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이은상역주본이후30여년만의결실
한기업인의독지에의한역사학계의경사
지금까지『이충무공전서』역주본은노산(鷺山)이은상(李殷相)선생이낸것하나뿐이었다.문학가였던노산선생은광복후『이충무공전서』우리말번역을시도하여1960년5월에처음으로국역본을출간했으나,여러가지미진한점이많아스스로폐간하고,새로이사료를수집하고현지답사를통해사실을확인하는등재출판집필에심혈을기울이다가1982년별세하였다.그후성문각(成文閣)에서고인이남긴원고를정리하여양장본상하권과원본영인판을함께묶어1989년에『완역이충무공전서』를출판하였고,이책은오늘날충무공에관한연구와대중적관심에크게부응해왔다.
이번에출간된『신정역주이충무공전서』를기획한(재)석오문화재단한국역사연구원의이태진원장은1989년출간된『완역이충무공전서』가“역사학적으로채워져야할것이많은책”이었다고하면서,“오히려역사학자들이이를대신하는전문적인역주본을진작세상에내놓았어야했다.”고말한다.노산선생역주본이후30여년만에학계전공자들이최선을다한‘신정역주본(新訂譯註本)’이출간에이르렀는데,이환호할만한사업이한기업인의독지(篤志)로이루어졌다는것또한세상에울리는경종의의미가크다.
이책은석오문화재단윤동한이사장(한국콜마회장)의열의로시작되어맺어진결실로윤회장은간행사에서이책발간과관련해다음과같이밝혔다.
“『이충무공전서』역주본을새로출간해야한다는생각을오래전부터하고있었지만방대한작업분량과여러분야의연구자들을모아야한다는부담때문에쉬이결정하지못하고있었다.사실정부가이사업에예산과인력을투입하는것이마땅하겠지만,여러경로를통해서살펴보니『이충무공전서』역주사업을실행하기위해서는오랜시간과절차가필요했다.더급한번역사업이기다리고있었기때문이다.이에미력하나마직접나서서『이충무공전서』역주사업을시작해보기로결심하고도움을받기로했다.마침석오문화재단은부설한국역사연구원을설립,운영하고있었고,국사편찬위원장을지내고서울대명예교수로계신이태진교수님이연구원원장으로계신덕분으로이사업을심도있게의논할수있었다.”
윤동한회장은‘이순신의열렬한팬’으로알려져있는데,그동안별도로운영하고있는서울여해재단에서‘이순신학교’를설립해지금까지18기500여명의‘작은이순신’수료생을배출하는등저변을넓혀왔으며,개인적으로도『80세현역정걸장군』(2019)과『조선을지켜낸어머니』(2022)두책을내면서충무공과관련된여러분야를공부하고있다.
학계전문가7인의2년여역주작업
200자원고지7471매,역주본3권1400쪽,각주5069개
이번『이충무공전서』의‘신정역주’작업은이민웅대구가톨릭대석좌교수(해군사관학교명예교수)의책임아래정진술전문화재전문위원,양진석전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학예연구관,김경숙서울대국사학과교수,노영구국방대군사전략학과교수,이현진한국과학기술원인문사회과학연구소연구부교수,김남기안동대한문학과교수등7인의노력이깃들이성과이다.
2020년10월번역에착수한이래2년여만에번역작업을끝내고7개월간의편집끝에출간된『신정역주이충무공전서』(전4권)는신정역주본3권이200자원고지7471매,1400쪽으로수록된방대한분량이며,각주가5069개에이른다.여기에384쪽짜리영인본과별책부록‘『신정역주이충무공전서』찾아보기’가덧붙어있다.
『이충무공전서』의가치
『이충무공전서』는충무공의업적을전하는가장중요한문헌이다.이책은지금으로부터228년전인1795년(충무공이순신탄신250주년되는해)에정조(正祖)의어명으로편찬되었다.충무공의공훈은이책의편찬으로비로소제대로역사에길이전하게되었다.『이충무공전서』는충무공의공훈을체계적으로한자리에모은문헌적가치뿐만아니라,누구와도견줄수없는정조의열렬한충무공숭모정신의산물이란점을유의할필요가있다.정조는규장각각신(閣臣)들에게‘전서’의편찬을명하고손수충무공이순신의비문을지어이책의머리에실었다.조선왕조일대에왕명으로신하의문집이편찬된예도없거니와왕이신하의비문을지어내린예도없다.실로특별한예우가아닐수없다.
정조는재위중에충무공외에도규장각에서외적격퇴에공로가컸던인물들의전기(傳記)·전서(全書)를편찬하게하였다.호란때활약한임경업과정봉수·정기수형제의것으로『임충민실기(林忠愍實記)』(1791)와『용성쌍의록(龍城雙義錄)』(1794)을편찬하게하였다.그리고임진왜란극복에서는『이충무공전서』(1795)와함께남원에서활약한양대박의공적을담은『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1800)를내게하였다.정조는1791년부터근10년간왜란,호란을극복하여왕조를보전하는데크게이바지한인물들의역사를국가사업으로추진하였다.단순한실기를넘어문집의형식으로편찬된『이충무공전서』는그가운데서도가장비중이큰것이었다.
정조는백성은곧군주의분신이라는‘군민일체(君民一體)’의철학을가졌고,역대선왕들의왕릉참배를구실로궁성과도성바깥으로나가백성들을직접만나는‘능행(陵幸)정치’를폈다.그리고재위24년째가되던해에‘내백성으로노비와같이천대받는존재는없어야한다’는결단으로공·사노비의전면혁파를결정하였다.이결정은우리역사를크게바꾸어놓을수있는대사였지만불행하게도왕은이결정을내린뒤심한피부병에시달리다가수개월만에운명하였다.그는양반사대부만의왕이아니라온백성의왕이되고자하였다.이런사상을가진군주가추진한외침극복영웅들의일대기편찬은곧민족영웅발굴의근대지향역사의식의소산이라고하지않을수없다.『이충무공전서』는곧정조의새로운근대지향역사의식에서충무공을민족영웅으로자리매김한중심문헌으로서,충무공에대한우리의숭모는마땅히이‘전서’출현에담긴역사인식부터알고시작해야할것이다.
─이태진,「『신정역주이충무공전서』출간을기리며」중에서
『정조실록』권43,1795년9월14일기사와『이충무공전서』의「윤음(綸音)」3편을쓴판중추부사이병모의작성날짜를보면9월중순에인쇄를시작해서이해연말이전에간행된것으로보인다.『전서』권14의말미에는출간비용과반사처(頒賜處)에대한기록이있다.창덕궁규장각왼편의서고(西庫)에들이는것외에5대사고(史庫)에한건씩,그외에홍문관,성균관,순천충민사,해남충무사,남해충렬사,통제영충렬사,아산현충사,강진유사(遺祠),거제유묘(遺廟),함평월산사,정읍유애사,온양충효당,착량초묘(草廟)등13개처에내려졌으므로,대략25권내외가간행되었을것으로추정된다.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소장된『전서』만해도대략10여질이넘는다.
『신정역주이충무공전서』의주요특징
─『이충무공전서』신정역주본은권수(卷首)부터권14까지총15권3책으로구성되어있다.이은상역주본에는1934년에보유(補遺)로추가된권15~16이포함되어있으나,이번신정역주본에서는수록하지않았다.원래『이충무공전서』에포함되지않았을뿐더러,그내용의오류등문제가심각하고,사료로서의역사적가치도떨어지기때문이다.
─신정역주본에서는그동안축적된임진왜란분야의연구업적을반영하여,기존오류를가능한범위에서수정,보완하였다.특히지명(地名)이나인물,그리고용어등다양한오류를바로잡고그근거를각주로제시하였다.
─권2~4의‘장계1~3’과권5~8의‘난중일기’부분은『이충무공전서』편집과정에서생략된부분이적지않은데,이생략된부분까지도함께볼수있도록『이충무공전서』원본내용과구별하여번역수록하였다.
─이은상역주본이갖는영웅주의나성웅(聖雄)사관에서탈피하여,역사적사실과다를경우명확한사실을밝혔고,관련된서술에대한설명을덧붙였다.
─『이충무공전서』가이순신사후200년이되어가는시점에편찬,간행되었기때문에,편집과정의단순한오탈자는물론이고,잘못옮겨진내용이라든가원본과는다른내용이들어간것등이있는데,이를대부분바로잡거나각주로설명을붙였다.
『이충무공전서』의간략내용소개
이책은국왕의명으로간행되었기때문에,책맨앞에서문격인‘윤음(綸音)’3편과‘어제비명(御製碑銘)’이실려있는데,비문에적힌이순신의생애와공적에대한정조의서술내용은유려하면서도비교적과장없이정확한편이라는것이특기할만하다.
권수(卷首)는교서(敎書)6편과유서(諭書)11편,그리고왕대별‘사제문(賜祭文)’13편으로구성되어있다.사제문은영조와정조의어제(御製)4편을앞에두고,나머지는선조부터영조까지시기별로나열하였다.그외에‘도설(圖說)’과충무공이순신의‘세보(世譜)’와‘연표(年表)’가포함되어있다.
권1은이순신의‘시(詩)’5수와‘잡저(雜著)’12편이실려있다.시중에는유명한「한산도에서밤에읊다(閑山島夜吟)」와이시에대한27명의차운(次韻)31편이수록되어있으며,잡저에는「장검에새긴글」을비롯해서「체찰사완평부원군이원익에게올리는편지」와답서(答書)등11편의글이실려있다.
권2~4는이순신이국왕과조정에보고한문서를모은‘장계(狀啓)1~3’이다.국보76호로『난중일기』와함께지정된『임진장초』를비롯해서몇종류의등초(謄草)장계를토대로임진년(1592),계사년(1593),갑오년(1594)으로각권을나누었다.모두71편의보고서가실려있는데,변방의장수가국왕에게직접보고한계본(啓本)이49편으로가장많고,승정원을통해보고한장계가18편,그리고왕세자에게보고한달본(達本)이4편이다.
권2는이순신이첫해해전에서활약한주요내용을포함해서,임진왜란초기의조선수군과관련된여러상황을알려주는14편의계본과3편의장계로구성되어있다.
권3은첫해해전결과일본수군이조선수군과의직접대결을회피했기때문에,전투관련보고서는2~3월진행된웅천지역공략작전에대한「적을무찌른일을아뢰는계본」외에는없다.주로수군전력유지에필요한보고나요청사항을아뢰는보고서가절반이넘는14건에이른다.그외에일본수군의정황을보고하는보고서가3건,수군전력유지가어려운상황에서병력과군기등을육군에배정하지말고수군에전속시켜주도록요청하는보고서가5건등전쟁2년째의어려움을엿볼수있는보고서가많은것이특징이다.
권4는해전관련보고인「당항포승첩을아뢰는계본」외에,계사년과마찬가지로수군전력유지를위해조정에요청하는보고서가15건으로절반이상을차지한다.왜군의정황을보고한것이3건,소속장수나관원의임명이나시상,처벌을요청한보고서가11건이다.
권5~8은‘난중일기’로,권5는임진년(1592)부터계사년(1593)까지,권6은갑오년(1594)초부터을미년(1595)5월까지,권7은을미년(1595)6월부터병신년(1596)까지,권8은정유년(1597)부터무술년(1598)까지의일기를담고있다.
신정역주본에서는『이충무공전서』에서생략한원문텍스트까지구분하여수록했는데,생략된내용들은잦은음주장면,이순신개인의중요하지않은일상사,날씨,중요하지않다고판단한군사적상황보고나조처,모친에관한것을제외한이순신의가정사,기강을바로잡기위해엄격한군율을적용한일들,바둑장기등놀이또는야간에피리를부는등진중의오락관련내용,군량마련을위해기울인노력들,부하장수들과의불편한관계에대한기록,개인적인건강관리내용,『난중일기』원본사이사이에있던‘일기외기사’(계본이나장계의초안,서신의초안,풍문,한시나독후감등)등이다.
권9~14는‘부록1~6’으로,이순신에대한후대의기록을망라한자료집성격을띤다.권9는이순신의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