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가 외 (일본어 소설)

사랑인가 외 (일본어 소설)

$22.00
Description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이광수의 일본어 소설
당대 사회의 리얼리티를 뛰어나게 묘사한 역사의 증언
‘춘원 이광수 전집’의 36번째 책으로, 이광수가 일본어로 쓴 소설을 모두 모았다. 1909년 12월 『시로가네학보(白金學報)』에 발표한 「사랑인가(愛か)」부터 1944년 10월 『신타이요(新太陽)』에 발표한 「소녀의 고백(少女の告白)」까지 모두 12편이다.

이광수에게 일본어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해설을 쓴 하타노 세쓰코 니가타 현립대학 명예교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 ‘근대문학으로 나아가는 문’, ‘걸림돌’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고아가 되어 일본 유학의 기회를 얻은 이광수에게 일본어는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일본어를 통해 문학에 눈뜬 그가 조선어를 갈고 닦아 장편 『무정』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걸림돌’이라는 것은, 그에게 아직까지 따라다니는 ‘친일 작가’라는 오명과 관계 있다. 그러나 하타노 교수는 “실제로 이광수의 소설을 읽어보면 대일 협력의 그림자는 의외일 만큼 희박하다.”고 말하면서, 김윤식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에서 “춘원의 친일문학은 정작 소설에서는 뚜렷하지 못하다.”, “시국에 대한 짧은 감상문이나 수필, 그리고 자극적인 시가에서 그는 엄청난 큰소리와 가장 친일적인 발언을 일삼았으나, 정작 힘들여 지어야 할 소설에서의 친일 행위는 극히 미약하고 보잘것없다.”라는 말을 음미할 만한 지적이라고 꼽는다.

식민지 말기에 씌어진 이광수의 일본어 소설은 그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당대 사회의 리얼리티를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단, 그것은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기보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성격에서 오는 것이다. 예컨대 「대동아」에 그려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도의(道義)의 세계는 일본이 식민지와 점령지에 강요하면서도 자신은 결코 믿지 않았던 허위의 이상이다. 이광수는 그것에 공명하여 「대동아」를 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작품은 그 이상이 허망한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소설은 관념적인 조작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광수의 기량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모습을 묘사했던 것이다.
저자

이광수

평북정주출생으로최남선과더불어신문학을개척한대표적인문인이다.일진회장학생으로도일하여명치학원에서수학했으며,귀국후오산학교에서교편을잡기도했다.초기에는'무정'을비롯하여,'개척자','윤광호','방황'과같은작품을발표하였다.일본에서'2.8독립선언서'를기초하고상해로탈출한후에는도산안창호의사상에큰영향을받고돌아왔다.1930년대초반까지윤리중심적색채를띤'재생','마의태자','흙'같은장편을집필하였고,중반이후에는'이차돈의사','원효대사','무명'등불교적인색채가짙은작품을창작했다.1937년수양동우회사건으로투옥된이후,창씨개명하고학병권유연설을하는등친일활동에본격적으로참여했다.1950년납북되었다.

목차

발간사

사랑인가
만영감의죽음
옥수수
마음이서로닿아서야말로
산사(山寺)사람들
가가와(加川)교장
파리(蠅)
군인이될수있다
대동아(大東亞)
사십년
원술(元述)의출정
소녀의고백

작품해설
이광수의일본어소설_하타노세쓰코

출판사 서평

「사랑인가」(1909)
주인공문길은하급생인미사오를좋아한다.그는미사오를만나고싶어견딜수없어하는데,미사오는그를피한다.내일은여름방학으로귀향하는날,문길은미사오와만나려그의하숙을찾지만역시만나지못하고결국절망하여철도자살을시도한다는이야기이다.
동성끼리의애정이라는설정이눈길을끄는데,이는당시일본남학교에서는그다지드문일은아니었다.‘미사오’의모델은야마사키도시오라는이광수의동급생이었다.야마사키는안중근의이토히로부미저격사건뒤확산된조선인에대한적대시분위기속에서이광수와거리를두게되고,이광수가이소설을일본어로써서교지에투고한것은민족의벽을넘었다고믿었던친구를잃은슬픔을전하기위해서였을것으로보인다.

「만영감의죽음」(1936)
만영감은지금껏열명이상의여자에게바람맞은말없는석공(石工)이다.이번에도동거했던젊고아름다운여자가달아나자그는미치고,결국친척들의손에묶여죽고만다.“사람을만들거면왜이런불운한물건을만들었느냐”라는염라대왕을향한형의원한맺힌말은만영감의비극의원인이실은성적인결함에있음을시사한다.
이광수는이해『삼천리』1월호에발표한「성조기(成造記)」에서북한산기슭의자택건축과관련이있는인부들의이야기를썼는데,거기에는“소년과같은성기(性器)”를가진석공박선달이라는인물이등장한다.이인물에게흥미를느끼고있던때에『가이조』로부터집필을의뢰받고「만영감의죽음」을썼을것으로보인다.

「옥수수」(1939)
주인공‘나’는원산에서오랜친구인‘안씨’와만나만찬에초대된다.거기에는역시오랜친구인‘나씨’가아이들과함께초대되었다.만찬의메뉴는수프에서빵,쿠키,음료에이르기까지모두옥수수를재료로하는음식이었다.안씨는재배하는식량과조리법을개량하면조선은지금의몇배되는인구를부양할수있다고생각하여여러가능성을시도하고있고,그일단을만찬에서친구들에게공개했던것이다.
단편에등장하는‘나씨’는나혜석의오빠나경석,‘안씨’는미국유학을다녀온안창호의흥사단회원안대백으로전해진다.1937년6월동우회사건으로‘전향성명’을제출한이광수가전향후처음으로쓴일본어소설이다.

『마음이서로닿아서야말로』(1940,미완성)
경성제대학생히가시다케오와의학부의외과의사김충식,그리고그들의누이후미에와석란두쌍의오누이사이에싹트는‘내선연애’이야기이다.전장(戰場)에서실명(失明)한다케오는종군간호부가된석란과재회하여그녀와결혼식을올리고,선무공작에나서기위해둘이서적진으로향한다.
이작품에서다케오와석란의결혼이내선일체를의미하고있다면,그결말은비참하다.전장에서얼굴이뭉개져버린다케오에게이미옛모습은없다.중국어도할수없고혼자서는걷지도못하는눈먼다케오가석란을반려자삼아무모하게적지로들어가고,감옥에갇혀총살을예감하며석란과손을맞잡고있는장면은‘내선연애’의섬뜩한말로를암시하고있다.이광수가이소설을연재한것은경성제대일본인학생에게민족적차별해소를호소하기위해서였다.

「산사(山寺)사람들」(1940)
아내를두고월급을받으며술과고기를즐기는승려들,절의허드렛일을하는이서방과박서방의근면하고욕심없는생활방식,가난탓에소나무뿌리까지캐내는잔혹한노인과마른나뭇가지가아니라생가지를꺾는마을사람들,그리고사바세계에서빠져나와그이상은바람이없는간편한생활을하고있는관음굴노승의모습이,때로유머러스하게,때로불교적인윤리관과더불어담담하게그려져있다.
이해2월‘가야마미쓰로’로창씨개명한이광수는3월부터50여일간아들영근을데리고동소문밖흥천사에머무르며집필에전념했다.이소품은거기서본사람들을그린것이다.

「가가와(加川)교장」(1943)
이광수는,1943년봄에생굴을먹고탈이나서경성의중학입학시기를놓치고만아들영근을강서의신설중학에입학시키고,방을빌려아들과둘이서지내기시작했다.이작품에나오는K중학은강서중학이고,근교의도시H는헤이조(平壤),그리고기무라의병약한부친의모델은이광수자신이다.그런데얼마안있어폐결핵이재발하여이광수는경성에입원하고영근은경성의중학에편입하게된다.결과적으로해당학구(學區)를벗어나중학입학을도와준사람들과강서중학교원들의기대를저버리게되었던것이다.이광수가이작품을쓴것은그들에게사죄하기위해서였던것으로보인다.

「파리」(1943)
표면적으로는총후(銃後)의정신을고취하는‘애국소설’이고파리의박멸을위한‘위생소설’이지만,그저변에겹쳐놓여있는것은이광수의절망감이다.이무렵경성에는지식인학살명부에관한소문이나돌았다.나이든탓에근로봉사를거절당한주인공이애국반사람들의집을돌며“버려진사체총계칠천팔백구십오마리의파리잡기”를마치는모습은검은파리떼와같이밀어닥치는시대의광기에응전하면서자신도광기에빠졌던작가자신의모습이기도하다.

「군인이될수있다」(1943)
병정놀이하던차림새그대로곯아떨어져있는어린두아들의모습을본주인공‘나’는군인이될수없는그들의장래를생각하고마음이어두워진다.조선의징병제에대한내각회의의결정을기뻐해주는가네코빈에게‘나’는첫아들이소학교입학전에급사한일,마지막순간까지군인이되고싶어한일을이야기한다.그리고집으로돌아오는길,아무도없는길에서만감이교차하여“군인이될수있다!”고외치는모습이그려져있다.
국가는군대를가져야한다고여겼던그는‘내선평등’을지향하게되고부터는징병제를주장했다.국가를위해피를흘리지않고는평등을주장할수없다고생각했을것이다.이해일본에서학도출진(出陣)이시작되었다.일본정부는당시징병대상이아니었던조선과대만의학생에대해서지원이라는형식을취했지만,실제로는‘지원,도망,감옥’가운데서의선택만가능했다.이작품이실린『신타이요』가일본의서점에깔릴무렵,이광수는학병권유사절단의일원으로일본에가서유학생들에게학병지원을권유했다.

「대동아(大東亞)」(1943)
‘국화향기그윽한메이지절’인11월3일,아케미는부친의서재를청소하면서4년전중국으로돌아간애인판위썽을생각한다.그때판이나가사키에서보낸전보가도착한다.아케미는대동아공영권건설을위해서라면몸도마음도판위썽에게바쳐도좋다고생각하며,판의전보를받았을때는그의귀환을기뻐하기보다일본의성실함이아시아청년의마음을얻었다는사실에감격한다.한편,판은아케미에게사랑을고백하면서일본이진정아시아의민족들을위해싸우고있는것이라면아케미를향한자신의구애도받아들여질것이라고생각한다.
1943년11월5일부터이틀간도조히데키는중국의난징정부,태국,만주,필리핀,버마등대동아공영권각국수뇌를초대하여국회의사당에서대동아회의를개최하고,‘대동아가협력하여미국과영국의질곡에서벗어나자.’는내용의대동아공동선언을채택했다.이작품의진짜주인공은소설속에서한번도언급되지않은이대동아회의인것이다.이광수는이해8월『룍기』에발표한논설「대동아전쟁의교훈」에서대동아공영권건설의이념은도의세계(道義世界)의건설이라고논하는데,이논리는일본을믿으려하지않는판위썽을가케이가즈오가설득할때의접신적(接神的)논리그자체이다.「대동아」는이논설을소설화한것이라고할만하다.

「사십년」(1944,미완성)
『그의자서전』(1936)이나『나』(1948)와마찬가지로「사십년」은자전적이라고는해도어디까지나창작이다.그러나실제의경험이기초가되어있는것은틀림없다.삭제된제3회가주인공이고아가된무렵에서시작되고있는것으로보아그이후는일러전쟁,동학과의만남,그리고일본으로의유학등이이야기되었을것으로추측된다.

「원술(元述)의출정」(1944)
김유신의아들원술은이근행이통솔하는당군(唐軍)과의싸움에서부하에게제지당하여죽을기회를놓친후부친의장례에도참석하지못하고모친과의면회도거절당하고는태백산견성암에칩거한다.3년후충복수타원과,원술을그리워하는아좌가견성암을방문하여원술과재회한다.아좌에게서이근행의군대가근방까지온것을알게된원술은저녁식사한끼도마다하고그대로출정한다.
이작품에서원술,수타원,아좌의가부키풍의대사를발췌하면그대로한편의시나리오가된다.제1막은흰눈속의수타원과의재회의장,제2막은견성암에서아좌와의재회와이별의장이다.무운장구(武運長久)를빌며쓰러져우는아좌에게는눈길도주지않고원술이언덕을달려내려가는모습은마치객석을가로질러퇴장하는가부키배우와같다.

「소녀의고백」(1944)
어릴적교토에온까닭에일본어밖에모르는소녀노부코가조선의유명작가에게편지로신상이야기를고백하는서간소설이다.노부코는소꿉친구다에코의약혼자인가츠마로의사랑을받아들였다가버림받는다.그러나가츠마로의부친을통해조선고대의영광에눈뜨고민족적자각을갖게된그녀는그를원망하지않고민족을위해살기로결심한다.
노부코는귀족가문아가씨들의놀이친구로서같은옷을입고같은교양을지닐것을허락받은조선의‘계집종’을연상시킨다.이광수는책임을타인에게전가하지않는노부코의갸륵한모습을그리는한편,일본인에게바보취급을당한다고분개하는가족의현실감넘치는모습도빠뜨리지않는다.딸을향해죽어버리라고부르짖는부친의안타까운분노는이광수의내심에잠재한분함을투영한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