…
민화가민초들에게사랑받았던이유는다양하다.
우선소재가갖는상징성때문이다.새해가되면해태,닭,개,호랑이를그려부엌문,중문,곳간문,대문에붙이는풍습이있었다.해태는불을막아낸다는상상의동물이어서부엌을지키기에안성맞춤이었고,닭은어둠을밝히고잡귀를쫓아버린다는상징을갖고있었다.또개는도적을지키는인간의충실한친구였으며,호랑이는환난을막아주는든든한장수역할을했다.
지금이야어쩌면낯선‘상징’들이지만,우리민족은고래로부터이런상징에익숙했고그믿음이깊었다.민화는이런상징을마음껏드러냈다.
이밖에신혼방의병풍장식으로는수박이나포도그림이제격이었다.다산을염원하는마음으로씨가많은과일을곁에두었던것이다.물론화목을뜻하는원앙도빠지지않는다.회갑연병풍으로는등이굽은새우를그렸고,과거를앞둔선비의방에는합격을기원하는게그림이나물고기가용으로변하는‘어변성룡’그림을그렸다.
이렇게민화는직관적인소재를가감없이차용했을뿐아니라,기존회화에서는극히피하던원색대비를적극이용하고,또소재를강조하기위해시점을과감히변경시키는등구성의강렬함도덧붙였다.여기에보태〈삼국지〉나〈백동자〉같은중국의설화나고사,혹은우리의〈구운몽〉이나〈춘향전〉같은소설이야기도그렸다.글을몰라도그림으로짐작하고이야기로풀어냈으니,문맹이일상이던시대에맞춤이었다.또가까운것을우선그리고,드러낼것을크게강조하며,그안에우리민족의익살과해학까지담았으니,백성들이어찌민화를사랑하지않을수있었을까.
민화의탄생과쇠락,그리고재발견-우리가잘몰랐던‘작은역사’
17세기경,임진왜란과병자호란이라는양란과대기근(1670~1671)이라는전대미문의혼란을겪은조선은급격한사회변동과함께예술도체급을낮춰야했다.이때본격적으로유행하게된것이바로당시‘속화(俗畵)’라불리던민화(民畵)다.여염집의대문,벽,기둥은물론병풍이나부채같은생활용품에도활용되었고급기야사찰에까지민화가파고들었다.물론,이후영?정조의문화부흥기와김홍도,신윤복,장승업등걸출한화가들의출현으로‘고급예술’이다시제자리를찾았지만,이미민초들의삶의일부가되었던민화의유행은조선후기내내,그리고일제강점기까지멈추지않았다.도성의수표교밑에는혼례나회갑연,장례등집안행사에빠질수없었던민화병풍을대여해주는곳이있었고,시골동네에서는이를공동으로구입하기도했다.
하지만급속한근대화와함께민화는어느덧잊혀가는이름이되었다.대개이름없는무명화가,이른바‘환쟁이’라고멸시받던사람들이그린민화는간혹시골장터에서나만날수있는,또는마을을돌아다니던병풍장수에게서나구경할수있는것이었다.
그렇게명맥이끊기는가싶었다.하지만상전벽해(桑田碧海)라할까.1980년대부터민족과민속에대한대중의관심과함께다시재발견되기시작한민화는2000년대이후본격적으로기지개를켜기시작했다.현재는대학부설민화교육기관만70여개에이르고,정확한통계를낼수는없지만사설교육기관까지합하면1000여곳에이른다는추정이있다.관계자들사이에는민화를그리고있는사람들이최소20만에서최대30만명을넘는다는추산도나온다(민화를지도하는사람들에따르면,‘다른그림보다숙달에이르는기간이무척짧아성취감이높다는것이가장큰장점’이라고말한다).이렇다보니미술계에서는‘인사동은민화가먹여살린다’는농담이나올정도로,화구점과화랑은민화를그리는재료와민화를전시하는일로성시를이루고있다.
이책은민화가본격적으로유행하기전,불모지에피어난꽃같은책이었다(1995년첫출간이후20년가까이15쇄를훌쩍넘기는성공을거뒀으나,안타깝게도지난10여년간절판상태였다).당시민화라는주제의책이성공을거둘것으로짐작하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하지만초보자들도민화를쉽게이해할수있도록가장쉬운방식으로체제를편성하고,알기쉬운언어로풀어내면서귀한도판까지풍부하게담아냈으니‘최고의민화교양서’라는찬사를듣게된것이다.그리고여전히‘이만한민화교양서는없다’는평을듣기에손색이없는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