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 대 국가운영과 왕실재정 (정례서를 통해 본 왕실과 나라의 살림)

영·정조 대 국가운영과 왕실재정 (정례서를 통해 본 왕실과 나라의 살림)

$25.00
Description
18세기 전후 조선왕조의 재정(財政),
나라 살림에 관한 영조와 정조의 도덕적 솔선!
이 책은 조선왕조의 성격을 재정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첫 연구서로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일부와 후속 논문들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사의 내적 발전 동인을 아래로부터 검출하려는 노력들이 여러 비판적 논의 속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이에 ‘왕실’은 여전히 봉건왕조의 지배층으로서 대상화되고 역사 발전 속에서 극복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다행히 이 무렵 서구 유럽의 생활사, 문화사 관련 이론서들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조선 왕실의 의궤와 등록, 일기 자료들이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하였고 대중적 관심도 늘어나 이후 20여 년간 왕실 의례와 생활 문화사 관련 성과들이 상당히 축적되었다.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근대 국가사를 새롭게 바라볼 핵심 키워드로 ‘왕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로얄 패밀리’로 불리는 왕실 구성원의 일상 문화와 의례 절차에만 천착할 경우, 이들을 중심축으로 구성된 왕조 국가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왕실은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국왕의 가족을 의미하지만, 정통성 있는 왕위 계승자를 생산해 왕조를 존속시키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왕실은 사극에서 주로 정쟁(政爭)의 화근이거나 정쟁의 당사자로 그려지기 일쑤이지만, 조선 왕실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생각보다 강고했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유교적 민본주의 이념하에 왕실에 부여된 사적 특권을 탈각시키고, 국가의 공적 행정 시스템하에 왕실을 부양하도록 관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각읍의 토산 현물을 정기적으로 거두어 쓰는 공납제(貢納制)를 정비해 왕실 부양과 국가행정에 필요한 자원을 충당하는 재정구조를 형성하였다. 조선왕조의 행정기구와 재정 시스템은 이처럼 왕실을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밀접한 상관성을 맺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국왕의 사적인 가족을 국가 제도 속에서 관리, 통제하는 시스템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조와 정조 대는 왕실 재정이 가장 타이트하게 운영되었던 시기로, 영조는 특히 『탁지정례(度支定例)』라는 거질의 지출례를 작성해 불필요한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한편, 왕실 공상을 우선적으로 줄여 균역법 시행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불식시켰다. 구조개혁에 수반되는 혼란과 분열을 잠재우기 위해 왕실에서부터 재정 절감의 솔선을 보인 영조의 조치는 정조 대를 넘어 19세기까지 왕조를 유지시키는 전범으로 작용하였다. ‘손상익하(損上益下)’의 이념하에 왕실을 관리, 통제해 온 전통이 영조 대 중반 정례서 간행을 통해 고도화됨에 따라, 이후 조선 왕실은 국가 통치의 명분을 획득할 수 있었던 한편, 재정 시스템 면에서도 비교적 투명한 수입-지출 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19세기 조선왕조가 맞닥뜨린 여러 위기 요인에도 불구하고, 500여 년간 왕조가 장기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이러한 지점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

최주희

덕성여자대학교글로벌융합대학사학전공조교수.이화여자대학교사회과교육과(역사전공)를졸업하고고려대학교대학원한국사학과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UCLACenterforKoreanStudies방문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전임연구원,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을지냈다.저서로『서울과지방의매개체,경주인』(2024),『한양의여성공간』(공저,2021),『통계로보는조선후기국가경제:18-19세기재정자료의기초적분석』(공저,2013)등이있으며,역서로는『공폐-조선후기공물제도운영의병폐』(공역,2019),논문으로는「대동법시행기進上制의정비와영조대초반『進上別單謄錄』의작성」(2022),『조선후기宣惠廳의운영과中央財政構造의변화-재정기구의합설과지출정비과정을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2014)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재정이라는프리즘,왕조국가다시보기
1.왕실과왕조국가에대한이해
2.비교사의시각에서본왕실재정
3.앞으로의이야기:재정을통해본조선왕조의성격

I.조선전기재정구조의성립과그제도적유산
1.과전법을통한왕실소유지의재편
2.관제개혁을통한왕실부양기구의정비
3.왕실과정부관서를지탱하는힘,공납제
4.중앙재정,양입위출의원칙을정하다

II.17세기왕실의성장과국가재정의압박
1.경기선혜법,광해군의딜레마
2.인조대부활하는왕실사재정,비판의봇물
3.숙종대을해정식과경자양전의한계

III.영조,왕실의경비를줄여백성을이롭게하다
1.『탁지정례』의간행과10만냥의경비절감
2.균역법의시행과또한번의재정긴축
3.『각사정례』를통해본18세기중앙재정구조

IV.18세기후반정조,궁부일체를표방하다
1.즉위년의개혁,다시왕실을겨냥하다
2.매년국고의총액을보고하라
3.외방진상제도의정비,『공선정례』
4.또다른국고,내수사와장용영

V.19세기,재정위기와남겨진숙제들
1.순조의즉위,흔들리는원칙들
2.궁핍해진재정,또다른정례서의출현
3.고종의거울,영조와정조

나가며:18세기의유산,19세기의그림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이책은총5장으로구성되어있다.

I장에서는조선왕조가건국되고15세기에이르기까지주요한재정제도의정비과정과그것의의의를살펴본다.여기서저자는조선전기재정제도의주요한특징으로‘국가세입의확충’과‘왕실재정의축소·정비’를꼽고있으며,“조선왕조는애초에왕실가족에게부여한경제적특권을포기하고공적통치구조속에서왕조의유지와권위를확인받기위한장치를만들어갔다.”고말한다.

II장에서는양란이후왕실구성원이물리적으로늘어나는한편,이들이토지와내탕을늘려가는양상과이를견제하는신료들의반대와국왕의조치를살펴본다.저자는“17세기내내공납제를개혁하고양전사업을새로이진행하여국가세수를늘리려는노력이진행된것과동시에정부의묵인하에왕실궁가와아문에서사적으로점유하여세를거두는토지들역시증가하고있었다.”고말한다.그리고왕실재정을공식적으로제약하기시작한것은숙종21년(1695)을해정식(乙亥定式)이제정되고부터였는데,하지만“왕실구성원의일상생활을지탱하고,각종의례와왕실연회에소비되는물자에대한수요는항식없이늘어나고있었다.”고말한다.

III장에서는『탁지정례』의간행으로대변되는영조대중앙의경비절감정책을상세히살펴본다.저자는영조대재정정책이“숙종대조정에서긴장감있게논의되어온재정현안들에합의점을찾는동시에,운영상의문제점들을해결하는방식으로전개되었다.”고말한다.특히영조는재위25년이되는해에중앙의경비지출이정안인『탁지정례』를간행하여궐내왕실가족에게지급되는물품을10만여석가량줄여놓는조치를취하였는데,이는중앙재정을정비하는과정에서왕실재정을최우선적으로긴축해놓은것이다.

IV장에서는정조가즉위한후영조의정책기조가어떻게유지또는변화되었는지를궁방전의축소,진상제도의정비,장용영신설등의정책사안을중심으로살펴본다.저자는“정조는영조대중앙재정을상당부분감액조정한영조의정책을이어받아지방의현물진상까지정비하는노력을보였다.”면서뿐만아니라“병신정식을단행하여왕실궁방에지급한2~3만결가량의면세지를호조의수세지로돌려놓았으며,왕실에지급되는노비신공의액수도감액조정하였”고,“주요재무관서의보유고를쌀과포목,동전등총액으로보고받아중앙재정을집권적으로관리하였으며,내수사의재원을공적재원으로표방하고화성건설의자금으로활용함으로써한정된재원으로국정을장악하고천도의이상을실현하고자하였다.”고말한다.

V장에서는마지막으로이러한영·정조대의재정정책이후19세기에접어들면서어떠한파급효과를낳게되었는지,재정개혁의양면적속성을살펴본다.저자는,19세기전반은순조의노력에도불구하고영조와정조가이루어놓은재정개혁의여러원칙들이흔들리는시기였다고하면서,“주목할점은고종의즉위초개혁정책역시영조와정조대의정책을모델로한것”이고,“19세기까지손상익하(損上益下)와궁부일체(宮府一體)의재정이념을실현해가고자한영조와정조의노력은다가올개항과근대를준비해야하는고종에게그대로투영되고있었다.”고말한다.

결론에해당하는「나가며:18세기의유산,19세기의그림자」에서저자는“영·정조대의재정정책은결국한정된세입으로왕실과나라살림을최대한긴축,절약해운영하고자한왕조국가의노하우를응집해놓은결과물”이라고하면서,그러나문제는“18세기왕조가구축한제도적유산이19세기에그림자로작용”하였음을지적한다.그러면서저자는영·정조대의재정정책에대해다음과같은평가로마무리한다.“18세기중엽에형성된재정관서의합설과재원이획은소규모의세입으로중앙정부의살림을지탱하기위한최선의방안이었으며,이러한재정운영방침은『육전조례』가간행되는시점까지크게변화하지않았다.갑오개혁이단행되기이전,두세기에걸쳐조선정부가점진적으로구축해놓은제도적유산은19세기재정상의위기를타개하는데분명한계가있었지만,왕실이솔선하여재정절감의모범을보이고,정부에서백성의세부담을줄여주는변통안을지속적으로모색하였던역사적경험은동시대다른왕조국가에서찾아보기힘든사례로서,여러위기상황에서도조선왕조를장기지속시킬수있었던숨은원동력으로작용하였음은부정할수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