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국 문단의 ‘천재’로 불렸던 시인ㆍ소설가ㆍ동화작가 오탁번
1주기에 즈음하여 묶어낸 말년의 시 세계
1주기에 즈음하여 묶어낸 말년의 시 세계
이 책은 오탁번 시인의 갑년 이후 시 작품들에 대해 여러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원고의 선별과 배열은 모두 오탁번 시인이 직접 했다. 작년에 팔순을 맞은 시인이 환갑 기념으로 출간한 『시적 상상력과 언어-오탁번 시읽기』의 후속 작업으로 이 책을 준비했는데, 그만 마지막 책이 되고 말았다.
1부는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언급한 산문, 2부는 그간 간행한 시집에 붙은 해설, 3부는 시인의 시에 대한 비평, 4부는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탁번 시인은 자신의 작업실 원서헌에서 시집과 문예지에 실린 이 원고들을 손수 뽑아 정리하던 중 깊은 병이 찾아온 것을 알았고, 책의 뒷마무리를 이정현 시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이정현 시인과 이 책에 글을 수록한 필자들이 오탁번 시인의 유지를 받들어 생전에 계획한 책의 편집과 체제를 그대로 따라 이 책을 출간했다.
고형진 교수와 오태환 시인은 이 책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은 갑년 후에도 활발하게 시를 쓰고 발표했다. 정년이 다가와 학교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시 창작에 더욱 매진했고 정년 이후 에는 전업 시인으로 시에 몰두했다. 시는 선생과 한 몸이 되어 일상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선생의 일과는 시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시를 대량 생산하지는 않았다. 선생은 손톱에 피가 돋도록 언어를 조탁하여 잘 빚은 시의 항아리만을 세상에 내놓았다. 선생은 갑년 이후 3~5년 간격으로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집 간행 주기는 갑년 전에도 똑같았다. 선생은 그렇게 평생 엄격하고 성실하게 시를 짓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세상으로 훌쩍 떠나셨다.
갑년 이후에도 선생의 정신은 푸르렀다. 늘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문단과 정치의 부조리엔 결기 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서 시도했다. 그리고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했던 젊은 시절의 언어 감각은 모국어의 자원계발로 이어졌다. 선생은 사전에 매몰되어 있던 아름다운 우리말을 채굴해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하여 시의 진열대에 앉혔다. 갑년 이후에 펴낸 선생의 시집들은 모국어의 보고이다. 선생은 모국어의 파수꾼을 자임하였고, 그 일에 신성한 사명감을 가졌다.”
이 책에는 23인의 평론가 및 연구자들이 오탁번 시에 대해 쓴 글 또는 시인과 나눈 대담이 실려 있다. 몇몇 대목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알요강」의 할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자가 저 작은 알요강에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눌 그날을 기다리며 ‘향긋한 지린내’에 의지하여 동지섣달 긴긴밤을, 그 춥고 흐린 노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정경과 언어에 담긴 은은한 마음의 결은 필설로 다 하기 힘들다.” -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토박이말의 다채로운 구사는 다정하고 걸쭉하고 살가운 어투의 문장에 녹아들면서 구어체 입담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게 된다. 입말의 묘미와 상황의 흥미로운 반전은 그의 시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담화와 상상이 모두 서사적 형식을 시 안에 끌어들여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시는 소설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 고형진(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선생의 이즈막 시들은 한결같이 힘을 쏙 빼고 있어서, 애초에 힘이란 게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애써 뭘 선언하거나, 애써 뭘 정립하거나, 애써 심오한 척, 뭘 포장하려는 속내가 아예 잡히지 않는다. (…) 힘이 빠졌다고 해서 정서와 감각의 장력이 느슨해지거나 언어의 모서리가 닳지도 않았다. 노자가 말했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의 함의와 또 다르다. 약졸(若拙)하지 않다는 뜻이다.” - 오태환(시인, 문학평론가)
“쇠좆매로 스스로 영혼을 때리면서 숫눈처럼 희고 깨끗한 원고지, 즉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 위에다 피를 토하듯이 시를 써야 한다는 각오를 고희를 앞둔 시인 오탁번은 다지고 있다. 나이를 좀 먹었다고 시인 스스로 대가연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 시단에서 이런 자세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1부는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해 언급한 산문, 2부는 그간 간행한 시집에 붙은 해설, 3부는 시인의 시에 대한 비평, 4부는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탁번 시인은 자신의 작업실 원서헌에서 시집과 문예지에 실린 이 원고들을 손수 뽑아 정리하던 중 깊은 병이 찾아온 것을 알았고, 책의 뒷마무리를 이정현 시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이정현 시인과 이 책에 글을 수록한 필자들이 오탁번 시인의 유지를 받들어 생전에 계획한 책의 편집과 체제를 그대로 따라 이 책을 출간했다.
고형진 교수와 오태환 시인은 이 책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은 갑년 후에도 활발하게 시를 쓰고 발표했다. 정년이 다가와 학교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시 창작에 더욱 매진했고 정년 이후 에는 전업 시인으로 시에 몰두했다. 시는 선생과 한 몸이 되어 일상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선생의 일과는 시와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시를 대량 생산하지는 않았다. 선생은 손톱에 피가 돋도록 언어를 조탁하여 잘 빚은 시의 항아리만을 세상에 내놓았다. 선생은 갑년 이후 3~5년 간격으로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집 간행 주기는 갑년 전에도 똑같았다. 선생은 그렇게 평생 엄격하고 성실하게 시를 짓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세상으로 훌쩍 떠나셨다.
갑년 이후에도 선생의 정신은 푸르렀다. 늘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문단과 정치의 부조리엔 결기 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서 시도했다. 그리고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했던 젊은 시절의 언어 감각은 모국어의 자원계발로 이어졌다. 선생은 사전에 매몰되어 있던 아름다운 우리말을 채굴해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하여 시의 진열대에 앉혔다. 갑년 이후에 펴낸 선생의 시집들은 모국어의 보고이다. 선생은 모국어의 파수꾼을 자임하였고, 그 일에 신성한 사명감을 가졌다.”
이 책에는 23인의 평론가 및 연구자들이 오탁번 시에 대해 쓴 글 또는 시인과 나눈 대담이 실려 있다. 몇몇 대목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알요강」의 할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자가 저 작은 알요강에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눌 그날을 기다리며 ‘향긋한 지린내’에 의지하여 동지섣달 긴긴밤을, 그 춥고 흐린 노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정경과 언어에 담긴 은은한 마음의 결은 필설로 다 하기 힘들다.” -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토박이말의 다채로운 구사는 다정하고 걸쭉하고 살가운 어투의 문장에 녹아들면서 구어체 입담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게 된다. 입말의 묘미와 상황의 흥미로운 반전은 그의 시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적 담화와 상상이 모두 서사적 형식을 시 안에 끌어들여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시는 소설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 - 고형진(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선생의 이즈막 시들은 한결같이 힘을 쏙 빼고 있어서, 애초에 힘이란 게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애써 뭘 선언하거나, 애써 뭘 정립하거나, 애써 심오한 척, 뭘 포장하려는 속내가 아예 잡히지 않는다. (…) 힘이 빠졌다고 해서 정서와 감각의 장력이 느슨해지거나 언어의 모서리가 닳지도 않았다. 노자가 말했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의 함의와 또 다르다. 약졸(若拙)하지 않다는 뜻이다.” - 오태환(시인, 문학평론가)
“쇠좆매로 스스로 영혼을 때리면서 숫눈처럼 희고 깨끗한 원고지, 즉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 위에다 피를 토하듯이 시를 써야 한다는 각오를 고희를 앞둔 시인 오탁번은 다지고 있다. 나이를 좀 먹었다고 시인 스스로 대가연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 시단에서 이런 자세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 - 오탁번 시읽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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