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신역 청련집

신편 신역 청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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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6세기 조선의 ‘명문장’이자 ‘청렴’의 사표
청련 이후백의 ‘청련집’ 완결판
“총명하여 시에 능하고 옛글에 널리 통했다.”
“재주가 넉넉하고 문장을 잘했으며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지켰다.”
“글은 꾸밈을 좋아하지 않았고 벼슬에 임해서는 직분을 다했다.”
“뜻에 힘써 책을 보았고 학문이 매우 정통했으며 시문이 호건해 사람들이 애송함이 많았다.”
- 이후백 사후에 사관이 기록한 실록 중에서

“공은 관리로 있을 때 그 직분을 다했으며, 몸가짐이 깨끗하여 벼슬이 육경의 지위에 이르렀으나, 살림이 가난하고 소박하기가 유생과 같았다. 뇌물을 일절 받지 않았고, 손님이 와도 술잔과 소반이 냉담했다. 정승으로 들어갈 물망이 있었는데, 졸하게 되어, 사림에서 몹시 아까워하며 이제 정2품 지위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 율곡 이이

청련 이후백의 삶

16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지성 청련 이후백의 문집 『청련집』이 심경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새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후백은 1520년(중종 15년) 경상남도 함양군 우암촌(牛岩村)에서 태어나 1578년(선조 11년) 타계할 때까지, 약 60년 동안 문인(文人)으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청백리(淸白吏) 관료로서의 굳건한 소신을 양립시킨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힌다.

이후백은 27세에 사마시, 36세에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24년간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40세 때는 암행어사로 호남을 순찰했는데, 그가 강직하다는 소문을 듣고 미리 관직을 떠난 수령들이 많았다. 그는 지제교(知製敎)를 겸대할 만큼 국왕의 교서와 공문서 제술에 능했으며, 44세 때에는 호당(湖堂)에 선발되어 젊은 엘리트 관료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48세 때, 승정원 동부승지로 있을 때 왕에게 수령들이 사사로이 재물을 궁중에 헌납하는 것을 엄금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사사로운 헌정의 폐단을 근절시켰다.

50세 되던 1569년(선조 2년)에는 성절사 정사로 서장관 류성룡과 함께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고, 54세 되던 1573년(선조 6년)에는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로 중국 명나라에 가서 태조의 가계에 대하여 『대명회전』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점을 수정케 한 공적으로 사후에 수충공성익모수기광국공신으로 등록되는 한편 좌찬성과 대제학을 받고 연양부원군에 봉해졌다.

51세 되던 1570년(선조 3년) 공이 승정원 도승지로 있을 때 왕명에 따라 「국조유선록서(國朝儒先錄序)」를 지었는데, 여기서 그는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 사현(四賢)을 정주학(程朱學)을 잇는 정통으로 공인함을 확인했다.

52세 때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그의 학문과 실력이 당대 최고였음을 입증했고, 1575년 인순왕후가 서거하자 지문(誌文)을 지어 올렸다. 국가의 공용문인 관각문(館閣文)을 제작하는 문신의 반열에서 일정한 지위를 공인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75년 함경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함경도의 문교(文敎)를 진작시켰으며, 함흥에 있는 문회당을 서원으로 승격시키고 사액을 받는 등 문회서원(文會書院)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는 함경도 관찰사로서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선정을 시행하였다. 이에 대해 율곡 이이는 『경연일기』에서 그가 함경도 관찰사로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평가했고,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정사(政事)는 천리(天理)의 공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목민심서』에 적었다.
저자

심경호

(沈慶昊)
현고려대학교명예교수.1955년충북출생으로,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동대학원석사과정을졸업하고,일본교토(京都)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고려대학교문과대학한문학과교수,고려대학교한자한문연구소장을역임하고,현재동아한학연구편집위원장,애산학회이사및편집위원장,율곡국학원이사로있다.저서로『강화학파의문학과사상』(단독및공저1-4),『조선시대한문학과시경론』,『한학입문』,『한국한문기초학사』1-3,『다산과춘천』,『여행과동아시아고전문학』,『김시습평전』,『안평:몽유도원도와영혼의빛』,『한국한시의이해』,『한시의세계』,『한시의서정과시인의마음』,『한시의성좌』,『김삿갓한시』,『(증보)한문산문미학』,『간찰』,『참요』,『내면기행』,『산문기행』,『국왕의선물』1-2,『옛그림과시문』,『한국의석비문과비지문』,『호,주인옹의이름』,『한국의과문(科文)의양식과시제(試題)』,『응제(應製)와제술(製述)』,『서울고전만유』,『성호사설의변정·상론·제안』등40여종이있다.역서로『주역철학사』,『불교와유교』,『금오신화』,『역주원중랑집』(공역),『한자백가지이야기』,『선생,세상의그물을조심하시오』,『증보역주지천선생집』(공역),『서포만필』1-2,『삼봉집』,『기계문헌』1-6,『심경호교수의동양고전강의:논어』1-3,『육선공주의』1-2(공역),『동아시아한문학연구의방법과실천』,『도성행락(圖成行樂):명청문인의화상제영』,『여유당전서(시)』(네이버지식백과),『춘향전·춘향가』,『을병조천록』,『신편신역청련집』,『강화학파정제두·이충익·심대윤』(한국사상선),『신편신역김시습전집』등40여종이있다.

목차

간행사ㆍ이철진
축사ㆍ이혁범
『신편신역청련집』해제ㆍ심경호
청련이후백행력표

신편신역청련집-원집(原集)

오언절구(五言絶句)
강가에서벗과헤어지다[江上別友人]
헌납조유성에게드리다[贈趙獻納維誠]
옥계노진에게드리다[贈盧王溪禛]
독서당앞강가운데모래밭이있다[讀書堂前江心有沙]
절구(絶句)
청풍원역루에서신군의집을생각하며[淸風院樓念愼君居廬]
실제(失題)
김영정에게드리다[贈金英禎]
양충순위의벽위에장난삼아쓰다[戱題梁忠順衛壁上]
우련정에적다[題友蓮亭]

육언절구(六言絶句)
술에취하여적다[醉題]

칠언절구(七言絶句)
탑송(塔松)
저녁연기[暮烟]
방백의행차를범하다[犯馬]
운성백련사에서여러친족에게드리다[雲城白蓮寺贈諸族]
아쟁타는소리를듣고[聞箏]
규원사시사(閨怨四時詞)
송천양응정의시에차운하다[次梁松川應鼎韻]
노사훈의시에차운하다[次盧士訓韻]
무제(無題)
하서김인후에게드리다[贈金河西麟厚],2수
유정스님에게드리다[贈惟晶]
관청일을마치고집으로돌아오며[罷衙還家]
벗에게답하다[答友人]
달아래[月下]
철구에게전하는서찰[傳鐵狗書]
보유:철구에게전하는서찰[傳鐵狗書],별도의시
죽암에제하다[題竹巖]
임사수의시에화운하다[和林士秀]
조카박승림에게차운하여부치다[次寄從弟朴承林]
유내한의〈취별가인도〉에적다[題兪內翰醉別佳人圖]
사암박순에게드리다[贈朴思菴淳]
이우당에제한영천신잠의시에차운하다[次二友堂申靈川潛韻]
들길[野路]
급제하여고향으로내려갈때지례군수옥계노진에게부치다[登第下鄕途中寄知禮使君盧王溪]
실제(失題)
고봉기대승의시에차운하여경석에게드리다[與景錫次奇高峯大升韻],3수
장춘오(藏春塢)
인수교(仁壽橋)
관어대(觀魚臺)
백화담(百花潭)
송국경(松菊逕)
영사정의처사안처순에게드리다[贈永思亭安處士處順]
판서이장곤의옛집을지나면서[過李判書長坤舊宅]
백련당문익주에게드리다[贈文白蓮堂益周]
섣달에부채를보내면서[臘月贈扇]
병마절도사에게드리다[贈兵使]
소혁을읊다[咏小革]
우연히읊다[偶吟]
남원광한루에제하다[題南原廣寒樓]

오언율시(五言律詩)
설상사당의환취당에제하다[題薛上舍瑭環醉堂]
옥과현향교연석의시에차운하다[次玉果縣校軒宴席韻]
송죽헌의시에차운하다[次松竹軒韻]
노옥계의〈계정〉시에차운하다[次盧玉溪溪亭韻]
이월매화가피는가싶더니며칠도안되어죄다져서남은것이없다[二月梅花方開不數日盡落無餘]
무제(無題)
백평사를애도하다.이름은광홍,호는기봉이다[挽白評事光弘號岐峯]

칠언율시(七言律詩)
석천임억령의시에차운하여월출산승려혜원에게드리다[次林石川億齡贈月出山僧慧遠韻]
거창의침류정에제하다[題居昌枕流亭]
상우정에제하다[題尙友亭]
중국사신의〈한강〉시에차운하다[次天使漢江詩]
관압사류중영이북경으로가는것을전송하다[送管押使柳仲郢赴京]
비로인하여곡성에머물면서[滯雨谷城]
집승정(集勝亭)
사신의임무를받들어서쪽으로나가며[奉使西出]
추위가심하여잠을이루지못하다[寒甚不寐]
벗이고향으로돌아가는것을전송하다[送友歸鄕]
그윽한거처에서즉흥으로[幽居卽事]
벗이과거에낙제하여고향으로돌아감을송별하다[送友人落第歸鄕]
사명을받들고호남에내려와우연히읊다[奉使湖南偶吟]
성절사를송별하다[送聖節使]
백련사[강진만덕사]인우스님이소매에시축을넣고와서시를구하기에그를위해근체시세수를지어주다[白蓮寺[康津萬德寺]僧印牛袖軸求詩爲賦近體三首餉之]
내가스님의시축에세수의시를쓰고나서천천히스스로또해명하여,‘무릇스님이나의시를구한뜻은필시우리유교의도를들으려해서겠지만나의시는스님이산모퉁이에은둔한모습만그저기록했으니이는물리도록듣던이야기일뿐이거늘어찌이것으로그소망을메워줄수있었겠는가?’라고하고는이에한퇴지(한유)가문창스님에게글을주었던뜻을밟아율시한수를이루다[余旣以三詩題上人軸.徐又自解之曰夫上人之求余詩.必欲聞吾道.余之作徒記其山阿隱遯之態.此其厭飫者耳.豈能塞其望.於是步退之贈文暢之意成一律]
참의신희남의〈서재〉시에차운하다[次愼參議喜男書齋韻]
비구승(比丘僧)
도사한윤명을곡하다[哭韓都事胤明]
고봉기대승을위한만시[輓奇高峯大升]
죽암안전을위한만시[輓竹巖安瑑]
찬성류공작을위한만시[輓柳贊成公綽]
구졸암양희를위한만시[輓梁九拙菴喜]
옥계노자응을위한만시[輓盧玉溪子膺]

칠언배율(七言排律)
서총대응제(瑞葱臺應製)

오언고시(五言古詩)
석천임억령이월출산혜원스님에게준시에차운하다[次林石川億齡贈月出山僧彗遠韻]
경로정(敬老亭)

칠언고시(七言古詩)
홍엽에제하다[題紅葉]
조아비(曹娥碑)
앵무주(鸚鵡洲)
무산신녀묘(巫山神女廟)
은교(銀橋)
철구행(鐵狗行)
소석(韶石)
검려(黔驢)
호화령(護花鈴)
큰잉어가용문을오르다[大鯉上龍門]
문장은명운이형통함을미워한다[文章憎命達]

계사(啓辭)
사사로이재물바치는일을막기를청하는글[請杜私獻啓]
박신원의일로인한혐의를피하는글[因朴愼元事避嫌啓]
김굉필ㆍ정여창ㆍ조광조ㆍ이언적의저서와사실및행장을인쇄하여반포할것을청하는계사[請印頒金宏弼鄭汝昌趙光祖李彦迪著書並事實行狀啓)]
양민과천민의혼인금지를청하는계사[請禁良賤交嫁啓]
덕을닦아재변과이변으로인한하늘의꾸지람에답해야한다는계사[因災異請修德以答天譴啓]

주의(奏議)
진강에서주자감흥시(朱子感興詩)로소동파의시와바꾸시기를청하는상주문[請以朱子感興詩易蘇東坡詩奏]
인성왕후의상복제도를논한상주문[論仁聖王后服制奏]
홍문관과양사(兩司)에서남곤의시비에관해차론(箚論)하는일을그만두도록왕명을내려주시길청하는상주문[請寢令弘文館兩司南袞是非箚論之命奏]

서(序)
국조유선록서(國朝儒先錄序)
족회서(族會序)

교문(敎文)
공훈삭탈의교령을반포하는글[削勳頒敎文]

가사(歌詞)
소상팔경(瀟湘八景)

시조(時調)
제1
제2
제3
제4
제5

행장(行狀)
양평공오자치행장(襄平公吳自治行狀)

서(書)
류중영(柳仲郢)에게보낸서한


신편신역청련집-속집(續集)

수창(酬唱)ㆍ차운(次韻)ㆍ답서(答書)
윤경인및이계진에게부치다[寄景仁及李季眞]ㆍ김인후(金麟厚)
이계진후백의시에차운하여승려의시축에적다[次李季眞後白韻題僧軸]ㆍ양응정(梁應鼎)
은대이십영(銀臺二十詠)ㆍ최립(崔岦)
태학사가‘기(期)’자운의두수를화답해서보냈으므로곧바로차운해서계진과여수두동료에게보여주다[太學士和期韻兩首見示輒敢仰次示季眞汝守兩僚]ㆍ기대승(奇大升)
계진(이후백)의시에차운하다[次季眞韻]ㆍ기대승(奇大升)
이계진후백이연경으로떠남을전송하다,두수[送李季眞後白赴京,二首]ㆍ박순(朴淳)
상국이계진이연경으로임무를띠고가는것을전송하다[送李相國季眞赴京]ㆍ하항(河沆)
청련이계진후백이종계변무주청의일로연경에가는것을전송하다[送別靑蓮李季眞後白以宗系奏請使赴京]ㆍ정유일(鄭惟一)
이계진후백이공무로연경에가는것을전송하다[送李季眞後白赴京]ㆍ황정욱(黃廷彧)
이계진후백이관북안찰사로나가는것을전송하다[送李季眞後白按關北]ㆍ이이(李珥)
삼가청련선생을이별하면서[奉別靑蓮先生]ㆍ백광훈(白光勳)
청련선생이신형상사의누헌에쓰신시에삼가차운하다[敬次靑蓮先生題愼上舍軒.名衡]ㆍ백광훈(白光勳)
영벽당이중건되었기에청련노선생의시에차운하다,두수[暎碧堂重成次靑蓮老先生韻二首]ㆍ이호민(李好閔)
이청련에게답한서한[答李靑蓮季眞書]ㆍ오건(吳健)

제문(祭文)ㆍ만시(輓詩)
제이총재후백문(祭李冢宰後白文)ㆍ구사맹(具思孟)
청련선생을위한만시[靑蓮先生輓]ㆍ백광훈(白光勳)
청련선생을위한만시[靑蓮先生輓]ㆍ양응정(梁應鼎)


신편신역청련집-후집(後集)

세계(世系)ㆍ연보(年譜)
세계(世系)
연보(年譜)

행장(行狀)ㆍ신도비(神道碑)ㆍ실기(實記)
청련선생이공행장(靑蓮先生李公行狀)ㆍ송시열(宋時烈)
청련이공청시행장(靑蓮李公請諡行狀)ㆍ박세채(朴世采)
청련이공신도비명(靑蓮李公神道碑銘)ㆍ황경원(黃景源)
청련선생유사(靑蓮先生遺事)
변무사적(辨誣事蹟)
광국공신록(光國功臣錄)

건원추향사적(建院追享事蹟)
건원사적(建院事蹟)
서봉서원영건통문(瑞峯書院營建通文)ㆍ강항(姜沆)
또다른통문[通文]ㆍ조행립(曺行立)
서봉서원상량문(瑞峯書院上樑文)ㆍ곽성귀(郭聖龜)
강진서봉서원봉안축문(康津瑞峯書院奉安祝文)ㆍ이경여(李敬輿)
강진현청련이공사우봉안고제문(康津縣靑蓮李公祠宇奉安告祭文)ㆍ신익전(申翊全)
함흥문회서원청련추향제문(咸興文會書院靑蓮追享祭文)ㆍ이건명(李健命)
지례도동서원추향제문(知禮道洞書院追享祭文)ㆍ이의조(李宜朝)
지례도동서원춘추상향축문(知禮道洞書院春秋常享祝文)
서봉서원청액소(瑞峯書院請額疏)ㆍ김증(金䎖)ㆍ김진서(金鎭瑞)
구암서원개기축문(龜巖書院開基祝文)
예성축문(禮成祝文)


신편신역청련집-부록(附錄)

신사(信史)기록
조선왕조실록과『국조보감(國朝寶鑑)』
『경연일기(經筵日記)』-이이(李珥)
『율곡연보(栗谷年譜)』
『미암일기(眉巖日記)』-유희춘(柳希春)
『고봉집(高峯集)』-기대승(奇大升)
『사계전서(沙溪全書)』-김장생(金長生)
『춘관통고(春官通考)』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상론(尙論)문헌기록
『청강시화(淸江詩話)』-이제신(李濟臣)
『오산설림(五山說林)』-차천로(車天輅)
『지봉유설(芝峯類說)』-이수광(李睟光)
『어우야담(於于野談)』-유몽인(柳夢寅)
『농암집(農巖集)』-김창협(金昌協)
『호곡시화(壺谷詩話)』-남용익(南龍翼)
『사암집(思菴集)』부록
『장빈거사호찬(長貧居士胡撰)』-윤기헌(尹耆獻)
『부계기문(涪溪記聞)』-김시양(金時讓)
『유천차기(柳川箚記)』-한준겸(韓浚謙)
『월정만록(月汀漫錄)』-윤근수(尹根壽)
「최고죽시집후서(崔孤竹詩集後敍)」-박세채(朴世采)
「논사록발(論思

출판사 서평

『신편신역청련집』의특징

『신편신역청련집』은중간본인석판본과기존『국역청련집』의정리본을기준으로하되,이후백의삶과사상을완벽하게복원하고재조명하는데중대한학술적성과를이루어냈다.

이후백이51세때인1570년에지어올린「국조유선록서」는조선유학의정통을정몽주이후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등‘사현(四賢)’에게서찾고,그들의학문이정주학을계승하여‘의리’와‘조존극치(操存克治)’의방도를가르쳤음을명확히했다.이번신편신역본은이중요한서문전체를수록하여,공의깊은경학(經學)식견과사상을온전히밝히고있다.

이후백은지제교의관함을지닐만큼국왕의교서및조정의공문제술에능했는데,이번신편신역본은명종의왕비인순왕후의지문(誌文)제술사실을비롯하여,그가국정의주요문서를얼마나많이작성했으리라는추정을뒷받침하는귀중한자료들을정리했다.특히장편칠언고시11수는조선중기의정식시(程式詩)로서과거문체의변천사를살필수있는귀중한자료일뿐만아니라,남원광한루의비보를위한철구건립등중요한역사적사실을담고있어문학적ㆍ역사적가치가매
우높다.

기존『국역청련집』에실려있던산문중이후백의글이아닌작품은과감히제외하고,이후백과관련된시12제를비롯한관계문헌을보완하고,국가기록인『국조보감』의관련기록들을수집ㆍ정리하여청련이후백의행적을입체적으로복원했다.

시문(詩文)을현대적감각에맞게새로번역하는동시에,원문의이해를돕기위한상세한주석과깊이있는해설을추가하여연구자는물론일반독자들까지도쉽게청련공의사상에접근할수있도록했다.

이신편신역본의간행은단순한문중사업을넘어,청련이후백의인간과문학,정치활동의공적을보다엄밀하게살피고조선명종,선조연간의『실록』이나해당시기활동인물들의문집에서결락된사실들을보충할수있게함으로써,한국민족문화사를공정하게서술하는데도크게기여하리라기대된다.